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죽었다'
 

  소설은 나는 죽었다로 시작한다.

  북두신권의 켄시로가 비공을 찌른 뒤 '넌이미 죽어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식스센스의 멋진대머리씨처럼 귀신이 주인공인 책인가 하는 유치하고 단순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랐지만, 그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있는 70세의 유명한 작가 '이적요'시인이 죽기직전에 쓴 노트의 도입부이다. 적적하고 고요하다는 필명으로 활동한 이 노작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안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고백을 노트를 작성한다. 후배시인이자 변호사인 Q에게 자신의 1주기에 이 노트를 공개해 줄것을 유언으로 삼았고, 그 노트의 도입부를 읽어내려 가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책과 친하지 않던 난 30세까지 단 한권의 한국소설도 읽지 않은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그런 내게 유명소설가 박범신의 이름을 몰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책카페에서 자주 들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최근작 '비지니스'였고 그 다음이 이책 '은교'이니 이대로 그의 작품세계를 거꾸로 읽어 가볼까나~

  먼저 읽은 회사누나의 한줄평 '원조교재소설…'을 듣고 그 뒷말을 잘라버린뒤 중간까지 읽어 내려갔지만 원조교재란 말은 한장면에만 등장한다. 대학시절 이적요시인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은 작가 '서지우'(난 이이름이 여자인줄 생각했다)는 베스트 셀러 작가로 성공한 뒤에도 시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뒷바라지를 한다. 그를 아들같이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시인. 그는 노트에서 자신을 극진히 모시던 서지우를 살해했다는 고백을 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노트의 내용에 Q변호사는 공개하기로 한 노트를 공개하지 못하고 고민에 휩싸인다.

 

  모르는 사람이 내집 안마당 내의자에 떡하니 누워서 자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나? 그 사람이 시커먼 남자라면 도둑으로 신고를 하겠으나 갸냘픈 17세쯤 되는 소녀라면? 활짝핀 봄을 닮아있는, 더없이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는 어린 소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인은 자신의 안락의자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여학생 은교를 처음 만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할아부지'라 부르며 시인의 집 청소를 담당하게 된 은교를 시인은 친손녀를 대하듯 귀엽고 순수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시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이 되어 버리고 있다. 아들이 하나 있지만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그. 여성과 잠자리는 갖지만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적이 없는 그에게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 

먼저죽은 서지우의 일기에는 그와 은교의 만남과 그가 발표한 소설들에 관한 진실등이 담겨 있다. 두 작가의 일기와 변호사의 시선이 번갈아 가면서 세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적요와 지우는 서로 아끼면서도 미워하고 질투하며 오해를 하게 되고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랑, 아니 작가의 말처럼 갈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어린 소녀에 대한 죽어가는 노작가의 갈망은 나이와 관계없이 순수했다.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자제할 정도로, 이겨낼 정도로 플라토닉한 사랑이기도 하다. 노작가의 마음을 눈치챈 지우는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이 은교에 관한 것인지 스승에 관한 질투인지 자신도 알지 못한채로. 그렇다면 은교의 마음은 어땠을까? 소설에는 명확하게 나오고 있지 않다. 아버지를 잃고 때밀이 일을 하는 엄마와 두동생과 함께 사는 은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두사람에게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10대들이 쓰는 줄임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 실제로 10대들이 그런말을 쓰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들끼리는 그런말을 잘쓰곤 한다. 나도 10대에는 욕과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개념없는 아이라 해도 어른들과의 대화에는 줄임말을 잘 넣지 않을텐데 작가가 10대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것도 사실이다. 평소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인터넷에선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게 되듯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과 실제로 쓰는 말은 틀리지 않을까? 10대에게 물어보면 좋겠지만 아는 10대가 없다 ^^ 올챙이 시절 지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겐지...

 

  박범신 작품의 문장은 유려하다. 때론 조금 졸릴때도 있었지만.(단순히 내가 피곤해서 그런것인지 내용이 지루해서 그런것인지 어떻다고 정확하게 말할 것은 없지만)

갈망 3부작의 마지막편이라는 작품 답게 갈망을 유려한 표현력의 문장으로 나타냈다.

무엇인가를 이렇듯 갈망해 본지가 꽤 되었다. 잊고 지냈던 그때의 감정이 소설과 함께 살아났다. 그런 갈망을 가지기엔 무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뱀파이어 이야기가 인기 있는 것은 괴기스러운 분위기와 주인공들의 멋진 외모가 있겠지만, 영생을 살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대단하고 힘있는 인간이라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있고, 그 죽음에 대한 공포가 불로 불사의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진시황도 중국을 통일하고 모든걸 가진 상태에서 더 오래살기 위해 불로불사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불로문의 진실은 진시황부터 조선시대 숙종임금, 그리고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불로불사의 영약 불로초를 둘러싼 스케일큰 팩션역사 소설이다.

