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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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민 선생의 저서『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첫 번째 마디의 제목은 「아! 과골삼천」이다. 과골삼천? 한자로는 踝骨三穿이라 쓰는데, 다산 선생의 강진 유배 시절 가장 충실했던 제자 치원(巵園) 황상(黃裳, 1788~1870)에 따르면 다산 선생이 유배 20년간 오로지 공부하고 저술에 힘쓰느라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라고 한 그의 문집 치원유고(巵園遺稿)에 나오는 말이다. 이 네 글자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문득 사고가 정지되었고, 잠시 뒤 과연 학문이란 무엇이며 학문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다. 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 시절에 완성한 방대한 저서들의 권수는 차치하고라도, 그러한 결과물을 가능하게 했던 그야말로 혹독하다고 할 그 도저(到底)한 삶의 태도는 범인(凡人)들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마음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폐족의 일원으로써 가문의 몰락과 피붙이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도하고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 그 참담한 심정을 추스르고 오로지 학문에 힘을 쏟아 조선역사상 전무후무하고 전방위에 걸치는 업적을 남긴 다산 정약용. 어쩌면 유배생활의 무변하고 활기차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사색하고 산책하며 끼니를 위해 써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온통에 학문에만 전념한다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일까? 도대체 학문이 무엇이기에? 단순히 앎에 대한 욕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복사뼈에 구멍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산 선생에게 학문이란 어쩌면 하루를 살도록 해주는 생존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 학문에 전념했으니 내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20년이라는 유배지에서의 무변한 생활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학문이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히려 학문은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저 만치 날아가 버리는 나비처럼,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내외에서 인정하는 순간이 사실은 더욱 전념해야할 때인 것이다. 인간사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학문 또한 끝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학문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학문의 과정 도처에서 생겨나는 의문들과 고개를 드는 오류들,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해결할 수 없을 만큼의 질문들과 늘 곤궁한 답변, 과연 올바르게 추론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할 때, 그 때가 바로 학문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산 선생은 강진에 유배된 1801년 11월부터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1818년 8월까지,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오직 독서와 학문에만 전념함으로써 학문에 임하는 자의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실천했다. 그만 되었다고 자부할 때 그 때가 학문의 참다운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어떨까? 나의 학문 자세를 다산 선생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학문을 끝내 내 손에 쥐고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전념할 수 있을까? 황상이 다산 선생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면서 제기했던 자신의 세 가지 단점, 즉 둔할 둔(鈍)과 막힐 체(滯), 그리고 어근버근할 알(戛)을 들어 과연 자신이 학문을 할 수 있을지 의심했듯이, 나 역시 평범한 두뇌와, 끈질기지 못한 성정과, 정치(精緻)하지 못한 덩범거림으로 늘 중도에 그치고 마는 나약함이 병통인데, 어떻게 학문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황상은 자신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고쳐준 다산 선생의 충고를 60여 년간 실천했다. 그러면 나의 병통도 학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단점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떤 경우에라도 황상처럼 세 번 부지런히(三勤)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비록 지금까지 한 번도 복사뼈에 구멍이 나 본 적은 없지만, 엉덩이에 땀띠가 나서 앉지 못할 정도로 독서하고 공부해 본 적은 있으니, 다산 선생이나 황상만큼은 못 되어도 나름대로 이룰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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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가다! 아마존
미나미 겐코 지음, 손성애 옮김 / 이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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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리뷰를 올린다. 왕복 버스 안에서 단숨에 읽은 책이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는 여자의 몸으로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 여러 부족들과의 소통을 통해 아마존에 대한 문명사회의 몰이해와 일방적인 오해들을 하나씩 수정해나간다. 아마존 인디오들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결국 세계가 소위 문명화되고 기계물질화 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지혜의 온전한 모습일텐데, 우리들은 그 지혜마저도 잘 농축된 비타민을 통해 섭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니까 지혜도 돈주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소비품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주지하다시피 현대문명은 이미 여러가지 병폐를 드러낸지 오래지만 여전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에너지의 고갈과 생명 경시 등을 여전히 반복하면서 지구 자체의 존속에 대한 한계성을 점점 앞당기고 있다. 아마존의 인디오들도 서구의 자본주의의 공세와 선진국민들의 삶을 더욱 향상시키고자 하는 물결에 점점 착취당하면서 생존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삶을 호기심 이상의 진정한 관심과 인류애로 대하지는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최소한 인디오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그들 역시 역사와 나름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지구인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마치 옛날 한국처럼 그들도 깊은 인정을 지니고 있고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써의 노인에 대한 공경심은 물론, 생명을 중시하고 삶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통해 무욕의 실천을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체득한 사람들이다. 