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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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서 한 가지 일만이 위로는 족히 성현을 뒤쫓아 나란히 할 수 있고, 아래로는 길이 뭇 백성을 일깨워줄 수가 있다. 그윽이 귀신의 정상을 환희 알고, 환하게 왕도와 패도의 계책을 이끈다. 날짐승과 벌레 따위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인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대체(大體)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되어 금수에 가깝게 된다.” 생각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는 데 있어, 몸뚱이가 채 식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없어지는 것은 짐승일 뿐이다. 짐승 되기를 바랄 것인가?「윤혜관에게 주는 말[爲尹惠冠贈言]」(p.122)

 

한양대 정민 교수가 정약용의 글들을 읽고 감상을 덧붙여 펴낸 『茶山語錄淸賞』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읽은 다산의 글들을 警世, 修身, 處事, 治學, 讀書, 文藝, 學問, 居家, 治産, 經濟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싣고 있어 관심 가는 주제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대체로 짧은 글들이지만 그 울림의 진폭은 다산이 살던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의 정신에 鞭撻을 준다. 다산이 끝없이 읽고 사색하고 경험했던 삶의 면면들은,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고 서성이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준엄한 一喝이 되고 있다. 참된 스승이 부재한 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의 태도가 바로 스승이라는 칭호에 걸 맞는 튼튼한 뿌리임을 다시 깨닫는다. 소크라테스가 부럽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산 선생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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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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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노화의 길을 걷는다. 노화란 결국 삶의 여정에서 죽음으로 가는 필수 단계인 셈이다. 워싱턴 대학 영문과 교수인 David Shields가 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원제는 The thing about life is that one day you'll be dead』는 이러한 노화의 과정을 통해 죽음으로 가는 인간의 삶을 유머 넘치는 문체로 풀어낸 책이다. 특히 1910년생인 저자의 아버지(이 책은 미국에서 2008년에 출판되었고 그 때까지 저자의 아버지는 생존해 있었다)에 대한 묘사는 웃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주책이라고 할 정도로 생명력이 왕성한 아버지의 행동들이 너무도 인간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쩐 일일까? 말하자면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켜 본 아버지의 노화과정이 곧 이 책의 주제인 셈인데,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 이토록 재기발랄할 수도 있다니. 제 1장의「태어난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부터 제 4장의 「인생에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언젠가 우리가 죽는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자는 것이다. 나이 들어갊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고, 노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암이나 심장질환, 호흡기 관련 질환 등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해도, 저자의 아버지처럼 계속 운동하고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거나 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는 등의 생활을 통해 살아 있을 때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라는 말이다.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고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확실히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니, 비록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은 살아서 호흡하고 삶을 만끽하라. 그 대신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라. 나의 실존도 내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멈추는 것이니, 그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세상을 떠나는 날 후회하지 않도록.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용한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 “무덤 파는 사람이 된다는 게 처음에는 영 내키지 않았어요. 날마다 보는 게 애달파 하는 가족들뿐이죠. 관을 나를 때는 그 안에 누가 누웠을까 상상하게 돼요. 제일 마음이 뭉클한 것은 어린애들이 죽었을 때죠. 아이들은 순수하니까 관이 흰색이고, 관 크기도 1미터쯤 될까, 작지요. 그 애들은 뭘 경험할 틈도 없었잖아요. 뭔가 도둑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 작고 하얀 관을 볼 때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가 뼈저리게 느껴요.”(p.315)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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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눈물 - 조선의 만시 이야기
전송열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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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詩란 무엇일까? 한자 뜻 그대로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지은 시를 말한다. 만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아내를 위한 悼亡詩, 친구를 위한 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哭子詩 등, 산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인들과 친척 등에게 바치는 아쉬움과 존경심, 그리움, 혼자 남은 자신에 대한 위로 등을 담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학의 한 갈래다. 『옛 사람들의 눈물: 조선의 만시 이야기』는 五言絶句나 七言律詩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삶과 죽음의 虛虛로운 순간을 붙들고 싶은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표현한 조선의 漢詩들을 모은 책이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되는 조선시대의 양반이나 사대부들이 아내의 죽음에 대해 드러낸 감정의 진폭이 생각보다 넓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쓴 만시를 읽어 보자.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那將月姥訟冥司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來世夫妻易地爲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我死君生天里外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使君知我此心悲

