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외삼촌 - 한국전쟁 속 재일교포 가족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
이주인 시즈카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가장이란 가족을 지켜나가고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성별을 떠나 가족의 안전과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 바로 가장이다. 부인이 생활을 책임지고 남편은 술에 절어있거나 생활을 나몰라라 한다면 그 집의 가장은 부인이 되는 것이다. 가장노릇을 잘하는 아버지가 있고 못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이책은 전자의, 그것도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가족을 지켜내는 꿋꿋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제일교포 2세인 다다하루는 자신의 아버지 소지로의 강한 모습을 존경하고 있다. 으레 그렇듯이 다다하루에게도 아버지는 두렵기도 하고 반감이 들기도 하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존재란 그런것이다. 나에게도 기억속의 아버지는 늘 크고 존경스럽고 두려운 존재였다. 머리가 커지면서 태산처럼 크게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보일 때 느끼는 쓸쓸함이란.

  여자는 학교를 다닐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6,70년대 아버지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소지로, 가족을 위해 탄탄한 가업을 이루었지만 다다하루는 그것을 거부하며 아버지와 충돌한다. 자신의 꿈과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리라. 다다하루는 아버지보다 한번밖에 본적없는 한국의 외삼촌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의 사망을 계기로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겐조씨에게 아버지와 외삼촌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생담을 아들에게 한번도 들려준적 없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지로의 아내 요코의 친정식구들은 해방전까지 일본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벌어진 남북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인 밑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요코의 아버지 카네코 마사히로와 가족들은 멸시를 당하게 되는데, 요코의 동생 고로(한국명 김오덕)는 그걸 견뎌내지 못한다. 직장도 적응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메던 오덕은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돕고 있는데, 그때 전쟁이 터진다.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동굴속으로 피신하지만 청년들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피난을 가버린 마을은 조용하다. 오덕은 북한군에 끌려가서 가담하게 되는데,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은 미군의 역습에 패전을 거듭한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오덕은 전장을 떠돌다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밀고자라고 생각한다. 동굴로 피신한 마을 청년들이 북한군에게 몰살을 당했는데 오덕의 시체만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오해다. 이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가족들은 오덕을 죽이려 하고, 오덕은 닭장아래 파놓은 굴속에 숨게된다. 그리고 그안에서 수개월을 보내게 된다.

 

  '히키코모리'는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말한다. 그래도 히키코모리들은 인터넷이란 세상이 있기에 그곳에 몰두하게 된다. 보통사람이라면 일주일만 집안에 있어도 갑갑함을 느낄텐데, 인터넷같은 타임킬러도 있을리 없는 굴속에서 수개월을 갖혀 있어야 하는 오덕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일본에 남은 요코는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여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 뿐이라 더욱 걱정일 수 밖에. 이런 아내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소지로는 한국에 사람을 보내 처가의 소식을 알게 되는데, 오덕의 소식을 듣고 아내의 걱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결혼직후에는 보잘것 없는 살림이었지만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소지로는 집안의 기반을 단단하게 잡아놓았다.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것이었다. 

  그시절 남자들이 다 그랬듯이 아들을 간절히 원한 소지로는 딸만 내리 셋을 낳은 요코를 두고 아들을 얻기 위해 외도를 하게 되지만, 그것은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지 바람을 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넷째로 얻게 되자 소지로는 더욱 사업에 힘을 기울인다.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가의 소식때문에 마음한구석이 편하지 못하다. 친정의 소식을 들은 아내는 남편에게 오덕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다시 사람을 보내지만 그가 보낸  조씨는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급기야 소지로는 아내를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크나큰 위험을 무릎쓰게 되는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가장의 모습을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가장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였다면 소지로처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겠지.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에 대한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소설을 읽을때면 긴 등장인물들과 지명의 이름, 이질적인 풍습등이 독서를 방해하곤 했는데, 그런것들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재일교포2세들의 이야기고 배경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기 때문인것도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잘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과 그것들과 잘 어우러진 문장때문이다

