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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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종묘? 경복궁? 유학? 나는 선비가 떠오른다. 기나긴 조선 역사에서 선비가 맡았던 역할은 그대로 한국 정신사 내지 한국 지성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우리들에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대철학자가 없음을 한탄하거나 헤겔 같은 사상가가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 전에, 당신이 알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을 떠올려 보라.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매천 황현 등,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을 만큼 조선 선비의 전통은 깊고도 넓다. 이들 선비들이야말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주역이었고, 조선이 500년 넘게 존속할 수 있었던 정신적 기반이었다. 책을 읽고 시를 짓거나 수묵화를 치면서, 선비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세상에 대한 경륜을 직접 실천했다. 시와 서화, 책에 대한 지극하고도 깊은 애정, 독서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려는 치열한 기록 정신, 여기에 현실 정치에 대한 대안의 제시라든가 민중에 대한 애정에 이르기까지, 선비는 말하자면 조선역사에서 정신적, 문화적 중추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이렇게 길고 긴 선비의 연원에서 대표적인 선비들을 찾아 그들이 남긴 자찬묘지명이나 방대한 일기, 생활철학의 실천법, 장서나 벼루 따위의 수집품에 대한 애정, 편지나 시, 산문 등을 통해 시공을 뛰어 넘어 깊고도 큰 울림을 주는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예를 들어 성호 이익의 경우, "나는 천성이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베 한 올 쌀 한 톨 내 손으로 장만하지 않는다. 천지간의 좀벌레 한 마리란 말이 어찌 나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랴? 요행히 선대가 남기신 전답이 있어서 몇 섬 몇 말을 거둔다. 게서 나오는 식량을 절약하여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첫째가는 경륜이자, 양책을 삼는다."(p52)라고 <성호사설>에 써두었는데, 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며 사는 자신에 대한 질책이자 동시에 절식을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실천적 사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선비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극도로 절제하며 외부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무언의 수행 때문일 것이다. 항상 제자들보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단정히 하고 책을 읽던 퇴계 이황이나 엿새를 굶고도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조리던 화담 서경덕, 과거 시험을 부정하며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났던 신광하 등, 조선의 선비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써의  치열한 모습들은, 자본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속도와 경쟁에 내몰려 정작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물론 지금은 선비가 살던 조선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상품을 생산하여 욕망을 자극하며, 고가 상품의 구매력이 곧 계급의 차이로 드러나는 시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그럴수록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들의 삶에서 내 삶의 이정표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특히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만난 제자인 황상에게 해준 학문하는 법에 대한 말을 내 삶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 황상이 자신은 학문을 하기에는 둔하고, 꽉 막혔고, 미욱하다는 말에 대해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으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으로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병통으로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데 있다."(p287~8)  근면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학문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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