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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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종묘? 경복궁? 유학? 나는 선비가 떠오른다. 기나긴 조선 역사에서 선비가 맡았던 역할은 그대로 한국 정신사 내지 한국 지성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우리들에게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대철학자가 없음을 한탄하거나 헤겔 같은 사상가가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 전에, 당신이 알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을 떠올려 보라.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매천 황현 등,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을 만큼 조선 선비의 전통은 깊고도 넓다. 이들 선비들이야말로 조선을 조선답게 만든 주역이었고, 조선이 500년 넘게 존속할 수 있었던 정신적 기반이었다. 책을 읽고 시를 짓거나 수묵화를 치면서, 선비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세상에 대한 경륜을 직접 실천했다. 시와 서화, 책에 대한 지극하고도 깊은 애정, 독서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려는 치열한 기록 정신, 여기에 현실 정치에 대한 대안의 제시라든가 민중에 대한 애정에 이르기까지, 선비는 말하자면 조선역사에서 정신적, 문화적 중추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이렇게 길고 긴 선비의 연원에서 대표적인 선비들을 찾아 그들이 남긴 자찬묘지명이나 방대한 일기, 생활철학의 실천법, 장서나 벼루 따위의 수집품에 대한 애정, 편지나 시, 산문 등을 통해 시공을 뛰어 넘어 깊고도 큰 울림을 주는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예를 들어 성호 이익의 경우, "나는 천성이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베 한 올 쌀 한 톨 내 손으로 장만하지 않는다. 천지간의 좀벌레 한 마리란 말이 어찌 나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랴? 요행히 선대가 남기신 전답이 있어서 몇 섬 몇 말을 거둔다. 게서 나오는 식량을 절약하여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첫째가는 경륜이자, 양책을 삼는다."(p52)라고 <성호사설>에 써두었는데, 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며 사는 자신에 대한 질책이자 동시에 절식을 통해 보완하고자 하는 실천적 사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선비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극도로 절제하며 외부의 모범이 되고자 하는 무언의 수행 때문일 것이다. 항상 제자들보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단정히 하고 책을 읽던 퇴계 이황이나 엿새를 굶고도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조리던 화담 서경덕, 과거 시험을 부정하며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났던 신광하 등, 조선의 선비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써의  치열한 모습들은, 자본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속도와 경쟁에 내몰려 정작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물론 지금은 선비가 살던 조선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자본주의는 끝없이 상품을 생산하여 욕망을 자극하며, 고가 상품의 구매력이 곧 계급의 차이로 드러나는 시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그럴수록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들의 삶에서 내 삶의 이정표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특히 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만난 제자인 황상에게 해준 학문하는 법에 대한 말을 내 삶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 황상이 자신은 학문을 하기에는 둔하고, 꽉 막혔고, 미욱하다는 말에 대해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으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으로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병통으로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은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데 있다."(p287~8)  근면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학문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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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말글빛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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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죽는다, 아니,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다 하면 죽어야 한다. 그래야 뒤에 올 존재들이 살아 갈 공간이 확보된다. 지구 역사 46억년에 걸쳐 수 없이 명멸해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큼 독특한 종이 또 있을까? 인간 이외에 죽음을 인식하는 동물도 있지만, 인간만큼 죽음 자체를 양식화하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타인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동물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임종시에 남긴 유언들을 접해보는 것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나의 죽음을 사색할 때 유용하지 않을까. 이 책,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 마디, 유언>은 인간 역사상 이름을 남긴 157인(주로 서양사)을 선별하여 그들이 세상을 떠나 던 날 또는 떠나기 며칠, 몇 시간 전에 남겼다고 여겨지는 말들을 모아 해설한 것이다. 직접 임종을 지킨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기록 또는 기억되어 전해지는 유언들은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사람은 죽을 때 그동안 살아 왔던 자신의 삶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고 하던데,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동물로써의 개체성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남긴 유언이 생각보다는 의미가 깊지 않고 별 뜻을 담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는 탄식에 불과한 것도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언은 담고 있는 의미가 매우 깊어서 시공을 넘어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다."