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저항 - 일제말 사회와 문학
김재용 지음 / 소명출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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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에는 친일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흔히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하게 되었다고 친일 문인들이 말한 바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친일을 했다. 게다가 징병제도가 선포되었을 당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과거 일제하 친일 문학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아연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징병제도가 선포되었을 당시 그 많은 친일문학가들이 감격과 희열을 감추지 못하고 심지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다. 자기 동적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흥분된 어조로 글을 쓰고 있는 이들 작가들의 행동이 믿기지 않아 자발적이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든가 혹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러한 짓을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118P中-

  김재용 교수의 협력과 저항은 그런 사실들을 그때의 시대상황과 증언, 정확한 자료등을 토대로 분석한다. 실제로 일제의 강압에 의해 친일을 한 사람들은 친일파라고 할 수 없다는게 작가의 생각이다. 정지용이 쓴 이토나 이태준의 「제1호 선박의 삽화」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논리와 근거 없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지식인 들이라면 더 그렇다.

  문인들이 일제에 협력하게된 계기는 첫째, 1938년 10월 동방의 마드리드라고 불리던 무한 삼진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이후 이다. 중일전쟁이기 때문에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이 전쟁에 승리하여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길 바라고 있던 지식인들은 이제 독립은 불가능 할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일본이 대세라고 생각하고 그에 협력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스스로 친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의 문인들의 심정은 그들이 발표한 글들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당시는 일제가 문화정책을 쓰고 있던 때라,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할 수 있었던 시기이므로 그들의 자발성은 명백하다. 

 
 

  대표적인 친일 문인 이광수는 한때 독립을 바라기도 했으나, 독립이 불가능 하다고 판단하고, 피와 살이 일본인 처럼 되어 조선인들이 받았던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이 자신이 책무이며 이렇게 하지않으면 민중에 대한 지식인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일본군에 종군하여 일본군의 전쟁에서 죽어가는 것이야 말로 조선인이 일본인과 차별을 받지 않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였기에 징병제도가 선포되자 진심으로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렸던 것이다. 해방후 자신이야 말로 애국자라는 어이없는 발언은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친일 문인들이 일제에 협력하게 된 두번째 계기는 1940년 파리 함락이 준 충격이다.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자 근대 서구문화의 상징이기도한 파리가 나치즘의 독일에게 함락되자 신체제론이 급부상 하게 된다. 유럽이 중심이 된 서양의 '구체제'에서 벗어나 일본이 내세우고 있는 대동아공영권을 중심으로 한 '신체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책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일제에 누구나 친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친일을 한사람보다 저항을 한 문인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탄압이 강화 되었던 일제말이기에 어떤 글을 쓰지 말라고 권유받은 것이 아니라, 친일적 성향이 담긴 글을 쓰라고 강요 받았던 시기이다. 그 시절에도 저항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저항방법은 침묵, 우회적인 글쓰기, 망명등이 있다. 이태준이나 정지용처럼 절필을 하고 외지로 떠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육사, 김기림, 김사량같이 우회적인 글쓰기로 검렬을 피하며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계속 쓰며 저항한 문인들도 있다. 김사량 같은 경우에는 우회적으로 글을 쓰다 그마저 여의치 않자 망명을 택했고, 이육사는 망명을 시도하다 잡혀 감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작가는 왜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친일문제를 거론하는 것일까?

  지금도 미당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팔봉문학상등 친일 문인들의 이름을 건 문학상이 수상되고 있다. 그것은 친일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프랑스는 1940년에 독일군에게 점령 당했다. 5년동안의 강점기간 동안 독일에 협력하는 친독파들이 나타났다. 45년 독일이 항복하자 친독파들의 숙청에 나섰는데 8000~10000여명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또 그기간 동안 친독을 해 많은 재산을 얻은 자산가는 가벼운 형에 처한반면 몇줄의 글을 쓴 작가는 중죄를 선고 했다고 하는데, 총보다 칼이 강하다는 말처럼 글로 인한 파장이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치한 것이다. 

