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희망을 쓰다 -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박승일.이규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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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소위 <루게릭병>이라는 것이 비교적 드문 질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만 1500~2000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계속 늘고 있는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죽음에 관한 책들을 집중해서 읽었는데, 그 과정에서 <루게릭병>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수기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중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였던 박승일의 <눈으로 희망을 쓰다>, 스웨덴의 방송국 뉴스 앵커인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Ulla-Carin Lindquist)의 <「원더풀」: 원제는 『Ro Utan Aror』>, 그리고 일리노이 주 레이크 포레스트 대학 영문학 교수인 필립 시먼스(Philip Simmons)의 <「소멸의 아름다움」: 원제는『Learnig to Fall』> 등을 읽고서 비로소 <루게릭병>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선 <루게릭병>이란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의 줄임말로써 한국어로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으로 번역된다. <원더풀>에 따르면 이 질환은 “.....운동신경 세포, 즉 근육을 공급하는 세포가 뇌 속에서, 뇌간에서, 그리고 척수의 바깥 부분에서 죽어가는 증상이다. 측삭이란 옆쪽을 뜻한다. 신경세포들이 죽은 자리는 딱딱하게 굳어진 결합조직, 즉 경변이 된다. 그리스어로 ‘미오시스myosis’인 이 근육은 신경이 보내는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즉 근육이 약해지고 위축atrophy되는 것이다. 그리스어 ‘트로피trophi’는 영양분을 뜻한다. 루게릭병에서 문제가 되는 영양분은 신경신호다. ‘아트로피atrophy’는 트로피의 반대말이다. 즉 무엇인가 결핍되었음을 뜻한다.”(p. 81~2)

그러니까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인 근육의 움직임이 없어지고 보조기구의 도움 없이는 호흡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루게릭병>인 것이다. 살아있는 시간 자체가 지옥일 수 있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지가 멀쩡한데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권태를 못 이겨 자살을 하는 따위의 행위들은 사치스러운 자기 파멸적 행동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잠이 들어도, 깨어 있어도 무엇 하나 제 힘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마저도 바꾸어 놓는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어김없이 진행되는 자신의 육체의 소멸 과정이 어떤 상념을 불러일으킬까? 진단을 받기 전까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변해 버린 자신의 육체는 얼마나 몰가치하게 보일 것인가? 나의 눈으로 나의 육체가 서서히 지상의 삶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똑똑히 보이는데 그 어떤 것이 나의 생명보다 소중할 것인가?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분명 내 것이었던 육체는 진단 후에 객관적인 대상물로 전락한다. 내 몸인데도 내 몸이 아닌 느낌, 내 의지로는 도저히 예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고 그렇다고 약물이나 기계로도 완치될 가능성이 낮은 불치병일수록 정신과 육체와의 상관관계는 과연 살아있다는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만은 <루게릭병>처럼 1초 1분 후의 삶이 곧 죽음일 수 있는 절망 속에서도 환자는 삶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죽음보다 삶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똑같지 않을까? 지금, 자신의 삶이 어둡다거나 절망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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