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거위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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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로 유명한 프랭크 바움의 동시집을 한국에서 번역했다. 그것도 덴슬로우의 삽화를 그대로 싣고 원 영문과 한국어 번역을 동시에!

(민음사 세계시인선도 이렇게 원문과 번역을 함께 싣는데 소설과 달리 시는 이렇게 원문의 느낌을 알 수 있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프랭크 바움은 페미니스트 운동을 지지해서 그런지 제목부터 mother goose가 아닌 father goose로 뒤집었는데.. 글쎄 엄마 거위 이야기가 쓸모없었다는 거나 엄마 대신 아이들을 돌본다고 해서 '불쌍한' 아빠 거위라고 하는 거나 페미니즘에 대해 뭔가 오해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을까 우려도 된다. 뭐 장모가 suffrage 운동가 Matilda Joslyn Gage였으니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은 여성 편에 서있다고 하면서 실은 왜곡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의 흑인이나 미국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태도가 담긴 시들은 한국 출판사 측에서 현명하게 없앴다지만 그가 기고한 인디언 학살을 옹호하는 사설 등과 함께 현재 이 작품이 아무리 그런 작품들을 걸러냈다고 해도 문학적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빈티지한 덴슬로우의 삽화는 마음에 들고 어떤 시들(대머리 할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살짝 마음에 들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이 너무 단순해서 내가 동시에서 바라는 상상력을 자아내는 그런 맛이 부족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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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서구 사회에서 살아온 동양인 여자애로서 나는 안그래도 ‘어울리지 못함‘에 대해 자의식과잉이었던 사춘기에 ‘나‘를 이 동네의 ‘타자‘로 인식하고 심지어 모국인 한국에 돌아와서도 단일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 때문인지 마치 내가 한국인으로서 뭔가 결여된 듯이 완전한 소속감이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고 성장했다. 그리고 미투 운동, 김치녀, 맘충이란 단어에 분노하는 여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외국인과 성소수자 무슬림 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 발언을 함께 들으면 ‘아, 저 사람들은 남성 사회에서는 차별받거나 배제된 경험이 있는 피해자였어도 다른 정체성의 속성에 대해서는 아예 타자와 직접 교류한 경험이 별로 없거나 경험이 있어도 차별/소외의 대상이 아닌 또 다른 입장에서만 서본 사람들이구나..‘하고 정체성은 참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나‘와 ‘타자들‘을 경계짓는 선은 단순한 것이 아니고 다원화 사회 속에서 이전에 비해 더 복잡해진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솔데 카림은 그 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태도를 깨뜨리기 위한 망치가 되는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우선 저자는 다원화 사회를 파헤치기 이전에 되돌아가 과거부터 시작한다. 과연 다원화라는 말이 나오기 전의 과거에 있던 동질사회는 무엇인가? 이 책은 변화 이전의 동질사회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상징적, 물리적 폭력을 필요로 한, 의도된 정치 행위의 결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민족이나 동질 사회라는 상상은 언제나 잘 기능하는 허구였다고 한다.

우리가 소위 독일인은 꽉 막혔고 이탈리아인은 제멋대로고 그런 식의 스테레오타입화된 민족 유형은 민족 형성을 통해 이루어졌다. 유럽 사회의 민족 형성과 민주화 운동은 동시에 일어났지만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민주주의는 ‘보편적 개인‘의 생성을 의미하고 책에서는 이 사회의 개인화를 크게 1세대, 2세대, 3세대 개인주의로 분류한다. 1세대 개인주의의 민주화에서는 보통선거의 1인1표 원칙을 위해 우리가 누구든 상관없이 산술적으로 동등한 추상적 평등을 지향했다. 반면 민족 형성 운동은 이렇게 생성된 공적 정체성에 민족서사를 통해 구체적인 형상과 규정을 제공했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동질사회에서 규정한 하나의 환경이 개인에게 온전한 정체성을, 그리고 당연한 소속감을 보장했다.