  냄비근성이란 말이 스스로 나올 정도로 우리는 망각을 잘한다. 친일이 우리에게 끼친 해악을 제대로 규명할때, 우리는 미래에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해방후에도 군사정권에 핍박을 당하며 아직까지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X같은 현실인 것이다. 왜 이런일이 생길까? 아직도 정치권에는 그런 쓰레기들의 잔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인간들이 자위대 기념식에나 참석하고 그걸 축하하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이다.

나경원 의원은 그런 비판이 거세지자 자위대 기념식인줄 모르고 참석했다고 변명을 늘어 놓는데, 공개된 자위대 기념식장 앞 인터뷰 동영상에서는 무슨 행사인지 알고 왔냐는 기자의 물음에 분명히 자기 입으로 말한다 '자.위.대'라고. 궁금한 사람은 검색을 통해 확인해 볼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서울시장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우리 정치다. 츠기야마 아키히로라는 일본출생의 MB라 불리우는 사람은 또 어떤가?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이런 명백한 사실들을 왜 난 모르고 지낸 것일까?
 
 왜 난 우리의 역사에 이다지도 관심이 없던 것일까?

  몇년전 유행했던  친일싸이트에 가서 어떤 친일파와 육두문자로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그때의 난 그냥 분노했을뿐 아무것도 몰랐다. 이런 인간들이 왜 아직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만 가졌을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관심조차 두지 않을때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은 일본만화가 재밌다는 단순한 이유로 친일파가 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역사를 교육하면 무슨 소용인가? 어른들 조차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것을. 김재용교수와 같은 사람이 오랜 연구끝에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책을 출간해도 인정도 못받으며 일본 삼류소설만큼도 팔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돈도 되지 않는 친일 인명 사전을 비싸다고 비난하는 행위나, 그 출간 자체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와 지금의 우리는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 규명을 위해 많은 혼신의 노력의  결과물인 친일인명사전을 책팔려고 만들었다고 비방하는 작태도 많이 보았다. 얼마나 벌것 같은가? 무슨 베스트 셀러라도 등극해 인세라도 벌겠는가? 또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친일파로 규정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자신의 이득이 되었다고 합리화 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는 이득이었겠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죽음과 고통이 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만, 우리면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그 대상에서 벗어나면 그땐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일본문화를 무조껀 배척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일본소설을 읽고 일본만화를 보며 일본제품을 쓰는 사람이다. 일본과 지금 우리네 관계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또한 물론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규명할때 우리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것들을 알아야 우리 새끼들 한테 지금의  분단상황이나 연평도, 천안함 같은 불안한 상황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자비를 털어 읽어보라고 보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꼭 이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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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의 기술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황소연 옮김 / 가디언 / 2010년 11월
절판


안다 라고 말했을때 안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또 앎을 지금까지 보다 더 빨리 습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이책을 보게 했다. 어떤 것들은 천재가 이상 한번 보면 잘 기억하기 힘들지만, 어떤 사실들은 한번 봐도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엔 후자가 별 쓸모 없는 기억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지만.

사람들은 알기쉽게를 선호한다. 정보의 홍수속에 어떤 한가지를 하려고 해도 많은 지식들이 있어야 되는 세상이니, 더욱 쉽게를 외치며 습득하고 싶어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또한 마찬가지로 어렵고 지루한 것은 잠만 오는 소리고, 쉬운데다 재미까지 더하지 않으면 관심이 가질 않았다. 저자는 그 알기 쉽게라는 것에는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알고 응용할줄 아는 사람만이 유에서 무를 창조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인재라고 이야기 한다.

