내겐 너무 이쁜 그녀 - 노총각 기자 홍성식의 영화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
홍성식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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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중학생까지 성적 매혹에 빠뜨린 금발의 비너스 마릴린 먼로와 리타 헤이워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게 진화한 인류 니콜 키드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난한 발레리나에서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로 놀라운 존재전이를 이뤄낸 샤를리즈 테론 (중략)

 

어찌 먼 이국의 그녀들뿐이랴. 미(美)라는 이름의 벽돌로 축조한 완벽한 성(城) 이영애, 레토릭이 아닌 팩트로서의 완벽한 몸매를 보여주는 장진영, 그리고 그 옛날 코흘리개 나와 친구들을 공히 잠 못 이루게 만든 정윤희와 유지인 그리고 장미희.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여배우들에게 띄우는 연애편지다.

 

책의 서문을 이렇게 화려한 여배우의 이름으로 장식하는 기자 홍성식은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펴낸 책 <내게 너무 이쁜 그녀>는 조금은 신변잡기적이라고 할만한 자기만의 영화평 모음이다.

 

이 책에는 날카로운 영화 비평가들의 분석적 시각보다는 개인적인 취향과 감상이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와 사랑에 빠지고 영화 배우를 좋아하는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며 영화관을 드나들고 거기서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한 저자의 영화 이야기는 그래서 소박하고 재미가 있다.

 

영화 <친구>를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흠도 많고 결점도 쉬이 눈에 띄는 영화라고 평한다. 가끔씩 보이는 엉성한 편집과 등장하는 이유가 파악이 안 되는 평면적 캐릭터의 여주인공, 안티 영웅의 영웅화라는 장르 영화 방식의 고루한 답습 등 그 흠을 나열하자면 꽤 다양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를 감동시켰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며 같은 이유로 울고 웃었던 기억들 <친구>는 모두 돌려주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이라면 공감할만한 롤러 스케이트장런던 보이즈의 노래, 허름한 통닭집 다락에 가방을 숨겨 놓고 여학생들과 어울려 소주를 마시던 일 등이 회상되는 영화의 스토리.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과거를 떠올릴만한 내용이 아니던가.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위주로 하여 영화를 보고 분석할지라도 냉철한 비판과 날카로운 시각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 <친구>에서 <투사부일체>까지의 모든 조폭 영화를 논하는 글에서는 한국 영화, 조폭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라고 주장한다. 언론의 무비판적 조폭 영화 띄워주기에 대한 비판도 강하다.

 

언론의 무비판적 조폭 영화 띄워주기는 정상적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조폭의 전성시대 도래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돈 되는 영화만을 만들려는 충무로의 제작 관행이 보태지고, 관객의 고질적인 영화 편식증까지 가세해 만들어낸 삼위일체. 그 아래서 우리는 지금 깡패 만세!라는 얼토당토않은 숭배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의 이 냉소적인 시각은 팀 버튼 감독에게도 적용된다. <프랑켄위니>와 <가위손>에서 주었던 감동을 더 이상 자아낼 수 없는 팀 버튼의 영화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화성침공>과 <슬리피 할로우>를 평하면서 저자는 길 잃은 팀 버튼 어디로 가나? 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자신이 좋아하던 영화 제작자가 할리우드 자본에 의해 변했다는 사실은 한 영화 팬의 마음을 슬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할리우드 속에 포함되면서 변하는 사람이 어디 팀 버튼 뿐이랴. <황비홍>의 주인공이었던 이연걸이 그러하고 거장 뤽 베송 또한 그러하다. 이들 모두 중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미국땅에서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레옹>의 무대를 뉴욕에서 파리로 옮긴 것에 다름 아닌 <키스 오브 드래곤>은 관객들로 하여금 뤽 베송이 더 이상 진지한 작가이길 포기하고 영화적 재미의 단순 재생산에만 집착하는 영화 기술자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예술가에게 자기복제란 표절보다 위험하다.

 

한걸음 물러서자. 뤽 베송이 프랑스 영화를 대신할 보통명사도 아닐 뿐더러, 그가 영화적 변신을 한 것인지 자본에 투항해 변절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없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관람료를 지불하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 영화에 환호할 권리와 동시에 비판할 권리까지 부여 받는다는 것.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환호하며 냉혹하게 비판하고 또 즐긴다. 영화 평론에 있어서 어떤 공통된 시각이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세밀한 부분에 대한 해석들은 모두 관객의 몫이다. 그 해설을 자기 나름대로 펼치고 있는 책 <내겐 너무 이쁜 그녀>는 아마도 날라리 기자의 영화 그리고 여자 배우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세상에는 영화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영화를 분석하여 보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구분 지어 말하면 무엇 하리오! 영화를 즐기는 것이 곧 분석하는 것이요, 분석하고 평하는 것이 곧 즐기는 것일 수 있다. 만약 즐거운 영화 비평을 보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여러 영화를 논하는 즐겁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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