는 부처가 말했다는 최후의 발언인데, 성자로 칭송받는 불교의 창시자가 한 말치고는 일견 평범하게 들리지만 기원 전에 살았던 한 비범하고 거의 모든 것을 깨달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요약임에는 틀림없다. 살아 있을 때의 온갖 영화와 명성, 부귀와 지식 등도 죽음 앞에선 한낱 몰가치한 먼지에 불과한 것을. 부처는 아마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또 공자가 했다는 유언으로 알려진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자는 깊은 사색과 통찰로 인간사 온갖 현상들을 설명해주지만 아무리 현자라 해도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아쉬움과 회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증거일까? 도가의 노자나 장자는 정작 무슨 말을 했을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서 노닐던 인물들이니 유언도 육체와 정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나의 심장을 가장 뛰게 했던 것은 바로 체 게바라가 처형되기 직전에 했다는 말이다. "당신이 날 죽이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소. 떨지 말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시오. 당신은 단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뿐이오."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말 답지 않은가?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할 수 있다니. 어느 누가 자기 육체의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내 존재가 몽땅 없어지려는 찰라에도 이토록 흔들림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 왔던 삶의 결말이 거대권력 수하 타인에 의한 강제적 박탈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근원적 공포를 느낄텐데, 오히려 사형집행인을 안심시키고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죽음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한 위대하고 완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나에게 죽음이 찾아 들었을 때 나는 어떨 것인가? 나는 어떤 최후의 말을 남길 것인가? 아니, 죽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얼마나 선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성찰하기 전삶에 대해 먼저 사색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까? 매 순간 후회없이 살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선택과 결정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의 방식도, 죽음의 순간도 선택하고 싶다. 그러면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유언을 남기지는 못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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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선집 2
체 게바라 지음, 홍민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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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군더더기 독후감이 필요할까? 한 인간의 정신이 일신의 안락함을 자발적으로 벗어 던지고 대지에 깊이 뿌리 밖고 있는 민중에게 애정을 느껴 시작된 행동의 변화가 세계를 움직이게 되기 전까지의 찬연함을 담고 있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대한 독후감을 나는 무슨 목적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40대 중반을 훨씬 넘긴 나이의 남자가? 나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고, 여전히 행동력 부재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아니, 그래서 더욱 23세의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행했던 남미횡단 모터사이클 여행이 필요한 것인지도. 그가 일찍이 온몸으로 체험했던 과거 남미의 현실과 현재의 남미의 그것이 그다지 바뀌지 않았고, 당시나 지금이나 저개발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늘 스산한 남미이지만, 여러가지 분야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에 남미의 젊은이들에게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체 게바라의 이 여행기가 끼친 영향은 실로 거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끄트머리에서 저개발국의 자원을 사들여 가공한 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물질적 풍요로움 뒤에서 여전히 소외받고 있는 도시빈민과 노점상들, 하루가 멀다하고 폐업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과 수많은 형태로 노동을 착취당하거나 임금을 떼이고 있는 비정규직들에게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보고 듣고 배우고 드디어 각성하게 된 남미의 현실과 현 한국의 그것이 겹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정치적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는 어느 곳이나 똑같이 민중에게만 강요된다는 증명인가? 