누구나 많던 적던 이미 입력된 지식이 있기 마련이다. 두뇌 템플릿(무언가 만들 때 안내 역할을 하는 데 사용되는 형식, 틀 또는 모형등을 의미-본문14p)은 눈앞의 현상과 일치될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모른다고 고개를 젓는다. 이에는 요소의 일치와 구조의 일치가 있는데 요소의 일치는 사과를 먹어본 사람이 사과를 안다고 말하듯 사과는 이런것이다고 알고 있는 것이고, 구조의 일치는 사물의 구조를 보고 아는 것이다. 마트를 많이 가본 사람이 처음 가본 마트에서 식품코너는 어디쯤 있을 것이다고 예상하는, 마트의 구조를 대략 알고 있는 것이라고 예를 들 수 있겠다. 이 두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새로운 템플릿 구축이라고 한다. 또 이 세가지를 적절하게 응용하여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저자가 말하는 앎의 기술중 하나이다. 이런 두뇌 구축을 잘해놔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역연산 사고라든지 입체적 전달법, 오감을 활용하는 방법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무릎을 탁! 치며 맞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같은 식으로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떤가? 그것이 좋은 방법인것 같긴 한데 몇번 해보고 이내 흐지부지 해지고 마는 것이다. 응용하는 두뇌 템플릿구조의 미약함 때문이겠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망각과 게으름 일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듣고 읽어도 끝까지 해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법. 그래놓고 효과가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아니었는지. 중요한 것은 꾸준함 뿐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다. 학습을 하는데 꾸준함이 필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학습방법을 학습해놓고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HDD에 보고 싶은 영화가 한편 저장 되어있으면 영화가 보고 싶을때 그걸 보면 된다. 그런데 수십편 수백편이 저장되어 있으면 어떤것을 볼지 선택하는 데도 오래 걸리는 것이다. 이럴때 필요한 것은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알아 내는 것인데 그걸 추리는 데도 오래걸리긴 마찬가지. 정답은? 정답은 없겠지만 최선은 일단 기존에 재미있게 보았던 장르중 한편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뭘 하든지 욕심이 많은 탓인지 HDD가득 영화를 수집하고 저장하는데 열을 올렸으나 정작 본것은 반도 안되더라.

이런 수집벽은 다른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전 책에 취미를 붙인 초기에도 일단 마음에 드는 것은 책장에 꽂아 놓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에 드는 저자가 있으면 그 저자의 다른 책은 뭐가 있는지 찾아본 후 결재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인지 집에 있는 책중 반은 안 읽은 책이더라.

이런 수집벽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던데 난 왜 그런가?

맛있는 것은 아껴 먹었던 버릇이 있어서 아껴두려는 마음도 있거니와 이것저것 헤집고 다니길 좋아하는 탓일테다.

이제 욕심은 그만 부리고 좋았던 것들중 하나를 선택하여 파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 좋다고 해서 한꺼번해 다 해볼 수 없는 것.

책은 한번 읽은 책은 안 읽게 되는데 소설이 아닌이상 두번 세번 다섯번 열번까지 반복해서 읽어야 된다고 어느 명문대 박사 출신은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각설하고 그럴때가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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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리퍼블릭 - Orange Republic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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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뉴스에서나 보던 오렌지족의 이야기. 사회의 문제가 되고 부모가 벌어놓은 돈을 마음껏 쓰면서 향락을 추구하는 현대의 귀족자제들.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면서 한편으론 '나도 한번 그래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난 시골출신에 강북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때부터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학생의 본분이라는 공부도 제체두고, 남아의 상징이자 혈기의 상징인 싸움도 제체두었으며, 오로지 관심있는 것은 이성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성에게 잘 보여서 잘해볼까 하는 생각만 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돈이 많은집 자식이 아니라 용돈같은 것은 별로 없었고 게을러서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못했으니, 돈이 부족할땐 의리있는 친한 친구들이 알아서 쏴주거나, 모두들 궁할땐 공원에서 몰래사온 술을 마시며 놀기도 했다. 그럴때 어디선가 주워들은 강남녀석들 이야기는 시기의 대상이자 부러움 이기도 했다. 나도 좋은 옷에 좋은 차(오토바이)타면서 여자꼬셔보고 싶다라는 개념없는 생각을 많이 한 시절이었다. 망나니 같은 아들을 힘들게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가끔 들었고, 지구저편엔 세끼 밥도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도 있으니 그나마 난 행복한 거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도 했지만, 강남 이야기가 나오면 부러움 앞에서 작아지는 생각일 뿐이었다.


군에 들어가서 이리구르고 저리구르고 또래들에게 쌍욕을 먹다 보니 절로 부모님의 모습을 눈물로 떠올리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가장 훌륭한 부모는 내 부모님이고,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것이 남들이 볼때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때때로 남들이 보는 눈에 맞추라고 강요한다. 가진 사람이 못가진 사람에게 자기가 우월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굴고 그것을 인정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인양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려고 애쓴다. 그에 따른 댓가를 치룰 생각도 없으면서.

