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의 노래
슛더쇼따 바슈 지음, 김용인 옮김 / 영림카디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더니 제법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엄마 아빠가 전쟁 영화를 보면 옆에 앉아 “군인 아저씨들이 왜 총을 쏘는 거예요? 누가 나쁜 사람이예요?”라고 말하며 선과 악에 대한 정의를 묻고, 뉴스에서 난장판 국회 모습이 나오자 “저 사람들은 화가 났어요?”라는 질문을 한다.




아이의 정신세계가 부쩍 성숙했음을 느낄 때마다 이런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한창 ‘공주 이야기’에 푹 빠져 있어서 명작 동화를 많이 읽어주었는데, 의외로 철학적인 내용의 책들이 제법 아이의 흥미를 끄는 모양이다.




<허수아비의 노래>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인 인도의 수다사투어 바수가 쓰고 그린 책이다. 다섯 살 딸이 최근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데, 어른들의 눈에는 인도풍의 허수아비가 참 낯설다. 이런 낯섦이 아이 눈에는 귀엽게 느껴지니 동심의 세계는 때묻은 우리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늘 이렇게 한 자리에 서 있는 건 정말 지겹고 힘들어.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책은 이렇게 허수아비의 혼잣말로 시작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서 있었던 작은 옥수수밭을 떠난 허수아비. 길을 가다 암소를 만나 함께 산책할 것을 요청하지만 소는 아기에게 젖을 줘야 하고 주인에게 우유를 주어야 한다고 거절한다.




작은 배에 올라타 물고기를 만난 허수아비는 함께 배를 타자고 얘기한다. 물고기는 자신이 물 밖으로 나가면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강 깊은 곳으로 사라진다. 허수아비는 좀 쓸쓸했지만 자신이 찾은 자유를 마음껏 즐긴다. 먹구름의 그림자를 따라가기도 하고, 나비를 쫓느라 바쁘다.




“이런 게 좋은 인생이라는 거구나. 나는 정말 자유롭고 참 행복해”




이렇게 외치던 허수아비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 황혼을 맞이한다. 허수아비가 깨어났을 때 해님은 하루 일을 마감하고 있었다. 황금의 왕 미다스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허수아비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황금빛으로 물이 든다.




이 모습을 본 허수아비는 동그랗게 눈을 뜬다. 이 아름다운 광경이 자신의 작은 옥수수밭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작은 옥수수밭이 그리워진 허수아비는 지금까지 행복했던 것들을 모두 마음에 묻고 떠나왔던 자기의 옥수수밭으로 발길을 돌린다.




돌아간 옥수수밭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누군가 옥수수 알갱이들을 모두 먹어치우고 뿌리까지 뽑힌 옥수수들이 흩어져 있다. 이 옥수수밭을 본 허수아비는 무척 슬프다.




“나는 참 행복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무지무지 슬퍼...”




허수아비는 울먹이지만 사랑하는 옥수수밭에 남기로 한다. 이 일 이후에도 해님은 여전히 아침이면 두둥실 떠오르고, 서쪽 하늘은 고운 저녁놀을 깔고 스르르 잠이 든다. 시간은 이렇게 흐르면서 땅의 아픈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잘 자란 옥수수들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면, 그 바람에 물결치는 작은 옥수수밭은 마치 초록빛 바다 같았다.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그 모습을 본 허수아비는 무척 행복했고 해가 지면 밤마다 옥수수들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추운 날, 밤하늘에서 별님들이 반짝일 때나

남쪽에서 솔솔 불어 온 산들바람이 너희 머리카락을 물결치게 할 때

나는 너희한테서 내 마음의 고향을 본단다.

아기들아,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해. (후략)”




책은 이렇게 허수아비의 노래로 끝이 난다. 제법 긴 내용이지만 허수아비의 우스운 얼굴 덕분에 아이는 지겹지 않게 잘 따라 읽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리에 있을 때 행복을 모르는 법’이라는 철학적인 내용도 적당한 수준에서 스스로 이해한다. 아직은 정확히 그 전달하는 바를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와 닿는 모양이다.




명작동화나 전래동화, 출판계에서 유명하다는 창작동화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흔하지 않은 내용과 그림의 책을 접하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쉽게 더 빨리 많은 것을 습득하기 때문에 책도 다양한 것이 바람직하다.




인도라는 저 먼 나라의 화가 아저씨가 그린 ‘허수아비 그림과 노래’는 아이들 마음에 깊은 정서적 감흥을 일으킨다. 허수아비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기 옥수수밭이 망가진 모습에 슬퍼하는 걸 읽고는 우리 아이도 함께 슬퍼한다. 마지막에 아름다운 옥수수밭이 펼쳐지자, 아이의 마음도 편안한지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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