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3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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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 주에 사는 신사 셸비는 사업으로 빚을 져서 데리고 있는 흑인 노예를 팔아야 되는 상황이다. 셸비의 약속어음을 가지고 있는 노예상인 헤일리는 데려가고 싶은 콕 집어 노예를 요구한다. 한 명은 일 잘하고 신앙심이 깊으면서 셸비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섬겼던 톰이었고, 다른 한 명은 쿼드룬(흑인의 피가 1/4 섞인 혼혈) 아이인 해리였다.

 

어린 해리의 엄마 엘리자는 그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 후, 자신의 주인 셸비 부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한다. 셸비 부인 역시 엘리자를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기에 가족처럼 생각해 절대 그들을 팔지 않겠다고 했지만, 남편의 사업이 안 좋아서 그들을 팔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는 해리를 데리고 밤중에 도망치기로 하고, 가기 전 톰의 오두막에 들러 그에게도 소식을 전한다. 톰은 자신의 몸값으로 주인의 빚이 청산될 수 있다면 도망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하며 운명을 받아들인다. 톰이 가기 전, 셸비의 아들 조지를 비롯해 셸비 부인까지 그를 꼭 되사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톰은 헤일리를 따라 멀리 떠나게 된다.

 

제목은 정말 익숙한 책이지만, 정작 처음 읽어본 소설이다. 무슨 내용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흑인 노예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끔찍한 사고방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해서 경악했다.

어떤 백인들은 흑인을 감정을 가진 하나의 존재라고 보질 않았다. 그런 백인들에게 흑인 노예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인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흑인을 팔고, 죽으면 묻어주기는커녕 갖다 버리고선 새 노예를 샀다. 그리고 부모에게서 아이를, 유일한 가족인 형제, 자매를 서로 떼어내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렸다. 자신의 가족이 누구에게 팔려가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흑인을 백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정말 말이나 되는 걸까 의심했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으로도 보지 않고 감정도 다르다고 여기는 게 당시 일부 사람들이 실제로 가졌던 생각이라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좋은 사람도 있었다. 셸비 부부처럼 흑인을 노예로만 보는 게 아닌 가족이라 생각하고 글자도 알려주며 충실함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었다. 톰이 셸비를 떠나게 된 후 혹시라도 끔찍한 주인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톰이 목숨을 구해준 귀여운 소녀 에바가 아빠 세인트클레어에게 톰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사달라고 졸라서 그의 집에서 한동안 행복하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세인트클레어의 부인 마리는 흑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수발을 드는 흑인 하녀는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마리는 누군가의 유언이자 죽기 직전 톰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행동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유언인데!! 그 후로 톰이 온갖 힘든 일을 겪게 된 건 다 이 여자 탓이었다. 그래서 정말 끝까지 밉고 싫었다.

 

좋은 주인만 만났던 톰은 이기적인 마리로 인해 목화를 따는 면화 농장 리그리에게 팔려가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한다. 같은 흑인을 채찍으로 때리라고 하는 리그리는 정말 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톰은 신앙과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올곧고 바른 마음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더 숭고하게 느껴졌다.

 

흑인 노예에 대해 주제 의식을 가진 소설이지만, 때로는 의아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톰이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몇몇 인물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해설에도 나와있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인위적인 장치였다. 정말 뜬금없이 죽어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독교적인 내용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는 점이었다. 성경이 인용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고 어떤 등장인물과 일어나는 사건은 성경 내용을 투영한 것 같은데, 성경을 안 읽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긴 했어도 이 소설이 일으킨 파장을 생각하면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1800년대 중반에 흑인 노예에 대한 이런 소설을 감히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지금이라면 부당하다고 당연히 말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그때는 지금과 다른 시대였으니 이렇게 책으로 낼 수 있었던 건 굉장한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여성 작가가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나라가 있지만 제게 무슨 나라가 있습니까? 저처럼 노예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들이 무슨 나라입니까? 우리에게 무슨 법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법을 만들지도 않았고, 동의하지도 않았고, 그런 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 법은 우리를 깨부수고 우리를 짓누를 뿐입니다." 1권 - P202.203