왕따라는 말이 없던시절 왕따를 당하던 감귤족 노준우는 중학교때부터 플라톤, 프로이트, 보를레르나 세계고전문학을 섭렵했다. 명문X고에 진학해 비상한 작전으로 오렌지 그룹에 끼게된 그는 아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점차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조각처럼 잘생긴 하진, 싸움으로 8학군을 쓸었다는 짐승과 입술, 성빈과 국회의원 아들 병신은 같이 어울려 다니게 된다. 오렌지들이 일으킨 사건을 통해 단란주점 사장의 아들이자 깡패인 세한과 친해지고 진이라는 여자친구도 생긴다.

막장이라고 할 정도로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녀석들은 성적도 꽤 좋다. 환경이 좋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이해는 잘 안되지만 그런가 보다. 부모를 잘만난 이들에게도 아픔이 있다. 하진은 첩의 아들이고 진이는 굴지 기업가의 딸이지만 밀수업자이자 딸보다 어린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다거나.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어서 그런지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재미도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흥미롭게 구경하는 느낌이다. 아마 실제 강남에 산다는 저자의 경험이 상당히 담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책을 보게 된 계기는 강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부자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표방하기에 그게 뭔지 궁금해서 였다. 그렇다면 긍정적 면모를 보여줄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런면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그들의 눈높이로 보여주고 있다라는 느낌뿐. 오히려 자세히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 색안경의 색이 더 짙어질거 같기만 하다.

뒷부분에서 해설하고 있는 문학평론가는 어려운 말을 섞어 가면서 평가하고 있지만, 난 평론가도 아니고 어려운 말로 그럴싸하게 평가할 수준도 안되거니와 못느낀걸 억지로 느껴보려고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주인공은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면서도 함께 노는 일부친구들을 속물로 여긴다. 그리고 강남이라면, 가진자의 자식이라면 사죽을 못쓰고 함부러 몸을 주는 여자들도 속물로 여긴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이용하는 사람은 속물이 아닌건가? 나 또한 건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속물로 보고 깔보진 않는다. 아니 속물로 본다할지라도 최소한 그들을 이용하진 않는다.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을 이야기 하려고 한건지? 아니겠지. 그런 투정을 받아 줄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으니. 집이 부유하지 않아도, 부모가 다소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해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고 물질을 떠나서 그런것은 어린시절의 투정일 뿐이 아닌가? 동화속에 나오는 문제없고 화목하기만 한 가정이 얼마나 되는가? 그냥 재미있게 볼수 있는 소설이지만, 책소개에서 굳이 작가가 의문을 제시했다고 하니 굳이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의문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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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잃은 날부터
최인석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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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석이라는 작가는 처음 들어 보았다. 신인작가인가? 하고 표지를 넘겨 보았더니 맙소사! 내가 태어난 해에 등단을 한 오래된 작가였다. 연예소설을 읽어본적이 없고 책자체도 읽은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된것일테다. 
 

  준성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자진해서 그만두고 해커의 길로 들어선 특이한 남자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들을 물질화 시키는 것에 반감을 가진 그는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진해서 뛰쳐나온후, 해커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그의 앞에 서진이 나타난다. 몹시 피곤하고 초췌해 금방 쓰러질것 같은 그녀는 자기를 집까지 데려다 주길 부탁하고 망설이던 준성은 처음보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 그렇게 둘은 만나고 준성의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한다. 
 

  수많은 거울과 명품을 좋아하고, 미친듯이 쇼핑에 몰두하여 가진 돈을 몽땅 써버리는 그녀. 모델일을 하지만 홈쇼핑 속옷모델이나 잡지 사진 촬영이 전부인 예쁜 얼굴의 그녀는 스타가 되기 위해 감독들에게 몸까지 바치지만, 결국 이용만 당하고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런 서진을 준성은 힘들어 하면서 받아들이고, 그녀가 언젠가 그의 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술에 취해 자신과 육정수 감독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서진. 그러나 더 숨기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서진의 다이어리에서 알게된 준성. 육정수에겐 자신을 키워줄 능력이 없다는걸 깨달은 서진은 더이상 그를 만나지 않지만 한호섭이라는 감독에게 또다시 같은 신세가 되고야 만다.

