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 태평양 전선 세계의 전쟁사 시리즈 9
이동훈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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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저자의 책 <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유럽전선>을 읽고 나서 바로 읽은 이 책은,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태평양 전쟁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부터 미군의 반격과 계속되는 일본의 패배, 무조건 항복, 그리고 동경국제군사재판과 전후의 비참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는 2차세계대전보다 더 길었다고 말할 수 있는 태평양 전쟁의 개략적 전모가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실현과 아시아 민중을 서구 제국주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자(일본의 주장이지만)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과 한국인, 중국인, 필리핀인, 태국인, 버마인들이 죽어 갔는지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결국 일본의 태평양 전쟁 역시 제국주의의 팽창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아시아를 상대로 한 정치적, 경제적 예속과 자원 침탈, 노동력 확보 및 상품시장의 확장을 위한 일본과 영미 연합국간의 전쟁은 원자폭탄 두 발과 함께 끝났다. 전후 일본은 한국전 특수를 누리며 막강한 경제대국으로 부활했고, 구일본군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던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최강의 전력으로 성장하여 중국과도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군사력으로 되살아 났다. 우리들은 일본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라는 국가, 일본인, 그리고 일본의 저력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전후의 잿더미 속에서, 패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로 뼈를 깍는 노력을 거쳐 오늘의 일본을 일구어낸 일본인들에 대해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만 대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왜곡과 정치인들의 망언, 독도를 볼모로 삼아 시비를 걸어 오는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애써 일본은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상품에 눈이 멀지는 않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한반도가 일본 옆에 존속하는 한 떨칠 수 없는 것이라 느꼈다. 국가로써의 일본의 힘과 저돌성, 일본인의 원형적 성격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한 일본은 언제까지라도 한반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과거 행적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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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 유럽 전선 세계의 전쟁사 시리즈 8
이동훈 지음 / 가람기획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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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로 2차 세계대전을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우선 2차 세계대전의 발발 배경을 간략히 소개한 뒤 그 서막부터 종전까지의 궤적을 각각의 영화를 통해 비교적 평이한 문체로 안내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의 특성상 잘못된 내용이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 잡는 작업을 통해 실제 역사와 그것을 소재로 만든 영화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간다. 나 스스로 밀리터리 매니아라 자부하는데, 이 책의 필자 역시 보통은 넘는 지식과 박학함으로 무장하고서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대부분 이미 본 것들이고 또 대부분 DVD로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라 언제든 꺼내 다시 보면서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확인해보기에 좋다. 한 가지, 책의 집필 의도상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만들어진 영화들만을 싣고 있다보니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버트 랑카스터 주연의 <고성을 사수하라: 원제는 Castle Keep, 1969>이나 <나바론의 요새: 원제는 The Guns of Navarone, 1961> 등은 빠져 있어 조금 아쉽다. 어릴 때 KBS <명화극장>에서 자주 방영해주었던 헐리우드 전쟁 영화들은 당시의 남자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환상들을 담고 있었다. 전쟁 자체를 낭만적으로 여긴다거나, 총 또는 전차 등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따위의 효과가  그것인데, 내가 지금도 밀리터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전쟁 영화를 볼 때도 고증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 때의 영향일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 가면서 더 이상 전쟁을 낭만적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사실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며, 그로 인해 전쟁에서 죽어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에 대해서 추념하게 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 전쟁을 기획하고 국민을 전쟁으로 내모는 지배자와 그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병사들, 민간인들.....전쟁이 끝나고 나면 이렇게 죽어간 이름모를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고 장군과 지휘관만 훈장을 받으며 그들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만 해도 5500만이라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그 이후 세계는 더욱 살기 좋아졌는가? 여전히 정치적 불평등과 인종적 편견,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전쟁은 아주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벌어진다. 전쟁을 기획하는 소수는 어떻게 해서든 명분을 찾아내어 타국을 침공하고 그 과정에서 이익을 챙긴다. 그 와중에 희생당하는 소시민들만 가련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전쟁은 벌어질 것이고 그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참혹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안락한 극장에 앉아 보면서 사람들은 정작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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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박원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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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지휘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더욱이 승리 아니면 죽음 뿐인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면? 인류사 언제 어디에서든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자신의 생명 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은? 내 생명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생명 또한 똑같이 소중하지 않은가? 전쟁은 지휘관과 참모들이 기획하고 전투는 일반사병들이 수행한다. 따라서 나의 소중한 목숨을 지휘관의 명령에 맡기고 따라야 전진이든 후퇴든 전쟁의 향방이 결정된다. 그렇게 승리와 패퇴를 거듭하던 중 아군의 전멸이 확실시 되는 순간 최고통수권자의 부당한 사수 명령이 내려왔다. 목숨으로 그자리를 지켜라! 이 때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장 지휘관으로써 최고통수권자의 불합리한 명령을 따라 함께 목숨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든 책임은 지휘관인 자신에게 있다. 에르빈 롬멜은 후자를 택했다. 1942년 10월 23일에 시작된 엘 알라마인 전투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반격을 가해 오는 영국군의 대공세 앞에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이질과 괴혈병에 걸려 싸울 의지마저 바닥이 나버린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잔존병력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롬멜은 유럽에서 요양중이었다. 