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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양을 잃다 - 책과 인간의 운명을 탐구해온 한 편집자의 동서고금 독서 박물지
쓰루가야 신이치 지음, 최경국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독특한 표제의 책에 관한 책 <책을 읽고 양을 잃다>를 읽었다. 이 표제는 <莊子>의 외편 [변무 제 8]에 나오는 '讀書亡羊'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양을 치던 장(臧)이 죽간(竹簡)을 끼고 너무나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인데, 독서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를 보여주는 예로써 저자가 책 제목에 인용한 것이다. 누구든 한번 쯤 책을 읽다가 겪어 보았으리라. 방문을 닫고 독서에 열중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 배고픔도 잊고 일상사 온갖 잡사들로부터 물러나와 책을 읽는 시간의 고요함. 책장 넘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동서고금의 이름난 책들을 읽으며 그들과 나누는 한적한 내성적 대화. 책을 쓴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내외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을 소통하는 방법으로 종횡무진 책 속을 누빈다. 다시 위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책은 40여 년 동안 많은 책들을 편집한 일본의 쓰루가야 신이치가 쓴 독특한 독서기록이다. 독특하다고 한 이유는 여타 독서기에 비해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독서인들의 일화와 그들이 남긴 한시 또는 기억술, 묵독, 책을 통한 점치기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들의 풍부한 독서관련 일화는 참 지식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해준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책에서 삶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해도, 유한한 인간의 육체는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이 짠했던 부분은 '藏書印'이라는 소제목에서 개진되는 내용인데, 많은 책을 소장했던 사람이 죽은 후에 장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를 자손에게 유언으로 남긴 낙관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는 '子孫永保'로 요약되는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두 번째는 '身後俟代我珍藏人伴信友記' 라는 글귀처럼 합당한 인물에게 양도한다는 것, 세 번째는 장서가 뿔뿔이 흩어지리라는 것을 긍정하고 체념하는 것(p.132~4).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일단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고,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 때까지는 열심히 읽고 사색하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엔 아마 저자가 말하듯 다독보다는 정독에 매진하여 한 두 권의 책만을 가까이 두고 거듭 읽으며 죽음을 준비하지 않을까? "한 권의 책을 생애에 걸쳐 정독한다는 것, 확실히 이보다 나은 독서법은 없을 것이다. 허나 정독이란 본래 다독을 한 다음 도달하는 경지가 아닐까."(p.169)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 참으로 많다. 더욱이 지금처럼 첨단기술이 인간의 정신을 속도와 변화에 얽어매는 시대일수록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