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나서 맨 처음 떠오른 생각. 부러움. 한 때 우리에게도 책마을이 있었다. 아니, 책마을이 아니라 책거리가 있었다. 청계천이나 서울역 부근, 독립문 근처에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고 팔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몇몇 중고서점들만이 근근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주에 위치한 출판단지와는 또 다른 유럽의 책마을. 스위스와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독일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저자가 발견한 책마을의 본질은? 문화공동체의 사랑방. 책을 쓰는 사람과 출판하는 사람, 그리고 읽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소통의 매개체. 책을 보존하고 책에서 휴식을 구하며 책을 통해 되물림되는 전통문화와 현대와의 조화로운 결합. 진정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서점에서는 책도 하나의 상품으로써만 기능할 뿐, 팔리지 않을 책은 배제되고 잊혀지는 상업성의 논리에 문화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유럽처럼 마을 단위로 책에 부여하는 애정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책에 부여했던 그 절대성 만큼은 계승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동서양 인문고전 독서를 통한 세계관의 전환에 대해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또 하나의 인문서다. 사실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은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독서행위 자체의 미덕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경제적인 윤택함으로 끌어 올리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바로 삶의 고비마다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거시적 시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살면서 경제적 고난, 강요된 죽음의 위협, 정치적 불안정, 전쟁과 혁명, 자연재해로 인한 삶의 강제적 박탈 따위의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리게 마련이다. 이럴 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중심을 세워 무난히 고난 극복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인문고전들이다. 인문고전 속에는 그동안 인간이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고대나 현대나 인간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고,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당대가 곧 현대이었듯, 그렇게 축적된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느 시대, 어떤 性情의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인문고전의 탁월성은, 가령, 인간의 행태에 실망했다면, La Bruyere의 <人間性格論, 1688>에서 이미 관찰된 인간의 면면들에 놀랄 것이고, 현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이라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牧民心書, 1818>에 제시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일들에서 우선 자신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고전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권의 인문고전을 쓰기 위해 저자가 행했을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에 소요된 시간을 건너뛰어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저자의 노력에 準하는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악전고투가 요구된다. 처음엔 힘들어도 꾸준히 한 권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의 빛이 보일 것이다. 전체를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것이다. 이 지성이 제시하는 인문고전 읽기가 전 국민의 독서술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08년에 읽었는데, 요즘도 수시로 꺼내 읽곤 한다.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도 대단한 정보량을 담고 있지만 대개 러시아 관련서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이후 읽어 온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책 뒷표지에 따르면 인간은 물론, 지구, 우주,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 국제정치와 사상, 예술과 미술, 철학과 사상, 종교, 뇌과학, 죽음, 문명, 생물권, 신화와 역사, 전쟁, 중근동, 그리스와 로마, 환경과 생태학, 생명공학, 성과 사랑, 현대정치의 역학, 금융공학과 세계경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분류한 거의 전분야를 아우른다. 여기에다 머리말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입출력비(입력 대 출력의 비율)가 100대 1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책 한 권을 쓰려면 100권을 읽어야 하는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럭저럭 100권(공저 포함) 정도의 책을 썼는데, 그런 셈법에 따르면 읽은 책이 그것의 100배인 만 권은 족히 될 것이다.(p.9)"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글을 쓰기 위해 만 권의 책을 그저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몇 배의 사색을 했을 것이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또 그 몇 배의 지식을 창출했으리라 생각하면 그 동안의 노력과 육채적 고난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동안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책들 중에서 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임사체험>, <사색기행>, <우주로부터의 귀환>, <지식의 단련법>,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知의 정원> 등, 거의 모든 책을 읽었는데, 각각의 책 뒤에 소개되어 있는 참고 문헌의 방대함과 그 참고 문헌을 섭렵하고 때로는 실제 취재를 거쳐 써내려간 다치바나 다카시의 필력에 압도되곤 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깊은 정보는 물론 허투루 자의적 해석을 내리지 않는 철저한 과학적 고증성까지, 세계관과 지성적 사고가 일치하는 글쓰기는 전무후무할 정도다. 일본에서 '知의 거장' 또는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 불리는 저자의 삶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써 온 그 치열함과 "더 전방위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 인간학과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적 인식까지, 이 전부를 포괄한 세계인식을 원한다."라는 위 책 뒷 표지의 말로도 압축할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의 촉수에 따른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일찍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독서를 일컬어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독서를 계속해 나아가게 되면 다른 사람의 사상이 우리의 머리 속으로 가차없이 흘러 들어온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결함도 없을 정도로 완전무결한 체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항상 정리된 사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색가에게는 이 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쇼펜하우어 인생론, 김재혁 옮김, 육문사 1994, p. 148)"라고 말했을 때의 독서는 읽을 책이 많지 않았고 또 쇼펜하우어 자신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갖추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던 만큼,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능한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어야만 생존할 수 있음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편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최근 구매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천황과 도쿄대>를 읽고 있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현대 세계에서 내 머리로 사색할 수 있는 힘도 우선은 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정평 있는 책들을 읽는 것으로 촉발된다. 그리고,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생각이 어디 있으며 내 것, 네 것을 구분할 만큼 지식의 폭이 좁던가? 읽고 또 읽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치바나 씨는 내가 언젠가는 실천하거나 마음먹고도 생활에 메여 무디어 가는 도중, 벌써부터 知識과의 맞대결에서 멋지게 승리를 거둔 사람이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출판풍토가 부럽고, 이렇게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을 예우하는 사회 분위기도 부럽다. 어떻든, 나도 그동안 부지런히 사 모아 온 각 분야의 책들을 틈틈이 읽어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더욱 많이 터득해야겠다. 여전히 책은, 지식과 지혜의 보고이니까. 2001. 9. 28(금) 完讀 後記”

위의 글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책 뒤에 써놓은 짧은 독후감이다. 벌써 11년 전 이니까,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1년이 더 지난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아직까지 다치바나 다카시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사색하며 책을 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나도 픽션류는 되도록 읽지 않는다. 물론 다치바나 다카시도 어린 시절부터 세계문학을 거의 섭렵 했던바 문학의 힘을 부정하진 않지만, 상상세계보다 현실세계가 더욱 역동적이고 흥미롭다는 것을 문예춘추 입사 후 선배로부터 충고를 듣고 <세계 논픽션 전집> 50권 독파 후에 깨닫고는 인식전환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픽션류는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 영향일까, 나도 10년 넘게 문학류는 읽지 않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세계가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고 사회가 보였다. 정치와 경제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과학의 흐름이 눈에 들어 왔다. 아하, 다치바나 다카시가 논픽션에 빠져 든 이유도 이것이었구나. 해서, 아마 앞으로도 나는 픽션은 읽지 않고 그저 쌓아 둘 것이다. 소설과 시는 노년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 둘 것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을 더욱 단단히 죄고, 지금까지 인간이 분류해 놓은 지식 분야에 하나씩 도전하고 싶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헌의 아트 카페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7
이주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읽기였다. 미술에 관한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특히 편안하고 간결한 해설과 역사를 관통하는 시각은 미술 평론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본문의 글 중에서 특히 <이야기가 있는 미인도> 부분이 재미있었다. 남성 중심 시각으로 형성되어 간 서양 미인의 변천사라 할까, 욕망과 애증이 뒤섞인 남성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사포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아프로디테에게 매혹되지 않을 남성은 없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