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문선 나랏말쌈 6
정약용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많은 저서들에서 개진하고 있는 국가개혁이나 목민관의 도리 등, 기왕의 거대한 사상의 실천적 단편이랄까, 그래서 오히려 다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다산 선생은 記라든지 傳, 또는 說, 論, 原, 疏, 紀事, 雜文 등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글쓰기 형식을 빌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신랄한 一喝에 이르기까지, 비단 조선 시대를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전혀 퇴색하지 않는 매서운 비판정신을 가득 擔持하고 있다. 예를 들어 論의 한 편인「간사한 아전에 대해 논함: 奸吏論」에서 “아전에게 간사한 짓을 못하게 하려면, 조정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 오로지 시부에만 의거하여 뽑지 말고, 행정 사무에 익숙한 사람을 현의 관리에 오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군현이 피폐해지고, 매우 교활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아전이 있을 때마다 이들을 시켜 다스리게 하고 나서 진실로 성적이 있으면 의심 없이 공경(公卿)을 제수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전의 간사함이 금지될 것이다.”(p.236~7)라는 부분만 보더라도, 현재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가 도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체로 저술하는 법은 우선 經籍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어야 하며, 국경을 지키고 성을 쌓는 기구의 제도로 외침을 막아낼 수 있는 분야의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p.70)라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 학문에 관한 생각들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다산 선생이야 방대하고도 꼼꼼한 독서로 이름 높은 분이지만, 요즘 출판되고 있는 책들과 팔리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노라면 다산 선생의 명확한 저술 지침에서 한참 거리가 먼, 그야말로 “먹과 종이를 허비하”(p.71)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論語> 등의 이름난 경전들은 대학교수나 전공학자들이나 읽고 연구하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세상을 경영하거나 백성에게 득이 되는 학문에 필요한 책이 출판되기는커녕,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의 이름값을 노리고 쏟아져 나오는 자서전이나 신변잡기, 노골적인 소재로 지성보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대중문학과 경박한 상상력으로 현실도피에 한몫하는 판타지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명 다산 선생이 살았던 조선시대보다 분명 책의 종류나 가짓수에 대단한 발전이 있었지만 정작 인간으로써 어떻게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世流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도덕적 성찰을 담은 책들은 더 이상 쓰여지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으며 누구의 주목도 끌지 않는다. 결국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은 고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다산 선생이 제시하는 저술 지침이야말로 책을 선택하는 지침으로도 손색없다. 분명 <논어>나 <大學> 등의 경전들은 오래 전의 책이지만, 인간으로써의 기본적인 도리는 경전들 속에 다 들어 있지 않은가? 또 세상을 다스리는 지혜는 다산 선생의 <經世遺表>에,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실천적인 방법들은 <牧民心書>에 담겨 있지 않은가? 나 역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산 선생처럼 시대를 경영하고 백성들을 위하는 글을 쓰고 싶다. 언제쯤이나 가능할지. 이외에도 다산 선생은 우리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효자나 충신, 풍수 등의 많은 관습이나 제도들과 같은 사회적 약속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필력으로 전혀 새로운 일깨움을 준다. 그 논리는 정연하고 그 예는 적확하여 누구도 반박하거나 대안을 내 놓을 수 없다. 이처럼 다산 선생의 글은 어떤 것이든 독자에게 기존의 확고하고 당연시되는 思考를 두드려 깨워 진정으로 아픈 鞭撻을 준다. 이 책을 꼼꼼히 다 읽고 나면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사의 전반적인 모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으려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진정한 고전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에게 해답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