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맞지 않는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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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지역에서 시작된 병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라는 그 병은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의 청년층에게 주로 발병하는데,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하는 증상을 보였다. 얼굴과 손가락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동물이나 곤충, 식물 등으로 변해버린 그들을 "변이자"라 불렀다. 혐오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외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외면하거나 내다 버리고, 심지어는 놀라 죽이기까지 했다.
정부는 변이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그들을 사회적으로 사망 처리했다. 가족들은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으며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50대 주부 미하루는 방에 틀어박힌 아들 유이치가 걱정이다. 스물두 살 된 유이치는 고등학교 때 적응을 하지 못해 중퇴를 한 이후 무언가를 딱히 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식사 시간엔 방에서 나와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남편 이사오는 아들이 제뜻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놓고 실망을 드러내며 핀잔을 주고 무시했다. 미하루는 그래도 제 아들이라며 걱정을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식사 시간이 되어 미하루는 유이치의 방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말을 했는데, 무언가 방문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방문을 연 미하루 앞에 유이치의 얼굴을 한 벌레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왠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에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충의 설정은 알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한 소설이라고 한다.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시킨 설정이 독특해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벌레로 변해 눈앞에 나타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싶다. 다리가 네 개 이상 달리거나 아예 없는 벌레, 곤충류를 혐오하는 사람이라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혐오감과 거부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식의 얼굴을 하고 있고, 다리가 사람 손가락 모양이라고 하니 더욱 끔찍했다. 변해도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나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미하루는 엄마인지라 순간 혐오감이 들고 놀라긴 했어도 아들을 쉽사리 내다 버리지 못했다. 제 배가 아파서 낳은 유일한 자식이라 다른 종으로 바뀌었어도 차마 그러질 못했다. 반면에 아빠 이사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사망 신고를 했다. 그러고선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하루와는 다르게 이사오는 유이치가 변이자가 되기 전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병에 걸려 내다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여겼다. 이사오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긴 했다. 하필이면 내가 끔찍해하는 벌레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사오가 미하루에게 하는 말을 통해 여태껏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보였다. 유이치가 벌레로 변하지 않았어도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인 듯 느껴졌다.
미하루와 이사오는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은 얼마간 지켜보자는 미하루의 뜻을 따르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도 하지 못하는 벌레가 되어버린 유이치였지만, 사람일 때도 소극적인 아이였기에 그는 거실의 소파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거의 움직이질 않았다. 밥도 잎사귀 같은 것만 먹어서 미하루 입장에서는 손을 덜게 됐다.
하루 종일 벌레로 변한 유이치와 집에 있게 되자, 미하루는 인터넷을 통해 변이자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쓸데없는 것들을 보다가 변이자 가족 모임이라는 "물방울회"에 대해 알게 됐고, 사무실을 찾아가 가입을 한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가입을 하러 온 노노카와 가까워져 그녀의 집에서 차를 마시는 등 친분을 이어갔다. 노노카의 딸 사아야는 벌레형으로 변한 유이치와는 다르게 흰 털을 가진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게 좀 놀랍긴 했지만 그래도 귀엽게 볼 수 있었다. 미하루는 노노카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유이치를 데리고 가 사아야와 어울리게 놔두곤 했다.
물방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변이자가 다양한 외형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아야처럼 귀여운 동물도 있고, 식물이나 다른 형태로도 변했다. 다만 사람마다 왜 그렇게 다르게 변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일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이치가 변이자가 된 이후 미하루의 태도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는 걸 보여줬다. 유이치가 변이자가 되기 전에 자신이 어땠는지 자기 성찰을 하며 반성을 했고, 유이치의 입장에서 부모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친정어머니의 조언으로 부모 역시도 완벽하지 않은 그저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며 부모와 자식 관계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부모나 자식이나 상대에게 바라는 부분, 서운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제 뜻과는 다른 길을 가는 걸 보며 이사오처럼 나무라며 혼내기도 하고, 미하루처럼 달래며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식은 유이치처럼 침잠하거나 사아야가 그랬듯 대놓고 신경질을 내기도 할 것이다. 상대에게 바라는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되고, 그런 관계가 지속되면 완전히 틀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관계를 지속시키며 틈을 더 벌어지게 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에 대해서도 되새겨본다면 소설 속 미하루, 유이치 모자처럼 결국엔 발전된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시작은 다소 끔찍하고 혐오스러워서 자극적이라고 느꼈지만, 의미 있는 내용을 잘 풀어간 결말을 보였다. 결말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이사오 때문이었다. 어찌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자업자득인 결말에 미하루와 유이치의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이 병에 일단 걸리면 환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죽음이다. 이 기이한 병이 만연한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이형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요컨대 수명을 다한 치사성 질환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중략)
필요한 절차를 마치면 이형으로 변이된 존재는 인권을 잃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된 자는 ‘변이자‘라 불리는데, 이후 인간으로서는 두 번 다시 대우받지 못했다. 의무나 권리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신 야생동물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다. - P18.19

