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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없이 잠자거나 바둑 혹은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p.49~50)
청장관 이덕무의 글을 모은 [책에 미친 바보] 중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당신은 왜 책을 읽는가? 책이 아니어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는 것은 널려 있지 않은가? 구태여 책을 읽지 않아도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있다면 책 따위는 한갖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왜 읽어야 하는가? 사람마다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이나 독서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테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의미하는 밑바탕에는 결국 자기 수행 또는 자기 계몽이라는 실천적 목적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덕무는 조선의 선비들 중에서도 방대한 독서량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대표적 독서인이다. 그의 삶은 태반이 경서와 제자백가, 고금의 역사와 문물제도, 음운학, 문자학, 역대문집, 농서와 의서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독서로 형성되었다. 그는 책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로 자신의 삶을 도덕적이고 경건하게 유지해 나갔고 인간적 고뇌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최소한도로 소박하게 살았다. 지독한 가난에 수시로 끼니를 거르면서도, 굶주림으로 누이동생을 먼저 보냈음에도, 그럴수록 책에 대한 애착과 독서에 대한 집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혹자는 경제활동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독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이덕무가 살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선비라는 신분이 지니고 있던 사회적 역할이 생산활동과는 거리가 있었고 오직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 한정되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선비의 독서행위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방법론을 제시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독서행위와 생산활동을 같은 반열에 두었던 사회적 분위기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덕무는 많은 글에서 독서의 당위성 내지 독서의 취지 또는 독서 방법등을 수시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독서는 배가 고플 때도, 추울 때도, 마음이 괴로울 때도, 병에 걸렸을 때도 결코 그만둘 수 없었던 그 자체 생존의 이유였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예절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추는 행동에서 도리에 어긋난 점을 저절로 깨닫게 되니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의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한 번 주리고 한 번 배부른 일에서 위태롭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되니 번민하는 마음이 생긴다....."(p.51~2)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고 출판되는 책의 종류나 양이 엄청난 시대에, 그럴수록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읽는다 해도 대중소설 같은 베스트셀러나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소위 자기계발서 등은,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거나 삶의 자세를 설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책읽기 이전에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가 관건인것이다. 위의 글처럼 이덕무는 사서육경은 물론 의서, 농서, 법률서 등 그 시대에 접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분야의 책들을 초인적으로 읽어냈다.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뿐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그 순환원리에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삶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거의 모든 지혜들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관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당신은 관심 분야가 몇 개인가? 그 관심 분야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에 의지하는가? 아무리 인터넷, 스마트 시대라고 해도, 속도가 인간의 정신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책상 앞에 앉아 관심 분야의 책을 펴고 차분하게 한 장씩 읽어나가는 것에 비할 생산적 행위가 또 있으랴! 관심 분야가 많을 수록 외부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지킬 수 있다. 관심 분야의 명저들을 읽으며 속세의 잡음들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자기수양에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