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저자의 책 <전쟁영화로 마스터하는 2차세계대전: 유럽전선>을 읽고 나서 바로 읽은 이 책은,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태평양 전쟁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부터 미군의 반격과 계속되는 일본의 패배, 무조건 항복, 그리고 동경국제군사재판과 전후의 비참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는 2차세계대전보다 더 길었다고 말할 수 있는 태평양 전쟁의 개략적 전모가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실현과 아시아 민중을 서구 제국주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자(일본의 주장이지만)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과 한국인, 중국인, 필리핀인, 태국인, 버마인들이 죽어 갔는지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결국 일본의 태평양 전쟁 역시 제국주의의 팽창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아시아를 상대로 한 정치적, 경제적 예속과 자원 침탈, 노동력 확보 및 상품시장의 확장을 위한 일본과 영미 연합국간의 전쟁은 원자폭탄 두 발과 함께 끝났다. 전후 일본은 한국전 특수를 누리며 막강한 경제대국으로 부활했고, 구일본군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던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최강의 전력으로 성장하여 중국과도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군사력으로 되살아 났다. 우리들은 일본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일본이라는 국가, 일본인, 그리고 일본의 저력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전후의 잿더미 속에서, 패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로 뼈를 깍는 노력을 거쳐 오늘의 일본을 일구어낸 일본인들에 대해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만 대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왜곡과 정치인들의 망언, 독도를 볼모로 삼아 시비를 걸어 오는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애써 일본은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상품에 눈이 멀지는 않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한반도가 일본 옆에 존속하는 한 떨칠 수 없는 것이라 느꼈다. 국가로써의 일본의 힘과 저돌성, 일본인의 원형적 성격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한 일본은 언제까지라도 한반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과거 행적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