하지만 다원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단 하나의 유형, 단 하나의 환경으로 조직되지 않고 민족적 형상이라는 허구가 없어진 우리는 더 이상 온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 2장에서는 그런 오늘날의 다원화를 설명한다. 동질 사회의 허상을 파헤친 저자는 다원화에 대한 오해 또한 해부대에 올린다. 우선, 사람들이 다원화를 고유한 토착 문화에 단순히 더함으로써 생긴다는 오해를 하는데 다원화는 더하기가 아니다. 다원하는 더한것을 빼거나 통합함으로써 피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이며 합해진 개별 요소들이 변하기 않고 그대로 있는 더하기가 아니고 기존의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오늘날 모든 문화에는 이웃한 문화가 있고 더이상 당연한 문화, 당연한 소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저항하는 주도문화 (Leitkultur) 논쟁에서 저자는 정상성, 당연함이 단지 그 정상적 형태가 통용되는 집단에 소속되는 이들만을 위한 가치이며 정상석이 배제 및 제외의 역학이라고 꼬집는다. 일자로서의 유형의 해체는 개인주의의 역사와도 연관되었다. 1장에서 언급된 거대 조직들에 개인을 변화시키는 일을 맡겼던 1세대 개인주의에 이어 1960년대 이후 자기만의 길을 걷는, 자기 진실성이 중요시되는 소수자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운동, 흑인인권운동 등)으로 자신이 변하지 않은 채로 차이를 인정받는 제2세대 개인주의에 이어 3세대 개인주의라고 하는 오늘날의 다원화가 나타났다. 다원화는 2세대 개인주의와 달리 정치운동이 아니라 목적 없는 변화가 낳은 효과이며 민족의 형상을 재규정하려 하지 않고 민족 형상의 침식을 촉진한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다원화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정체성이나 소속이 당연하지 않은 축소된 자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정체성의 precariat가 되었고 이런 변화는 종교, 문화, 정치 등 사회의 모든 무대에서 진행 중이다. 종교에서는 이제 전통에 의해 전승되었고 자신의 자리를 지정받는 대신 신앙의 개인적 선택이라는 세속적 요소가 들어온다. 이것이 반드시 성숙한 결정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슬람 근본주의 등이 보여주고 있다. 문화의 무대에서는 단지 하이퍼 문화와 본질주의적 문화와의 대립이 아닌 완전한 상징과 불완전한 상징의 대립관계가 나타난다. 원주민의 문화와 이민자의 문화 사이에 정치전선이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포괄적인 ‘우리‘를 원하는 이들과 배타적인 ‘우리‘를 원하는 이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즉 Who are you?(너는 누구냐?)가 아니라 Who do you think you are?(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어봐야할 때다. 우리는 나와 타자, 아군과 적군의 허구를 만들어 내서 구별지을 뿐.. 실제로는 그 구별짓기의 실체는 우리의 상상일 뿐인 것을 알아낸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대한 메타 인지가 필요하다. 즉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정치적 무대에서도 1세대 개인주의가 정당, 2세대 개인주의가 NGO 등 보다 부분적인 소수를 대표하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었다면 오늘날의 정치무대는 탈정치화라고 오인될 수도 있는 정치운동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다. 5장에서 팬으로서의 참여가 말해주듯이 마크롱같은 스타 정치인, 전문가에게 정치 운동은 위임되고 대중은 경청받고 인정받는 무대를 제공받고 정치활동의 성공을 배당받는 일종의 팬으로 변했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포퓰리즘이 다원화 세계에서 축소된 정체성에 의해 촉진된 부정적 감정(분노, 불안 등)을 이용하여 이를 표현할 분출구가 되어주면서 세계 정치 무대에 자리잡은 것에 대한 분석과 이에 반응하는 좌파의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배울 교훈을 가리킨다.
바보 멍청이들아! 문제는 측정할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것들이라고!하며 이성에 대한 호소와 계몽 및 경제적 분배만 강조하는 좌파들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느낌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일자의 세계관이 없고 사회는 이에 대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중립성 뿐이다. 하지만 그 중립성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날카롭게 의문을 던진다. 당연함에서 벗어난 다원화 사회에서는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집요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그래서요? 다원화 시대의 우리는 대체 뭘 어쩌란 말입니까?하고 질문을 묻고 싶어지는 충동이 들 무렵 저자는 그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 갈무리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답변, 즉 단순한 해결책을 누군가가 제시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하며 이런 질문을 또다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들에게 맡겨버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현 시대의 징후라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저자로서 뭔가 구체적 결론을 피해가는 것 같아 의심쩍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런 질문을 쳇바퀴 돌리는 정치적 전문가의 사이클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자신들이 당연시한 허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분석하는 메타 인지적 상황의 규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외부적 규정보다는 자발적인 주의와 침착해짐을 통해
모든 다양함이 동등하게 만나 서로 교류하고 경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표현하고자 ‘만남 지역(Encounter zone)‘이라는 metaphor를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이런 개념이 아직 없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은 점이 좀 아쉬웠다.
Shared space나 encounter zone, traffic calming zone, living street라는 호칭들이 보여주듯이 교통의 약자들(보행자)가 강자들(자동차)과 만나고 함께 공유하는 삶의 터전으로서 좀더 침착한 정신과 늦춰진 속도로 약자를 배려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장소. 전문적 외부적 규제에서 벗어나 자발적 통제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위키피디아의 자가 교정 기능처럼 갈수록 미래는 이런 자기 인지 및 자기 고찰이 필요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성별 성지향성 정신과 신체의 장애 외국인 및 종교적 차이 지역 차이에 대한 혐오 발언과 우파 좌파의 양극적 분열 등은 지금 지나치게 과열되어있다. 게다가 이런 부정적 감정을 대중에게 위임받아 대신 분출시키고 대중을 대신하여 거의 막말을 남발하며 발언하는 ‘전문가’들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나는 솔직히 요즘 너무나도 잡다한 것까지 청와대에 청원으로 올라오는 것도 걱정되지만 단지 이런 일시적인 감정 발산과 단순 지지/반대로 인해 실제 토론과 교류에 대한 욕망/필요를 대리만족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것이 우파이든지 좌파이든지 포퓰리즘의 다수결에 편승해서 개인의 생각과 다양성이 묻혀버리는 건 아닌가
단순한 해결책에 대한 우리의 헛된 희망사항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은건 아닌가
상상 속의 타자에게 우리의 불만을 돌리려고 하며 실제 대면해야 할 것을 피하는 게 아닌가


