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연구의 역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며 밝혀진 사실도 일부에 불과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과학자보다 작가들이 뇌의 특성들을 먼저 알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들과 거의 일치하는 뇌의 특성을 문학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어노문학과 전공자인 저자는 이책에서 바로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책을 읽기전엔 노어노문학이 러시아와 러시아 문학에 관해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책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닷가재와 공산주의, 더럽게 매서운 추위, 그리고 명성이 자자한 대문호들의 이름이다. 공산주의는 한물갔고, 바닷가재는 비싸고, 교수님의 극찬에 힘입어 도전한 전쟁과 평화는 백작 자작 공작들을 핑계삼아 포기하고, 체홉과 톨스토이등의 단편몇편을 읽은 것을 제외하면 러시아와 나의 교류는 단절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이름 높은 러시아 문학의 아우라 때문인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인지 "언젠간 읽고 말거야"란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작은 욕구에 불을 붙여주는 것이 이책이다.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의 네가지 파트로 나뉘어 뇌과학의 현상들과 그 이전의 문학작품들의 비슷한 예가 등장한다. 전운동 피질의 신경세포 거울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안나까레니나에서 이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거울뉴런을 발견하기 이전이다.
안나카레니나는 그녀가 즐겨 읽던 영국 통속 소설의 영향을 받는다. 불륜을 저지르는 소설속 인물들처럼, 실재로 브론스키와 불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녀가 통속소설의 영향을 받아 그런 행동을 취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타티야나도 소설속에서 튀어나온것 같은 청년 오네긴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네긴의 거울뉴런 또한 그당시 '대세'이자 문화현상이었던 바이런의<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주인공 해럴드를 모방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낭만주의 소설, 모든 젊은이들이 바이런의 해럴드를 동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기억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프루스트는 이 소설에서 기억의 과학적 특성, 고착화하고 변형.왜곡하고 상상을 보태는 기억의 특성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뇌과학이 입증해내기 전에 말이다.
친구와 과거를 이야기 할 때, 함께 경험했던 일인데도 기억이 서로 달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분명히 생생하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도 친구는 아니라며 우긴다. 다른 근거들을 대며 설득해보지만, 그래도 수긍을 하지 않는다. 결국엔 친구의 기억력이 좋지 않다며 결론을 내리던지, 다툼으로 인해 의가 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은 왜곡되는 것이다. 기억은 정보가 입력되어 어딘가에 응축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것을 고착화라고 부르며 이것이 환기될 때 변형을 거친다고 한다. 그리고 저장된 기억은 유동적이고 회상하는 장소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마치 비디오를 재생하듯이 어렵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기억들이 왜곡된 기억일 수 있다니?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잘못된 기억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있다. 한 여성이 강간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수사가 시작되고몇명의 용의자의 얼굴을 확인한 여성은 한 남자를 범인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용의자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여성의 확신때문에 그는 감옥에 수감된다. 수년 후, 피해 여성은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이 범인을 잘못 지명했음을 깨닫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실제 범인이 검거되었다. 피해자의 잘못된 기억때문에 남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도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암시에 의해, 들은 이야기일 뿐인데 자신이 경험한 것이라고 믿게될 수가 있다고 한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계단을 몇개 올라가자 아버지가 번쩍 들어 안아주는 모습이다.
지금도 생생한 이장면은 그러나 나의 착각일 것이다. 그때 나는 발에 신을 신고 손에도 신을 끼우고 네발로 기어서 계단을 올랐으니까. 걷기도 전이기 때문에 기억날리 없다. 오래전부터 아버지로부터 하도 들었기때문에 기억으로 착각하는 것일테다.
본서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일본 소설 덤불숲(영화 라쇼몽)도 기억의 특성을 잘 표현한 문학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을 보거나 읽은 사람은 타죠마루와 사무라이의 아내, 죽은사무라이의 혼령이 각각 다른 증언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짧은 소설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작품 역시 기억의 특성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지만 옛날의 역사기록은 사람의 손에 의해 씌여진 것이다. 입장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마천도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인물을 별 근거없이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삼국지의 경우 소설을 정사에 빗대어 사실은 이랬으니 이것은 허구라고 말한다. 연의와 정사를 비교한 서적만 해도 수없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기록에 적혀있다는 것이지 실제 사실인지 아닌지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르며 알수도 없다. 설사 타임머신이 개발된다 해도 만화 드래곤볼에서 트랭크스가 두번째 찾아간 과거(만화의 현재)와 그가 알고있던 사실이 미묘하게 달라진것을 알게된 것처럼 왜곡이 될지도 모른다. 규명할 길이 없으므로 역사는 어쩔 수 없이 기억과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다. 기억은 어쨌거나 현재의 우리를 대변해 주는 것이고 역사도 마찬가지니까.
심지어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각종 기록매체가 널려있는 현대에도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노통의 서거는 자살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높은곳에서 낙하한 사체 주위에 혈흔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의혹을 갖게하기에 충분하다.
참 더디게 읽은 책이었다. 서평을 작성하는데도 다른 책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민이 있어 생각이 딴데로 가있거나, 재미가 없거나, 내 수준을 웃돌때 책이 잘 읽히지 않는 법이다. 수준이 웃돌때는 책이 재미가 없고 딴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이책은 분명 내 수준을 웃돈다. 뇌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단락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고,
골치 아플때쯤 문학작품속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재미있다. 이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욕구도 일어난다. 또한 과학과 나 사이의 먼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