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세트 1 : 1~12권 - 전12권 (무선)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박재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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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와 잘 맞지않는 성향인지라 메이디인 재팬은 기피하게 된다.

일본이 싫어서가 아니다. 물론 일본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않지만 문화는 별개. 중국이 싫다고 해서 중국이 발명한 종이를 쓰지 않을 순 없듯.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로 좋게 보지 않지만 그들의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 것처럼 단지 취향 차이인 거다.

처음 일본문화가 개방되었을 때 전혀 접해 보지 못했던 문화의 신선함, 어릴적 보던 추억의 만화들에 대한 향수로 일본 영화와 애니를 찾아보게 되었다. 만화책이야 이전부터 들어왔던 것이고 학창시절에 이미 섭렵했기에 만화책만한 재미를 기대 했던 것일까?

처음 본 영화는 다들 그렇다 시피 러브레터였다. 재미와 감동과 영상미가 살아있는 신선한 영화였다. 그리고 당시 수입해왔던 철도원등의 영화를 연달아 보게 되었다. 프랑스 예술영화는 졸지 않고 끝까지 보면서도, 어설픈 SF영화는 꾸벅꾸벅 조는 나이기에 일본 영화의 잔잔함은 별로 문제될게 없었다.



그런데 일본 애니와 영화감상을 거듭할 수록, 뭔가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일본 배우들의 말투와 오버스러움 때문이었다. 그게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처음엔 몰랐으나 회를 거듭할 수록 거슬림은 더해갔다. 귀여운척 애교스러운 척 앵앵대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듣기 싫을까? 그 이유로 이젠 일본영상물을 거의 안보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일본영화를 보지만 주로 오버가 배제되어있는 공포나 멜로물을 보거나 아주 가끔 봐주는 정도의 조절을 필요로 한다.





취미에 없었던 책읽기를 시작하고 난 후에도 일본것은 별로 읽지 않았다. 활자에 오버스러움이 나올리는 없지만 이번엔 긴 지명과 이름때문이었다. 한자나 한글로 하면 한두글자로 끝날 이름들을 받침없이 길고 복잡하게 나열되는 것은 기억기도 힘들고, 이게 사람이름인지 장소이름인지 헛갈릴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성 높은 대망을 읽을 계획도 없었다. 좋다는 글은 많이 봤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에 더해 권수가 무지하게 많은 것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무슨 소설이 36권이나 된단 말인가?



존경하는 교수가 두견새를 언급해가며 추천하지 않았다면 결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32권이 전부 이어진 이야기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일하고 태평시대를 연, 일본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에선 한나라를 통일한 중국의 유방정도일까?

대망은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인데, 12권까지만 야마오카 소하치의 작품이다. 즉, 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오래전에 번역하면서 '대망'으로 수정하였고, 2세트와 3세트에 해당하는 13~36권은 다른 작가들의 다른 역사소설을 모은 것이다.

대망이 인기를 끌자 다른 작가들것도 씨리즈로 팔아먹자고 하는 상술이었던 걸까? 덕분에 헛갈렸다.

딴 출판사에서 원제 도쿠가와이에야스로 32권짜리 책이 출간되었는데, 32권이나 되는 권수 덕분에 대망도 같을 것이란 착각을 하는데 일조한거다. 차이점이라면 대망은 12권이지만 글씨도 작고 페이지도 600페이지가 넘는다. 도쿠가와~로 나온 책은 일반 단행본처럼 글씨도 크고 뒤에 부록도 나와있어서 권수가 늘어난 거다. 요런 사실을 검색을 통해 알게되고 또 열심히 검색을 한 결과, 대망의 번역이 나에겐 맞을 듯 해서 선택하게 된거다.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왜 이렇게 길게쓰는거냐고? 이까지 읽을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쓰고 싶어서 쓰지 읽어달라고 쓰는 인간이 못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해도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바.







초반엔 내가 싫어라 하는 긴 지명과 이름이 참 많이도 나와서 앞페이지의 인물 소개를 수없이 들춰가며 읽어나갔다. 역시 긴 분량이어서 그런지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 묘사도 묘사지만 구구절절 설명이 참 많다.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가 느끼도록 하는 소설이 좋은 작품일 경우가 많지만, 본격 역사소설들이 그런 속성이 없지않으며, 내겐 생소한 문화를 배경으로 하기에 장점으로 다가온다.



며칠을 붙들고 나서야 1권을 다 읽어냈다.

