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중고서점에 들러 <그리스 미술>과 <로마 미술> 2권의 책을 구입했다. 왜 자꾸 책을 사는 걸까? 이미 가지고 있는 책도 많고 아직 읽지 못한 책도 산더미 같은데. 아무리 책 욕심을 줄이려 해도, 이미 어떤 주제의 책을 1~2권 읽은 상태라 해도, 우선은 사두는 습관 때문일까?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당위성? 이유가 무엇이든, 책이란 것도 일단 수납의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공간과의 사투가 벌어진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조그만 아파트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는 책책책... 그나마 다른 물건과는 달리 지성에 도움을 주고 삶과 죽음도 극복할 수 있도록 영감도 주며 현명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만으로는 책이 쌓여가는 현실에 변명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내가 죽으면 이 책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중고서점에서 가끔 목격하곤 하는 서글픈 사건이 있는데, 사망한 사람의 서재에서 쏟아져 나온 유품으로써의 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경우다. 아마 유족들이 고인을 빨리 잊고 싶어서, 또는 고인의 생전 그 책들 때문에 금전적, 공간적 문제로 인해 골치 아팠던 기억으로 서둘러 처분했음이 명백한데, 고인의 손때가 묻고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여백에 적혀 있는 독서중의 단상들을 보노라면, 내 책들의 말년이 보이는 듯하다. 해서 나는 그렇게 한꺼번에 매물로 나온 책들은 절대 사지 않는다. 그 책들 주인의 꿈과 희망이 그의 죽음과 함께 한낱 종이뭉치로 전락했다는 그 물질성의 잔인함 앞에서, 나는 정신이 아득해 진다. 나는 한 번도 책을 물건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돈주고 구매한다는 면에서는 책도 틀림없이 상품이지만,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 과연 8000원(내가 이 책을 구매했을 당시의 가격) 가치밖에 없는 인쇄 뭉치에 불과할까? 그 책속에 담겨 있는 선생의 삶과 지성과 애민사상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내가 한 권 한 권의 책에 부여하는 '의미'는 단순한 물질성을 뛰어 넘어 신성성을 가진 神格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에게 다짐을 받았다. 아버지의 책들을 잘 보관하고 최소한 3대까지는 대물림하라고. 아들 녀석이 그러마고 약속해 주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좋아 할까? 집도 좁은데 책이 무슨 소용이냐고 아들과 갈등을 겪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긴 내가 지금까지 내 책들 한 권 한 권에 부여했던 정신적 가치들을 나 아닌 그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부지런히 읽고 내 뇌에 흔적을 남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야 내가 죽을 때 최소한 <장자>의 한 구절 정도는 외우며 삶을 마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