남미를 착취했던 미국과 한반도를 유린했던 일본은 씻을 수없는 수많은 상처만을 남겼고, 식민의 기억을 떨쳐내고 자강자립하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오만하고 자신들의 피묻은 과거를 진심으로 사죄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세계의 패권을 놓으려 하지 않고 있는 미국과 아시아에서의 정치경제군사적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하고 있는 일본의 행태는,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남미를 돌며 보고 깨달았던 강대국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논리에 대한 저항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당장의 취업에 골몰하느라 영어책이나 자기계발서 이외에는 읽지 않고 소위 스펙쌓기에 열중하느라 정작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에 두뇌를 예리하고 지성적으로  만들기는커녕 자본과 물질에만 기울도록 하는 현실에 기만당하지 말고 그럴수록 확고한 세계관과 정치의식,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기본적인 교양을 쌓고 자신과 민족, 국가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만약 내가 20대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삶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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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자서전 (개정판) -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 - 체 게바라 전집 1, 개정판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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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체 게바라를 언급하는가? 표면적으로 동서 이념 대립은 끝났지만 미국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의 거대한 흐름을 주도하며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노동의 신성함을 짓밟고 있는 이 시대에? 어쩌면 그래서 더욱 체 게바라라는 인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 체 게바라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반미를 외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계승자들에게는 비록 체 게바라의 육체는 소멸했어도 그 혁명정신 만큼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 속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엄연한 실체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체 게바라의 혁명은 볼리비아에서 종말을 고했지만, 그의 정신과 행동력, 민중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의 삶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혁명동지인 피델 카스트로는 물론이고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민중의식에 눈 뜬 의사이자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 남미의 대표적 시인인 빅토르 카시우스 등의 걸출한 인물들 외에, 서구의 식민지였던 제 3세계 국가들의 젊은이들과 식민지 경험을 극복하려 안감힘 쓰고 있는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아마 20세기에 자유와 평등을 꿈꾸던 사람치고 체 게바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쿠바 혁명의 성공과 볼리비아에서의 비극적 죽음은,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안락함과 물질적 富, 개인적 행복 따위의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것도 자발적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민중과 호흡하며 민중을 위해 정신과 육체 모두를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의사로써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그 모든 명예와 세속적 성공을 벗어 던지고 혁명가로써, 때로는 시인으로써, 자상한 아버지로써, 그렇게 살다가 불꽃처럼 꺼져 버린 체 게바라의 삶은, 글로도, 사진으로도, 영화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순도 100%의 완벽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육박해온다. 그의 삶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邪的 욕망에 사로잡혀 얼마나 쉽게 일을 그르치는가? 체 게바라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민중의 해방을 위해 헌신했다. 과연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나약하며 자기보존에만 힘쓰는 동물이란 말이냐? 체 게바라는 이타적이고 강인했으며 타인의 삶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과연 그에게 안락한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 없었을까? 그러나 가족과 함께 즐겁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은 세속적 욕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더 절실한 대의를 위해 오직 한 길로만 가기로 결심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체 게바라 이후에 살게 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깨어지지 않을 상징으로써 체 게바라에 열광하고 그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닮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서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잊어 버리자. 오직 그가 품었던 민중에 대한 사랑과 혁명정신만을 기억하자. 그리고 조금씩 邪慾을 줄여 나가자. 그러면 언젠가는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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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지성인 - 개정판
에드워드W.사이드 지음, 전신욱.서봉섭 옮김 / 창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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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W.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과 동의어라 할 만큼 서양의 동양 지배담론으로써의 오리엔탈리즘을 널리 알린 학문적 업적만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억될 지성인의 대표적 이름이다([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리뷰는 빠른 시일 내에 올리도록 하겠다. 처음 읽었던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데다 현재 강의준비의 일환으로 三讀중이다). 이 책은 그가 1993년에 영국 BBC의 Reith Lectures에서 행한 여섯 번의 강좌를 묶은 것이다. 원제는 [Representation of the Intellectual]인데, 역자들은 본문 내의 문맥에 따라 재현, 표현, 표상, 대변 등으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책 전체를 꿰뚫고 있는 사이드의 의도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용어는 代辯인듯 싶다(기회가 되는 데로 영어판을 구해 다시 읽을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강좌에서 사이드가 인용하고 있는 쥘리앙 방다의 정의에 따르면 ".....