아직 깊이 빠져들진 못했다. 초반부를 넘어서니 점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그다지 몰입이 되진 않는다. 많은 분량도 조금 부담스럽다. 책을 더디게 읽는 나로서는 이걸 다 읽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도중에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있으므로 2권을 반쯤 읽고 잠시 접어두었다. 다른 독자들처럼 다음이 궁금해서 못견디겠다~!!, 밤을 세워 읽을 수밖에 없다!! 라는 느낌은 아직까지 전혀 없었다.

더 봐야 알겠지만 일본것은 역시 개인의 취향에 안맞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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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하면 죽고 치병하면 산다
신갈렙 지음 / 전나무숲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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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교통사고 자살등으로 죽는 사람도 많지만, 사망률 1위는 단연코 암이다. 암과 뇌졸증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사망자의 4명중 1명이라니.

내가 암에 걸린다면?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확율이 매우 낮은 로또 1등은 살때마다 꿈꾸지만, 확률이 높은 암에 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는게 사람 심리.

 

  조부모님중 3분이 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암에 대한 염려를 놓을 수 없는 우리집이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염려된다. 아직 젊은 나는 건강한 편이라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부모님도 건강하신 편이지만 연세가 있으신지라 이런 책도 찾아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효자네? 라는 식으론 제발 생각 하지 말길 바란다. 효자란 아무한테나 쓰는 말이 아니다. 아닌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말은 정말 듣기 싫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고, 부끄러워 하는 것만으로 그쳐버리기 때문이다.

솔직히 평소엔 걱정을 잘 하진 않지만 책의 제목을 보니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평소에 잘 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어린애처럼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짜증을 잘내는 못된 아들에게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긴 한가보다.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아서 그런지 가끔 갈때면 의사와 간호사들의 태도에 화가 날때가 많다. 공짜로 치료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불친절한지. 어쩔땐 손님에게 죄지은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바쁘고 반복되는 일과에 지친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납득이 되진 않는다. 친절하길 바라는게 아니다. 최소한 지들 할일은 똑바로 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다.

병원에 갈때마다 느낀것은, 양의학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의 증상을 없애는데만 신경쓰는 것같다. 계속 고객이 아파야 장사가 되는 탓인건지 양의학 자체가 그런 것인지 작은 치료하나에도 부작용이 참 많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로 의사간의 실력 격차가 너무나 크고, 바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양의와 한의가 잘 조화를 이루면 좋으련만 한의사를 의사 취급도 안하는 양의사들을 종종 보게 된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참 많다고 한다.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의사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과 병원은 숨기기에 급급하고 나몰라라식의 대응을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실력만 있으면 인성이 개판이든 말든 다 되는, 아니 오히려 간사하고 모략을 잘 부릴 수록 출세하는 세상 구조가 다른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투병이 아닌 치병을 선택하여 암을 완치한 경험으로 이 책을 쓴 저자. 무엇보다 암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좌절하지 않은 멘탈이 대단하다. 자신이 직접 느끼고 경험했기에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를 조언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종교적 성향을 알았더라면 난 이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은 늘 이런 식이다. 안내없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전개하고 강요한다. 종교서적일 경우에는 표시가 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자가 비록 신을 믿어서 암을 이겨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신이란 약장수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기도로 병을 치료한 예가 많겠지만, 꼭 그 신이 아니라도 다른 신에게서도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니다.

전염병이 돌던 중세에 치료는 안받고 기도만 주구장창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정 종교를 당연히 그것만이 진리인양 생각하는것, 좋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만 적용해야지 독자의 종교나 신념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것을 강요하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기독교가 믿음으로 인해 좋은 일도 많이 했겠지만 전쟁과 분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예는 더더욱 많다. 신의 이름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권력을 잡아 횡포를 저지르고 정치에도 개입하려드는 기독교.

참 진리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이득이 되므로 - 천국에 보내주고 현세에도 잘살게 해주고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건강도 해결해줄까봐 믿는 - 흥신소에 가까운 존재로 전락해버린 믿음이 무슨 진실한 믿음이란 말이며 신이 있다한들 이런 신도들을 좋아하겟는가?

 

내가 기독교에 더 마음에 안드는 것은 교회 관련 사건이 있을때마다 보이는 기독교인들의 태도다.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는 변명뿐이다.

허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교회와 내노라 하는 대형교회, 그리고 그 교회들이 속해있는 교단이 그럴진데 무슨 일부라는 말인가?

일부가 아닌 대부분으로 봐야 한다.