  어느날 준성의 아파트에 찾아온 두명의 깍두기, 그들은 서진이 빌려쓴 돈을 받으러 왔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해서 그녀의 빛을 갚아주는 준성이 서진은 고맙고도 미안하다. 준성의 조언대로 보이지 않는 기회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는 그녀. 그때 준성이 해킹혐의로 경찰에게 끌려가게 되고, 불안한 그녀는 기다리다 한호섭의 연락을 받고 홍콩으로 떠난다. 해오던 것처럼 몸을 요구하는 한호섭을 거부하다 홍콩에 홀로 남겨진 서진은 또다시 준성의 도움을 받고,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은 더해간다.

 

  이 소설에는 거울과 괴물이라는 단어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물질의 힘에 휘둘리는 현대인은 괴물과 같다고 말한다. 물질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그에 휘둘리는 사람도. 몇사람의 힘으로 그에 대항하기에는 택도없는 이야기다.

노점상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서진의 아버지는 노점들을 쓰레기 처럼 치워버리려는 국가와 대형마트의 군림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그 좌절을 술로 대신한 그는 몇달을 술만마시다 미쳐가고, 급기야는 딸을 못알아 보거나 다방에 팔아버리 한다. 그에 충격을 받은 서진은 집을 뛰쳐나오고, 그 물질이란 놈을 끝없이 소비해 버리는 강박증을 가지게 된다.

 그런 서진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보살피는 준성이 무척 놀랍다.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 언젠가는 헤어질꺼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가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그녀의 실수를 감싸주게 되는 것이다. 그의 끝없는 사랑앞에 서진도 점차 변하기 시작하지만, 그 행복을 가로막는 물질의 잔재는 그들을 다시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만다.

 



 

 

  내가 일하는 곳은 소규모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라 자주 연예인들을 보게 된다.

  원래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고, 배우는 뭘하든지 화면에만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싸인같은것을 받아본 적도 없고 받으려고 시도 한적도 없으며 아는척을 해본적도 없다. 싸인좀 받아달라는 청탁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을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친분을 쌓을 가능성이 있는 직종도 아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보다 유명연예인에 열광하며 아는 척도 해주지 않는데 신이라도 본것마냥 떠들어 대고, 집에가서 부모님한테는 온갖짜증을 다내는 여자와 그것을 이유로 헤어진 적이 있기에 그런 행태를 고깝게 보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한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것이 더 중요하고 그 사람에게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은 죽을때까지 변함 없을 것이다.

 

 내가 TV를 잘 보지 않아서 그들을 몰라보는 경우가 있었다. 한 배우는 자신을 몰라본다고 어이없어 하며 짜증을 냈다. 내가 당신을 꼭 알아야 되는 이유라도 있냐, 난 연예계 종사자가 아닌데 왜 연예계에 신경써야 하냐고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시끄러워 질까봐 그냥 참았다. 상당히 짜증나는 경험이었다. 자신이 잘나가는거하고 나하고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나한테 뭐 돈을 꿔준것도 아닐텐데 왜 그렇게 고압적으로 구는지 모르겠다. 유명하던 안하던 사람이라면 서로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왜 자신이 겪은 사람들의 유형으로 규정지어 버리는 것일까? 이런 친구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연예인들은 참 묘한것 같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사생활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인기가 떨어지거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톱이건 무명이건 다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된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이요!" 하고 대답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꿈꾸는 직업의 1순위라고 하는 것을 어디선가 본적도 있다. TV속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자주 보게 되니 아이들로썬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국세청의 조사에 따르면 배우, 탤런트, 가수, 모델 등 연예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2850만원이라고 한다. 그 평균이라는 것도 1%도 안되는 스타급들이 엄청나게 평균을 올렸을테니 그들을 제외하면 실제 평균은 고졸 평균연봉도 안될지 모른다. 연예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다. 연예인을 지망하며 10년째 단역을 전전하는 경우도 수두룩 하다. 스타가 된다고 하더라도 스트레스나 우울증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이책에서 나오는 서진의 신세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본 남자들이 멍하니 넋을 잃고 쳐다보는 것이 한두번이 아닐정도로 예쁜 미모를 자랑하고 있는 서진이지만, 감독들의 노리개가 되어 이용만 당하는 형편이다. 정말 그것을 열망하고 하고 싶다면 하게 되겠지만 엄청난 경쟁률과 서러운 꼴을 당할 각오 없이는, 있다고 해도 험난한 길인것 같다.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동경만 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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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 긴 호흡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그때 고생은 의미가 된다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품절