진정한 지성인들은 정의와 진리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열정과 이해관계를 초월한 원칙들에 의해 움직이면서, 부패를 비난하고, 약자를 옹호하고, 불완전하고 억압적인 권위에 도전할 때에 바로 지성인 그 자신들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p.36~7) 또, 사이드 자신은 "나에게 있어 핵심적 사실은 지성인이 일반대중을 위해서는 물론, 일반대중을 향해 메세지, 관점, 태도, 철학, 여론을 재현하고, 구체화하고, 표명하는 재능을 부여받은 개인으로서 생각한다."(p.44)고 전제한 뒤, "나는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청중이나 주민에게 나의 관심 사항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관심 사항의 단순한 제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표명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자유와 정의에 대한 대의명분을 발전시키려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스스로 무엇을 표상해야 하는 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p.44~5)라고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서 좀더 구체성을 띄게 된다. 그러니까 지성인은 인간 사회에 대해 말을 하는 개인인 동시에, 그 말을 통해 평균적인 대중에게 현실을 여하히 재현하여 환기시킬 것인가에 열정을 쏟는 사람인 것이다. 대중의 세계 인식이란 얕고 천박한 것이어서 유행이 끝나면 금새 잊혀지고 또 따른 유행에 몰리는 습성을 갖고 있는지라, 예를 들어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이집트와 리비아, 시리아 등에서의 민주화 열망에 대한 정치적 관심 또는 내전 지역에서의 비인간적인 만행에 대한 분노 보다는 당장 나의 감각적 쾌락과 주식시세의 등락 따위에 골몰하는 바, 이들에게 올바른 세계 인식과 해석의 능력을 부여하여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써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여론에 속지 않으며 진정한 평등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려면 지성인 자신이 먼저 철저한 세계 인식과 도덕성, 그리고 권력에 대해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적인 사건이나 한국 역사를 보더라도 부패한 권력이나 억압적인 정치체제에 맞서 마땅히 할 말을 하고 대중들을 이끌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했던 지성인들이 있었다. 이렇게 공적역할을 수행하는 지성인의 도덕성은, 인간의 자유와 지식을 신장시켜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지식의 확대로 이어지는 일련 과정의 첫 번째 요소로써,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당연한'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대안의 제시로 이어진다. 즉, 지성인은 거대권력의 파괴적 속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 뛰어 들어가 대중에게 그것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주저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성인이란 국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정치적,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에 저항하고 진정한 시민적 자주성과 자유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실천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성인이 자신의 국민들의 집단적 고통을 재현하고, 그 고통의 극심함을 입증하고, 고통의 지속적인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고통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의무가 있음에 틀림없다는 점이다."(p.88)라고 할 때, 이러한 정의에 들어 맞는 지성인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단순한 지식인이었거나, 권력에 타협하여 일신의 안락함으로 복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러면 위와 같은 의무를 행하며 끝내 굽히지 않았던 지성인들이 한국 현대사에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함석헌이나 윤이상, 김수영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라 믿는다. 이들이야 말로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재현하고 그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영속화해오지 않았던가?

 

지식이 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지성인이 권력 속에 안주 할 때, 그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퇴보의 큰 원인이 된다. 지성인의 역할은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유지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고 권력을 대변하는 타락한 모습은 지성인을 지향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진정한 지성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곧 그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고 실제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를 닮고 싶다.  

추기: 번역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이 책이 정식 저작권을 득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번역자들의 약력이 정확하다면 번역의 질이 매우 낮은 편이다. 영어판을 접해보질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꽤 여러군데 뜻이 통하지 않고 문맥 자체가 이해않가는 부분도 많다. 편집자의 실수인지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전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원저자의 명성에 누가 되는 부실한 번역본은 책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은커녕 반드시 읽어야 할 당위성마저 반감시킨다. 향후 견실한 출판사에서 가능한 에드워드 W. 사이드를 존경하고 그의 글에서 힘을 얻는 역자에 의한 새 번역서가 나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따라서 이 책에 부여한 별 2개는 원저자나 영어판 원서가 담고 있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한국어 번역본에 대한 평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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