교회를 오래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교회에는 기장, 예장, 감리, 침례등의 교단이 있고 그 교단에 속해있는 교회는 교단의 영향권아래 있을 수 밖에 없고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시스템 자체도 교단이 정해놓은 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무슨 놈의 일부타령인가?

 

그런 일이 있을때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변명이 아닌 바로 내부 비판이다. 내부에서 잘못을 바로 잡고 수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변명만 주구장창 들려온다.

 

  기독교인이거나 특정 종교의 색깔이 거슬리지 않는 사람이면 읽을만하다고 본다. 허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다른 비슷한 책을 보는것이 나을거다. 특정 종교에 대한 저자의 태도만 아니었으면 기독교를 언급했어도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무엇을 절실하게 믿고 그것을 의지하여 무엇을 이겨내는 것을 나쁘게 보는게 아니다. 다만 다른 경우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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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왕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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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라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현대는 물론 미래에도 충분이 적용될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상당히 똑똑한 사람도, 승산이 없는것이 범인의 눈에도 보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에 욕심을 부리는 모습도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높이기 위함, 즉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대단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런 욕구는 잠재되어 있다.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며 외모도 평범한 태식은 흔히 볼 수 있는 '루저'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현실이 너무 찌질하기에, 사는 것이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다. 


그런 태식이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도 게임엔 손대지 않았던 녀석인데 결국 거기까지 가는구나'라는 주위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손을 댄 이유는, 학교의 여신이자 아이돌 그룹의 스타인 지은 때문이다. 지은이 광고모델을 하는 게임 '판타지 온라인'에서 두각을 나타내, 함께 게임을 하며 가까워지고 싶다는 순박한 소망때문이다. 

열심히 게임에 집중해 캐릭을 키운 뒤, 드디어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를 잡은 태식.

그러나 지은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다. 홍보를 위해 캐릭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고, 오히려 그런이야기로 접근하는 태식같은 덕후들에게 신물이 나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위해 게임에 그리 몰두했던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그를 괴롭히는 일진 성민이 지은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더욱 좌절하는 태식.

이런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 몰두할 수 있는 것은 게임뿐이었다.

자신의 캐릭이 게임상에서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용'의 불꽃에 내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자신과 비슷한 두녀석을 끌어들여 용을 잡기로 결심한 태식은 모든것을 용사냥에 건다.


세녀석은 드디어 단 세명이서 누구도 불가능하다 여겼던 용을 잡는데 성공하고, 포털 검색어 2위까지 오르며 세계 500만 유저에게 화제거리가 된다. 

그와 다른 이유로 게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개발자 성훈과 인투더더레인은 태식에게 접근하고, 솔깃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태식. 

바뀐것은 사실 별로 없다. 

하지만 희망과 용기를 보았다. 아직 찾아내지도 못한, 자신의 열정을 쏟아낼 그 무언가에 쏟아 낼.



 사건 진행과 구성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공감이 간다. 게임을 해본 적은 없지만, 별볼일 없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역시 대단할 것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 

태식은, 그리고 나는 이룰 수 있을까? 


답은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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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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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로맨스 클럽씨리즈중의 하나라는 요 소설.


그게 뭘까? 블랙코메디의 경우로 생각해보자면면 로맨스를 빈정댄 소설이란 건가?

이 소설이 이 씨리즈중 하나라는 것은 읽고 나서 알았다. 그 씨리즈가 몇권이나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외국에서 나오고 있는 씨리즈인지, 우리나라서 갖다 붙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연작은 아닌것 같고.

대충 보니 출판사서 새로 밀고 있는 씨리즈로서 하나를 읽고 취향에 맞으면 계속 읽어라는 식인가?

로맨스 소설을 그리 선호하지 않지만 책 소개가 재미있을 것 같아 읽게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SF에 가깝지 않은가? 장르를 정하기 애매한듯 하다.

미래의 아이들이 자기 몸을 늙은이들에게 대여해주고 돈을 받는 '바디뱅크'란 곳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긴데~

슬픔을 파는 아이들이란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상황이나 배경은 영 다르지만 애들이 혹사당하는 것은 같다.


단, 이책이 훨씬 잘 읽힌다.

본문만 469페이진데 내가 언제 이렇게 읽었나 싶을 정도로 술술 넘어간다.

잘 넘어간다고 좋거나 재밌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만큼 몰입할 수 있다는 건데, -더이상 이런 소재가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사건 전개가 흥미롭고 뒷 부분을 궁금하게 하는 맛이 괜찮다.





