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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지성인 - 개정판
에드워드W.사이드 지음, 전신욱.서봉섭 옮김 / 창 / 2011년 6월
평점 :
에드워드 W.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과 동의어라 할 만큼 서양의 동양 지배담론으로써의 오리엔탈리즘을 널리 알린 학문적 업적만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억될 지성인의 대표적 이름이다([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리뷰는 빠른 시일 내에 올리도록 하겠다. 처음 읽었던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데다 현재 강의준비의 일환으로 三讀중이다). 이 책은 그가 1993년에 영국 BBC의 Reith Lectures에서 행한 여섯 번의 강좌를 묶은 것이다. 원제는 [Representation of the Intellectual]인데, 역자들은 본문 내의 문맥에 따라 재현, 표현, 표상, 대변 등으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책 전체를 꿰뚫고 있는 사이드의 의도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용어는 代辯인듯 싶다(기회가 되는 데로 영어판을 구해 다시 읽을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강좌에서 사이드가 인용하고 있는 쥘리앙 방다의 정의에 따르면 ".....진정한 지성인들은 정의와 진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열정과 이해관계를 초월한 원칙들에 의해 움직이면서, 부패를 비난하고, 약자를 옹호하고, 불완전하고 억압적인 권위에 도전할 때에 바로 지성인 그 자신들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p.36~7) 또, 사이드 자신은 "나에게 있어 핵심적 사실은 지성인이 일반대중을 위해서는 물론, 일반대중을 향해 메세지, 관점, 태도, 철학, 여론을 재현하고, 구체화하고, 표명하는 재능을 부여받은 개인으로서 생각한다."(p.44)고 전제한 뒤, "나는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청중이나 주민에게 나의 관심 사항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관심 사항의 단순한 제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표명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자유와 정의에 대한 대의명분을 발전시키려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스스로 무엇을 표상해야 하는 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p.44~5)라고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서 좀더 구체성을 띄게 된다. 그러니까 지성인은 인간 사회에 대해 말을 하는 개인인 동시에, 그 말을 통해 평균적인 대중에게 현실을 여하히 재현하여 환기시킬 것인가에 열정을 쏟는 사람인 것이다. 대중의 세계 인식이란 얕고 천박한 것이어서 유행이 끝나면 금새 잊혀지고 또 따른 유행에 몰리는 습성을 갖고 있는지라, 예를 들어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이집트와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의 민주화 열망에 대한 정치적 관심 또는 내전 지역에서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대한 분노 보다는 당장 나의 감각적 쾌락과 주식시세의 등락 따위에 골몰하는 바, 이들에게 올바른 세계 인식과 해석의 능력을 부여하여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써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여론에 속지 않으며 진정한 평등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지성인 자신이 먼저 철저한 세계 인식과 도덕성, 그리고 권력에 대해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적인 사건이나 한국 역사를 보더라도 부패한 권력이나 억압적인 정치체제에 맞서 마땅히 할 말을 하고 대중들을 이끌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했던 지성인들이 있었다. 이렇게 공적역할을 수행하는 지성인의 도덕성은, 인간의 자유와 지식을 신장시켜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지식의 확대로 이어지는 일련 과정의 첫 번째 요소로써,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당연한'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대안의 제시로 이어진다. 즉, 지성인은 거대권력의 파괴적 속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 뛰어 들어가 대중에게 그것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주저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성인이란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정치적,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에 저항하고 진정한 시민적 자주성과 자유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실천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성인이 자신의 국민들의 집단적 고통을 재현하고, 그 고통의 극심함을 입증하고, 고통의 지속적인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고통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의무가 있음에 틀림없다는 점이다."(p.88)라고 할 때, 이러한 정의에 들어 맞는 지성인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단순한 지식인이었거나, 권력에 타협하여 일신의 안락함으로 복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러면 위와 같은 의무를 행하며 끝내 굽히지 않았던 지성인들이 한국 현대사에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함석헌이나 윤이상, 김수영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라 믿는다. 이들이야 말로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재현하고 그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영속화해오지 않았던가?
지식이 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지성인이 권력 속에 안주 할 때, 그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퇴보의 큰 원인이 된다. 지성인의 역할은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유지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고 권력을 대변하는 타락한 모습은 지성인을 지향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진정한 지성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곧 그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고 실제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를 닮고 싶다.
추기: 번역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이 책이 정식 저작권을 득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번역자들의 약력이 정확하다면 번역의 질이 매우 낮은 편이다. 영어판을 접해보질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꽤 여러군데 뜻이 통하지 않고 문맥 자체가 이해않가는 부분도 많다. 편집자의 실수인지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전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원저자의 명성에 누가 되는 부실한 번역본은 책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은커녕 반드시 읽어야 할 당위성마저 반감시킨다. 향후 견실한 출판사에서 가능한 에드워드 W. 사이드를 존경하고 그의 글에서 힘을 얻는 역자에 의한 새 번역서가 나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따라서 이 책에 부여한 별 2개는 원저자나 영어판 원서가 담고 있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한국어 번역본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