자연에 가까운 삶을 비루하고 비문명이라 폄하하는 현대인들에게 정작 머리를 둘 곳은 문명과 물질이 아니라 숲과 바람, 하늘과 땅임을 인디오들은 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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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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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1년에 한 번, 2007년에 한 번, 그리고 올해에 한 번, 모두 세 번 읽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수시로 편지 한 편씩 읽기를 계속해왔으니, 이 책이야말로 앞으로도 내 枕頭의 書로서 늘 내 곁에서 잔잔한 울림으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었던 해마다 개인적으로 큰일들을 겪었고, 물론 그 일들은 다산 선생이 겪었던 가문의 몰락과 廢族으로써의 참담함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살면서 누구든지 겪게 되는 역경과 고난은 그 당시엔 그 어떤 일 보다도 넘어서기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읽었던 유배지에서의 편지들은, 반대파의 모함에 의해 밑바닥까지 추락한 한 인간과 가문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사실을 넘어 그 어둠뿐인 삶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가문의 중흥을 위해 불철주야 살을 깎고 피를 흘리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간 참선비의 개인적 기록 그 이상이다. 그러니까 시대 배경은 조선이지만 그 편지들에서 개진되는 생각들은 보편적인 인간성의 해체이자 그 극복에 대한 해결책이며 결국엔 거대한 학문으로 완성될 사상적 궤적인 셈이다. 특히 두 아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부분이 거의 매 편지마다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체계적인 독서론이 될 정도이다. 예를 들어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實學)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p.41~2)나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p.97)처럼 독서 의 단계부터 독서의 목적, 그리고 체계적인 학문으로써의 독서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인간으로써 올바르게 서기 위한 실천적 지침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물론 이 책 속에는 독서론 이외에도 저술하는 법, 두 아들이 폐족으로써 여하히 몸을 지키고 세류에 굽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는 법이라든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참선비나 군자 또는 성인(聖人)로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등 뿐 아니라, 특히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들은 한 편 한 편이 학문론이라 할 수 만큼 그 깊이가 대단하다. 현재 한국의 학자들 중에 이만큼의 투철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최대치의 정신력을 발휘하여 인간으로써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다산 정약용 선생. 자신을 유배지로 내몰고 가문을 박살낸 반대파에게 느꼈을 분노와 복수심을 오히려 내면으로 돌려 차분히 마음을 달래고 오롯이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여 권세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적 완성을 이룩한 다산 정약용 선생.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p.189) 절대 절망하지 말라. 한국인에게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계시다. 내게도 다산 선생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참 스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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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문선 나랏말쌈 6
정약용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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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많은 저서들에서 개진하고 있는 국가개혁이나 목민관의 도리 등, 기왕의 거대한 사상의 실천적 단편이랄까, 그래서 오히려 다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다산 선생은 記라든지 傳, 또는 說, 論, 原, 疏, 紀事, 雜文 등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글쓰기 형식을 빌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신랄한 一喝에 이르기까지, 비단 조선 시대를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전혀 퇴색하지 않는 매서운 비판정신을 가득 擔持하고 있다. 예를 들어 論의 한 편인「간사한 아전에 대해 논함: 奸吏論」에서 “아전에게 간사한 짓을 못하게 하려면, 조정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 오로지 시부에만 의거하여 뽑지 말고, 행정 사무에 익숙한 사람을 현의 관리에 오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군현이 피폐해지고, 매우 교활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아전이 있을 때마다 이들을 시켜 다스리게 하고 나서 진실로 성적이 있으면 의심 없이 공경(公卿)을 제수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전의 간사함이 금지될 것이다.”(p.236~7)라는 부분만 보더라도, 현재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가 도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체로 저술하는 법은 우선 經籍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어야 하며, 국경을 지키고 성을 쌓는 기구의 제도로 외침을 막아낼 수 있는 분야의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p.70)라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 학문에 관한 생각들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다산 선생이야 방대하고도 꼼꼼한 독서로 이름 높은 분이지만, 요즘 출판되고 있는 책들과 팔리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노라면 다산 선생의 명확한 저술 지침에서 한참 거리가 먼, 그야말로 “먹과 종이를 허비하”(p.71)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論語> 등의 이름난 경전들은 대학교수나 전공학자들이나 읽고 연구하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세상을 경영하거나 백성에게 득이 되는 학문에 필요한 책이 출판되기는커녕,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의 이름값을 노리고 쏟아져 나오는 자서전이나 신변잡기, 노골적인 소재로 지성보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대중문학과 경박한 상상력으로 현실도피에 한몫하는 판타지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명 다산 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보다 분명 책의 종류나 가짓수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지만 정작 인간으로써 어떻게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世流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도덕적 성찰을 담은 책들은 더 이상 쓰여지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으며 누구의 주목도 끌지 않는다. 