-(후반부를 제외한) 대략 줄거리-


전쟁으로 인한 전염병, 부모들은 거의 다 죽었다.

우리나라서도 신종플루가 확산되었을 때 애들하고 노인부터 우선으로 예방접종을 맞았단걸 기억할 것이다. 소설에서도 그랬고, 그 결과 애들과 노인들만 남았다.


노인들은 앤더라고 불리운다. 의학의 발달로 노인들은 200살까지 살 수 있었는데, 많아진 노령인구를 핑계로 미성년자는 취업을 못하는 상황이다. 부모를 잃은 애들은 갈때가 없었다. 살던 집도 다 뺏기고 거리로 내몰려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빈 건물에 숨어서 살아야 한다.

일을 못하니까 돈도 없고, 음식 쓰레기를 뒤져 연명하는 신세다.

그러다보니 주인공 켈리는 바디뱅크를 찾아간다. 노인네들한테 몸을 대여해주면 고액의 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동생의 건강이 좋지 않기에, 본능적으로 밀려드는 거부감과 의구심을 누른채 그곳을 찾아간 거다.

대여를 하기전 특징은, 몸을 빌린 사람이(렌터) 영화 아바타서처럼 몸을 조정할 수 있도록, 머리에 칩을 삽입하고, 레이저등으로 외모를 잡티하나 없이 아름답게 바꾼다는 거다. 원래 한 인물 했던 켈리는 지도 거울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예뻐진다.


첫번 째, 두번 째의 짧은 대여가 끝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한달간의 긴 대여가 기다리고 있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며 항의해봤지만 돈땜에 결국은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잠자듯이 누워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다. 근데 갑자기 의식을 찾은 켈리는 낯선 곳에 서있는 자신을 알아차린다.

나이트 클럽이다.

젊은 애들로 득실거리는 그곳엔 몸을 빌린 애들과 원래 지몸인 부잣집애들이 섞여있었다. 혹시 돈 못받을까봐 바디뱅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제발 가지마'란 목소리가 머리서 들리는게 아닌가?

같이 놀던 몸빌린 노인네는 켈리가 지 친구인줄 알고 계속 말을 건다. 들킬까봐 아닌척 행세를 하는데 성공하고, 어찌저찌 렌터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 이게 왠일인가, 이 할멈 뭐해서 돈을 번건지 어마어마한 대 저택에 살고 있다.

한창때 소녀 답게 나이트에서 만난 블레이크라는 블링블링한 부잣집 도련님에게 끌리고, 그와 데이트를 즐기는 켈리.

그러다 갑자기 다시 정신을 잃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 렌터 할멈의 무시무시한 음모를 알게 된다.

자신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려는 음모를…



-내용과 별 관계없는 소리-


요즘 읽은 소설에선 왜 이렇게 애들을 혹사시키는게 많이 나오는가. 가상이지만 참 답답다.

현실에서도 애들은 참 대우를 못받는 것 같다. 학업에 시달리거나 방관이나 멸시의 눈길을 받거나. 난 후자였던지라 어른들로부터 좋지 않은 눈길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누굴 크게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한것은 아니다. 다만 공부안하고 놀기 좋아했으며, 하고 다니는 꼬라지가 어른들 보시기에 거시기했을 뿐이다. 어찌됐건 눈밖에 나면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요즘은 더한것 같다. 학원 폭력문제도 있고.

애들이 잘못한것은 맞지만 어른들도 너무 한것이,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비난과 멸시의 눈길만 보내는 것도 문제다. 피해입은 학생 부모야 그렇다치지만 아닌 것들도 애들을 경멸한다.

학원폭력 기사라도 나오면 덧글엔 난리가 난다.

애들을 전부 처넣어야 된다느니 강력한 통제를 해야한다느니. 다 패버리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는 말까지 서슴찮는다. 그래놓고 길거리에선 아무말도 않을 거면서.

그런 덧글을 봐도 보이지 않나? 어른들의 폭력적인 성향을 아이들이 답습하는 거라고.

어른들부터 인성보단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잖는가. 그걸 보고 배운 애들이 인성교육을 배울길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거고.


내가 볼땐 어른들의 사회적 책임인 거다.

이런 취지의 글을 남기면 사람들은 악플과 반대를 누르기 급급하다.

잘못한 애들을 용서하자거나 관대하게 처분하자는 것도 아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선 댓가를 치르되, 어른들의 책임 의식과 각성이 필요하단 말이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일 뿐이다.

