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박원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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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지휘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더욱이 승리 아니면 죽음 뿐인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면? 인류사 언제 어디에서든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자신의 생명 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은? 내 생명이 소중하다면 타인의 생명 또한 똑같이 소중하지 않은가? 전쟁은 지휘관과 참모들이 기획하고 전투는 일반사병들이 수행한다. 따라서 나의 소중한 목숨을 지휘관의 명령에 맡기고 따라야 전진이든 후퇴든 전쟁의 향방이 결정된다. 그렇게 승리와 패퇴를 거듭하던 중 아군의 전멸이 확실시 되는 순간 최고통수권자의 부당한 사수 명령이 내려왔다. 목숨으로 그자리를 지켜라! 이 때 당신이 지휘관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장 지휘관으로써 최고통수권자의 불합리한 명령을 따라 함께 목숨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든 책임은 지휘관인 자신에게 있다. 에르빈 롬멜은 후자를 택했다. 1942년 10월 23일에 시작된 엘 알라마인 전투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반격을 가해 오는 영국군의 대공세 앞에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이질과 괴혈병에 걸려 싸울 의지마저 바닥이 나버린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잔존병력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롬멜은 유럽에서 요양중이었다. 롬멜의 후임자인 슈툼메 장군도 정찰을 나간 자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포대의 포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제 어떻게 전쟁을 치룰 것인가? 10월 25일 서둘러 롬멜이 아프리카 군단에 복귀했다. 하지만 중과부적. 전멸이 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롬멜이라도 장비와 연료의 부족, 더우기 병사들 사기의 저하를 자신의 지도력만으로 대신할 수는 없었다. 11월 4일 오후 2시 정각, 롬멜은 히틀러의 사수명령에 반기를 들고 "무조건적으로 현재 위치를 사수하지 말라. 더 이상 무모한 희생은  없다!"(p.180)라는 명령을 아프리카 군단에게 내린다. 비록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빛나는 행동이었다. 그 결정으로 롬멜은 7만 명 이상의 독일군과 3만 명 정도의 이탈리아 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결국 삶에 임하는 자세와 다를 바 없다. 말년에 이르러 롬멜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 관계자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거나 대화를 나눔으로써 암살 음모의 뒤에 서 있었다.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관계자들의 체포와 고문, 즉결처형 과정에서 연루된 롬멜은 자살을 종용받고 청산가리로 목숨을 끊는다. 롬멜을 철저한 나치, 총통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중에게 드러나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명예욕이 강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생전 이미지가 다채롭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이 다양한 삶의 경험을 했고 시대적 상황 속에 조화롭게 대처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판단만으로 많은 위기들을 극복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롬멜의 온화한 인격에 존경심을 가지게 됐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분히 모순적인 모습들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들 완벽할 수 있겠는가? 특히 위기상황에서 보여준 롬멜의 지휘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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