https://en.wikipedia.org/wiki/Living_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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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부윤아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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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텃밭을 가진 친정엄마랑 같이 읽은 책

농장일기(가을,겨울) - 여행일기 - 일상일기 - 농장일기 (봄,여름)의 순서로 짜였다.

 


농장 일기라는 제목 치고는 농사 얘기는 작은 텃밭의 고충과 실패담이 많고 다른 일상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있지만

아마추어 농부로서 정말 공감간다고 엄마는 끄덕끄덕..

하지만 아마추어 농사나 가드닝은 커녕 식알못 black thumb (green thumb의 반대로 다육이도 죽여버리는 검은손;;)인 나로서는

누에콩의 심는 방향이라든지 망고씨가 실은 겉껍질이라든지 처음 들어본 신기한 미지의 이야기들로 가득차서 또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작가의 삽화는 식물들은 의인화하고 자신은 약간 음흉한 자아도취에 빠진 웃긴 아저씨로 그리는 등 재미에 플러스 요소를 더했다. 작가가 극찬한 쇼지 사우다의 손으로 그린 삽화처럼 농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하고 웃음도 추가하는 '바삭바삭한 튀김옷에 뿌리는 주인장 셰프만의 특제 소스'같은 그림이다. 글도 맛깔나게 쓰는데 그림까지 잘 그리다니 세상은 불공평해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농장일기는 1부는 가을 겨울

그리고 2부는 가을 겨울에는 별로 심는게 없다고 아쉽다고 봄 여름을 배경으로 했는데 얄궃게도 그 해 쫄딱 망해버려서 마지막은 약간 금욕에 눈이 멀어 허황된 꿈에 부풀어 심은 망고씨로 끝맺음하는 웃픈 전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대를 뒤엎는 농사꾼의 삶을 잘 반영하는 듯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여행 일기는 솔직히 내가 일본 여행을 도쿄, 홋카이도, 오키나와밖에 안 해봐서 모르는 지명도 많아 별로 안 좋아할 듯 했지만 의외로 구체적인 고장의 이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여행할 때의 어설픔이나 묘미 아쉬움 등에 대해 이야기해서 공감이 충분히 가고 (나도 항상 읽지도 못하는 책과 쓰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다니는 여행 하수) 돌아가신 아버지와 한번도 제대로 가지 못한 여행, 친구의 장례식에서 아직 이른 나이인데 안타까워하고 자신도 건강을 조심하는 게 아니라 이제 더이상 이른 나이도 아니니까 더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한다는 생각 등 약간 울컥한 부분도 있다. 그래, 삶도 여행이니까.. 너무 철저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마음 가는대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일상 일기가 오히려 일본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스모 선수나 아이돌 등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공감가기 힘들었는데 그중 앞에서 말한 쇼지 사우다는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일어에 능숙해야하고 일본의 일상적인 식문화에 익숙해야해서 외국에서는 번역하기 힘들 거라고 평한 에세이작가로 '베어먹기(마루카지리)' 시리즈로 30권 넘게 음식에세이를 쓴 작가다. 남편이 즐겨보는 먹방도 안 좋아하고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언젠가 일본 서점에 가면 한 권 쯤 사서 읽어보고 싶다. 제목 중 너구리 베어먹기도 있던데.. 일본에도 너구리 라면이 있나?