결국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은 고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다산 선생이 제시하는 저술 지침이야말로 책을 선택하는 지침으로도 손색없다. 분명 <논어>나 <大學> 등의 경전들은 오래 전의 책이지만, 인간으로써의 기본적인 도리는 경전들 속에 다 들어 있지 않은가? 또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는 다산 선생의 <經世遺表>에,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실천적인 방법들은 <牧民心書>에 담겨 있지 않은가? 나 역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산 선생처럼 시대를 경영하고 백성들을 위하는 글을 쓰고 싶다.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이외에도 다산 선생은 우리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효자나 충신, 풍수 등의 많은 관습이나 제도들과 같은 사회적 약속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필력으로 전혀 새로운 일깨움을 준다. 그 논리는 정연하고 그 예는 적확하여 누구도 반박하거나 대안을 내 놓을 수 없다. 이처럼 다산 선생의 글은 어떤 것이든 독자에게 기존의 확고하고 당연시되는 思考를 두드려 깨워 진정으로 아픈 鞭撻을 준다. 이 책을 꼼꼼히 다 읽고 나면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사의 전반적인 모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으려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진정한 고전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에게 해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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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 - Think Hard!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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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부터 추석 선물로 받은 황 농문의『몰입』. 나는 이 책을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추석연휴 동안 이 책 읽기에 ‘몰입’하여 핵심을 파악했고 그 실천법과 응용에 이르는 思考의 궤적을 내 뇌 속 깊숙이 새겨 두었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주제를 하나 정해 꾸준히 생각을 집중함으로써 종국엔 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평이하게 서술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몰입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 시작이 어렵고 설사 시작했다 하더라도 중간에 그만 두기가 쉽다는 점과, 과연 생각을 집중하면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해결이 정말로 가능할까 라는 의심 따위를 일체 배제하고 몰입 자체의 무한한 가능성에 커다란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여타 자기개발서와 다른 점이다. 게다가 몰입이 절정에 이르러 결국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지적 희열과 행복감은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문제를 풀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따를 수 없는 극치의 희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몰입은 결국 直觀을 위한 준비 단계와 다를 바 없다. 직관이란 무엇인가? 수학이나 물리학적 지식 따위의 기존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던 현상에 대한 해답이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떠오르는 현상, 그러니까 자나 깨나 몰입을 실천하는 도중에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 일종의 섬광이랄까, 이것이 직관이다. 그러나 사실 직관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여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의 물리학적 지식과 수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상상력이야말로 몰입 이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나는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들도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화가의 직관적 이해와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림들이 나오기 까지 화가의 뇌 속에서 진행되었을 수만 시간 동안의 몰입과 유레카의 순간들이 더해져 우리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걸출한 작품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상상력이 없었다면 단순한 색과 형태에 불과했으리라. 또 베토벤의 작품들 중 걸작으로 통하는 음악들도 그가 하일리겐 슈타트를 산책하며 머리속으로 몰입하고 또 몰입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산책을 하는 어느 순간 선율이 떠올랐을 것이고, 그 선율을 악보에 옮긴 뒤에도 수없는 퇴고를 거쳐 어느 음표 하나 버릴 것 없는 걸작이 탄생했을 것이다. 사실 소위 천재들로 분류되는 소수의 사람들은 몰입과 직관, 상상력 등을 통해 언제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해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평범한 사람도 몰입을 통해 지극히 행복한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현대인들 대부분이 이미 만들어진 외부의 자극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선 관심분야가 적고, 설사 관심이 있다 해도 표면적이고 껍데기뿐인 단편 지식만을 인터넷 등을 통해 재빨리 습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현대인의 경박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가? 우선 저자가 제시하는 몰입의 5단계를 의심 없이 실천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할 듯싶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讀書力이다.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천재성이 다만 몰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우선 폭넓은 관심과 그 관심을 풀어 줄 기본으로서의 독서가 오히려 나중에 몰입에 들어갔을 때 더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서너 개 이상의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에 장기간에 걸친 몰입이 결합되었을 때의 그 시너지 효과는, 별다른 지식 없이 그저 몰입만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것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백지장에서 무엇이 나오랴.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가는 내 뇌의 시냅스에 새겨진 지식의 가짓수를 신뢰한다. 우선 다양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아라. 몰입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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