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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이레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동시에 정신의학자인데, 특히 죽음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하여 죽음을 공론화 한 전문가다. 『죽음과 죽어감: 원제는 On Death and Dying』은 1965년부터 500여 명에 달하는 시한부 불치병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심리 상태와 욕구를 이해하고 나아가서 그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운동을 촉발한 저서이다. 특히 이 책은 癌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부정과 고립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에 이르는 5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각 단계마다 환자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가족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5단계를 겪는 것은 아니고 개인에 따라 몇 단계를 건너뛰거나 미처 겪어보기도 전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과연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고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나는 죽음이 찾아 들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의 육체적 소멸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5단계 중 어느 단계에 가장 오래 머물 것인가? 이 책은 결국 죽음으로써 삶을 직시하도록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누누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시한부 환자들은 죽기 직전까지 주변으로부터의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나 부드러운 손길, 자신이 죽기 전 털어 놓고 싶은 마음 속 욕망과 갈등, 육체적 소멸에 대한 슬픔과 정신적 불멸성에 대한 희망 등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참다운 삶의 모습을 보인다. 나도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만, 그때까진 주변사람들과 갈등을 겪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시비거리도 만들지 않고 그렇게 성실히 살다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싶다. 2004년 8월 24일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명복을 빌며, 지금 이 시간에도 암병동에서 고통을 참아내고 있을 말기암환자들, 불치병 진단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을 환자와 가족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을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