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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투 파라다이스 1~2 세트 - 전2권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1893년 미국 자유주.
자유 미국의 창립자의 손자인 데이비드 빙엄은 동생들과는 다르게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결혼도 아직 소식이 없다. 그가 그렇게 지내는 이유는 과거에 앓았던 병으로 인해 할아버지가 데이비드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이비드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사별한 무역업자 찰스 그리피스였다. 데이비드보다 13살 정도 많은 남자였지만 할아버지의 변호사가 소개해 준 사람이고, 동생들 역시 변호사의 소개로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일단 찰스를 만났다. 찰스는 데이비드를 마음에 들어 했고, 데이비드 역시 그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다 데이비드는 오래전부터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고아원에서 음악 선생으로 온 식민지 출신의 에드워드 비숍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1993년 뉴욕.
법률 보조원 데이비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찰스 이든의 연인으로 그의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데이비드는 금발 백인에 부자인 찰스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하와이 출신의 젊은 남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찰스의 집에서 찰스의 친구를 위한 파티가 열린다. 찰스와 모든 처음을 함께하기도 했던 남자였다.
2093년 미국 8구역.
찰리는 어릴 적 앓은 전염병으로 인해 불임이 되었고 약간의 감정적 결함이 생겼다. 찰리가 아기였을 때부터 홀로 그녀를 보살펴 준 할아버지는 결혼 중매소를 통해 손녀에게 짝을 찾아주었다. 가족 모두 처형 당한 에드워드였다. 그 역시 불임이었기에 이 결혼이 성사되었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에드워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거라고 약속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처형되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찰리는 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는 있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실험실에서 일하는 찰리는 어느 날 연구원들이 분주하고 어수선하면서도 소곤대는 분위기를 느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전염병이 흘러들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찰리는 우연히 데이비드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소설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1893년부터 1993년, 2093년까지 100년의 기간을 두고 워싱턴 스퀘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모두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데이비드, 찰리, 찰스, 에드워드 등 그들은 모두 환생이라도 하듯 그곳에서 100년마다 나타나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게 했다.
1893년의 데이비드는 아팠던 과거로 인해 세상과 조금은 단절된 듯 보였다. 당시에는 파티 같은 사교 행사가 많았을 때라 데이비드의 두문불출을 포장하는 데 애를 써야 했을 터였다. 처음에는 정말로 아픈 것인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사랑에 빠졌다가 배신을 당하고서 좌절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데이비드가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결혼을 시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데이비드에게 두 남자가 나타났다. 중매로 소개받은 찰스와 우연히 만난 에드워드였다. 찰스는 평범한 40대 남자라 특별할 게 없었지만 데이비드를 좋아한다는 게 보였고, 집안이나 사업 등 그에 대해서 명명백백하게 알아봤기에 어느 정도 보장된 사람이었다. 반면에 에드워드는 잘생긴 외모의 백인, 식민지 출신이라는 점 외에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20대 초반의 데이비드가 관심을 보인 사람은 당연히 에드워드였다. 그와 함께라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도련님으로 살아가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1993년의 데이비드의 상황은 1893년과 다르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앞선 이야기 속에서 미국은 자유주와 식민지가 나뉘어 있었고, 그 시대임에도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었다. 또한 1993년은 분명히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에이즈로 보이는 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찰스가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였다.
해당 파트 후반에는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데이비드의 아버지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앞선 1893년 파트의 이야기와 비슷한 결이 있다는 걸 파악했다.
그리고 가장 긴 이야기였던 2093년은 지구 온난화와 여러 번의 전염병으로 국가를 봉쇄한 미국이 배경이었다. 냉각복이라 불리는 슈트를 입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조차 없는 더위가 우리의 미래를 보는 듯해서 두려웠다. 여기에 전염병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를 봉쇄 이후 국민 통제로 이어진 건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했다. 현실적이라서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지는 설정이었다.
3세기에 거친 이야기 속의 여러 데이비드, 찰리, 찰스, 에드워드 등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았던 게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거나 버림받았던 대신 할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늘 낙원을 향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끝이 난다는 게 묘했다. 1893년의 데이비드는 후반부에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할아버지를 저버리는 선택을 해서 그가 추구한 낙원은 그가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 1993년의 아버지 데이비드의 그야말로 낙원은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2093년의 낙원을 향한 바람은 너무나 애틋한 사랑이라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오랜 시간 동안 독서를 취미로 삼은 나를 가장 심하게 울린 <리틀 라이프>의 저자 한야 야나기하라의 신작 <투 파라다이스>는 대체 역사소설로 3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성애와 차별과 전염병, 환경 문제에 이어 미래의 디스토피아까지 굉장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처음엔 이런 방식이 낯설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세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파트 2의 이야기는 취향과 조금 맞지 않았지만 나머지 두 이야기는 굉장한 흡입력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흥미로웠다.
그 남자의 질문에 함축된 대답은 디스토피아는 어떤 것과 비슷해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야. 사실 디스토피아는 그 어디와도 비슷할 수 있어. 2권 - P396
"자기가 선택한 사람에게 속하면서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속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어떨 것 같아? 데이비드, 이런 사람이 당신일 수 있잖아? 이게 진짜 당신일 수는 없어?" 1권 - P172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처벌받기를 바랐다. 내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의 감옥행을 바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감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날 떠났다─할아버지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자기 아이를 버리는 사람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말이다. 2권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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