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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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한국인으로써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그에 대해 관심이나 가지고 있는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서양의 이론가 내지 대학자, 또는 철학자 등을 빌어 소위 권위를 획득하고자 하지는 않는가? 비록 서양의 학문을 다룰 때는 당연히 서양인 사상가의 권위가 요구된다고 할지라도,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조차도 서양의 권위를 빌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이야말로 한국의 긴 역사가 배출한 많은 인걸 중에서도 가장 걸출한 실학자이자 수원성을 설계하고 기중기를 발명한 과학자이고,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힘이 되고자 평생을 바친 목민관이자 경전을 연구하고 해제한 탁월한 경학자이면서, 자기 수양에 힘쓰는 한 편 시를 쓰면서 감정을 토로한 감성적 시인이었고, 자식들에게는 귀양지에서 편지로 학문에 매진하기를 당부했던 엄격한 아버지이자, 500권이 넘는 다종다양한 책을 남긴 위대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책 속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거의 모든 양상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그 극복에 대해 한 편 이상의 글들이 들어 있어, 어떻게 생각하면 다산 이외의 다른 사람의 글은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주제의 다양함이나 분량의 방대함에서 거개의 인물들을 압도한다. 이토록 거대한 인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커녕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후손으로써의 직무유기임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내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사실은 다산 선생이 세상에 남긴 수많은 저술들 중에서 내가 직접 원문으로 읽고 해독해서 이해할 만큼의 한문해독 실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다산 선생의 인품과 글이 내뿜는 매력에 빠져 천천히 성과물들을 내놓고 있는 국내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서양철학전공자의 논문집보다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이 책 <다산어록청상>은 한양대 국문과 교수인 정민 선생이 다산의 글을 10 항목으로 나누어 읽고 각 글에 대해 짧막한 감상평을 덧붙인 것이다. 각 항목인 경세, 수신, 치학, 독서, 학문 등으로도 알 수 있듯,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다산 자신에 대한 경계이자 사색과 성찰의 끝없는 모색의 결과물이다. 다산 선생에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에 대한 것이다. 유배는 조선역사에서 다산 선생 이전에도 흔한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유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배지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좌절 속에서 아무런 성취도 이루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칠 것인가, 아니면 떠들썩한 저잣거리에서 물러나온 셈치고 사색과 성찰을 거쳐 유배 이후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 호기로 삼을 것인가. 물론 다산 선생은 후자를 택했고, 그의 이름과 관련있는 수많은 업적들은 모두 유배지에서 성취된 것이다. 한 인간이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한계를 딛고 삶을 완성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다산 선생은 그것을 해냈고, 사실, 어떤 것이라도 그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고뇌와 고독이 그를 거쳐 갔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가령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며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죽는다고 하자.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고, 한 상자의 책도 전하는 바가 없다면 삶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런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없다. 세상에 으뜸가는 경박한 남자가 있으니,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이라 하고,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옛날이야기'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맹자는 말했다. '대체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소체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이된다'고. 저가 소인됨을 달게 여기니 난들 장차 어찌하겠는가?"(p.38)


위의 인용문 뿐만 아니라 이 책 곳곳에는 다산 선생의 삶에 대한 사색과 성찰이 마치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다. 속세의 인간들이 가치를 부여하며 가까이 하고자 기를 쓰고 달려드는 권력이나 재물, 명예나 지위 등은 다산 선생이 보기에 소인배들의 아귀다툼일 뿐이다. 가능한 그 아수라에서 빨리 물러 나와 삶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을 향유하고 목적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여전히 신자유주의 산업자본(가)의 가공할 힘이 개인의 목을 죄고 노동의 신성함을 모독하고 있는 이 때, 유배지 초가에서 조그만 책상 앞에 앉아 희미한 전등 아래 책을 펴고 자신의 삶을 추슬리면서 인생사 전반에 걸친 도덕적 사색과 윤리적 성찰을 거듭했을 다산 선생의 삶을 조금이라도 따르려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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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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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없이 잠자거나 바둑 혹은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p.49~50)


청장관 이덕무의 글을 모은 [책에 미친 바보] 중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당신은 왜 책을 읽는가? 책이 아니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는 것은 널려 있지 않은가? 구태여 책을 읽지 않아도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있다면 책 따위는 한갖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왜 읽어야 하는가? 사람마다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이나 독서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테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의미하는 밑바탕에는 결국 자기 수행 또는 자기 계몽이라는 실천적 목적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덕무는 조선의 선비들 중에서도 방대한 독서량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대표적 독서인이다. 그의 삶은 태반이 경서와 제자백가, 고금의 역사와 문물제도, 음운학, 문자학, 역대문집, 농서와 의서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독서로 형성되었다. 그는 책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로 자신의 삶을 도덕적이고 경건하게 유지해 나갔고 인간적 고뇌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최소한도로 소박하게 살았다. 