작가는 창덕궁에 실제로 있는 다른 건축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로문과, 숙종시대에 실제로 불로지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단서, 숙종의 애련지와 오언절구의 흔적등을 토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이며 소재도 매우 신선하고 이야기 구성도 좋다. 어려운 문장도 없어 읽히기도 잘 읽힌다.

 

많은 좋은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단점도 많이 보여서 매우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우선 커다란 줄기에 비해 세밀한 묘사가 부족하다. 일만 잔뜩 크게 벌려놓고 수습을 못하는 느낌이랄까. 좋은 소재를 잘 살려내지 못한듯하다.

둘째는 전개가 너무 빠른듯하다. 많은 에피소드들을 한권의 책에 다 담고 싶어서 그랬는지 결말에까지 작은 암시조차 드러나지 않은채 종료되 버린, 수습을 못한듯한 이야기도 보인다.

뭐 앞의 문제들은 사실 별거 아닌듯 느껴졌다. 가장 거슬렸던 것은 문장이다. 문장에 어색한 부분이 보인다. 편집자의 실수인지 작가의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편집인이 아예 없는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곳곳에 어색한 문장이 보인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그러나 폭탄을 들고 있는 인력거꾼의 팔에 힘이들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두 발의 총성이 밤하늘을 갈랐고 인력거 운전수는 폭탄을 손에 든 채로 그만 그렇게 총에 맞아 고꾸라지고 말았다. 시선이 총성이 시작된 곳의 총구를 향해 옮겨가자 그 총의 주인은 어느새 차에서 내린 겐조였고 그의 손에 들린 권총의 총구에서는 하얀 화약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22p中-

 

 

  난 국어 문법도 전혀 모르고 책을 읽은지도 얼마 안되었지만 이런 나에게조차 거슬리는 어색한 문장이다. 문장을 별로 따지지 않는 독서초보자의 눈에도 어색할 정도이면 독서고수들에겐 오죽했을까. 한문장이 너무 쓸데없기 길고 문장안에 총성, 총구, 그총, 권총, 총구등 총에관한 단어가 5개나 반복되고 있다. 한 문장에 많은 행동을 넣어 어색하고 앞뒤문맥이 맞지 않게 쓰여져 있다.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도 불분명하다. 총을 맞은 인력거꾼의 시선인지, 옆에 서있던 여인의 시선인지, 화자의 시선인지, 모두의 시선인지 알수가 없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살리지 못해 어색해 보인다.

두문장이나 세문장으로 나뉘어 쓰였으면 좋았을것 같다. 이책에서 가장 거슬리는 문장이다. 저자의 문장력이 부족한것인지, 쉽게 풀어쓰다보니 그런것인지, 신경을 안쓴것인지, 편집의 오류인지……. 이장면의 서술을 보고 책을 그만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참고 읽었더니 중반부부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에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중반부엔 진시황의 명으로 중국에서온 서복이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뜬금없이 내공운운하여 무협지의 한 장면을 보는것 같아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

 

 

 



 

  '고민에 빠져있는 시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영란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연꽃의 봉오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217p中-

 

 

  등장인물 영란의 심리를 서술한 부분이다. 잘못읽으면 시형의 심리를 서술한것처럼 읽힐 수 있다. 영란은 부분을 맨 앞에 놓거나 전체적인 문장을 수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책 전체에 이런 어색한 문장들이 거슬린다. 전반부에 더욱 심하고 후반부엔 그나마 낫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묘사가 아쉽고, 세밀함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쉬워 할필요도 없이 그냥 덮어버리면 그만인거다. 소재가 너무 참신하고 스토리 전개나 반전등도 좋았는데 어색한 문장과 2%부족한 서술, 밋밋한 구성때문에 흥미를 잃게된다. 그리고 전개가 부드럽지 못하고 뜬금없이 진행된다. 

 

  다빈치코드 이후 팩션소설의 열풍이 불었고 우리나라에도 몇권 나왔으나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몇권 보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소재는 가장 좋은것같다. 다빈치코드식의 외국의 소설을 매우 의식해 재연한 듯한 느낌이 들지 않고, 한국적이고 독창적이며 참신한, 역사의 사건과 잘 배합이된 점은 매우 높이 사지만 나머지 부분이 빈약하기에 아쉽다. 다시 대폭 수정해서 출간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정도이다. 이 소재를 가지고 좀더 전문적인 작가가 썼다면 매우 좋은 소설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중국의 삼국시대를 근거로한 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가 있다. 물론 정사와 차이가 있는 연의 삼국지가 인기가 있는것이지만.

