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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일본문학, 그것도 현대문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하루키도 읽지 않고 일본의 수많은 장르 소설은 더군다나 멀리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촌의 헌책방인 <숨어있는 책>에서(책 뒤에 써놓은 내 서명을 보니 2014. 1. 5(日)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 저기 서가를 기웃 거리다가, 우연히(정말 우연이다, 그 많은 책들의 제목만을 훑어보는 것도 무척 피곤한 일이니까) 거의 새 책으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는, 대단히 도발적인 제목의 인생론을 보고는 호기심에 뽑아 들었다가, 저자의 이름이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라는 일본의 소설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사 갖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 해보니 그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도 대단히 독특하고 독립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평균적인 일본인답지 않은,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과연 나의 선택은 적중했다.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독설과 파격적인 사고의 흐름, 안정만을 추구하면서 무감각하게 반복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삶에 대해 던지는 독침과 같은 한 방, 곳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단히 직설적으로 날리는 비수와 살을 베는 칼날의 날카로움이, 마치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목소리인냥 참으로 통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평소에 내가 말하고 싶었으나 나의 자기검열로 인해 꾹 참고 차마 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마루야마 겐지의 입을 빌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했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에 관한 인생론일까? 소제목 몇 개를 나열해 보자. ‘가족, 이제 해산하자.’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신(神) 따위 개나 줘라.’ 등등. 대충 어떤 내용들이 전개되어 나갈지 감이 오지 않는가? 분명 인생론인데, 오래 전에 읽었던 레프 톨스토이나 김형석, 안병욱 따위의 극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생론에 비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비판적 인생론에서 몇 걸음 더 나아 간, 극히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그러면서도 핵심을 찔러 당신과 나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 되어가고 있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뇌 속에 찔러 준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를 오히려 능가하는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부모와 가족, 직업과 가정, 국가와 종교, 사랑과 연애 등의, 지극히 현실적인 사항들을 하나하나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지금까지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일본인들에게(아니, 인간의 얼굴을 한 대다수에게) 사회적 평균과 외적인 기준, 소시민의 자기만족적인 행복이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는 소수에 의해 얼마나 교묘하게 조종당하고 있는지, 또는 자신의 뇌로 생각하기를 극히 싫어하고 언제나 타인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무뇌아적인 젊은이들의 행태나, 자식에게 부담을 안기거나 응석받이로 키우는 부모들을 과감히 버리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근간을 지탱해 온 가치와 도덕률, 또는 윤리관 등을 뒤흔드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작가(1943년생)가 일본에서 이 책을 출판한 해가 2012년이니까 작가의 나이 69세 때의 에세이인데, 노년에 다다르기까지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전혀 다른 방향성과 사상을 지니고 살아 온 노 작가의 경험이 100% 투영된, 참으로 파격적인 인생론이라 말할 수 있겠다. 책 곳곳에서 일본의 우익과 대기업 간부, 또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도 간접적이나마 읽을 수 있어서 다치바나 다카시 이후 내가 경원(敬遠)할 만한 일본 지성인이 또 한 사람 생긴 셈이다(이 참에 국내에 나와 있는 그의 소설들도 구해서 읽어 봐야 하겠다). 만약 2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나는 50을 바라보는 중년이다) 작가의 의견을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해보고(물론 자신의 뇌를 써서), 과감히 행동으로 옮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계속 그렇게 살 것인지 등, 가치관의 변화를 끌어내보라는 뜻이다. 누구를 위한 스펙인지, 대기업에 취직해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사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역발상 등, 가능성 많고 능력개발 여지가 무한한 젊은 시절을 오직 연봉과 아파트, 자동차에 올 인 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가정이나 국가, 종교, 대기업 따위의 기존 질서는 무너지지 않겠지만, 그것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저항할 수 있는 힘과 그로 인한 내 인생의 독립,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나 자신의 통찰력은 생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