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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에 읽었던 또 한 권의 책에 관한 책은 미국 듀크 대학교의 토목공학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서재에 꽂힌 책>이다. 제목 그대로 책꽂이와 책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누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책을 사랑하고 서재를 꾸미는데 공을 들이는 사람이라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별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읽는 도중 책의 여백에 내 생각도 적어나가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책등에 제목과 저자명, 출판사명 등을 달고서 그 부분이 바깥을 보도록 하는 데 1200년이 걸렸고, 책꽂이가 벽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확보하는데 1000년이 걸렸다는 것. 인간은 익숙해진 것을 여간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삶과 직결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물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은 책이야 말해 무엇 하리! 그럼에도 안락함을 깨고 불편을 개선하면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소수도 있게 마련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다. 인간이 책을 발명하고 그 책을 담기 위한 궁리를 거듭해온 역사 자체가 정신적 발달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 책 말미에 저자가 책 정리법을 실어 놓았는데 이 것 또한 유용하게 참고할 만하다. 수고스럽지만 그대로 옮겨 보면 1. 저자의 성 순서에 따라 2. 제목 순서에 따라 3. 주제에 따라 4. 크기 순서에 따라 5. 수평으로 눕혀서 6. 색깔에 따라 7. 하드백과 페이퍼백을 별도로 8. 출판사에 따라 9.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구분 10. 생긴 순서에 따라 11. 출판된 날짜순으로 12. 페이지 수에 따라 13. 듀이의 십진법에 따라 14. 의회 도서관 시스템에 따라 15.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에 따라 16. 가격에 따라 17. 새 책과 헌 책을 구분하여 18. 즐겨 읽는 정도에 따라 19. 감정적 가치에 따라 20. 출처에 따라 21. 훨씬 더 신비한 배열 기준에 따라 22. 찬장 서재에 대하여 23. 책가위에 대하여 24. 두 정신의 결혼에 대하여 등 모두 24가지에 이른다. 나는 주로 3번 주제에 따라 책을 구분하는 편인데(그래서 분류해 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대략 20여개 쯤 된다. 그러니까 내 서재와 거실에는 그 20여개 주제에 해당하는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나 저자의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두기도 한다(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삼중당문고판부터 동서문화사판. 그리고 열린책들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본들이 한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어떤 방법을 선호하든 자신만의 배열법은 가지고 있으리라. 이렇게 책들을 배열하고 다시 꽂는 행동도 나에게는 책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참고로 24번은 일전에 소개한 앤 패디먼이 결혼 후에 자신의 책과 남편의 책을 섞는 과정에서 부딪쳤던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다. 관련 부분을 읽어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웃음이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