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대한민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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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인간을 치료하고, 돌보며, 궁극적으로는 죽음과의 대결에서 생명 연장, 삶의 질 향상 등을 추구하는 분야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주요 연구 대상이라는 말이다. 반면 의학의 분과인 법의학은 죽은 인간을 대상으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듯, 특히 살인 사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희생자나 또는 자살자, 변사체 등의 죽음의 원인, 사망 시각 등을 부검이나 DNA, 치아, 혈액, 모발, 타액 등을 통해 정밀하게 추적하여 밝혀내는 응용 학문이다. 나는 꽤 오래 전(아마 1990년대 중반쯤)부터 법의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몇 권의 책을 읽어 왔는데, 최초로 읽었던 책이 바로 한국 법의학자 1호인 문국진 박사가 쓴 『모남갈녀훈』이었고, 이어서 미국의 법의병리학자 마이클 베이든의『죽은 자들은 토크쇼 게스트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와 하와이 대학의 법곤충학자 M. 리 고프의 『파리가 잡은 범인』, 일본의 법의학자 우에노 마사히코의 『독살-법의학의 눈으로 바라본 독살 사건들』, 그리고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인 이윤성의 『법의학의 세계』등을 차례로 찾아 읽으며 법의학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쌓아 나갔다. 여기에 각종 법의학적 지식으로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서술한 관련서까지 포함시킨다면 지금까지 대략 30여권은 읽은 셈이다. 물론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의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얼마나 이해를 했을까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전혀 관심 없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튼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인 만큼 신간이 나오면 얼른 구입해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 읽은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대한민국 최초의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과 진실 규명』이라는 대담집은 문국진 박사의 인품과 성실성까지 알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약력에 의하면 문국진 박사는 국내법의학 제 1세대로서 한국 법의학의 기초를 다졌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위에 든 『파리가 잡은 범인』의 번역자가 바로 고려대 제자인 황적준 교수다)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법의학으로 규명하여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어준 탁월한 학자이기도 하다. 문국진 박사가 법의학을 선택한 계기도 독특한데, 대학 3학년 때 청계천에서 비를 피하려고 들어 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서서 읽었던 일본의 후루하다 다네모도가 쓴『법의학 이야기』(아마 일본어였을 것이다)에 나오는 “사람에게 생명도 중요하지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법의학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발달한 민주국가에서만 발달한다. 따라서 법의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나 민주화 정도를 알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인해서 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라는 말에 반해서 평생 학문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에는 그의 다른 저서에서는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일화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례들이 줄이어 나오는 관계로 읽는 재미 또한 탁월하다. 이 대담집을 다 읽고 나서 문국진 박사의 온화하지만 확고한 인품과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그리고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끝없이 솟아나는 지적인 호기심에 존숭의 감정마저 생겼다. 문국진 박사의 투철한 지성과 냉철한 탐구심이 곧 죽은 사람에 대한 가없는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니, 결국 사랑이 죽음도 포용함을 깨닫게 되었다. 의학의 사회적 역할 이전에 의사의 인품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비례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책 뒤표지에 있는 문국진 박사의 말, “법의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억울한 자가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학문이요.”가 오래도록 마음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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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뢰겔 - 이상한 천국의 풍경을 꿈꾸는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3
닐스 요켈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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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요켈의 『브뢰겔-이상한 천국의 풍경을 꿈꾸는 화가』를 읽었다. 대학 강의 준비의 일환으로 읽은 책이지만, 전부터 브뢰겔의 독특한 풍속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16세기 스페인 지배 하의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화가 피에터 브뢰겔은 그래서 오히려 농민들의 생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려 했던 예술가였다. 그의 그림 소재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부들의 생활상은 당대 민중의 삶이 곧 대다수 인간의 삶이며, 그 어떤 왕족이나 귀족 따위 계급적 질서가 만들어내는 온갖 모순과 불평등을 넘어설 수 있는 원동력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농부의 결혼식을 그린 장면에서 볼 수 있는 흥겨움과 공동체의 나눔, 그리고 나날의 노동에서 해방되어 먹고 마시며 즐기는 그 시공간의 자유가 진정한 인간의 평등임을 브뢰겔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브뢰겔은 그림은 등장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고 몸동작이나 손 짓 등에 주목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만큼 민속학이나 인류학 또는 역사학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희노애락오욕칠정이 수없이 얽혀 있는 인물과 인물 사이를 거니노라면, 역사와 인종을 뛰어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브뢰겔의 그림을 보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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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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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문학, 그것도 현대문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하루키도 읽지 않고 일본의 수많은 장르 소설은 더군다나 멀리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촌의 헌책방인 <숨어있는 책>에서(책 뒤에 써놓은 내 서명을 보니 2014. 1. 