"부인, 당신의 두 아이가 갑자기 당신과 헤어져서 팔려나간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감정 기준을 저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겠지요." 1권 - P224

감정을 갖고 있고, 살아 있고, 피 흘리고,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이 ‘물건‘을, 미국의 국법은 톰이 누워 있는 짐 꾸러미, 짐 뭉치, 상자들과 똑같이 판매 가능한 ‘물건‘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1권 - P237

"아무리 세련된 형태로 노예제도를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본질 면에서는 같습니다. 즉, 한 인간 집단이 자신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다른 인간 집단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팔려가는 집단의 이익과 발전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2권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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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 모라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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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이애미 저택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범죄 전문가들이라면 누구나 솔깃한 소문이지만, 집안에 있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발견한다고 해도 특수 제작 금고에 폭탄이 설치가 되어있어 잘못하면 금괴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기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거기다 집은 중개인의 관리하에 얼마 동안 대여만 가능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보안장치와 밤에는 상주하는 관리인 카리 모라가 있었다. 집안에 있는 온갖 이상한 물건들 때문에 그동안 많은 관리인들이 일을 때려치웠지만, 잘못하면 미국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상태였던 카리는 돈이 너무 필요했기에 그곳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스코바르의 숨겨진 금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스 피터는 영화 촬영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 집을 빌린다. 부하들에게는 금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라고 시키고, 한스 피터는 아름다운 카리를 보며 좀 가지고 놀다가 장기 등을 팔아넘길 계획을 세운다.

 

 

 

 

 

 

카리가 집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경험 때문이었다. 어릴 때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에게 끌려가 온갖 훈련을 받으며 살았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소년과 도망쳐 살다가 결혼하는 날 끝까지 자신들을 쫓는 그들에게 예비 신랑을 처참하게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보호 상태라 이민국의 주시를 받고 있었다. 돈이 필요한 불안정한 상황이 카리를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녀를 눈독 들이는 한스 피터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긴 했다. 여자의 장기를 꺼내 팔고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액화 화장 기계에 넣고 녹여 변기에 흘려보냈다. 그 어떤 추적도 할 수 없었기에 한스 피터의 악랄한 행동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 외에 에스코바르의 금을 노리는 "텐 벨스 절도단"이 등장해 카리의 도움을 받았고, 집을 습격당한 경찰 테리 로블레스도 등장했다. 저마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에스코바르의 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던 셈이었다.

 

책 제목이 <카리 모라>라서 당연히 카리를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될 줄 알았지만, 온갖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한스 피터는 그렇다 쳐도 텐 벨스 절도단의 몇 명과 중간에 사망한 사람들 두어 명이 있었고, 테리 로블레스의 개인사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사망한 사람의 변호사의 시점도 등장했다. 읽으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왜 하는 건지 의문을 갖게 했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내용에는 걸맞은 등장이었지만 굳이 한 챕터씩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시점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초반과는 다르게 점점 흥미를 잃어 읽는 동안 딴짓을 좀 하느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소설을 예상보다 오래 읽었다.

 

결말엔 금괴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이제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뒤통수를 치고 그것마저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설마 후속편이 나오나?) 그나마 카리와 한스 피터의 긴박한 상황이 등장하긴 했지만 아주 짧기 때문에 스릴이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한니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토머스 해리스의 13년 만의 소설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주진 않았다. 책 뒤편과 띠지에 쓰인 찬사가 무색하게 별 재미를 못 느꼈다. 그냥 읽었을 뿐이었다.

한니발 렉터를 넘어서는 괴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한스 피터는 별 볼일 없는 사이코패스였고(근데 무모증이란 설정은 왜 필요했을까?) 카리 모라는 뭐 여전사까진 아니고 그냥 강한 여자 정도였을 뿐이었다.

