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소설은 나는 죽었다로 시작한다. 북두신권의 켄시로가 비공을 찌른 뒤 '넌이미 죽어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식스센스의 멋진대머리씨처럼 귀신이 주인공인 책인가 하는 유치하고 단순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랐지만, 그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있는 70세의 유명한 작가 '이적요'시인이 죽기직전에 쓴 노트의 도입부이다. 적적하고 고요하다는 필명으로 활동한 이 노작가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안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고백을 노트를 작성한다. 후배시인이자 변호사인 Q에게 자신의 1주기에 이 노트를 공개해 줄것을 유언으로 삼았고, 그 노트의 도입부를 읽어내려 가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책과 친하지 않던 난 30세까지 단 한권의 한국소설도 읽지 않은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그런 내게 유명소설가 박범신의 이름을 몰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책카페에서 자주 들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최근작 '비지니스'였고 그 다음이 이책 '은교'이니 이대로 그의 작품세계를 거꾸로 읽어 가볼까나~ 먼저 읽은 회사누나의 한줄평 '원조교재소설…'을 듣고 그 뒷말을 잘라버린뒤 중간까지 읽어 내려갔지만 원조교재란 말은 한장면에만 등장한다. 대학시절 이적요시인의 강의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은 작가 '서지우'(난 이이름이 여자인줄 생각했다)는 베스트 셀러 작가로 성공한 뒤에도 시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뒷바라지를 한다. 그를 아들같이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는 시인. 그는 노트에서 자신을 극진히 모시던 서지우를 살해했다는 고백을 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노트의 내용에 Q변호사는 공개하기로 한 노트를 공개하지 못하고 고민에 휩싸인다. 모르는 사람이 내집 안마당 내의자에 떡하니 누워서 자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나? 그 사람이 시커먼 남자라면 도둑으로 신고를 하겠으나 갸냘픈 17세쯤 되는 소녀라면? 활짝핀 봄을 닮아있는, 더없이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는 어린 소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인은 자신의 안락의자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여학생 은교를 처음 만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할아부지'라 부르며 시인의 집 청소를 담당하게 된 은교를 시인은 친손녀를 대하듯 귀엽고 순수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시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망이 되어 버리고 있다. 아들이 하나 있지만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그. 여성과 잠자리는 갖지만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적이 없는 그에게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 먼저죽은 서지우의 일기에는 그와 은교의 만남과 그가 발표한 소설들에 관한 진실등이 담겨 있다. 두 작가의 일기와 변호사의 시선이 번갈아 가면서 세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적요와 지우는 서로 아끼면서도 미워하고 질투하며 오해를 하게 되고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랑, 아니 작가의 말처럼 갈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어린 소녀에 대한 죽어가는 노작가의 갈망은 나이와 관계없이 순수했다.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자제할 정도로, 이겨낼 정도로 플라토닉한 사랑이기도 하다. 노작가의 마음을 눈치챈 지우는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이 은교에 관한 것인지 스승에 관한 질투인지 자신도 알지 못한채로. 그렇다면 은교의 마음은 어땠을까? 소설에는 명확하게 나오고 있지 않다. 아버지를 잃고 때밀이 일을 하는 엄마와 두동생과 함께 사는 은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두사람에게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10대들이 쓰는 줄임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사실 실제로 10대들이 그런말을 쓰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들끼리는 그런말을 잘쓰곤 한다. 나도 10대에는 욕과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개념없는 아이라 해도 어른들과의 대화에는 줄임말을 잘 넣지 않을텐데 작가가 10대의 입장에서 쓰고 있지만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것도 사실이다. 평소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인터넷에선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게 되듯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과 실제로 쓰는 말은 틀리지 않을까? 10대에게 물어보면 좋겠지만 아는 10대가 없다 ^^ 올챙이 시절 지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겐지... 박범신 작품의 문장은 유려하다. 때론 조금 졸릴때도 있었지만.(단순히 내가 피곤해서 그런것인지 내용이 지루해서 그런것인지 어떻다고 정확하게 말할 것은 없지만) 갈망 3부작의 마지막편이라는 작품 답게 갈망을 유려한 표현력의 문장으로 나타냈다. 무엇인가를 이렇듯 갈망해 본지가 꽤 되었다. 잊고 지냈던 그때의 감정이 소설과 함께 살아났다. 그런 갈망을 가지기엔 무감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