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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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는 주말에 집에서 세 아이를 보는 게 싫어서 아내 테리사에게 일 때문에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한 뒤, 초대받지 않은 세례 파티에 간다. 지역 경찰관인 픽스와 아름다운 베벌리의 둘째 딸 프래니를 위한 자리였다.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버트는 낯선 이들 사이에 모여있기보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오렌지주스를 짜는 베벌리를 도와주며 은밀한 공상에 빠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픽스가 프래니를 누가 데리고 있는지 찾아봐달라는 부탁에 버트는 집을 둘러보다가 여러 아기들이 잠든 방에 있던 베벌리와 마주친다. 묘한 분위기에 빠진 두 사람은 키스를 하게 되고, 그 후 몇 년 뒤 버트와 베벌리는 각자의 남편, 아내와 이혼 후 결혼해서 버지니아로 떠난다.

 

베벌리와 픽스의 딸 캐럴라인과 프래니는 엄마를 따라 버지니아에서 살게 됐고, 버트와 테리사의 자식들인 캘, 홀리, 저넷, 앨비 역시 엄마와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남는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따로 사는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라 반대편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돌아오곤 한다. 각기 다른 학교 일정 때문에 버트와 베벌리의 집에서 여름 얼마 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 여섯 아이는 그렇게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관계로 서로 어울리지만, 어느 여름날의 사건으로 아이들은 부모들이 모를 비밀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다.

 

버트와 테리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픽스와 베벌리의 나름 행복했던 가정은 두 사람의 키스로 인해 완전히 깨지고 말았는데,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없긴 했다. 캐럴라인과 프래니가 엄마가 아닌 아빠와 살고 싶었다는 것 외에는 알아서 잘했고, 네 명이나 되는 테리사의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나름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여름방학 동안 한 집에서 지내며 어울리면서 어른들에게 절대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 생겼다. 당시 여섯 살로 제일 어렸던 앨비가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자, 알레르기 약을 늘 가지고 다니던 캘이 막냇동생에게 약과 진을 먹게 해 재워두고 다섯 아이들만 노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후로도 종종 앨비가 귀찮게 하면 캘이 늘 약을 줘서 동생을 재워버렸다.

 

여섯 아이의 어린 시절인 과거 시점과 성인이 된 프래니와 앨비, 그리고 가끔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현재가 등장했다. 로스쿨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바에서 일하다 좋아하는 노년의 작가 리오를 만나 함께 살게 된 프래니와 10대 때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 이후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떠돌아다니던 앨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후반에는 암이 뇌까지 전이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픽스를 보러 간 캐럴라인과 프래니, 혼자 사는 테리사가 아파서 보러 가는 픽스와 딸들, 엄마의 두 번째 남편 버트를 만난 프래니의 모습 등도 이어졌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기에 보채는 앨비가 약을 먹도록 한 것이었고, 그 사건이 불러일으킬 끔찍한 사고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두려운 마음에 피하려고만 해서 부모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못 할 비밀로 간직하게 된다. 그러다 프래니가 소설가 리오를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소설로 나왔을 때 큰 파장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책을 그리 즐겨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당시 어려서 몰랐었던 앨비만이 그때의 일을 알게 되어 연락이 끊어졌던 프래니를 찾아냈을 뿐이었다.

 

소설 내용 중 가장 큰 사건은 캘의 사고이고 진실도 중반 이후에 밝혀지긴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사건이 아닌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는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관계였다. 앨비와 유독 친해서 그를 남동생이라 부르고 새아버지 버트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이어간 프래니, 가족을 이룬 저넷과 그녀의 살가운 남편을 보며 방황을 끝낸 앨비가 있었다. 픽스는 아내를 빼앗아간 버트를 미워했을지라도 방화 사건을 일으킨 그의 아들 앨비를 두말 않고 보호감호소에서 꺼내줬고, 후반에 프래니는 테리사와의 관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단어로 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바람이 나서 가정이 깨지긴 했지만, 모두들 서로를 탓하지는 않았다. 픽스가 농담처럼 말하던 때가 있긴 했어도 마음에 담아뒀을지도 모를 미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까지 증오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도 이렇게 살았으며, 굳이 이어붙이지도 억지로 끊어내지도 않은 관계가 물 흐르듯 흘렀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가 굉장한 대인배처럼 보여 대단하게 느껴졌다.

버트는 테리사에서 베벌리로 이어진 결혼생활에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그를 찾은 프래니를 보며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이제는 상관없어서 그럴 수 있던 건지 조금 의문이긴 했다. 저런 사람일지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들의 인생을 일상을 보여주듯 이어가는 소설이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는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독특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마지막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들 여섯이 함께한 매년 여름이 그런 식이었다. 그 나날이 늘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대부분의 나날이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진짜인 뭔가를 하고도 결코 들키지 않았다. - P123

그는 이것 ─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아기를 안아주고 그날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 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인지 궁금했다. 그들에게 삶은 이런 것일까?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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