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 일본인이 파헤친 일본의 진짜 얼굴
스기타 사토시 지음, 양영철 옮김 / 말글빛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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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스기타 사토시라는 일본인 저자의 신랄한 조국 비판에, 해방 이후 일본을 모델로 달려온 한국의 모습이 겹쳐진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교육, 남녀차별, 노동, 환경 정책 등을 하나씩 집어가며 의외의 후진성을 밝혀낸다. 한국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선진국 일본"의 참 모습에 그동안 가져 왔던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난데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더 이상 일본은 한국이 모델로 삼아 따라 잡고 싶은 국가가 아니다. 과거는 반성하지 않고 경제력을 무기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힘만을 획득하려는 일본의 현 대외정책은, 독도영유권 문제와 동해, 일본해 표기 병행 문제를 보더라도 결코 도덕적으로 선진국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다. 소위 선진국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지구 환경을 망치고 있는 주범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도덕성 결함은 감추고 타국의 단점만을 강조하는 그들의 행태는 제국주의자들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제 돌아 볼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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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인, 일본의 힘 - 선우정기자의 일본 리포트
선우정 지음 / 루비박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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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 선우정의 <일본, 일본인, 일본의 힘>을 읽었다. 먼저 읽었던 <일본 재발견>과 마찬가지로,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고 한국만의 장점을 살려 일본을 넘어서자는 논지로 글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불황일 때 일본 기업들의 대처 방법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다. 결국 경제를 살리고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는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개인들이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그에 따른 소득의 공정한 분배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확실히 일본의 기업과 경영문화는 이런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저자는 위기 때마다 강해지는 일본이라 말하며 정작 한국 기술의 일본 종속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국 기업에 원천기술이 없다는 의견에 동감한다. 게다가 소재나 부품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한국의 대기업은 일본이 없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는 냉혹한 국제 경쟁 속에서 너무 안일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을 넘어서고 싶다면 기술 종속부터 극복해야 한다. 이 책을 포함해 일본에 관한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인들의 일본 콤플렉스는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 강박증에 가깝다.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역사적 상처 외에도 도무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행태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증 양가성의 깊은 뿌리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일본은 한국이 따라잡아야만 하는 일종의 지상목표였고, 해방 후부터 6.25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숨 가쁘게 일본을 추월하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진정 일본 극복을 이룩했는가? 우리의 정신 속에서 일본이라는 대상을 똑바로 인식하고는 있는 것인가? 도대체 과거 자신들의 행적을 반성은커녕 주기적으로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인들과 우익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정교한 대항논리는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물론 길고도 지루한 싸움 속에서 현대와 삼성이 도요타와 소니를 추월한 것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원천기술이 없는 상태에서는 단순 제조와 기획의 차이로 인해 역전은 순식간이다. 이제는 정말 일본을 극복하고 싶다. 다시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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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네이처
마이클 폴란 지음, 이순우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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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읽었던 <욕망의 식물학: 원제는 The Botany of Desire, 2001> 이후 이번에 집중해서 읽은 Michael Pollan의 <세컨 네이쳐>는 저자가 정원을 가꾸면서 얻은 지혜들을 기록한 것인데, 사계절로 구분하여 정원으로 축소된 자연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며 적어 내려간 일종의 사색일기다. 잡초에 대한 생각이나, 저자의 정원을 침범하여 수확물을 먹어치우는 동물들 퇴치방법, 장미에 읽힌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손으로 교배되어 온 수많은 식물들에 대한 독특한 생각 등,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경험들이 행간마다 넘쳐나서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위에서 정원이 자연의 축소판이라 했는데, 사실 자연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며 갖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이던가. 대자연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계절의 순환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이 정원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조그만 정원 하나도 인간의 욕망에 따라주지 않는데 하물며 저 거대한 자연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저자는 인간의 의지가 자연의 축소판인 정원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그 작은 공간에서 얻은 지혜를 통해 거대 자연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서양인다운 탐구심과 분석력으로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계속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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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 - 역사를 바꾼 고대 농법의 수수께끼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30
요시다 타로 지음, 김석기 옮김 / 들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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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타로의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를 다 읽고 나서 든 첫 번째 생각. 농부야말로 인간의 모든 행위를 뒷받침 해주는 주체라는 것.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결국 농부의 생산력에 달려 있다는 것. 자연과 생태계 파괴가 극에 달한 오늘날, 서양의 획일적인 농법으로는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땅의 힘이 고대부터 각지에서 현지 농민들에 의해 시행착오를 거친 농법으로 서서히 비옥해지는 놀라운 현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고대농법의 탁월한 적응력과 농부들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Milpa 농법, 고대 아스텍 제국의 Chinampas 농법, 온두라스의 Quetzungual 농법, 볼리비아의 Camellones 농법, 브라질 아마존의 Terra Preta, 잉카제국의 계단밭 등, 수많은 인구를 부양할 정도의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땅심이나 비옥도 등에서도 탁월했던 고대의 농법들은, 서양의 화학비료나 농약이 도저히 해내지 못하는 자연친화적이고 절대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인간 지혜의 보고였다. 현재 중남미 각지에서는 위에 열거한 고대농법들을 되살려 서양식 대규모 단작농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결국 핵심은 자연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관점에서 자연이 주는 선물에 보답하는 것이다. 자연을 착취하고 파헤치기만 하는 서양식 농법은 결국 지구에 황폐만을 가져올 뿐이다. 한국에서도 자연 생태농법이나 유기농법 등, 많은 전통농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약 덩어리 값싼 수입 농산물로 인해 한국의 농업은 존폐위기에 몰려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땅이 힘을 잃으면 인간도 살 수 없다. 우리도 우리 고유 고대의 지혜를 살려야 할 때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우리 고유의 고대농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안타깝고도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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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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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중해서 읽고 있는 자연과 생태 관련서 중 한 권인 야마오 산세이의 <어제를 향해 걷다>. 이 책은 저자의 철저한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이 구절마다 배어있는 진솔한 기록이다. 농부이자 시인, 철학자인 저자는 대학 졸업장 보다 인간의 원초적인 삶을 찾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시마의 폐촌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2002년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식량은 자급자족, 전기소비는 최소한, 절대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자연이 주는 것에 감사하며 항상 절제하는 삶. 야마오 산세이가 실제로 행했던 삶의 모습이다. 노동의 참 목적은 곧 먹고 사는 것. 자신과 가족이 함께 먹을 것만 있으면 그 이상의 잉여노동도, 잉여자본도 필요하지 않다는 철칙. 진작부터 지향했어야 했던 자본과 과학기술 이전의 본래적 무욕의 삶에 대한 실천적 지침. 저자는 특히 원자력과 핵무기에 대한 증오 내지 그것으로 촉발된 강대국의 패권주의나 지구에 대한 파괴를 진심으로 염려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간 이익을 넘어 협동과 나눔을 통해 살아가야 함을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 한다. 국가도, 국경도, 인종도, 언어도, 종교도, 문화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내고 스스로 그것에 얽매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우열이 어디 있고, 그것의 논리적 근거는 또 무엇인가? 정작 요구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아닌가? 야마오 산세이의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내가 병사한 뒤 화장하고 남은 아내의 두개골 뼈를 먹고 쓴 "아내의 뼈를 먹다"라는 글에서 절정에 달한다. 인생을 함께 해준 아내에 대한 지극한 감정의 표현이면서 평범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의 행위다.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지극한 정성을 쏟는 사람인가? 나는 과연 물질을 버릴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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