 

  6.25에 대한 화자의 시선은 좌도없고 우도없다. 관계가 없진 않지만 6.25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소련과 미국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라는 시선이 흥미롭다. 2차대전 직후 세계는 이념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세력으로 양분되었고 미국은 남한을, 소련은 북한을 각각 점령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심복을 수장으로 심어놓았다. 소련을 등에업은 김일성, 미국에서 내세운 이승만이 그랬다. 우리 스스로 전쟁을 한것이 아니라 냉전시대 양 세력의 이념에 휘말려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비극에 아직도 땅은 갈라져 있고 젊은이들은 군대로 징집된다. 8.15 직후 모두 기뻐할 때 김구선생은 이런 비극이 오리라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기에 크게 탄식하셨다. 최근에도 연평도 천안함 등의 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진행중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극심했던 이념논란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는 외세에서 비롯된 이념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재일교포인 작가의 시선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남북을 판단해야 한다. 이론일 뿐인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강대국들이 그렇듯이 국익을 위한 최선을 생각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세대에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선 통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일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다. 민족적 감정을 떠나서, 우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경제를 위해서도 통일은 필요하다. 통일이 되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등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금낭비는 4대강 삽질이나 쓸데없이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공사에 있다. 통일이 되면 외국인 인력을 북한사람들이 대체할 수도 있고, 북한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방비가 절감되니 좋을것이다. 강대국에 의존하고 있는 군사력도, 불안한 상황도 없어지니 안심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잘살고 있다지만 불안한 상황이 해소된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얼마전에 확인 할 수 있지 않았는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무너지면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다한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압박은 더해질 것이고 강점당한 티벳과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내 자식들은 다시 혼란스럽고 비극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그 이름을 드높였겠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엄청난 독서가라는 점이다. 정주영 회장이 초등학교밖에 안나왔다고 해서 무식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단한 독서가였다고 한다. 빌게이츠가 '나를 키운것은 마을의 도서관이었다'고 한말은 그가 엄청난 독서를 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명한 말이다. 인기작가 김진명은학창시절 공부를 못했으나 책읽기를 좋아해 동네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겠다는 각오로 여러분야의 책을 섭렵했고, 그런 독서는 사업을 하다 망하고 쓴 첫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인인 이덕무는 책에미친 바보 -간서치(看書痴) - 라 불릴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청렴한 선비의 표상인 그는 오직 책읽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며 배고플때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잊고, 추울 때 책을 읽으면 추위를 잊으며, 마음이 괴로울때 책을 읽으면 그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몸이 아플때를 빼놓고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적이 없었으며 아침에 사오십 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50번씩 읽었다고 한다. 어린시절엔 관아뒤에서 벽에적힌 옛글을 보느라 저녁이 깊은 줄도 몰랐는데, 집안에선 그를 잃어버린줄 알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로 글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는 과거시험이나 입신양명을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학문 자체를 사랑하는 자세로 책을 읽었기에 가난한 선비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평생 2만권이상의 책을 읽고 필사를 한 책이 수백권이 이른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들 10명중 2명은 1년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나또한 창피하게도 성인이 된 이후, 서른살 이전까지 1년은 커녕 5년에 한두권 읽을까 말까였다.

  

 

 
사서육경과 염락관민의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마치 농부가 오곡을 가꾸듯이 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경서를 공부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철저히 힘써야만 좋다.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해야한다.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ㅇ르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56p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중]

 

 

