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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책을 모으고 또 읽어 온 분야에는 神話가 포함되는데, 그 계기는 아마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선배들로부터 영문학을 포함한 서양문명의 뿌리가 고대 그리스 신화라는 말을 듣고서 Edith Hamilton의 <Mythology>를 열심히 공부하던 때와 일치할 것이다. 당시에 신화라 하면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 공식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신화와의 인연은 전공에 대한 도움 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직시하는 데도 일종의 이정표가 되주었다. 그렇게 신화를 읽어 나가던 중,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대학원 석사과정 중이던 1992년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단순한 이야기로써의 신화를 넘어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신화의 참 의미와 마주하고는 새삼 '신화의 힘'에 매료되었던 그 시공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인 Joseph Campbell에 대해서야 워낙 저명한 분이니 덧붙일 말은 없지만, 이 책보다 더 일찍 만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원제는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내게는 신화와 동의어로 여겨진다는 것만은 말해야 겠다. 아무튼 이 책은 저자와 저널리스트인 Bill Moyers가 1985~6년에 가졌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대화 형식이라고 그 깊이를 얕보았다는 큰 코 다칠 것을 각오하고 읽기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다양한 논의들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도대체 신화란 무엇인가? 변화와 속도의 디지털 시대인 지금, 새삼 아날로그의 대명사라 할 신화가 끝없이 인용되고 살아 남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기 신화의 발생시기에는 신화의 역할이 곧 우주와 자연 현상에 대한 고대인의 소박한 해석이었겠지만, 과학의 힘으로 우주와 자연의 신비들이 하나씩 해명되고 있는 현재는 오히려 인간의 내면 탐구에 대한 길잡이로써의 신화의 역할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많은 신화 속에는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의 발생, 문명과 문화의 씨앗이 발아하는 순간과 사계절의 순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과 죽음의 필연성, 영웅의 순례를 통한 통과의례의 미덕 등에 이르는 온갖 인간의 '생각'들이 넘쳐 난다. 게다가 정치적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 인간의 욕망을 포함하는 갖가지 감정에 대한 경계, 우주 또는 자연과의 합일 등, 속도가 채워주지 못하는 정신의 허기를 채워주는 현재적 가치들이 가득하다. 현대인들은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 인간은 어디까지나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 욕망의 지속을 위해 쉼없이 전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번쯤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p.217) 내 앞에 놓여 있는 미로를 향해 전진! 결국 신화는 인간이 극복해야 할 온갖 고난들을 상징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인 내면의 힘을 끌어내도록 안내해주는 Ariadne의 끈이며 우리 모두는 기꺼이 미로로 들어가 Minotaur와 대적하고자 하는 Theseus인 것이다.
여담: 이 책의 한국어 번역 초판은 본래 고려원에서 1992년에 나왔는데,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쾌 커다란 커피 자국이 책 아래 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책을 읽는 도중 깜빡 졸다가 종이컵에 들어있는 커피를 건드려서 엎지른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본 리뷰에 올린 사진은 이끌리오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것으로, 2011년에 재구매하여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20대에 읽었을 때보다 40대 중반을 훌쩍 넘기고 읽어 본 현재의 느낌은, 삶의 다양한 경험이랄까, 여러가지 고난과 불행을 겪고 난 뒤여서 그런지, 그 어떤 상황도 훨씬 넘어서기가 수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신화에 대한 독서를 꾸준히 해온 덕분이리라. 위의 고려원판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잘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