이런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도 악플이 달린다. 대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 매도를 당하는게 우리나라의 특징이라지만,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는 말이 중고등학생이면 다 컷단다. 판단할 능력이 충분하단다. 내가 볼땐 참 웃기는 소리다.

필요할때만 판단능력 찾는다.


또 구제 불능 쓰레기란다.

자기판단하에 남을 보는 행위, 내가 아니니까 쉽게 남을 판단하고 들이대는 잣대가 과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 정말 그런 시선대로, 그런 잣대로 주저앉히고 있는건 아닌가? 지새끼가 그런 행동을 했어도 그런 말이 나올까. 아니니까 나는 괜찮다 그러니까 말해도 된다는 이기적이고 유치한 생각은 아닌지. 그런게 어른 스러운 것인지.

어른들도 판단력이 부족하고 철이 없으며 사리 분별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해도 솔직히 나이만 먹었지 어른스럽지 못하거든. 그런데 애들이 무슨 판단능력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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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시詩적 생각법'
황인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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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지 않는 시대다.

우리나라 어떤 시인도 시작만으로 밥벌어먹고 살지 못한다. 교수직을 병행하거나, 다른 직업이 있다. 최고의 베스트 셀러 시인인 정호승시인조차 시만으로는 먹고 살지 못한다. 외국 어떤 나라처럼 시인들을 위해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상은 어려운 일인 거다.

문학에 관심이 많음에도 난 시를 읽지 않는다.

어떤 시는 마음에 와닿으며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시는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시의 맛을 조금이나마 알지만서도 어떤 일인지 일부러 찾아 읽지 않게 된다. 어떤 이는 시를 읽고 온몸에 전율을 느낀 경험을 했다거나, 눈물을 흘릴정도의 감격을 맛봤다거나, 일생을 두고 사랑하고 읽고 싶은 시가 있다거나 한다는데, 많은 시를 읽지 못해서인지 그런 경험을 해보지도 못했고, 공감도 가질 않는다.

소설가 조정래선생은 시인이 되지 못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시인을 꿈꾸지 않고 처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지망생은 좀 이상한거라 생각한다는 말까지 했다.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그만큼 문학에서 시가 중요하다는 뜻일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 시에 대해 좀 알게 되려나? 이해력이 조금 높아지려나? 시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을 읽어내는 것처럼 세상 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나아지려나?

내 예상섞인 기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저자의 약력을 읽을때부터 그럴것이란 예감이 들었으나 이건 아예 잘못 짚었다.

저자는 문학박사학위를 따고 기자생활을 오래 해왔다. 퇴직 후 경기대 국문과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드을 가르치며 시의 실용화를 강조했으며 '문학경영연구원'이라는 곳을 창업해 대표로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학을 활용해 CEO와 직장인들에게 동기부여같은 것을 해주며 도움을 주고자, '저자 나름의 문학 실용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문학을 상업화한 거다.

굳이 문학까지 이렇게 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앞서 말했듯이 시만 써서 밥먹고 사는 사람은 없는데, 그럼에도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이 계속 나온다는 것은 시와 먹고 사는 문제를 별개로 보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야 시인이 아니기에 별 상관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들 하지 않을까? 싶다는 거다. 안될것은 또 무엇이겠냐마는.

이 책도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를 활용한 자기계발서'쯤 되겠다.

듣다, 보다, 깨다, 엮다, 행하다 란 5가지 논점로 나뉘어 있고, 한 논점에서 또 몇개의 논점으로 나뉜다.

일단 시 한편을 소개한 뒤, 그 시를 해석하고 그에 걸맞을 만한 이야기나 기업혹은 기업인의 사례등이 이어진다. 흔히 그렇듯이 각종 심리학 연구결과가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와 유사한데, 시 한편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냥 자기계발서에 시를 하나 끼워넣은 것쯤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시와 기업이라는 두가지를 문학박사답게 잘 연결지었다는 느낌이다.

시인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통찰을 기업가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설득력은 있다. 비록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지만 자기계발서로서는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알아야 할것은, (다 예상했지만 나만 못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자기계발서이지 문학입문서나 문학기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라는 거다. 이 책을 통해 시인들의 통찰력을 고스란히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미약하다.

하지만 직장인이나 기업가가 활용하거나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로는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식상한 자기계발서에서 벗어난 독특한 맛도 있고, 소개되는 사례들도 흥미롭다.

참 좋은데 이제 관련 얘긴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갔으면 더 나았을거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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