5(日)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 저기 서가를 기웃 거리다가, 우연히(정말 우연이다, 그 많은 책들의 제목만을 훑어보는 것도 무척 피곤한 일이니까) 거의 새 책으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는, 대단히 도발적인 제목의 인생론을 보고는 호기심에 뽑아 들었다가, 저자의 이름이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라는 일본의 소설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사 갖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 해보니 그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도 대단히 독특하고 독립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평균적인 일본인답지 않은,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사람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과연 나의 선택은 적중했다.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독설과 파격적인 사고의 흐름, 안정만을 추구하면서 무감각하게 반복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삶에 대해 던지는 독침과 같은 한 방, 곳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단히 직설적으로 날리는 비수와 살을 베는 칼날의 날카로움이, 마치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목소리인냥 참으로 통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평소에 내가 말하고 싶었으나 나의 자기검열로 인해 꾹 참고 차마 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마루야마 겐지의 입을 빌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했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에 관한 인생론일까? 소제목 몇 개를 나열해 보자. ‘가족, 이제 해산하자.’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신(神) 따위 개나 줘라.’ 등등. 대충 어떤 내용들이 전개되어 나갈지 감이 오지 않는가? 분명 인생론인데, 오래 전에 읽었던 레프 톨스토이나 김형석, 안병욱 따위의 극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생론에 비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비판적 인생론에서 몇 걸음 더 나아 간, 극히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그러면서도 핵심을 찔러 당신과 나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 되어가고 있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뇌 속에 찔러 준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를 오히려 능가하는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부모와 가족, 직업과 가정, 국가와 종교, 사랑과 연애 등의, 지극히 현실적인 사항들을 하나하나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지금까지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일본인들에게(아니, 인간의 얼굴을 한 대다수에게) 사회적 평균과 외적인 기준, 소시민의 자기만족적인 행복이 권력과 금력을 쥐고 있는 소수에 의해 얼마나 교묘하게 조종당하고 있는지, 또는 자신의 뇌로 생각하기를 극히 싫어하고 언제나 타인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무뇌아적인 젊은이들의 행태나, 자식에게 부담을 안기거나 응석받이로 키우는 부모들을 과감히 버리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근간을 지탱해 온 가치와 도덕률, 또는 윤리관 등을 뒤흔드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작가(1943년생)가 일본에서 이 책을 출판한 해가 2012년이니까 작가의 나이 69세 때의 에세이인데, 노년에 다다르기까지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전혀 다른 방향성과 사상을 지니고 살아 온 노 작가의 경험이 100% 투영된, 참으로 파격적인 인생론이라 말할 수 있겠다. 책 곳곳에서 일본의 우익과 대기업 간부, 또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도 간접적이나마 읽을 수 있어서 다치바나 다카시 이후 내가 경원(敬遠)할 만한 일본 지성인이 또 한 사람 생긴 셈이다(이 참에 국내에 나와 있는 그의 소설들도 구해서 읽어 봐야 하겠다). 만약 20대가 이 책을 읽는다면(나는 50을 바라보는 중년이다) 작가의 의견을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해보고(물론 자신의 뇌를 써서), 과감히 행동으로 옮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계속 그렇게 살 것인지 등, 가치관의 변화를 끌어내보라는 뜻이다. 누구를 위한 스펙인지, 대기업에 취직해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사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역발상 등, 가능성 많고 능력개발 여지가 무한한 젊은 시절을 오직 연봉과 아파트, 자동차에 올 인 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가정이나 국가, 종교, 대기업 따위의 기존 질서는 무너지지 않겠지만, 그것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저항할 수 있는 힘과 그로 인한 내 인생의 독립,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나 자신의 통찰력은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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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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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날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고 학문과 인생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준 사람들을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며 경배한다. 괴테와 폴 발레리, 몽테뉴, 부르크하르트, 에라스무스, 츠바이크, 호이징가, 스펜더 등이 저자가 숭배하는 마에스트로들이다. 모두 유럽의 작가나 역사학자 등인데, 이들의 책을 읽으며 저자가 보냈던 시간들이 곧 지적 편력의 시작이자 끝임을 담담하면서도 그리움 가득한 문체로 써내려 간 이 책 역시 예술품이라 할 만 하다. 당신은 당신을 이끌어주는 마에스트로를 가졌는가? 나를 이끌어주는 마에스트로는 다산 정약용 선생과 연암 박지원 선생, 그리고 청장관 이덕무 선생이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과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가르쳐준 내 삶의 한줄기 서광과 같은 분들이다. 도덕과 윤리가 뿌리째 뽑히고 물질적 이익 앞에서 너무도 쉽게 자신의 양심을 파는 이 시대에, 독서와 학문, 흔들리지 않는 한 마음으로 곧은 삶의 모습을 지켜나간 이들의 삶의 태도는 내게 그 어떤 사상보다도 나를 이끌어주는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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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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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 2세인 서경식 선생이 몸과 정신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을 그 스산함과 고뇌, 그리고 간혹 찾아 들었던 '그래도 살아 있다'는 기쁨 등의 온갖 감정들이 서양 고전음악을 매개로 하여 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속살을 드러낸다. 그가 재일 조선인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토록 아름답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의 정치적 측면을 간파해내고 어떤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정치적 편의에 의해 왜곡, 변형되어 권력과 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 동원될 수 있음을 논하는 부분에서 확인된다. 나치의 제 3제국이나 현재의 북한을 생각해보면 무슨 뜻인지 잘 알것이다. 즉, 서경식 선생은 서양 고전음악 듣기를, 단순히 정서의 순화나 심미감의 확대를 위한 극히 개인적 시공간을 넘어 남북분단이라는 조국의 현실과 식민모국인 일본에 태어나 살면서 끝없이 분열되어 온 자아의 통합을 향한 실존적 몸부림으로 '기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음악 듣기에서 삶의 본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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