 100년 정도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한 삼국지는 참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시대가 있고 이 시대를 배경으로한 소설도 나와있지만 인기도 없고 주로 후기신라(통일신라)이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물이나 사건도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삼국의 역사는 중국 삼국지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그 세력도 중국의 삼국지 못지 않다. 그러나 그 기록이 미미하기 짝이 없어 역사서라고는 사대주의에 쩌들어 있던 김부식이 쓴 신라를 중심으로한 삼국사기,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외침에 의해 기록이 소실되었을것이라하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나또한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삼국역사보다 중국의 역사를 더 많이 알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진시황까지, 그리고 삼국지시대는 대략 그 개념을 알고 있는데 정작 내나라의 역사는 모르는 한심한 상태인 것이다. 관심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료가 부족하여 그 재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만 그런것이라면 혼자 무식하고 말겠지만 사실 중국의 역사를 근거로한 소설등이 우리나라 역사를 근거로한 소설보다 훨씬 많이 팔리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중 백제는 삼국시대 중에서도 더한 듯하다. 드라마나 소설도 백제를 배경으로 한 것보다 고구려나 신라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 훨씬 많다. 백제를 배경으로 한 이책 '대백제'는 그동안 관심에서 비교적 멀어졌던 백제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조명하고 있다. 백제를 생각하면 제일먼저 의자왕의 삼천궁녀부터 떠올리는 내게 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주었다. 특히 일본과 우리의 관계가 흥미를 자아낸다. 일왕가의 직계가 백제의 후손이고 많은 문물을 백제에서 전파했으며, 백강전투(서기 663년 8월 백제와 일본연합, 신라와 당연합이 벌인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해전)에 일본이 많은 병력을 지원한 사실등이다. 그 사실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서가 아닌 일본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므로 더욱 신뢰를 준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를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의해 알게된 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일본내에서 백제와 신라가 있었다. 백강전투 이후 일본내에서 백제세력과 신라의 세력이 서로 다툼을 벌인 것이다. 화랑정신을 이어받은 원가(겐지가)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평가(헤이시가)는 왕조문화로 나타났다. 그 대립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평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원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임을 내세웠다고 한다. 일본역사는 우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자신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때문에 기를 쓰고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무엇때문에 왜곡을 하겠는가.

 

우리의 전통을 흡수한 일본이 오히려 전통문화를 더 중요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옛문화를 중시하여 음악이나 축제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오히려 전통문화를 말살하는 정책(박정희 정권의 초가개량사업등)을 내세우기 까지 한것이다. 근대화도 좋지만 일본처럼 지킬것은 지켜가며 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너무나 무관심함을 되새겨봐야 할것이다.

 

  문서뿐만 아니라 녹음기, 캠코더등의 기록매체가 풍부한 요즘에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 가득한 사건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광주항쟁이나 박정희에 관한 사실처럼 진실이 밝혀 졌음에도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도 많이 있다. 현대에도 그러한데 정확한 역사적 진실을 알아낸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 한것일테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때면 찬란했던 시대에 대한 아쉬움, 특히 후기신라와 조선시대 사대주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는 것은 역사가 지금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잘나갔던 시대던 탄압받던 시대던 역사는 변하지 않지만 그 역사에서 배워야 할것이고 그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정의 뇌 - 하버드대 뇌과학자의 뇌졸중 체험기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0년 12월
구판절판


뼈속까지 긍정적인 사람이 있을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또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 성공을 희망하는 어떤이는 자신이 긍정적이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테스트 결과 무의식은 성공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더랬다. 깊은 속마음까지 긍정적인 사람은 정말 흔하지 않을 듯하다.

나의 경우엔 평소엔 부정적이며 투덜거리기를 일삼다가도 사기를 당하거나 큰 손해를 보았을때 오히려 대담해지고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것은 상대도 안될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더라.








연구소까지 가는 길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 갑자기 오른쪽 팔이 마비가 되어 옆으로 풀썩 떨어지며 균형을 잃었다. 그순간 알았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아, 이거 멋진데!'

일시적으로 황홀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내가 이렇게 복잡한 뇌의 작용을 예기치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실은 다 생리적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지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뇌졸중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 33p 中-







인디애나대를 거쳐 30대에 하버드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할만큼 유능한 학자였던 저자 질 볼트 테일러는 37세의 나이에 뇌졸증에 걸리고 만다. 뇌과학자였기에 자신이 그 과정을 인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탄하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믿기지 없을 정도로 놀랍게 긍정적인 것이다. 뇌졸증이란것을 인식한 후 그 뒤에 오는 증상까지 잘 아는 저자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1인칭시점의 소설을 쓰듯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침착하게 되새긴다. 게다가 자신이 당면한 뇌졸증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 상세히 기억하고 살피려고 애쓰기 까지 한다. 비록 그후 잠시 좌절에 빠지지만 잠깐뿐이다.

