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부윤아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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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텃밭을 가진 친정엄마랑 같이 읽은 책

농장일기(가을,겨울) - 여행일기 - 일상일기 - 농장일기 (봄,여름)의 순서로 짜였다.

 


농장 일기라는 제목 치고는 농사 얘기는 작은 텃밭의 고충과 실패담이 많고 다른 일상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있지만

아마추어 농부로서 정말 공감간다고 엄마는 끄덕끄덕..

하지만 아마추어 농사나 가드닝은 커녕 식알못 black thumb (green thumb의 반대로 다육이도 죽여버리는 검은손;;)인 나로서는

누에콩의 심는 방향이라든지 망고씨가 실은 겉껍질이라든지 처음 들어본 신기한 미지의 이야기들로 가득차서 또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작가의 삽화는 식물들은 의인화하고 자신은 약간 음흉한 자아도취에 빠진 웃긴 아저씨로 그리는 등 재미에 플러스 요소를 더했다. 작가가 극찬한 쇼지 사우다의 손으로 그린 삽화처럼 농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도 하고 웃음도 추가하는 '바삭바삭한 튀김옷에 뿌리는 주인장 셰프만의 특제 소스'같은 그림이다. 글도 맛깔나게 쓰는데 그림까지 잘 그리다니 세상은 불공평해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농장일기는 1부는 가을 겨울

그리고 2부는 가을 겨울에는 별로 심는게 없다고 아쉽다고 봄 여름을 배경으로 했는데 얄궃게도 그 해 쫄딱 망해버려서 마지막은 약간 금욕에 눈이 멀어 허황된 꿈에 부풀어 심은 망고씨로 끝맺음하는 웃픈 전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대를 뒤엎는 농사꾼의 삶을 잘 반영하는 듯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여행 일기는 솔직히 내가 일본 여행을 도쿄, 홋카이도, 오키나와밖에 안 해봐서 모르는 지명도 많아 별로 안 좋아할 듯 했지만 의외로 구체적인 고장의 이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여행할 때의 어설픔이나 묘미 아쉬움 등에 대해 이야기해서 공감이 충분히 가고 (나도 항상 읽지도 못하는 책과 쓰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다니는 여행 하수) 돌아가신 아버지와 한번도 제대로 가지 못한 여행, 친구의 장례식에서 아직 이른 나이인데 안타까워하고 자신도 건강을 조심하는 게 아니라 이제 더이상 이른 나이도 아니니까 더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한다는 생각 등 약간 울컥한 부분도 있다. 그래, 삶도 여행이니까.. 너무 철저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마음 가는대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일상 일기가 오히려 일본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스모 선수나 아이돌 등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아서 좀 공감가기 힘들었는데 그중 앞에서 말한 쇼지 사우다는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일어에 능숙해야하고 일본의 일상적인 식문화에 익숙해야해서 외국에서는 번역하기 힘들 거라고 평한 에세이작가로 '베어먹기(마루카지리)' 시리즈로 30권 넘게 음식에세이를 쓴 작가다. 남편이 즐겨보는 먹방도 안 좋아하고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언젠가 일본 서점에 가면 한 권 쯤 사서 읽어보고 싶다. 제목 중 너구리 베어먹기도 있던데.. 일본에도 너구리 라면이 있나?


 

그리고 물렁물렁 두리뭉실한 듯한 농장일기와 다르게 일상일기에서는 소설가다운 진지함 외에도 독자로서의 작가의 모습도 보였다. 나도 실은 작가처럼 느리게 읽고 읽다가 궁금한 점이 나오면 바로바로 찾아보다 그쪽 세계로 빠져드는 약간 덕후스럽고 산만한 독자로서 반가웠다. 또한 마냥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약간 삐딱하게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줘서 나처럼 약간 삐뚤게 세상을 바라보는 동지가 있는 듯해서 반가웠다.


예전에 엄마들을 겨냥한 '엄마'라는 제목을 가진 육아 교육 책은 엄청 많은데 아빠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 출판없계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작가는 반대로 '여자의 육아'라는 말이 거의 이슈화가 안되는 점에서 남자들의 육아 참여의 부족을 지적한다.

 

남자의 육아라는 말은 자주 듣는데 여자의 육아라는 말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겨울의 산타클로스'라고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육아는 아직도 여전히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이 말 자체가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 p.258

그리고 점차 일본의 전체주의와 국수적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건강한 개인주의를 작가는 옹호한다.

