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말글빛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모든 인간은 죽는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다 하면 죽어야 한다. 그래야 뒤에 올 존재들이 살아 갈 공간이 확보된다. 지구 역사 46억년에 걸쳐 수 없이 명멸해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큼 독특한 종이 또 있을까? 인간 이외에 죽음을 인식하는 동물도 있지만, 인간만큼 죽음 자체를 양식화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타인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동물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임종시에 남긴 유언들을 접해보는 것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나의 죽음을 사색할 때 유용하지 않을까. 이 책,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 마디, 유언>은 인간 역사상 이름을 남긴 157인(주로 서양사)을 선별하여 그들이 세상을 떠나 던 날 또는 떠나기 며칠, 몇 시간 전에 남겼다고 여겨지는 말들을 모아 해설한 것이다. 직접 임종을 지킨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기록 또는 기억되어 전해지는 유언들은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람은 죽을 때 그동안 살아 왔던 자신의 삶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하던데,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동물로써의 개체성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남긴 유언이 생각보다는 의미가 깊지 않고 별 뜻을 담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는 탄식에 불과한 것도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언은 담고 있는 의미가 매우 깊어서 시공을 넘어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다."는 부처가 말했다는 최후의 발언인데, 성자로 칭송받는 불교의 창시자가 한 말치고는 일견 평범하게 들리지만 기원 전에 살았던 한 비범하고 거의 모든 것을 깨달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요약임에는 틀림없다. 살아 있을 때의 온갖 영화와 명성, 부귀와 지식 등도 죽음 앞에선 한낱 몰가치한 먼지에 불과한 것을. 부처는 아마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 공자가 했다는 유언으로 알려진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자는 깊은 사색과 통찰로 인간사 온갖 현상들을 설명해주지만 아무리 현자라 해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아쉬움과 회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증거일까? 도가의 노자나 장자는 정작 무슨 말을 했을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노닐던 인물들이니 유언도 육체와 정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나의 심장을 가장 뛰게 했던 것은 바로 체 게바라가 처형되기 직전에 했다는 말이다. "당신이 날 죽이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 떨지 말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시오. 당신은 단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뿐이오."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말 답지 않은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할 수 있다니. 어느 누가 자기 육체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내 존재가 몽땅 없어지려는 찰라에도 이토록 흔들림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왔던 삶의 결말이 거대권력 수하 타인에 의한 강제적 박탈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근원적 공포를 느낄텐데, 오히려 사형집행인을 안심시키고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한 위대하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나에게 죽음이 찾아 들었을 때 나는 어떨 것인가? 나는 어떤 최후의 말을 남길 것인가? 아니,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성찰하기 전삶에 대해 먼저 사색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까? 매 순간 후회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선택과 결정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의 방식도, 죽음의 순간도 선택하고 싶다. 그러면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유언을 남기지는 못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