조정래 선생의 대하3부작이나 이태준의 소설등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읽어 보면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특히 식민지시절과 6.25전후에는 온종일 뼈가빠지게 일을해도 밥한끼 먹기 힘든 시절로 묘사되고 있다. 불과 100년정도 밖에 안된 일들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그 시절에 호강을 했다면 친일파혹은 권력을 쥐고 있거나 그에 아첨을 하는 족속들로 봐도 만무하다. 고로 그때 고생을 안했다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듯 고생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이었다.




서울 와룡산 자락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저자는 40~50대의 베이비붐 세대이다. 책에서는 저자를 기준으로 부모님세대인 1세대 보릿고개 세대, 저자에 해당하는 2세대 삼겹살 세대, 자녀세대는 3세대 피자 세대라고 명명했다. 1,2,3세대의 고생학을 공감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 역시 가장 많은 고생을 한것은 보릿세대일 수 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은 보릿고개라면 보리가 심어져 있는 고개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 부모들이 고생하면서 우리를 키웠듯이 또한 그들은 그들 부모의 더욱 혹독한 고생을 바라보고 자랐을 것이다.





'가을 농사지어 겨울을 넘기고 나면 보리가 익을 때까지 참으로 숨 가쁜 나날이 이어졌다. 쌀독의 곡식은 바닥을 보이는데 보리는 생각만큼 빨리 익지 않았다. 그 시간 차이는 살림을 맡은 어머니의 가슴을 숯검정으로 만들고도 ㅇ남았다. 쌀독을 보며 깊은 숨을 얼마나 내쉬었을까? 그 고개를 넘는다고 신천지가 열리지는 않겠지만 그것만 넘으면 1년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니까 부모 세대는 보릿고개를 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17p中-



'그러나 부모 세대는 삶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늘 자신의 물러설 곳을 막고 입술을 깨물며 살았다.

여유가 없고 고지식했지만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지금도 되돌아보아야 할 자산임이 확실하다' -22p中-







부모들이 이만큼 고생했으니 그에 비하면 너희들은 호강하고 있는줄 알아라-'는 식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런 뻔한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마다 살아온 방법에 따라서 사고방식은 틀릴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른 행동도 다르기 마련이다. 저자는 단지 그 방식을 알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의 사고 방식이 이해되지 않거나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답답하게 생각하거나 짜증을 낸적이 없었는가? 그런 것들도 그들의 고생을 알고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별쓸모없는 물건을 주어와 좁은 집에 쌓아놓고 사는 어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동전 한잎이라도 모아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아껴 두어야만 했기에 무엇이라도 쓸모없다고 해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들의 고생을 이해하면 짜증낼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1세대는 무엇보다 가족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엄했지만, 자식을 위해 자존심도 기꺼이 버렸던 세대이다.

자존심도 기댈곳이 있을때 부릴수 있다. 쫓겨날것을 예상하면서도 형님네로 찾아가는 흥부는 자존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혹자는 이책의 제목에 붙어있는 '철학자'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다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책은 골치아픈이야기나 어려운 철학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수필처럼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읽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 대한 인식의 페이지에 파일을 추가 하게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은 남녀 노소 누구나 할것 없이 읽어 볼만한 책이다. 물질은 풍부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여러사람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고루 갖추어야 하는 우리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른들이 보면 좋을 것이고, 고생을 하며 살아갈 기반을 만들어준 세대들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널리 보는 안목을 가지고 서로가 소통할때, 각세대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식은 서로에게 힘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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