  본문중에 나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다. 이덕무선생이 효효재 김용겸 선생(조선 후기의 학자·문신)을 찾아갔을 때 고려시대 이전의 일들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선생이 말하기를 "당나라 이적이 고구려를 평정하고는 우리나라의 모든 서적을 평양에다 모아놓았지. 그런데 그때 우리나라 문물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워버렸다네. 또 신라 말옆에 견훤이 완산 지방을 점령하고는 삼국의 모든 서적을 이곳에 실어다 놓았는데, 패망하게 되자 모두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렸지. 이것이 3 천 년 동안 있었던 두 번의 큰 재앙이라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이 우리 기록을 모두 불살라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기록을 중국의 사서에서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대주의에 쩌든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사서로 인정하는 수준이니…. 조선시대의 뿌리깊은 사대주의는 이책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임금부터 그러했기에 일개 학자로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라 어려운말들이 많아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뒷면에 주석이 세세하게 달려있지만 나의 조선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한자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전하는 선생의 책에 대한 마음, 문장에 대한 뜻,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을 모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책은 독자에게도 선생의 뜻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선생의 삶을 본받아 나도 평생 책을 사랑하며 끝없이 공부하는 삶을 살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학의 권유
이중재 지음 / 토네이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서 이책을 읽게 되었다. 알파벳도 모르던 축구선수에서 독학으로 4년 6개월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있다니? 이책의 저자 이중재변호사의 실제 이야기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저자는 자기 이름도 영문으로 못썼다고 한다.
자랑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전혀 공부를 안한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말을 안듣는 놈이었는지 1학년 때 부터 학교안가겠다고 부모님과 선생님을 애먹이며 무단결석을 한 사람은 나밖에 알지 못한다. 학교도 가기 싫었고 공부도 하기 싫었으며 왜 하는지도 몰랐다. 공부 못한다고 맞으면 맞을수록 오기는 더해 더욱 공부를 안하고 버텼다. 공부 못하는 녀석들도 매가 두려워 숙제는 해가기 마련이지만 방학때는 물론 평소에도 숙제를 안해가서 일찌감치 꼴통으로 찍힌 나. 저자는 축구선수였기에 그나마 용서가 되었겠지만 난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공부 못하는 놈, 머리나쁜놈 등의 명칭을 달고 살았다. 유치원때 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그나마 국어는 입학 때 부터 잘하는 편이라서 꼴찌는 하지 않았지만 성적은 항상 하위권 이었다. 수없이 맞아가면서도 끈기있게 공부를 하지 않았고 수업도 듣지 않았다. 지금은 그리운 학교지만 12년 동안 6개월 개근도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졸업을 했다.

 




 

  그래도 알파벳은 알았는데 저자는 그것도 몰랐다니. 부상으로 좋아하던 운동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그는 다니던 건축과에 적응하기 위해 학원에서 중학생들과 같이 중학교 과정을 듣는 등의 많은 노력을 했으나 다른 학생들과 너무나 수준차이가 났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합격하게 되었고 민법에 재미가 붙어 일년만에 법무사를 취득하고 사법고시까지 합격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도 30이 넘어 처음 공부를 하기로 한뒤 너무 막막한 나머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나 수기를 몇권 읽어보았는데 이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다.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아무리 좋은 학습법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법으로 하면 별로 소용이 없단다. 자신의 정신이 가장 또렷한 시간, 장소, 방법등을 찾으라고 충고한다. 다만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저자의 경우 처음엔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단순한 공부를 했지만, 곧 능률이 오르지 않음을 깨닫고 적절한 휴식과 운동을 병행하며 많은 시간보다는 효율적이고 집중력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다. 어려운 법관련 서적을 읽을때도 처음엔 소설책 읽어 나가듯이 읽어 전체적인 맥락을 짚고, 2번째는 인과관계를 살피면서, 3번 읽을때도 이해되지 않는 때에야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책을 적오도 10번은 읽을 각오로 꾸준한 반복학습을 했다.

 

  나는 산수를 특히 싫어했다. 지금도 나누기 이상은 하질 못한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되니 아예 손을 놓게 되었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던 것이 챙피했기 때문이다.  그때 어이없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가면 열심히 할텐데 이미 너무 많이 진도가 나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일찌감치 포기를 해버렸던 것이다. 벌써 어릴때부터 항상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체념을 했었으니 중고등학교때는 더 말할것도 없었다.