지독한 가난에 수시로 끼니를 거르면서도, 굶주림으로 누이동생을 먼저 보냈음에도, 그럴수록 책에 대한 애착과 독서에 대한 집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혹자는 경제활동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독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이덕무가 살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선비라는 신분이 지니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생산활동과는 거리가 있었고 오직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한정되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선비의 독서행위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방법론을 제시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독서행위와 생산활동을 같은 반열에 두었던 사회적 분위기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덕무는 많은 글에서 독서의 당위성 내지 독서의 취지 또는 독서 방법등을 수시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배가 고플 때도, 추울 때도, 마음이 괴로울 때도, 병에 걸렸을 때도 결코 그만둘 수 없었던 그 자체 생존의 이유였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예절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행동에서 도리에 어긋난 점을 저절로 깨닫게 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의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주리고 한 번 배부른 일에서 위태롭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니 번민하는 마음이 생긴다....."(p.51~2)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고 출판되는 책의 종류나 양이 엄청난 시대에, 그럴수록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읽는다 해도 대중소설 같은 베스트셀러나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소위 자기계발서 등은,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거나 삶의 자세를 설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책읽기 이전에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가 관건인것이다. 위의 글처럼 이덕무는 사서육경은 물론 의서, 농서, 법률서 등 그 시대에 접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분야의 책들을 초인적으로 읽어냈다.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뿐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그 순환원리에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삶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거의 모든 지혜들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관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신은 관심 분야가 몇 개인가? 그 관심 분야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에 의지하는가? 아무리 인터넷, 스마트 시대라고 해도, 속도가 인간의 정신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책상 앞에 앉아 관심 분야의 책을 펴고 차분하게 한 장씩 읽어나가는  것에 비할 생산적 행위가 또 있으랴! 관심 분야가 많을 수록 외부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지킬 수 있다. 관심 분야의 명저들을 읽으며 속세의 잡음들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자기수양에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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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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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종묘? 경복궁? 유학? 나는 선비가 떠오른다. 기나긴 조선 역사에서 선비가 맡았던 역할은 그대로 한국 정신사 내지 한국 지성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우리들에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대철학자가 없음을 한탄하거나 헤겔 같은 사상가가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 전에, 당신이 알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을 떠올려 보라.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매천 황현 등,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을 만큼 조선 선비의 전통은 깊고도 넓다. 이들 선비들이야말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주역이었고, 조선이 500년 넘게 존속할 수 있었던 정신적 기반이었다. 책을 읽고 시를 짓거나 수묵화를 치면서, 선비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세상에 대한 경륜을 직접 실천했다. 시와 서화, 책에 대한 지극하고도 깊은 애정, 독서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려는 치열한 기록 정신, 여기에 현실 정치에 대한 대안의 제시라든가 민중에 대한 애정에 이르기까지, 선비는 말하자면 조선역사에서 정신적, 문화적 중추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이렇게 길고 긴 선비의 연원에서 대표적인 선비들을 찾아 그들이 남긴 자찬묘지명이나 방대한 일기, 생활철학의 실천법, 장서나 벼루 따위의 수집품에 대한 애정, 편지나 시, 산문 등을 통해 시공을 뛰어 넘어 깊고도 큰 울림을 주는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예를 들어 성호 이익의 경우, "나는 천성이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베 한 올 쌀 한 톨 내 손으로 장만하지 않는다. 천지간의 좀벌레 한 마리란 말이 어찌 나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랴? 요행히 선대가 남기신 전답이 있어서 몇 섬 몇 말을 거둔다. 게서 나오는 식량을 절약하여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첫째가는 경륜이자, 양책을 삼는다."(p52)라고 <성호사설>에 써두었는데, 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며 사는 자신에 대한 질책이자 동시에 절식을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실천적 사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선비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극도로 절제하며 외부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무언의 수행 때문일 것이다. 항상 제자들보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단정히 하고 책을 읽던 퇴계 이황이나 엿새를 굶고도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조리던 화담 서경덕, 과거 시험을 부정하며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났던 신광하 등, 조선의 선비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써의  치열한 모습들은, 자본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속도와 경쟁에 내몰려 정작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물론 지금은 선비가 살던 조선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상품을 생산하여 욕망을 자극하며, 고가 상품의 구매력이 곧 계급의 차이로 드러나는 시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그럴수록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들의 삶에서 내 삶의 이정표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특히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만난 제자인 황상에게 해준 학문하는 법에 대한 말을 내 삶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 황상이 자신은 학문을 하기에는 둔하고, 꽉 막혔고, 미욱하다는 말에 대해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으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으로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병통으로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데 있다."(p287~8)  근면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학문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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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말글빛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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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죽는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다 하면 죽어야 한다. 