―「유배지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만시를 짓다 配所挽妻喪」(p.105)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타인의 경험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배우자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그 어떤 위로나 공감도 슬픔을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찍 세상을 등졌는지 생각해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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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이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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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동시에 정신의학자인데, 특히 죽음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하여 죽음을 공론화 한 전문가다. 『죽음과 죽어감: 원제는 On Death and Dying』은 1965년부터 500여 명에 달하는 시한부 불치병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심리 상태와 욕구를 이해하고 나아가서 그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운동을 촉발한 저서이다. 특히 이 책은 癌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부정과 고립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에 이르는 5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각 단계마다 환자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가족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5단계를 겪는 것은 아니고 개인에 따라 몇 단계를 건너뛰거나 미처 겪어보기도 전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과연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고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나는 죽음이 찾아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의 육체적 소멸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5단계 중 어느 단계에 가장 오래 머물 것인가? 이 책은 결국 죽음으로써 삶을 직시하도록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누누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시한부 환자들은 죽기 직전까지 주변으로부터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나 부드러운 손길, 자신이 죽기 전 털어 놓고 싶은 마음 속 욕망과 갈등, 육체적 소멸에 대한 슬픔과 정신적 불멸성에 대한 희망 등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참다운 삶의 모습을 보인다. 나도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만, 그때까진 주변사람들과 갈등을 겪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시비거리도 만들지 않고 그렇게 성실히 살다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싶다. 2004년 8월 24일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명복을 빌며, 지금 이 시간에도 암병동에서 고통을 참아내고 있을 말기암환자들, 불치병 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을 환자와 가족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을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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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양을 잃다 - 책과 인간의 운명을 탐구해온 한 편집자의 동서고금 독서 박물지
쓰루가야 신이치 지음, 최경국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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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표제의 책에 관한 책 <책을 읽고 양을 잃다>를 읽었다. 이 표제는 <莊子>의 외편 [변무 제 8]에 나오는 '讀書亡羊'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양을 치던 장(臧)이 죽간(竹簡)을 끼고 너무나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인데, 독서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보여주는 예로써 저자가 책 제목에 인용한 것이다. 누구든 한번 쯤 책을 읽다가 겪어 보았으리라. 방문을 닫고 독서에 열중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 배고픔도 잊고 일상사 온갖 잡사들로부터 물러나와 책을 읽는 시간의 고요함. 책장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동서고금의 이름난 책들을 읽으며 그들과 나누는 한적한 내성적 대화. 책을 쓴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내외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을 소통하는 방법으로 종횡무진 책 속을 누빈다. 다시 위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책은 40여 년 동안 많은 책들을 편집한 일본의 쓰루가야 신이치가 쓴 독특한 독서기록이다. 독특하다고 한 이유는 여타 독서기에 비해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독서인들의 일화와 그들이 남긴 한시 또는 기억술, 묵독, 책을 통한 점치기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들의 풍부한 독서관련 일화는 참 지식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책에서 삶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해도, 유한한 인간의 육체는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이 짠했던 부분은 '藏書印'이라는 소제목에서 개진되는 내용인데, 많은 책을 소장했던 사람이 죽은 후에 장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를 자손에게 유언으로 남긴 낙관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子孫永保'로 요약되는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두 번째는 '身後俟代我珍藏人伴信友記' 라는 글귀처럼 합당한 인물에게 양도한다는 것, 세 번째는 장서가 뿔뿔이 흩어지리라는 것을 긍정하고 체념하는 것(p.132~4).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일단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고,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 때까지는 열심히 읽고 사색하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엔 아마 저자가 말하듯 다독보다는 정독에 매진하여 한 두 권의 책만을 가까이 두고 거듭 읽으며 죽음을 준비하지 않을까? "한 권의 책을 생애에 걸쳐 정독한다는 것, 확실히 이보다 나은 독서법은 없을 것이다. 허나 정독이란 본래 다독을 한 다음 도달하는 경지가 아닐까."(p.169)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 참으로 많다. 더욱이 지금처럼 첨단기술이 인간의 정신을 속도와 변화에 얽어매는 시대일수록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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