 

작가가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가 요즘 인기를 끄는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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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1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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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세계문학 브런치>로 브런치 시리즈를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나름 유익했던 터라 이번엔 다른 시리즈를 읽어봤다. 그동안 내가 안 읽은, 아마도 처음 읽는 것 같은 철학에 관한 주제로 쓴 책이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이 먼저 생기는데, 역시나 선입견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론은 쉽게 읽을 수 있었던 반면, 현대로 가까워져 올수록 오히려 더 어려웠다. 이게 대체 뭔 말인지 싶어서 철학자의 책에서 옮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했다. 그나마 작가 나름의 해석을 통해 의문은 좀 가시긴 했으나 100%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게 참 난감하다.

 

 

 

"철학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사람 중에 한 명인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쓴 저서가 단 한 권도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을 알 수 있었던 건 그의 제자 플라톤 덕분이란다. 제자를 잘 둬서 기원전에 살았던 인물이 21세기에도 널리 알려진 셈이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관한 내용은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누군가가 어떤 이론이나 명제를 제시하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그의 말이 틀렸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읽고 있는 나도 짜증 나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열받았겠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소크라테스의 정적이 많았다고 한다. 큰 죄가 아니었음에도 독주를 마시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니, 말꼬리 잡는 문답법이 소크라테스의 인생을 낚아채버리고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여러 과학 용어들을 처음 사용했고, 그의 저작을 통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과학, 에너지, 진공, 제5원소 등의 물리·화학 용어, 생물학, 삼단논법 등의 문학·논리학까지 굉장히 많은 용어들을 확립시켰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팍스 로마나"를 이끈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을 이끌며 스토아철학의 정수라 불리는 <명상록>을 남겼다. 철학과 인문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능력 있는 자를 양자로 들여 왕위를 계승하는 전통을 깨고 자신의 친자인 코모두스에게 넘기는 바람에 로마를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게 당황스럽다. 철학자도 자식 일에는 어쩔 수 없다.

 

근대 철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관한 부분은 글만 읽어서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할 수는 있지만,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게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트랜센던스>, <아바타>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하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눈높이에 맞춘 이런 설명 정말 환영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이 신학에 대해 남긴 생각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어떤 말은 정말이지 너무 공감이 됐다.

"우리의 존엄성은 전부 사유 안에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고양해야 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압적이다."

 

독일 관념론을 완성시킨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은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책의 설명을 통해 이번에 알게 됐다.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글은 그냥 읽었다. 언젠가는 다시 접하게 될 기회가 있겠지 싶다.

 

 

 

철학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주일에 한 번 철학 수업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 수업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딱 하나 기억나는 건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게 하고 몇 명 뽑아서 발표를 시켰던 것이었다. 그중에 나도 뽑혀서 반 아이들 앞에서 낭독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발표였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진짜 뭘 배웠지?)

 

철학이란 그만큼 머리에 잘 안 들어오는 학문인가 보다. 사유의 바다에 깊이 빠져 고뇌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철학을 접하고 나면 나중에 다른 철학 책을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도무지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까 나중에 좀 더 쉬운 책으로 다시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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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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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는 주말에 집에서 세 아이를 보는 게 싫어서 아내 테리사에게 일 때문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한 뒤, 초대받지 않은 세례 파티에 간다. 지역 경찰관인 픽스와 아름다운 베벌리의 둘째 딸 프래니를 위한 자리였다.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버트는 낯선 이들 사이에 모여있기보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오렌지주스를 짜는 베벌리를 도와주며 은밀한 공상에 빠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픽스가 프래니를 누가 데리고 있는지 찾아봐달라는 부탁에 버트는 집을 둘러보다가 여러 아기들이 잠든 방에 있던 베벌리와 마주친다. 묘한 분위기에 빠진 두 사람은 키스를 하게 되고, 그 후 몇 년 뒤 버트와 베벌리는 각자의 남편, 아내와 이혼 후 결혼해서 버지니아로 떠난다.

 

베벌리와 픽스의 딸 캐럴라인과 프래니는 엄마를 따라 버지니아에서 살게 됐고, 버트와 테리사의 자식들인 캘, 홀리, 저넷, 앨비 역시 엄마와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남는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따로 사는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라 반대편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돌아오곤 한다. 각기 다른 학교 일정 때문에 버트와 베벌리의 집에서 여름 얼마 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 여섯 아이는 그렇게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관계로 서로 어울리지만, 어느 여름날의 사건으로 아이들은 부모들이 모를 비밀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다.