그래야 뒤에 올 존재들이 살아 갈 공간이 확보된다. 지구 역사 46억년에 걸쳐 수 없이 명멸해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큼 독특한 종이 또 있을까? 인간 이외에 죽음을 인식하는 동물도 있지만, 인간만큼 죽음 자체를 양식화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타인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동물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임종시에 남긴 유언들을 접해보는 것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나의 죽음을 사색할 때 유용하지 않을까. 이 책,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 마디, 유언>은 인간 역사상 이름을 남긴 157인(주로 서양사)을 선별하여 그들이 세상을 떠나 던 날 또는 떠나기 며칠, 몇 시간 전에 남겼다고 여겨지는 말들을 모아 해설한 것이다. 직접 임종을 지킨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기록 또는 기억되어 전해지는 유언들은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람은 죽을 때 그동안 살아 왔던 자신의 삶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하던데,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동물로써의 개체성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남긴 유언이 생각보다는 의미가 깊지 않고 별 뜻을 담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는 탄식에 불과한 것도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언은 담고 있는 의미가 매우 깊어서 시공을 넘어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다."는 부처가 말했다는 최후의 발언인데, 성자로 칭송받는 불교의 창시자가 한 말치고는 일견 평범하게 들리지만 기원 전에 살았던 한 비범하고 거의 모든 것을 깨달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요약임에는 틀림없다. 살아 있을 때의 온갖 영화와 명성, 부귀와 지식 등도 죽음 앞에선 한낱 몰가치한 먼지에 불과한 것을. 부처는 아마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 공자가 했다는 유언으로 알려진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자는 깊은 사색과 통찰로 인간사 온갖 현상들을 설명해주지만 아무리 현자라 해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아쉬움과 회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증거일까? 도가의 노자나 장자는 정작 무슨 말을 했을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노닐던 인물들이니 유언도 육체와 정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나의 심장을 가장 뛰게 했던 것은 바로 체 게바라가 처형되기 직전에 했다는 말이다. "당신이 날 죽이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 떨지 말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시오. 당신은 단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뿐이오."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말 답지 않은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할 수 있다니. 어느 누가 자기 육체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내 존재가 몽땅 없어지려는 찰라에도 이토록 흔들림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왔던 삶의 결말이 거대권력 수하 타인에 의한 강제적 박탈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근원적 공포를 느낄텐데, 오히려 사형집행인을 안심시키고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한 위대하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나에게 죽음이 찾아 들었을 때 나는 어떨 것인가? 나는 어떤 최후의 말을 남길 것인가? 아니,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성찰하기 전삶에 대해 먼저 사색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까? 매 순간 후회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선택과 결정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의 방식도, 죽음의 순간도 선택하고 싶다. 그러면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유언을 남기지는 못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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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선집 2
체 게바라 지음, 홍민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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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군더더기 독후감이 필요할까? 한 인간의 정신이 일신의 안락함을 자발적으로 벗어 던지고 대지에 깊이 뿌리 밖고 있는 민중에게 애정을 느껴 시작된 행동의 변화가 세계를 움직이게 되기 전까지의 찬연함을 담고 있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독후감을 나는 무슨 목적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40대 중반을 훨씬 넘긴 나이의 남자가? 나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고, 여전히 행동력 부재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아니, 그래서 더욱 23세의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행했던 남미횡단 모터사이클 여행이 필요한 것인지도. 그가 일찍이 온몸으로 체험했던 과거 남미의 현실과 현재의 남미의 그것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고, 당시나 지금이나 저개발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늘 스산한 남미이지만, 여러가지 분야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에 남미의 젊은이들에게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체 게바라의 이 여행기가 끼친 영향은 실로 거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끄트머리에서 저개발국의 자원을 사들여 가공한 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물질적 풍요로움 뒤에서 여전히 소외받고 있는 도시빈민과 노점상들, 하루가 멀다하고 폐업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형태로 노동을 착취당하거나 임금을 떼이고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보고 듣고 배우고 드디어 각성하게 된 남미의 현실과 현 한국의 그것이 겹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정치적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는 어느 곳이나 똑같이 민중에게만 강요된다는 증명인가? 남미를 착취했던 미국과 한반도를 유린했던 일본은 씻을 수없는 수많은 상처만을 남겼고, 식민의 기억을 떨쳐내고 자강자립하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오만하고 자신들의 피묻은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세계의 패권을 놓으려 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아시아에서의 정치경제군사적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하고 있는 일본의 행태는,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남미를 돌며 보고 깨달았던 강대국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논리에 대한 저항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당장의 취업에 골몰하느라 영어책이나 자기계발서 이외에는 읽지 않고 소위 스펙쌓기에 열중하느라 정작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에 두뇌를 예리하고 지성적으로  만들기는커녕 자본과 물질에만 기울도록 하는 현실에 기만당하지 말고 그럴수록 확고한 세계관과 정치의식,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기본적인 교양을 쌓고 자신과 민족, 국가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만약 내가 20대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삶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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