몽골계 스모선수의 스캔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동경올림픽 대표선수들을 보고


자신은 1미터도 뛰지 않고, 헤엄치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해머나 창이 아닌 맥주잔을 한 손에 든 채 국가의 위신이니 일본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자식 또래밖에 안 되는 선수들 어깨에 지우다니 불쌍하다고. 이기는 사람은 선수이지 우리가 아니다. 경기에 져서 가장 분한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고 '이제 뭘 할까'로 그만인 우리가 아닌 것이다. - p.252


하거나 '스스로 쿨하다고 말하는 것은 쿨하지 않은 것'이라는 제목 아래 작가가 쓴 내용은 내가 한국의 국제경기나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자주 느낀 바여서 농사일의 고충에 공감하는 친정엄마처럼 끄덕끄덕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최근 '일본이 대단하다' '외국인이 이런 일본을 칭찬한다'같은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이 늘어난 것 같다.

어쩐지 겸연쩍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항문이 근질근질하다.

이건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이웃한 한국이나 중국에서 계속해서 험담을 들어온 반동으로 그 외의 국가에서 듣기 좋은 의견을 듣고 싶다, 자신감을 되돌리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야 남에게 칭찬받으면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본이 칭찬받거나 일본인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뉴스 같은 것을 보면 내 일처럼 흐뭇하게 표정이 풀리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어쩐지 꼴사납지 않은가, 라고.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중략)

'쿨 재팬 추진회의'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조직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부끄럽다. '쿨 재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할 말이지 스스로 내세울 말은 아닐 텐데. 그렇잖아요, 바꿔 말하면 '멋있는 우리 추진회의'라고요.

그보다 먼저 말하고 싶다. 지금에 와서 쿨 재팬을 가로채지 말라고.

(중략)

이 나라의 어디가 매력적인가는 살고 있는 본인들은 모르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스스로는 잘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딱히 타인에게(타국에)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미움 받는 것보다는 사랑받는 편이 좋다고 하면 폼을 재며 뽐내지 말고, 주변은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제대로 반성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있으면 된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났는지를 자랑하는 인간은 우선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의외로 자신들이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만화가 그랬듯이), 타인에게는 장점으로 보이는 일도 있다. 우리게에게는 신통치 않게만 보이는 풍경을 열심히 촬영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자주 만나지 않는가.


 

.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잠시 전투적이 된 부분에 대해서 소심하게 양해를 구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별로 안 미안하다는 듯이 귀엽게 삐죽댄다. ^_^;;


 

 



참고로 나는 이 소설가의 에세이집을 접하기 전 상까지 받았다는 그의 소설을 접해본적 없고

친정엄마는 이 소설을 이미 읽었는데 소설은 너무 센티멘탈했고 이 에세이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할 것 같다.

토마토나 수박처럼 신경쓰고 어깨에 잔뜩 힘주고 공들이는 소설보다

가지처럼 그냥 냅두다 보며 알아서 자라나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과 편안함을 보여주는 에세이가 가끔 더 맘에 들 때가 있다.

나도 여름 가지 무지 좋아하는데.. 이걸 보고 가지나 함 키워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의 육아라는 말은 자주 듣는데 여자의 육아라는 말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겨울의 산타클로스‘라고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육아는 아직도 여전히 ‘한여름의 산타클로스‘. 이 말 자체가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 P258

자신은 1미터도 뛰지 않고, 헤엄치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해머나 창이 아닌 맥주잔을 한 손에 든 채 국가의 위신이니 일본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자식 또래밖에 안 되는 선수들 어깨에 지우다니 불쌍하다고. 이기는 사람은 선수이지 우리가 아니다. 경기에 져서 가장 분한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고 ‘이제 뭘 할까‘로 그만인 우리가 아닌 것이다. - P252

최근 ‘일본이 대단하다‘ ‘외국인이 이런 일본을 칭찬한다‘같은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책이 늘어난 것 같다.

어쩐지 겸연쩍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항문이 근질근질하다.

이건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이웃한 한국이나 중국에서 계속해서 험담을 들어온 반동으로 그 외의 국가에서 듣기 좋은 의견을 듣고 싶다, 자신감을 되돌리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야 남에게 칭찬받으면 기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본이 칭찬받거나 일본인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뉴스 같은 것을 보면 내 일처럼 흐뭇하게 표정이 풀리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어쩐지 꼴사납지 않은가, 라고.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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