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책과의 만남에도 필연성이 있다는 인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제 낙성대 소재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혁명의 시간>이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품절로 떠서 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제, 그것도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려볼까 하고 전철에서 내려 중고서점에 갔던 것인데, 그 곳에 떡 하니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전율이랄까, 어떤 책과의 만남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무엇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책에 대해 늘 생각했고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찾기도 했지만, 만약 어제 그 시간에 그 중고서점에 들리지 않았다면 이 책이 지금 내 손에 들려있을 수 있을까? 물론 시내 대형서점에 가면 한 권쯤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할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돈과 시간이 있다고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마 이전 책 주인이 급전이 필요해 중고서점에 이 책을 팔았을 수도 있고, 중고서점 주인장이 평소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어 특수한 경로를 통해 확보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이다. 행운인지 천부적인 안목인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이런 식으로 중고서점에서 遭遇한 책들이 꽤 된다. 예를 들어 <전격전의 전설>이나 <콜디스트 윈터>, <조약으로 보는 한국 근대사> 등이 그것이다. 내가 어떤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시내 대형서점에서 눈으로 제목을 익히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 책에 대한 생각을 늘 하면서 생활한다. 그 자리에서 당장 정가를 주고 그 책을 살 수도 있지만, 우선은 유보하고 기다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젠가 느낌이 올 때가 있다. 확신은 못하지만 기다리던 책이 중고서점에 들어 왔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위에 든 <전격전의 전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책은 어느 휴일 집에서 묵은 <플래툰>지를 뒤적이다 서평란에서 보고는 기억해둔 것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때 유행했던 <시크릿>이란 책에 나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랄까, 아무튼 한 권의 책과 만나는 일에도 분명 운명같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번 중고서점에서는 어떤 책과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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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미 많은 독서가들이 실천하고 있었던 방법을 저자 나름의 경험과 결합한 것이다. 서머셋 모옴이나 조지 기싱 등의 작가들부터 <How to Read a Book>의 저자 모티머 제롬 아들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여러 권읽어 나가는 방법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실천을 하기가 어려울 따름이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가능한 독서법인 셈이다. 특히 모티머 제롬 아들러가 제시하는 syntopical 독서법이 바로

나루케 마코토가 주장하는 초병렬 독서법의 효시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꽤 오래 전부터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방법을 실천해왔다. 아마 대학시절(1985~1988)부터일 것으로 기억되는데, 오전엔 문학서를, 오후엔 전공서적을, 저녁엔 사회과학서를, 밤엔 철학서를, 새벽엔 예술관련서 하는 식으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들을 넘나들며 걸신들린 듯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 번은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건축 관련서를 읽고 있는데(참고로 내 전공은 영어영문학이다) 한 급우가 놀리듯이 "전공이나 신경쓰지 이해도 못할 건축은 무슨..." 이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는 내 독서법에 확신이 없었던 때라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닥치는대로 읽었던 당시의 경험이 내 삶에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물론 한 분야의 책들만 읽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은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주요 독서 분야가 문학이고 다른 분야의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면 그만큼 삶과 경험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총체적 인식은커녕, 정신적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처음엔 힘들어도 차츰 익숙해지면  어떤 분야의 책일지라도 읽어나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관심 분야가 넓을수록  삶도 그만큼 넓어진다. 실천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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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영화와 책의 만남. 라디오 방송작가 답게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편안한 서술 방식은 영화와 책의 연결고리로써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은 영화를 볼 때,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책을 읽을 때 되새김질할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예를 들어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모든 살인과 음모의 중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자리잡고 있는데, 저자는 이 두 매체를 연결하여 금기시되는 지식에 대한 갈망이 기존 사회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음을, 그리하여 그 지식이 대중들에게 퍼져 나가기 전에 그 지식을 먼저 접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고 자신도 죽고 마는 늙은 수도사의 행동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되묻는다. 요약하면 이 책은 영화에 등장하는 책이라는 소품 이상의 매개체에 관심을 두어 써 내려간 저자 자신의 독서일기라 해도 무방하다. 행복한 책읽기의 한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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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나서 맨 처음 떠오른 생각. 부러움. 한 때 우리에게도 책마을이 있었다. 아니, 책마을이 아니라 책거리가 있었다. 청계천이나 서울역 부근, 독립문 근처에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 놓고 팔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몇몇 중고서점들만이 근근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주에 위치한 출판단지와는 또 다른 유럽의 책마을. 스위스와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독일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저자가 발견한 책마을의 본질은? 문화공동체의 사랑방. 책을 쓰는 사람과 출판하는 사람, 그리고 읽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소통의 매개체. 책을 보존하고 책에서 휴식을 구하며 책을 통해 되물림되는 전통문화와 현대와의 조화로운 결합. 진정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대형서점에서는 책도 하나의 상품으로써만 기능할 뿐, 팔리지 않을 책은 배제되고 잊혀지는 상업성의 논리에 문화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유럽처럼 마을 단위로 책에 부여하는 애정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책에 부여했던 그 절대성 만큼은 계승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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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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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동서양 인문고전 독서를 통한 세계관의 전환에 대해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또 하나의 인문서다. 사실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은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독서행위 자체의 미덕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경제적인 윤택함으로 끌어 올리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바로 삶의 고비마다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거시적 시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 살면서 경제적 고난, 강요된 죽음의 위협, 정치적 불안정, 전쟁과 혁명, 자연재해로 인한 삶의 강제적 박탈 따위의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리게 마련이다. 이럴 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중심을 세워 무난히 고난 극복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인문고전들이다. 인문고전 속에는 그동안 인간이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고대나 현대나 인간의 본질은 변한 것이 없고,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당대가 곧 현대이었듯, 그렇게 축적된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느 시대, 어떤 性情의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인문고전의 탁월성은, 가령, 인간의 행태에 실망했다면, La Bruyere의 <人間性格論, 1688>에서 이미 관찰된 인간의 면면들에 놀랄 것이고, 현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이라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牧民心書, 1818>에 제시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일들에서 우선 자신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고전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권의 인문고전을 쓰기 위해 저자가 행했을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에 소요된 시간을 건너뛰어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적어도 저자의 노력에 準하는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악전고투가 요구된다. 처음엔 힘들어도 꾸준히 한 권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의 빛이 보일 것이다. 전체를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것이다. 이 지성이 제시하는 인문고전 읽기가 전 국민의 독서술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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