 

그리고 물렁물렁 두리뭉실한 듯한 농장일기와 다르게 일상일기에서는 소설가다운 진지함 외에도 독자로서의 작가의 모습도 보였다. 나도 실은 작가처럼 느리게 읽고 읽다가 궁금한 점이 나오면 바로바로 찾아보다 그쪽 세계로 빠져드는 약간 덕후스럽고 산만한 독자로서 반가웠다. 또한 마냥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약간 삐딱하게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줘서 나처럼 약간 삐뚤게 세상을 바라보는 동지가 있는 듯해서 반가웠다.


예전에 엄마들을 겨냥한 '엄마'라는 제목을 가진 육아 교육 책은 엄청 많은데 아빠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 출판없계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작가는 반대로 '여자의 육아'라는 말이 거의 이슈화가 안되는 점에서 남자들의 육아 참여의 부족을 지적한다.

 

남자의 육아라는 말은 자주 듣는데 여자의 육아라는 말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겨울의 산타클로스'라고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육아는 아직도 여전히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이 말 자체가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 p.258

그리고 점차 일본의 전체주의와 국수적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건강한 개인주의를 작가는 옹호한다.

몽골계 스모선수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동경올림픽 대표선수들을 보고


자신은 1미터도 뛰지 않고, 헤엄치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해머나 창이 아닌 맥주잔을 한 손에 든 채 국가의 위신이니 일본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자식 또래밖에 안 되는 선수들 어깨에 지우다니 불쌍하다고. 이기는 사람은 선수이지 우리가 아니다. 경기에 져서 가장 분한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고 '이제 뭘 할까'로 그만인 우리가 아닌 것이다. - p.252


하거나 '스스로 쿨하다고 말하는 것은 쿨하지 않은 것'이라는 제목 아래 작가가 쓴 내용은 내가 한국의 국제경기나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자주 느낀 바여서 농사일의 고충에 공감하는 친정엄마처럼 끄덕끄덕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최근 '일본이 대단하다' '외국인이 이런 일본을 칭찬한다'같은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이 늘어난 것 같다.

어쩐지 겸연쩍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항문이 근질근질하다.

이건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이웃한 한국이나 중국에서 계속해서 험담을 들어온 반동으로 그 외의 국가에서 듣기 좋은 의견을 듣고 싶다, 자신감을 되돌리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야 남에게 칭찬받으면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본이 칭찬받거나 일본인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뉴스 같은 것을 보면 내 일처럼 흐뭇하게 표정이 풀리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어쩐지 꼴사납지 않은가, 라고.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중략)

'쿨 재팬 추진회의'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부끄럽다. '쿨 재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할 말이지 스스로 내세울 말은 아닐 텐데. 그렇잖아요, 바꿔 말하면 '멋있는 우리 추진회의'라고요.

그보다 먼저 말하고 싶다. 지금에 와서 쿨 재팬을 가로채지 말라고.

(중략)

이 나라의 어디가 매력적인가는 살고 있는 본인들은 모르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스스로는 잘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딱히 타인에게(타국에)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미움 받는 것보다는 사랑받는 편이 좋다고 하면 폼을 재며 뽐내지 말고, 주변은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제대로 반성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있으면 된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났는지를 자랑하는 인간은 우선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의외로 자신들이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만화가 그랬듯이), 타인에게는 장점으로 보이는 일도 있다. 우리게에게는 신통치 않게만 보이는 풍경을 열심히 촬영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자주 만나지 않는가.


 

.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잠시 전투적이 된 부분에 대해서 소심하게 양해를 구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별로 안 미안하다는 듯이 귀엽게 삐죽댄다. ^_^;;


 

 



참고로 나는 이 소설가의 에세이집을 접하기 전 상까지 받았다는 그의 소설을 접해본적 없고

친정엄마는 이 소설을 이미 읽었는데 소설은 너무 센티멘탈했고 이 에세이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토마토나 수박처럼 신경쓰고 어깨에 잔뜩 힘주고 공들이는 소설보다

가지처럼 그냥 냅두다 보며 알아서 자라나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과 편안함을 보여주는 에세이가 가끔 더 맘에 들 때가 있다.