 

버트와 테리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픽스와 베벌리의 나름 행복했던 가정은 두 사람의 키스로 인해 완전히 깨지고 말았는데,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없긴 했다. 캐럴라인과 프래니가 엄마가 아닌 아빠와 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알아서 잘했고, 네 명이나 되는 테리사의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나름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여름방학 동안 한 집에서 지내며 어울리면서 어른들에게 절대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 생겼다. 당시 여섯 살로 제일 어렸던 앨비가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자, 알레르기 약을 늘 가지고 다니던 캘이 막냇동생에게 약과 진을 먹게 해 재워두고 다섯 아이들만 노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로도 종종 앨비가 귀찮게 하면 캘이 늘 약을 줘서 동생을 재워버렸다.

 

여섯 아이의 어린 시절인 과거 시점과 성인이 된 프래니와 앨비, 그리고 가끔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현재가 등장했다. 로스쿨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바에서 일하다 좋아하는 노년의 작가 리오를 만나 함께 살게 된 프래니와 10대 때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 이후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떠돌아다니던 앨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후반에는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픽스를 보러 간 캐럴라인과 프래니, 혼자 사는 테리사가 아파서 보러 가는 픽스와 딸들, 엄마의 두 번째 남편 버트를 만난 프래니의 모습 등도 이어졌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기에 보채는 앨비가 약을 먹도록 한 것이었고, 그 사건이 불러일으킬 끔찍한 사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두려운 마음에 피하려고만 해서 부모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못 할 비밀로 간직하게 된다. 그러다 프래니가 소설가 리오를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소설로 나왔을 때 큰 파장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책을 그리 즐겨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당시 어려서 몰랐었던 앨비만이 그때의 일을 알게 되어 연락이 끊어졌던 프래니를 찾아냈을 뿐이었다.

 

소설 내용 중 가장 큰 사건은 캘의 사고이고 진실도 중반 이후에 밝혀지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사건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는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관계였다. 앨비와 유독 친해서 그를 남동생이라 부르고 새아버지 버트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이어간 프래니, 가족을 이룬 저넷과 그녀의 살가운 남편을 보며 방황을 끝낸 앨비가 있었다. 픽스는 아내를 빼앗아간 버트를 미워했을지라도 방화 사건을 일으킨 그의 아들 앨비를 두말 않고 보호감호소에서 꺼내줬고, 후반에 프래니는 테리사와의 관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단어로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바람이 나서 가정이 깨지긴 했지만, 모두들 서로를 탓하지는 않았다. 픽스가 농담처럼 말하던 때가 있긴 했어도 마음에 담아뒀을지도 모를 미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까지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도 이렇게 살았으며, 굳이 이어붙이지도 억지로 끊어내지도 않은 관계가 물 흐르듯 흘렀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가 굉장한 대인배처럼 보여 대단하게 느껴졌다.

버트는 테리사에서 베벌리로 이어진 결혼생활에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를 찾은 프래니를 보며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이제는 상관없어서 그럴 수 있던 건지 조금 의문이긴 했다. 저런 사람일지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들의 인생을 일상을 보여주듯 이어가는 소설이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는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독특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마지막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들 여섯이 함께한 매년 여름이 그런 식이었다.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인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았다. - P123

그는 이것 ─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아기를 안아주고 그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인지 궁금했다. 그들에게 삶은 이런 것일까?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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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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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둔 2008년.

로리는 일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창밖 너머 버스 정류장에 앉아 책에 집중한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로리의 눈빛을 느꼈는지 그 남자 역시 고개를 들어 버스 안의 로리와 눈을 마주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뭔지 깨달은 순간, 로리는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느끼곤 그에게 버스에 올라 타라는 눈짓을 보낸다. 의아해하던 남자가 이내 가방에 책을 집어넣고 움직이는데, 꽉 막혀있던 도로가 갑자기 뚫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로리는 첫눈에 반한 남자를 그렇게 놓쳐버리고 만다.

 

새해가 지나고 난 뒤 2009년.

