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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최호근 지음 / 책세상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부산교육대 연구교수인 최호근의 <제노사이드: 학살과 은폐의 역사>를 읽고 난 이후다. 2005년에 한번 통독했었고 2010년에 대학 강의용으로 학생들과 또 한 번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genocide는 본문에 소개된 Raphael Lemkin이라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 법학자(그의 가족도 나치 강제수용소의 희생자들이다)의 정의에 따라 "한 국민이나 한 민족 집단에 대한 철저한 파괴"라 할 수 있는데, 유고연방이나 르완다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와 같은 맥락이다. 표지사진은 경상북도 경산 소재 폐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이른바 보도연맹원 학살사건(1950년 7~8월)의 희생자 유골들이다. 인간의 과거 역사를 떠올려 보면, 인간이 같은 인간을 학살하고 종교나 이념 따위로 합리화하려 한 경우가 무수히 많다. 십자군 전쟁이나 성바톨로뮤 학살부터 스페인 정복자의 아즈텍과 잉카 문명 파괴, 북미의 영국인들에 의한 토착 인디언 학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나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또는 일본군에 의한 난징학살,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이르기까지, 인간만큼 동종을 그토록 잔혹하게 그것도 집단으로 철저히 파괴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특히 20세기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간전쟁 등, 수 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목숨을 빼앗겼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집단 학살의 희생자 수가 무려 1억 7500만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인간의 동종에 대한 파괴행위가 일종의 유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러니까 누구든 제노사이드를 저지를 수 있고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48년 4월 3일에 시작된 제주도민의 봉기 이후 군경과 서북청년회에 의해 희생된 제주도민만 해도 3만 명이 넘고, 보도연맹 학살의 희생자도 역시 3만 명에서 10만 명 사이인 것으로 파악된다. 제노사이드를 벌이는 주체는 역시 국가다. 권력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벌이는 공포정치의 일종인 셈이다. 지금 새삼스럽게 제노사이드를 얘기하는 것은 회고가 아니다. 현재도 제노사이드는 세계 각지에서 규모의 대소를 떠나 계속 벌어지고 있는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명분만은 그럴듯해서 종교나 인종, 민족, 이념 등 갖가지 핑계로 피 냄새를 지우려 하지만 희생자들은 알고 있다. 하등하다고 판단한 인종의 절멸을 당연시 했던 신대륙의 발견과 이어진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표면적인 좌우 이념의 시대가 끝난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정신적인 미성숙과 파괴의 열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늘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악이 깃들어 있다. 그 악은 오만과 편견, 또는 상황논리에 따라 수시로 통제를 벗어났고 또 벗어나려 한다. 누구든 예외가 아니다. 제노사이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성을 경계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