나도 여름 가지 무지 좋아하는데.. 이걸 보고 가지나 함 키워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의 육아라는 말은 자주 듣는데 여자의 육아라는 말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겨울의 산타클로스‘라고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육아는 아직도 여전히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이 말 자체가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 P258

자신은 1미터도 뛰지 않고, 헤엄치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해머나 창이 아닌 맥주잔을 한 손에 든 채 국가의 위신이니 일본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자식 또래밖에 안 되는 선수들 어깨에 지우다니 불쌍하다고. 이기는 사람은 선수이지 우리가 아니다. 경기에 져서 가장 분한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고 ‘이제 뭘 할까‘로 그만인 우리가 아닌 것이다. - P252

최근 ‘일본이 대단하다‘ ‘외국인이 이런 일본을 칭찬한다‘같은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이 늘어난 것 같다.

어쩐지 겸연쩍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항문이 근질근질하다.

이건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이웃한 한국이나 중국에서 계속해서 험담을 들어온 반동으로 그 외의 국가에서 듣기 좋은 의견을 듣고 싶다, 자신감을 되돌리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야 남에게 칭찬받으면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본이 칭찬받거나 일본인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뉴스 같은 것을 보면 내 일처럼 흐뭇하게 표정이 풀리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어쩐지 꼴사납지 않은가, 라고.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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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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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양철학사개론을 대충 훑고 지나가며 배운 적이 있을때 강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에서는 무지 자세하게 강의하다가 스토아주의에 대해서는 금욕 아파테이아 정도만 짚어가고 小 카토 같은 일화를 들고 독한 놈들이라는 인상을 깊게 박아두고 그냥 넘어간 것 같다. 비슷하게 대충 넘어간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한 반발로 이런 극단적 금욕주의가 발생한 것일까 하고 넘겨짚었지만.. 실제로 나중에 Epicurus의 편지 등을 모은 The Art of Happiness (Penguin 사)와 루크레티우스의 De rerum natura를 읽어보고서 에피쿠로스가 그냥 쾌락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듯이 스토아학파도 수박겉핥기식의 인문학강의를 통해 배운 것과 실제로는 다른 것을 알게되었다.

 

이 책은 우선 단테가 지옥을 여행할 때 그의 선배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가이드로 삼았듯이 Epictetus를 가이드로 삼고 가이드에 이어 그 지역을 여행하기 위한 필수품인 지도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여정을 소개한다. 즉, 스토아 학파의 발전(초기,중기, 후기에 이어 현대까지의 발전) 및 스토아주의의 3가지 규율들과 탐구영역들 그리고 4가지 덕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뒤따른 장에서 그것을 좀더 자세히 그리고 현대의 지식과 사회인식에 맞추어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고 응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의 몸도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태이고 내 아이들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때는 좌절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럴때 뇌과학과 CBT 등 행동치료요법도 알게 되었고 엘리스나 프랭클 등의 저서도 접해보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고대의 스토아주의와 연관이 되어있다니 놀라웠다. 이 책을 읽고나서 찾아보니 실제로 CBT나 alcoholic anonymous 등 스토아주의와 연관된 현대의 많은 인지행동연구들에 관한 논문이나 유튜브 동영상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불교나 도교 등의 동양사상과도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나 자신도 나에 대해서든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지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최선을 다하되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쩌면 스토아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겠지.

 

 

극단적 금욕주의라는 편견 외에도 Cicero나 Seneca의 책들 제목은 How to grow old나 On the shortness of life: Life is long if you know how to use it 등 뭔가 자기계발서 느낌이 나는 제목들이어서 꺼려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지금껏 무시하고 안 읽어온 Cicero, Epictetus, Seneca 등의 글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항상 오르내리는 자기게발서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계발서들이 궁극적으로 '남들의 눈에 보이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자기계발을 하는 경향이 강해서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 인식이나 성공과 상관없이 자신의 덕, 즉 남들을 위해 자신을 갈고닦는 그러한 자기계발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고전의 스승들로부터 나도 일상 속에서 가이드를 얻었으면 한다. 스토아주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실제로 실천가능하고 유용한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이 책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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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무선)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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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브루 (무선)
R. H. 모레노 두란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1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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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 (무선)
리카르도 피글리아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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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을 위한 학교 (무선)
사샤 소콜로프 지음, 권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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