룸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친구 세라는 로리에게서 들은 "버스보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로리가 말해준 남자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을 볼 때마다 로리에게 저 남자가 아니냐고 묻지만, 그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로리는 버스보이를 꼭 찾아서 만나고 싶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 손님을 초대한 날, 세라가 새로 만나는 남자친구 잭을 소개해준다. 로리가 그렇게 찾으려고 애를 쓰던 버스 정류장의 그 남자였다.

 

 

 

 

 

 

이런 망할 운명이 또 있을까 싶다. 운명의 남자라고 여겨 찾으려고 애를 썼던 버스보이가 자매나 다름없는 절친한 친구의 남자친구가 되어 나타났다니 말이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정말이지 내가 다 속이 상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비슷한지 로리 역시 속상해하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친구를 조금은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도 로리는 친구의 사랑을 깨뜨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잭과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자리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로리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라는 자신의 절친과 잭이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어울리게 하려고 애를 썼다. 세라 곁에 있는 잭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플 텐데 친구가 되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세라가 제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며 어렵사리 잭과 친구가 된 로리는 그 다음 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가족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잭의 행동으로 마음이 풀어져 버려 그동안 입에서만 맴돌던 질문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어진 안타까운 둘의 모습을 보며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작 만났어야 할 운명이 가혹해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이후 로리의 가족과 개인적인 일이 엮여 한바탕 변화를 맞이하고, 불현듯 태국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오스카를 만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로리에게 호감을 보였던 그와 태국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낸 뒤, 영국으로 돌아와 세라와 잭에게 소개한다. 로리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해하고 있을 때, 잭은 세라와의 관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장장 10년간의 이야기를 로리와 잭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었다. 주로 로리의 입장이 많이 등장했고, 특정 상황에서 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쯤 그의 시점이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행동 중에 하나가 바람을 피우는 건데, 이 둘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심란했다. 제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하면서도 그래도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너무 안타까웠나 보다. 그러다가 단 한 번 키스를 하게 되지만, 그 이후론 철저하게 선을 그었고 로리에게도 오스카가 나타나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둘을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첫눈에 반해 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런 관계를 넘어 서로의 손가락에 빨간 실로 연결된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소위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완벽한 짝이었다. 그럼에도 서로에겐 다른 사람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겉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1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보낸 뒤 결말에는 어찌나 마음을 졸이면서 읽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라디오 에피소드는 진짜 심장이 널을 뛰어서 다음에 어떻게 될지 안달복달을 하면서 읽었다.

 

책을 읽는 와중에도 이건 로맨스의 클리셰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 등장인물에 관계된 것이든 어떤 사건에 관계된 것이든 말이다. 그렇지만 로맨스에서 클리셰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분 좋은 설렘이 있기 때문에 뻔해도 좋았다. 어떤 말과 행동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고 괜히 두근거리기도 하고, 어떨 땐 눈물을 흘리게 했다.

 

12월 추운 겨울에 어울리는 로맨스 소설은 읽는 내내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색을 잘 하면 제법 좋은 로맨스가 나올 것 같다. 사랑스러운 남녀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 나오면 볼 의향이 100%다.

달달하고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마음에 로맨스 감성을 물씬 칠해준 소설이다.(물론 중간에 그러지 말라고 외치는 고비가 좀 있음.)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첫눈에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제부터 나는 그렇다고 해야 한다. 2008년 12월 21일의 어느 눈부신 1분 동안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 P16

나는 선이 어디인지 알고, 그걸 넘을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가끔씩 그 선이 학교 운동회날 잔디 위에 석회 가루로 그린 선처럼 느껴지는 게 문제일 뿐이다. 쉽게 문질러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지만, 절대 전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그릴 수는 없는 선. - P82

"살다 보면 언젠가, 지난날을 돌아볼 때, 내가 그때 그 사람의 정확히 무엇을 사랑한 건지 기억나지 않을 날이 올 거다라고 했어.
(……중략)
하지만 이런 말도 했어. 드물지만 가끔은 떠났던 사람이 다시 내 인생에 돌아오기도 한다고.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영원히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 P228.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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