 

  나의 나약함도 있지만 어린나를 체벌로만 다스리려 했던 교사도 문제가 많다.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는 놔둬도 공부를 하니 공부가 쳐지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거 아닌가.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모르는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이 교육이며 교사의 본분이지 아이들을 차별하고 때리고 소리지르고 폭언을 퍼붓는 것이 교사의 임무는 아니지 않는가. 요즘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난 온갖 폭력과 입에 담기도 싫은 욕과 저주에 가까운 멸시의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를 주먹으로 때린 담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떻게 힘없는 9살짜리를 남자 어른이 주먹으로 때릴 수 있을까? 때리면서 자신의 주먹의 파워에 만족하며 흡족해 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공부에 대한 반감이 강력하게 자리잡은것은. 그 이후로 공부를 할 이유도 의욕도 자신감도 모두 잃어버린채 살았던것 같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던 간에 그런 변명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도 스스로에게 하곤 하는 핑계를 주의하라고 한다.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미루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때부터 변명을 하곤 했던 내가 증명할 수 있다.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꿈은 아주 중요한것이다. 저자도 자신의 비결을 묻곤 하는 사람들에게 꿈이 뭐냐고 질문을 하는데 상대방은 황당해 하는 반응을 보이기 까지 한다하니. 법이라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서 시작했다는 저자는 좋아하는 공부이기에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할수 있었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서 키워온 끈기와 오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내게도 할 수 있겠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어렵고 모르는 것들도 많고 막막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저자의 조언과 경험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어 꼭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어 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 밖으로 달리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빽투더 퓨처라는 영화 씨리즈를 본 후부터였던가? 시간여행에 관련된 소재의 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봤었다. 타임머신, 나비효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등등. 왜 그런 이야기에 끌렸던 걸까? 어쩌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돌리고 싶은 욕구 때문일지 모른다. 나이가 어릴때나 어른이된 지금이나 그랬던것 같다.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저학년때로 돌아간다면 산수를 기초부터 제대로 할 수 있을텐데라며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했었다.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을 과거의 탓으로 돌리며 살았던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지만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 책 역시 제목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 소녀가 달리는 표지를 보며 시간의 경계를 달리는 환타지 소설일꺼라 생각하고 읽은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소설의 배경은 1840년이다. 클리프턴 마을에 살고 있는 제시는 똑똑하고 용기있는 아이로 부모님의 일도 곧잘 돕곤 하는 명랑한 소녀이다. 마을에는 디프테리아라는 전염병이 돌아 마을의 아이들과 제시의 동생인 케이티는 병석에 누워있게된다. 그런데 제시는 엄마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된다. 지금이 1840년이 아닌 1996년이라는 것이 아닌가? 클리프턴 마을은 마일즈 클리프턴이라는 사람이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1840년대를 그대로 재연한 관광지 마을이었다. 관광객들은 마을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카메라와 유리화면을 통해 1840년대 사람들의 모습을 관람하는 것이다. 마을의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린 아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살고 있으며 그 사실은 비밀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약을 공급해 주지 않아 아이들이 죽어가게 된 것이다! 삼엄한 감시로 인해 마음대로 약을 구하러 나갈 수도 없기에, 제시의 엄마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어린 제시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게 된다.

 

  자동차, 텔레비전, 도로, 전화기조차 경험하지 못한 19세기의 소녀 제시는 20세기로 문명의 시간을 뛰어넘은 모험을 하게된 것이다. 닐리라는 사람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기발한 상상력과 어린 소녀의 문명을 뛰어넘은 모험. 소재자체로도 흥미로웠다. 길기 않은 분량에 잘 읽히면서도 독자에게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문명에 대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문명을 겪어보지 못한 제시는 그것들이 불편하다. 바깥세상에 신기한 것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오직 클리프턴 마을과 사람들 뿐. 얼마전에 읽은 룸이라는 소설에서 납치된 소녀가 낳은 납치범의 아이가 갇혀있던 쪽방을 그리워 하는것같은 익숙한 그리움이다. 익숙한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반대로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을 갑자기 받지 못하게 된다면 불편하고 두려울 것이다.

