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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인 저자가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세계가 직면한 기아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을 너무도 차분하게 들려주어 오히려 더욱 비극적이다. 식량을 확보할 자본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세계의 곡물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소위 선진국의 큰 손들, 생산과 분배에서 배제되어 죽어가는 농민들. 분쟁과 가난, 무능한 정부, 그리고 소수의 탐욕으로 인해 하루에 10만 명,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는 현실. 한국은 어떤가? 예전 대학 강의 준비의 일환으로 Wikipedia에서 Neocolonialism 항목을 찾아보았다가 South Korea's land acquisitions라는 소주제 아래 기사를 읽고는 착잡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사에 따르면 남한의 지방 자치단체와 대기업들이 저개발 국가로부터 수백만 헥타르에 이르는 농업용지를 사들이고 있으며, 이것이 곧 농업제국주의 또는 신식민주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 Daewoo Logistics가 벨기에의 절반에 이르는 1300만 헥타르의 농업 용지를 마다가스카르로부터 확보했고, 현대중공업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농업 용지 10000헥타르를, 전라도는 필리핀 중앙부의 농업 용지 95000헥타르를 확보했다는 것. 남한의 장기적인 식량 확보와 바이오 에너지 개발을 위한 대비라지만, 일본제국주의의 뼈아픈 경험을 잊을 수 없는 우리가 어느새 저개발국가에 대한 경제적 침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지역의 경제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굶주림을 더욱 악화시키고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할 뿐이다. 식량과 에너지의 확보가 미래 생존의 중추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것이 타국과 타인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루어지는 한, 세계는 이미 신식민지 쟁탈전에서 끝없는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이제 남한도 식민지를 거느리는 국가가 되었다. 자랑스러운가?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식량의 확보는 어떻게든 자국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기술 개발과 신품종 개량, 농업인의 육성 등에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이기주의 및 국제적 자본 흐름의 투명성 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굶주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이상 양심에 호소하는 이슈 거리로 이용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