롬멜의 후임자인 슈툼메 장군도 정찰을 나간 자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포대의 포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제 어떻게 전쟁을 치룰 것인가? 10월 25일 서둘러 롬멜이 아프리카 군단에 복귀했다. 하지만 중과부적. 전멸이 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롬멜이라도 장비와 연료의 부족, 더우기 병사들 사기의 저하를 자신의 지도력만으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11월 4일 오후 2시 정각, 롬멜은 히틀러의 사수명령에 반기를 들고 "무조건적으로 현재 위치를 사수하지 말라. 더 이상 무모한 희생은  없다!"(p.180)라는 명령을 아프리카 군단에게 내린다. 비록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행동이었다. 그 결정으로 롬멜은 7만 명 이상의 독일군과 3만 명 정도의 이탈리아 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결국 삶에 임하는 자세와 다를 바 없다. 말년에 이르러 롬멜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 관계자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거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암살 음모의 뒤에 서 있었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관계자들의 체포와 고문, 즉결처형 과정에서 연루된 롬멜은 자살을 종용받고 청산가리로 목숨을 끊는다. 롬멜을 철저한 나치, 총통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중에게 드러나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명예욕이 강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생전 이미지가 다채롭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이 다양한 삶의 경험을 했고 시대적 상황 속에 조화롭게 대처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판단만으로 많은 위기들을 극복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롬멜의 온화한 인격에 존경심을 가지게 됐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분히 모순적인 모습들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들 완벽할 수 있겠는가? 특히 위기상황에서 보여준 롬멜의 지휘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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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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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태어난 땅이 아프리카라는 이유만으로 굶주림과 질병, 성적인 학대와 소년병 징집, 집도 없이 쓰레기장을 떠돌아야 하는 많은 아프리카의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면서도 늘 더 가지려 하고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자신 이외에는 세계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우리들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도이자 현직 외교관으로 주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동안 나왔던 아프리카 관련서 중에서 돋보이는 시각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아랍 등에게 철저히 착취당했던 노예무역이라는 뼈아픈 과거, 2차 세계대전 후 차례로 독립을 맞이 하였지만 식민지 시절을 청산하지 못하고 이어졌던 종족 분쟁과 학살, 그리고 당연한 저개발, 일당 일인 독재의 장기화, AIDS의 확산, 오랜 세월 이어져온 전통이라는 미명하의 끔찍한 여성 할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침체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발상지라는 업적 외에 무엇 하나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인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와 동정, 그리고 해박한 현실 비판이 아프리카를 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어 주었다. 그동안 표면적으로만 보았던 아프리카의 속살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기술되고 왜곡된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에 눈물을 흘렸고, 풍부한 자원의 확보 및 수탈로 인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참상에는 차라리 눈을 돌리고 싶었으며, 수없이 죽어나간 아프리카인들의 피가 고여있는 자리에서는 나도 마치 가족과 친지를 잃은 듯 감당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럼 아프리카는 언제까지나 절망과 죽음의 대륙일까? 다행이도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서서히 피어나고 있는 아프리카의 민주화와 그에 따른 하위중산층의 형성 및 경제의 활성화을 서술하며 작은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핵심은 가난과 저개발, 내전과 학살 등에 찌들어온 아프리카인들 자신의 숨겨진 진정한 힘을 찾는 일이다. 민주적인 절차와 국민투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및 전반적 생활여건의 향상, 선진국의 자본 투자와 기술개발 협력 등을 통해 아프리카는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다시는 해외 토픽에서 어린시절을 빼앗기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프리카 소년병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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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매드니스 - 책, 그 유혹에 빠진 사람들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지음, 표정훈.김연수.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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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매드니스』는 색인까지 합쳐 무려 1111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재미있어서 더 두꺼웠더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아마 이 책에 소개된 책 수집가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성격이나 책에 대해 지니고 있는 애정과 열정도 정확히 나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책 수집가와 그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단순한 사물에 불과할 수도 있는 ‘책’에 대해 인간이 부여해 온 물질적 가치 이상을 넘어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써의 책에 대해 과도한 관심과 애정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온화한 광기'를 드러냈던 유명한 수집가부터 미국 전역의 대학도서관들을 돌며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책들을 훔쳤던 책 도둑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책에 대한 과도한 애정으로 넘쳤던 기인들에 대한 일화로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수집벽은 결국 후세의 사람들에게 가늠할 수없는 커다란 가치로 남아 학문의 발달에 기여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제 역할을 이어나간다. 물론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영국이나 미국의 수집가들처럼 초판본이나 채식 필사본, 저자 서명본,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서나 셰익스피어 작품집 초판 2절판 등의 어마어마한 책들을 단 한권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가질 수가 없다. 한 권에 원화로 5000만원이 넘는 책을 어떻게 내가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오직 읽기 위해서, 내용이 궁금해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책을 사고 부지런히 읽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고서 자체에 대한 물질적 가치보다 저자의 지식이 더욱 가치 있는 셈이다. 비록 내 책들은 대량생산품일 뿐 이지만, 그것들을 읽고 그 과정에서 내 지성에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책의 초판본의 물질적 가치보다 그 책이 널리 읽혀 물질성을 뛰어넘는 정신성을 지니게 되기를 바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둘만한 책이다. 모두 책 수집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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