   90년대에만 해도 휴대전화 없이 살 수 있었지만 지금 없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이 좋은 영향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편리해져 가지만 갈수록 우울증과 자살률은 늘어만 간다. 앞으로 더욱 편리한 문명이 우리를 찾아올텐데 더 많은 부작용들도 함께 늘어가진 않을지.

가끔은 불을 지펴 난방을 하고 한참을 걸어서 다니던 학교길, 푸세식 화장실과 대나무 숲이, 별들이 가득하던 밤하늘을 볼 수 있었던 마당의 평상이, 불편했지만 마음의 휴식을 주었던 시골생활이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재익의 이름을 알게된건 작년초쯤이다. ’카시오페아 공주’라는, 표지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소설 소개를 보게되었을 때. 그러나 흥미는 띠지때문에 사라졌다.  ’두시탈출 컬투쇼’를 내세운 띠지의 홍보문구와 컬투의 사진 때문이었다. 

컬투가 좋은 개그맨이겠지만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고 책의 내용과는 더 상관없지 않은가?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관련없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것은 그다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확인해보면 알았겠지만 확인까지 해가면서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만 장동건이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로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외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독서 초보자기 때문에 알랭드 보통이 누군지 모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연예인들이 소설을 출간하는것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유명세 없는 작가가 썼으면 거의 팔리지 않을 책들이 그들의 유명세 때문에 팔려나가고, 좋은 작가와 작품은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진다.

  한참뒤에야 독자들의 평가도 괜찮은것 같아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양반 왜이리 소설을 자주내는거지? 싱크홀, 심야버스괴담,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압구정 소년들이 1년 사이에 출간되고 아버지의 길이라는 작품도 연재하는 중이다. PD하느라 바쁠텐데 관두셨나? 어떻게 짧은 기간내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쓸수가 있을지 궁금증도 생겨 이재익 작가의 작품을 찾게 되었고 처음 만난 작품이 이 소설이다.

 

  소설은 심각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카츄사 출신인 작가는 복무했던 부대와 미군들, 에피소드들을 그대로 담으려 했다고 후기에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생한 미군부대에 대한 묘사가 담겨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태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개작한 것일테지만.

미군용품 밀수꾼 아버지와 기지촌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정태는 미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명문대생인 그는 그런 반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난다는 이유로 카츄사를 택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구혜주. 그녀는 아이린이란 이름으로 미군을 상대하는 클럽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 양공주다. 혼혈인 그녀에게 강하게 끌린 정태는 처음부터 혜주의 신세를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게된다. 그녀가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것도 기둥서방격인 로드리게스라는 장교가 있는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정태는 혜주를 어둠에서 구해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카츄사에 근무하면서도 미군에 대한 반감때문에 정태는 미군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한다. 마르끼즈라는 녀석과는 더욱 사이가 좋지 않아 주먹다짐까지 하게된다.

 

  육군과 많이 다른 카츄사의 군생활을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소위 땡보라고 불리는 캬츄사들의 군생활은 육군에 비하면 정말 편해보인다. 주말마다 외출하고, 미국의 휴일과 한국의 휴일 모두 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나 다름없다. 내무실도 여러명이 함께 자는 막사가 아닌 2인 1실이라니. 나도 후방에 배치되어 편하게 군생활을 했던 편이지만 카츄사에 비하면 상대도 안된다. 딴거 다 필요없고 주말에 집에 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캬츄사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미군과의 차별이나 스트레스등이 클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빡센 부대는 바로 자신이 나온 부대라고 하지 않던가.   

 




 

  90년 온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윤금이 살해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는 윤금이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방법으로 재미삼아 윤금이를 살해한 케네스이병은 10년만에 풀려났다고 하니 기가막힌 노릇이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의 범인은 아예 무죄로 풀려났다. 타국가에 대해 선과 악으로 규정지으시는 국가께서 자국민의 악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기가막히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식민지에서나 일어날 일 아닌가?

