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2001년에 한 번, 2007년에 한 번, 그리고 올해에 한 번, 모두 세 번 읽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수시로 편지 한 편씩 읽기를 계속해왔으니, 이 책이야말로 앞으로도 내 枕頭의 書로서 늘 내 곁에서 잔잔한 울림으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었던 해마다 개인적으로 큰일들을 겪었고, 물론 그 일들은 다산 선생이 겪었던 가문의 몰락과 廢族으로써의 참담함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살면서 누구든지 겪게 되는 역경과 고난은 그 당시엔 그 어떤 일 보다도 넘어서기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읽었던 유배지에서의 편지들은, 반대파의 모함에 의해 밑바닥까지 추락한 한 인간과 가문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사실을 넘어 그 어둠뿐인 삶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가문의 중흥을 위해 불철주야 살을 깎고 피를 흘리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간 참선비의 개인적 기록 그 이상이다. 그러니까 시대 배경은 조선이지만 그 편지들에서 개진되는 생각들은 보편적인 인간성의 해체이자 그 극복에 대한 해결책이며 결국엔 거대한 학문으로 완성될 사상적 궤적인 셈이다. 특히 두 아들에게 독서를 강조하는 부분이 거의 매 편지마다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체계적인 독서론이 될 정도이다. 예를 들어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實學)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p.41~2)나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p.97)처럼 독서 의 단계부터 독서의 목적, 그리고 체계적인 학문으로써의 독서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 인간으로써 올바르게 서기 위한 실천적 지침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물론 이 책 속에는 독서론 이외에도 저술하는 법, 두 아들이 폐족으로써 여하히 몸을 지키고 세류에 굽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는 법이라든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참선비나 군자 또는 성인(聖人)로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등 뿐 아니라, 특히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들은 한 편 한 편이 학문론이라 할 수 만큼 그 깊이가 대단하다. 현재 한국의 학자들 중에 이만큼의 투철한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최대치의 정신력을 발휘하여 인간으로써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다산 정약용 선생. 자신을 유배지로 내몰고 가문을 박살낸 반대파에게 느꼈을 분노와 복수심을 오히려 내면으로 돌려 차분히 마음을 달래고 오롯이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여 권세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적 완성을 이룩한 다산 정약용 선생.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p.189) 절대 절망하지 말라. 한국인에게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계시다. 내게도 다산 선생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참 스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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