그후 8년간의 길고 지루한 치료과정을 겪는다. 말도 할수 없고 들을수조차 없게 되버린 8년의 시간.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기 보다는 그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뇌과학자로서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살폈고, 좌뇌와 우뇌의 철저하게 다른 기능을 확실하게 체험해 낼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정상으로 회복되고 마는 것이다. 그 8년여 동안의 기록의 성과가 바로 이책이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즐기고 결국 회복되고야 마는것은 저자의 뼈속까지 긍정적인 성격덕분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고 목소리 조차 구분할 수 없고 보는것 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뇌의 이상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았으며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좌절하는것 보다 살아있는것 자체에 감사한 인간 정신의 진정한 승리자이다.



뇌졸증의 증상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부터 투병생활때까지 흔치 않은 경험을 견뎌내고 이겨낸 승리의 기록들은 재미있는 소설의 심리묘사를 보는 것처럼 섬세하다. 과학적 지식, 특히 뇌졸증 예방법이나 증상등을 설명해 놓은 과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하나의 문학작품, 수필로만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백산맥 세트 (무선)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소설 최초로 200쇄를 돌파한 소설~  몇만부만 팔려도 성공한 책이고 20만부가 팔리면 대박인 책이다. 그런데 태백산맥은 자그마치 200쇄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쓰인 소설이 아님에도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왜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이토록 많이 팔린 것일까?

 당신이 그냥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만 책을 읽는 사람이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태백산맥을 추천하고 싶다. 순전히 재미만 놓고 보아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설자체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길게 쓴 리뷰따위 읽기 귀찮다면 좋다, 그만 두고 여기까지만 읽어라. 잔소리 들을것 없이 그냥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하라.

흔히들 거창한 제목과 소재때문에 어렵고 심각한 분위기의 소설이 아닌가 하는 편견을 갖게 된다. 나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전혀 어렵지 않다. 술술 읽히는 문체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에서나 느낄 수 있는 몰입도와 박진감, 소설이 줄수 있는 모든 재미를 볼 수 있는 명작이다. 역사공부도 된다. 조정래 현대사 삼부작(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고 나면 십년넘게 학교에서 교육받은것 보다 더 수준높은 역사인식과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고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라며 감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선생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빨갱이론 부터 시작해서. 이런사람들의 주장에는 논리가 전혀 없다. 왜그런지 직접 읽어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보면 알것이다.  그사람들은 과연 태백산맥을 읽었을까? 읽었다고 말한다고? 그렇다면 그내용을 물어보라. 제대로 대답 못할것이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광고를 많이한 책도 아닌데 많이 팔린거라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바보가 10권이나 되는 책을 억지로 보겠는가?

영화 디워를 많이 본 사람들은 디빠나 심빠라서가 아니라 어린이 방학용 관람이 70%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빠라고 해도 자기 돈주고 애국심에 영화를 보러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국산영화는 무조건 흥행하겠네? 불법 다운로드는 진작에 근절되었겠네?  영화싸이트에 등록된 몇개의 글이 전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영화를 관람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명인지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무턱대고 비난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바보가 아닌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턱대고 비난 하는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것이든지 남들이나 언론, 아는사람이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접해보고 스스로의 주관을 가지고 문제들을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서 문제인 것이다. 조중동등의 신문에서 떠드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멍청한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컴퓨터 자판처럼 입력하는데로 기록되는 것이 무슨 사람의 논리가 되겠나?

 

  조정래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 배고픈 작가의 길을 걸으며 자식을 고생시킬까 염려되어 하나만 나은 것이라고 하는데,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릴줄 알았다면 더 낳을것을 그랬다고 말한적이 있다.  

  한때 좌익논란, 빨치산 미화등의 혐의를 받았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게되었다. 아직도 그런 빨갱이 논란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는데 오래전 TV에서 키스장면이 나오면 심의에 걸리고 저질이었던 시대의 잣대를 지금도 적용하는것 만큼 우스운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알것이다. 그런 찬양은 전혀 찾아 볼수 없다. 단지 인물의 입장에서 철저히 심리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읽다보면 오히려 친일파조차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이해가 갈 정도로 쓰여져 있다. 그렇다면 친일성향의 소설인 것인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주장이다. 조정래의 소설의 특징은 읽는이로 하여금 그 인물의 사정과 심리를 철저하게 그 인물의 입장에서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데 있다. 악역이건 선역이건 전혀 관계가 없다.

 소설은 주장이나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인물과 사물의 섬세한 묘사를 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 제대로된 소설이다. 세계의 모든 고전 명작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끔 주장을 넣어 설교하는 소설을 볼수가 있는데 곧 외면을 받게 된다. 이런것의 차이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있긴하다. 태백산맥에는 그런 주장같은 것이 없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 최고의 소설~ 안읽어 보았다면 꼭 도전해보라. 후회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