하기사 작전통제권도 없는 국가의 군대에서 주인국에게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점칠하는 나라답다. 그 만들어진 주인국의 위인을 우리의 위인이랍시고 위인전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 나라답다. 비약하자면 미군들의 행동을 보면 인디언들처럼 우리도 인간으로 안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미군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에 그 필요성을 만든것이 미국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불문율을 망각해선 안된다. ’국가와 국가사이에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국가의 감정은 인간 개인의 감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미국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닌 자국의 국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손권이 유비를 도와줬다고 할 수 있나? 순수한 도움은 한번도 없다. 도와주는 시늉만 하고 국익을 먼저 생각해 조신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국가간에는 당연한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국제정세 분석가 조지프리드먼은 미국의 전략은 타국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련 붕괴후에 세계 여러 전쟁에 관여하는 것도 그때문인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삼키려들고, 미국은 남한을 기지로 삼아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주한미군을 주둔하고 있다는 것, 명분은 남한을 위함이라지만 애초에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함인 것이다. 작통권을 가지고 있는것만 봐도 그렇고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으로 봐야한다.

 

  이 사실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나 정세 분석가들이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우습게도 미국의 순수한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2차대전부터 한국전쟁의 발발원인까지 객관적인 자료로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그런 소리는 안나올텐데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도와주고 있다고 고마워한다. 애초에 6.25 한국전쟁은 냉전시대의 이념전쟁, 즉 2차대전 이후 미소 양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이념전쟁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들어오게 된 계기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걸었던 기대가 무너지고, 모스크바의 레닌이 비 서구권 국가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미국에 의지했던 독립의 희망이 소련으로 옮겨갔고,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라는 단체가 설립되어 강점기 문학의 주된 흐름, 대세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다. 게다가 농민들이 주류인 우리실정에 몇안되는 노동자들을 위한 이념은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지식인들 스스로의 의지와 일제의 압박등에 의해 카프는 해산하게된다. 그리고 원폭투하로 2차대전 종결과 함께 해방이 되었다. 그 뒤로 6.25가 일어나기까지 5년밖에 안된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5년만에 그 어렵다는 사회주의 이론을 자주적으로 받아들이고 정립할 수 있었을까?

남북의 분단은 이념으로 인한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적 상황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혼란한 시기에 북한은 소련과 가깝고 일본을 항복시킨 미국은 남한과 가까웠다. 일본과 전쟁해서 항복을 시켰는데 왜 한반도에 주둔했을까? 일본은 섬나라라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러나 한반도의 위치는 소련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진입지이다. 지정학적 거점으로 삼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다. 소련과 중국도 미국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남하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의 전쟁은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격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망가져 있던 국가가 5년만에 스스로 지들끼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론 미국과 인연을 절대로 끊을 수 없다. 이미 그런 상황에 깊이 발을 들여 놓았을 뿐더러 동북아공정으로 티벳처럼 북한을, 한반도까지 편입시킬지 모르는 중국의 음모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국익을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그들을 이용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작가의 말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좀더 정의롭게 조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 벌건 대낮에 꽃같은 소녀를 장갑차로 깔아죽이고도 무죄방면되는 사태는 없어야 되는게 아닌가? 남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다. 내 딸아이 내 누이가 그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막힘없이 쉬이 읽히는 소설을 다읽고 나서야 이 작품이 2001년에 쓴 노란 잠수함의 전면 개정판이라는 것을 알았다.(마지막 페이지에 조그맣게 씌여있다) 작가는 PD를 하기전 1997년 이미 등단한 작가였고, 노란 잠수함은 그의 두번째 작품이었다. 짧은 시기에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게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의 그런 열정은 대단하다. 이젠 컬투에서 완전히 벗어나 소설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이PD를 앞으로도 주목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