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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이재익의 이름을 알게된건 작년초쯤이다. ’카시오페아 공주’라는, 표지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소설 소개를 보게되었을 때. 그러나 흥미는 띠지때문에 사라졌다. ’두시탈출 컬투쇼’를 내세운 띠지의 홍보문구와 컬투의 사진 때문이었다.
컬투가 좋은 개그맨이겠지만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고 책의 내용과는 더 상관없지 않은가?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관련없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것은 그다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확인해보면 알았겠지만 확인까지 해가면서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만 장동건이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로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외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독서 초보자기 때문에 알랭드 보통이 누군지 모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연예인들이 소설을 출간하는것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유명세 없는 작가가 썼으면 거의 팔리지 않을 책들이 그들의 유명세 때문에 팔려나가고, 좋은 작가와 작품은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라진다.
한참뒤에야 독자들의 평가도 괜찮은것 같아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양반 왜이리 소설을 자주내는거지? 싱크홀, 심야버스괴담,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압구정 소년들이 1년 사이에 출간되고 아버지의 길이라는 작품도 연재하는 중이다. PD하느라 바쁠텐데 관두셨나? 어떻게 짧은 기간내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쓸수가 있을지 궁금증도 생겨 이재익 작가의 작품을 찾게 되었고 처음 만난 작품이 이 소설이다.
소설은 심각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카츄사 출신인 작가는 복무했던 부대와 미군들, 에피소드들을 그대로 담으려 했다고 후기에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생한 미군부대에 대한 묘사가 담겨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태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개작한 것일테지만.
미군용품 밀수꾼 아버지와 기지촌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정태는 미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명문대생인 그는 그런 반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난다는 이유로 카츄사를 택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구혜주. 그녀는 아이린이란 이름으로 미군을 상대하는 클럽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 양공주다. 혼혈인 그녀에게 강하게 끌린 정태는 처음부터 혜주의 신세를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하게된다. 그녀가 몸을 파는 여성이라는 것도 기둥서방격인 로드리게스라는 장교가 있는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정태는 혜주를 어둠에서 구해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카츄사에 근무하면서도 미군에 대한 반감때문에 정태는 미군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한다. 마르끼즈라는 녀석과는 더욱 사이가 좋지 않아 주먹다짐까지 하게된다.
육군과 많이 다른 카츄사의 군생활을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소위 땡보라고 불리는 캬츄사들의 군생활은 육군에 비하면 정말 편해보인다. 주말마다 외출하고, 미국의 휴일과 한국의 휴일 모두 쉴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나 다름없다. 내무실도 여러명이 함께 자는 막사가 아닌 2인 1실이라니. 나도 후방에 배치되어 편하게 군생활을 했던 편이지만 카츄사에 비하면 상대도 안된다. 딴거 다 필요없고 주말에 집에 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캬츄사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미군과의 차별이나 스트레스등이 클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빡센 부대는 바로 자신이 나온 부대라고 하지 않던가.

90년 온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윤금이 살해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는 윤금이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방법으로 재미삼아 윤금이를 살해한 케네스이병은 10년만에 풀려났다고 하니 기가막힌 노릇이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의 범인은 아예 무죄로 풀려났다. 타국가에 대해 선과 악으로 규정지으시는 국가께서 자국민의 악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기가막히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식민지에서나 일어날 일 아닌가?
하기사 작전통제권도 없는 국가의 군대에서 주인국에게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점칠하는 나라답다. 그 만들어진 주인국의 위인을 우리의 위인이랍시고 위인전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 나라답다. 비약하자면 미군들의 행동을 보면 인디언들처럼 우리도 인간으로 안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하지만 미군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에 그 필요성을 만든것이 미국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불문율을 망각해선 안된다. ’국가와 국가사이에는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 단지 영원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국가의 감정은 인간 개인의 감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미국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닌 자국의 국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손권이 유비를 도와줬다고 할 수 있나? 순수한 도움은 한번도 없다. 도와주는 시늉만 하고 국익을 먼저 생각해 조신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국가간에는 당연한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국제정세 분석가 조지프리드먼은 미국의 전략은 타국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련 붕괴후에 세계 여러 전쟁에 관여하는 것도 그때문인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삼키려들고, 미국은 남한을 기지로 삼아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이미 주한미군을 주둔하고 있다는 것, 명분은 남한을 위함이라지만 애초에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함인 것이다. 작통권을 가지고 있는것만 봐도 그렇고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으로 봐야한다.
이 사실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나 정세 분석가들이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우습게도 미국의 순수한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2차대전부터 한국전쟁의 발발원인까지 객관적인 자료로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그런 소리는 안나올텐데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도와주고 있다고 고마워한다. 애초에 6.25 한국전쟁은 냉전시대의 이념전쟁, 즉 2차대전 이후 미소 양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이념전쟁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들어오게 된 계기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걸었던 기대가 무너지고, 모스크바의 레닌이 비 서구권 국가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미국에 의지했던 독립의 희망이 소련으로 옮겨갔고,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라는 단체가 설립되어 강점기 문학의 주된 흐름, 대세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다. 게다가 농민들이 주류인 우리실정에 몇안되는 노동자들을 위한 이념은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지식인들 스스로의 의지와 일제의 압박등에 의해 카프는 해산하게된다. 그리고 원폭투하로 2차대전 종결과 함께 해방이 되었다. 그 뒤로 6.25가 일어나기까지 5년밖에 안된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5년만에 그 어렵다는 사회주의 이론을 자주적으로 받아들이고 정립할 수 있었을까?
남북의 분단은 이념으로 인한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국제적 상황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혼란한 시기에 북한은 소련과 가깝고 일본을 항복시킨 미국은 남한과 가까웠다. 일본과 전쟁해서 항복을 시켰는데 왜 한반도에 주둔했을까? 일본은 섬나라라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러나 한반도의 위치는 소련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진입지이다. 지정학적 거점으로 삼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다. 소련과 중국도 미국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남하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의 전쟁은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격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망가져 있던 국가가 5년만에 스스로 지들끼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론 미국과 인연을 절대로 끊을 수 없다. 이미 그런 상황에 깊이 발을 들여 놓았을 뿐더러 동북아공정으로 티벳처럼 북한을, 한반도까지 편입시킬지 모르는 중국의 음모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국익을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그들을 이용할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작가의 말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좀더 정의롭게 조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 벌건 대낮에 꽃같은 소녀를 장갑차로 깔아죽이고도 무죄방면되는 사태는 없어야 되는게 아닌가? 남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다. 내 딸아이 내 누이가 그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라.
막힘없이 쉬이 읽히는 소설을 다읽고 나서야 이 작품이 2001년에 쓴 노란 잠수함의 전면 개정판이라는 것을 알았다.(마지막 페이지에 조그맣게 씌여있다) 작가는 PD를 하기전 1997년 이미 등단한 작가였고, 노란 잠수함은 그의 두번째 작품이었다. 짧은 시기에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게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의 그런 열정은 대단하다. 이젠 컬투에서 완전히 벗어나 소설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이PD를 앞으로도 주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