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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1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항해(The Voyage Out)』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처녀작(1915)이다. 말하자면 그녀가 본격적으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소설기법으로 지극히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며 줄거리조차 잘 파악되지 않는 글쓰기에 몰입하기 전에 쓴 전통적인 성격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인간의 의식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문단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꽤 깊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따라서 본 작품 『항해』는 표면적으로 볼 때 레이첼 빈레이스가 안락한 온실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여정을 향해 과감하게 나서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랑,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는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 전개의 밑바닥에 레이첼 자신의 내면세계로의 의식적 항해라는 이중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면, 꽤 많은 선박을 소유한 해상무역업자인 아버지 윌로우비 빈레이스 아래에서 부유하지만 사회적, 지적으로 편협하게 성장한 24세의 레이첼이, 외숙모 헬렌 앰브로우즈의 건의로 아마존 강 하류로 함께 항해하게 되었고, 산타 마리나 섬의 빌라에 머물던 중 테렌스 휴잇이라는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어 그와 약혼까지 했으나 아마존 강 상류 원주민 마을 탐험 후 열병에 걸려 요절하는 극히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 묘사와 그들의 의식 전개 과정, 이국적 풍광 묘사 등, 소설 자체의 재미는 꽤 크다. 남성 캐릭터들 중에서 특히 테렌스 휴잇의 친구인 세인트 존 허스트의 냉소적인 말투와 날카로운 지성, 레이첼의 외삼촌 리들리 앰브로우즈의 학자연하는 지적 허영심 아래 깔려 있는 여성 비하, 항해 도중 끼어든 보수당 국회의원 리처드 댈러웨이가 주장하는 정치적 한계와 여성에게는 투표권을 절대 줄 수 없다는 극히 남성중심적인 인식, 침묵에 관한 소설을 쓰고자 하는 테렌스 휴잇의 모순적인 여성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실용적이지도 학문적이지도 않은 윌리엄 페퍼의 광범위한 지식 등, 본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여성의 지적 능력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들을 결혼이라는 굴레로 묶어두고자 하는 소위 가부장적인 특권을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에 비해 지적으로 열등할지는 몰라도(왜냐하면 여성들의 교육이 보편적이지도 않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도 가사와 자녀의 양육에만 한정되어 있었던 시대적 배경 하에서 여성들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행위조차 위험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면에서는 남성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외부와의 접촉 없이 자신만의 고립된 방에서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책을 읽고, 남성에 대한 환상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적인 목소리에만 반응하던 레이첼이, 테렌스 휴잇을 만나 사랑에 눈 뜬 뒤 그녀의 의식 속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삶의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충돌에 대한 정신적 반응과 사랑에 대한 주체적 인식에 눈떠가는 과정은 여성 자의식의 확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단 작가가 레이첼을 죽음에 이르도록 설정한 의도가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시대적 산물로써의 레이첼의 태생적 한계내지 여성으로써의 성 정체성 극복 불가능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레이첼 외에 앨런 양 이라고만 지칭되는 노처녀는 <영문학 입문서>를 집필 중인데, 지적인 능력이나 인생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처세술 따위가 본 작품에 남다른 향기를 풍기는 핵으로 작용한다. 또, 혁명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이블린 머거로이트는 자신에게 청혼하는 어떤 남성하고도 육체적·정신적으로 공감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의 자세를 유지하고자 애쓴다는 점에서 결혼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성적인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남성들에 비해 오히려 삶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대단히 정치적인 여성으로써, 앨런 양과 함께 버지니아 울프가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물론 본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레이첼 처럼 남성 위주의 사회적·계급적 지배구조에 적응하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앨런 양이나 이블린 머거로이트 같은 여성들의 독립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떠올랐던 맨 처음 느낌을 덧붙이자면 영문학을 전공한 남성으로써의 시각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지적 능력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사실 당연한 것이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남성의 억압과 편견이 작용했다), 시대적 편견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 면에서는 남성의 몇 배에 해당하는 정신적·육체적 고난이 강요되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실제 버지니아 울프는 비교적 좋은 가정환경에서 지적이고 유복하게 성장했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 역시 가부장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본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의 모습이 대개 지적으로 허세를 부리거나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은 일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뛰어 넘어 여성으로써의 주체적 의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노력은, 비록 작품 속에서 레이첼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된 듯 보이지만, 울프 개인으로써는 실패가 아닌 것이다.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고, 번역에 관해서 덧붙일 사항이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버지니아 울프 작품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원인은 우선 그녀가 구사하는 소설 기법인 의식의 흐름(의식의 흐름이란 본래 심리학 용어로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1890)에서 사용했는데, “깨어 있는 정신에서 사고와 의식의 중단되지 않는 흐름을 기술하고자 하는”(to characterize the unbroken flow of thought and awareness in the waking mind: M. H, Abrams, A Glossary of Literary Terms, 1957, p.186) 목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후에 20세기 소설 기법의 하나로 의미의 확대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서구인이 경험한 정신적, 문화적 충격을 전통적인 소설 기법으로 묘사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여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등의 작가들이 채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체의 서술적 난해함과 문체의 난해함이라는 이중적 난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외국 문학작품의 번역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등의 사실을 전달하는 번역과는 달리, 완전한 허구라 해도 작가가 보고 겪었던 인간의 정신적·심리적 경험을 묘사하는 것이므로 사실 1대 1 완벽한 자구 번역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영시를 한국어 번역으로 읽을 때 도무지 그 의미가 깊이 와 닿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은 해당 언어로 쓰일 때 가장 완벽한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번역자의 외국어 해독력과 한국어 구사력 그리고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을 넘어설만한 공감력 등이 요구되는데, 소위 한국의 이름난 몇몇 전문 번역가들이나 대학교수들도 오역을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번역 능력에 대한 오해를 받기도 하는 상황에서 번역의 질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읽을 만 하게 번역하기란 새로운 작품의 창작만큼이나 산고가 따르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본 작품의 번역은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로써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동안 한국어로 번역된 여타 울프의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고 의미의 전달이나 특히 수시로 나오는 레이첼의 의식의 흐름(본격적이지는 않아도 후에 확대될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적 특성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부분은 흠잡을 데 없이 잘 번역되었다고 여겨진다. 읽는 내내 불편하거나 해독 불가능을 겪지 않았으므로 비교적 훌륭한 번역이라고 할 만하다. 단순한 표면적 의미 전달 이상을 뛰어 넘어 번역 해당어의 언어적 특성에 맞도록 번역해내야 하는 문학작품일수록 번역자의 실력이 요구되는데, 다행이도 번역자가 울프 전공학자이자 현역교수이며 여성이라는 점이 더욱 신뢰할 만한 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