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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외삼촌 - 한국전쟁 속 재일교포 가족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
이주인 시즈카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가장이란 가족을 지켜나가고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성별을 떠나 가족의 안전과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 바로 가장이다. 부인이 생활을 책임지고 남편은 술에 절어있거나 생활을 나몰라라 한다면 그 집의 가장은 부인이 되는 것이다. 가장노릇을 잘하는 아버지가 있고 못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이책은 전자의, 그것도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가족을 지켜내는 꿋꿋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제일교포 2세인 다다하루는 자신의 아버지 소지로의 강한 모습을 존경하고 있다. 으레 그렇듯이 다다하루에게도 아버지는 두렵기도 하고 반감이 들기도 하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존재란 그런것이다. 나에게도 기억속의 아버지는 늘 크고 존경스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머리가 커지면서 태산처럼 크게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보일 때 느끼는 쓸쓸함이란.
여자는 학교를 다닐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6,70년대 아버지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소지로, 가족을 위해 탄탄한 가업을 이루었지만 다다하루는 그것을 거부하며 아버지와 충돌한다. 자신의 꿈과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리라. 다다하루는 아버지보다 한번밖에 본적없는 한국의 외삼촌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의 사망을 계기로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겐조씨에게 아버지와 외삼촌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생담을 아들에게 한번도 들려준적 없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지로의 아내 요코의 친정식구들은 해방전까지 일본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벌어진 남북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인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요코의 아버지 카네코 마사히로와 가족들은 멸시를 당하게 되는데, 요코의 동생 고로(한국명 김오덕)는 그걸 견뎌내지 못한다. 직장도 적응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메던 오덕은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돕고 있는데, 그때 전쟁이 터진다.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동굴속으로 피신하지만 청년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피난을 가버린 마을은 조용하다. 오덕은 북한군에 끌려가서 가담하게 되는데,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은 미군의 역습에 패전을 거듭한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오덕은 전장을 떠돌다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밀고자라고 생각한다. 동굴로 피신한 마을 청년들이 북한군에게 몰살을 당했는데 오덕의 시체만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오해다. 이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가족들은 오덕을 죽이려 하고, 오덕은 닭장아래 파놓은 굴속에 숨게된다. 그리고 그안에서 수개월을 보내게 된다.
'히키코모리'는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말한다. 그래도 히키코모리들은 인터넷이란 세상이 있기에 그곳에 몰두하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일주일만 집안에 있어도 갑갑함을 느낄텐데, 인터넷같은 타임킬러도 있을리 없는 굴속에서 수개월을 갖혀 있어야 하는 오덕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일본에 남은 요코는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여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 뿐이라 더욱 걱정일 수 밖에. 이런 아내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소지로는 한국에 사람을 보내 처가의 소식을 알게 되는데, 오덕의 소식을 듣고 아내의 걱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결혼직후에는 보잘것 없는 살림이었지만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소지로는 집안의 기반을 단단하게 잡아놓았다.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것이었다.
그시절 남자들이 다 그랬듯이 아들을 간절히 원한 소지로는 딸만 내리 셋을 낳은 요코를 두고 아들을 얻기 위해 외도를 하게 되지만, 그것은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지 바람을 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넷째로 얻게 되자 소지로는 더욱 사업에 힘을 기울인다.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가의 소식때문에 마음한구석이 편하지 못하다. 친정의 소식을 들은 아내는 남편에게 오덕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다시 사람을 보내지만 그가 보낸 조씨는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급기야 소지로는 아내를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크나큰 위험을 무릎쓰게 되는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가장의 모습을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가장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였다면 소지로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겠지.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에 대한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소설을 읽을때면 긴 등장인물들과 지명의 이름, 이질적인 풍습등이 독서를 방해하곤 했는데, 그런것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재일교포2세들의 이야기고 배경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기 때문인것도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잘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과 그것들과 잘 어우러진 문장때문이다
6.25에 대한 화자의 시선은 좌도없고 우도없다. 관계가 없진 않지만 6.25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라는 시선이 흥미롭다. 2차대전 직후 세계는 이념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세력으로 양분되었고 미국은 남한을, 소련은 북한을 각각 점령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심복을 수장으로 심어놓았다. 소련을 등에업은 김일성, 미국에서 내세운 이승만이 그랬다. 우리 스스로 전쟁을 한것이 아니라 냉전시대 양 세력의 이념에 휘말려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비극에 아직도 땅은 갈라져 있고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된다. 8.15 직후 모두 기뻐할 때 김구선생은 이런 비극이 오리라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기에 크게 탄식하셨다. 최근에도 연평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진행중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극심했던 이념논란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는 외세에서 비롯된 이념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재일교포인 작가의 시선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남북을 판단해야 한다. 이론일 뿐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강대국들이 그렇듯이 국익을 위한 최선을 생각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세대에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선 통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일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다. 민족적 감정을 떠나서, 우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경제를 위해서도 통일은 필요하다. 통일이 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등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금낭비는 4대강 삽질이나 쓸데없이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공사에 있다. 통일이 되면 외국인 인력을 북한사람들이 대체할 수도 있고, 북한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방비가 절감되니 좋을것이다. 강대국에 의존하고 있는 군사력도, 불안한 상황도 없어지니 안심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잘살고 있다지만 불안한 상황이 해소된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얼마전에 확인 할 수 있지 않았는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무너지면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다한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압박은 더해질 것이고 강점당한 티벳과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내 자식들은 다시 혼란스럽고 비극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