"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건 찬스야, 여보. 이제 드디어 저 쓰레기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중략)
미하루는 그렇게 간단하게 딱 잘라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비록 겉모습은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되었을지라도, 아들은 아들이다.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가족이며, 키워온 자식이다. 그런데, 버린다니. 죽여버린다니. - P37.38

이 기묘한 병에 대해서,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반드시 변이된 본인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 더 나아가서는 가정 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발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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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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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젊은 남자는 이제 막 거리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니던 그는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역에 자리를 잡았다. 리모델링으로 반짝이는 신역사가 아닌 한편으로 밀려난 구역사 쪽이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덜 미치는 곳에 자리를 잡아 박스를 깔고 잠을 청하려는 남자는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자신은 언제든지 이곳을 벗어날 거라며,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말이다.

아직 거리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무렵, 남자는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잠을 청하는 그를 깨우며 쥐가 있다고 말하던 그녀는 술에 취한 듯 술 냄새가 났다. 쥐가 있든 말든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 남자에게 여자는 옆에서 자겠다며 그의 박스 위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온기를 나눈 밤이 지나고 여자는 남자의 캐리어를 가져가 버렸고, 그는 여자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역 광장과 주변을 돌아다닌다.




마지막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남자를 보며 모두들 젊으니 이렇게 살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같은 처지의 노숙자들은 물론이고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여기까지 내몰리게 되었는지 따위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의 지금 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 어쩌면 거리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이렇게 되게끔 만든 과거보다는 살아가는 현재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고 미래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을 무사히 살아내는 것, 거리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남자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 돌아갈 수가 없었기에 거리에서 생활하는 삶을 선택을 했다. 그가 다른 노숙자들과 달랐던 건 자신은 이 생활을 잠깐 할 거라고, 언제든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남자와 같은 생각으로 그 세계에 발을 들인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작은 그랬을지 몰라도 마지막엔 다 같은 처지에 다다랐다.


남자가 그렇게 처음에 그들과 선을 그었으나 그 선을 넘어가게 만든 것은 역시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여자였다. 술에 취해 아무에게나 기대어 밤에 잠을 청하는지도 모를 여자는 남자보다 나이가 많았고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답게 볼품없었지만, 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자의 온기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아침이 되어서야 퍼뜩 깨어나 캐리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안에 들어있는 전 재산 생각에 분노가 일어 여자를 찾아 나선다. 어디에도 없는 여자를 며칠 동안 찾아 헤매다 결국 맞닥뜨렸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서 무언가라도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사그라들었다.
메마른 땅에 꽃이 피어나듯 황량하기만 했던 남자의 마음에 그녀를 향한 사랑의 싹이 텄다. 누군가의 온기가 한 사람을 바꿔놓았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고, 지원센터의 강 팀장이 노숙자 중에 가장 어린 그의 편의를 봐줘도 신경도 안 쓰던 그가 그녀로 인해 바뀌기 시작했다. 미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남자는 그녀와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을 그리며 꿈에 젖어있었다.
관심과 온기, 그저 스치듯 하는 말이 한 사람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절망뿐이던 앞날에 희망이라는 게 생겼다.

하지만 여자는 거리에서 생활한 지 너무나 오래되어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알코올중독 증세가 심해 복수가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에 남자는 여자 없이 사는 삶을 버텨내기 어려워 그녀가 멀리 요양원으로 보내졌을 땐 기어코 곁에 두려고 안달을 했다. 여자의 아픔이나 안위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바닥으로 떨어져 기댈 곳 없는 자신이 유일하게 필요한 자리가 그녀의 곁이라고 맹신했다.
여자 없이 버텨내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요양원에서 도망쳐 거리로 되돌아오자 남자는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내려고 노력했다. 마치 그 모습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리에서 생활할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다는 자기 위안이었다.
그러다 여자의 병세가 심각해졌을 땐 어쩔 수 없이 그녀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때가 되었을 땐 그토록 애가 타던 사랑은 꺼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듯이 말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두 남녀의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가 보면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질할 거리에서의 섹스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본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살과 살이 닿으면서 뜨거운 피가 돌아 사랑이라 느끼게 되어 애틋한 사랑처럼 보인 찰나의 시간이 지난 이후엔 짐이 되어버린 관계는 사랑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붙잡고 있었던 끈으로만 보였다. 거리에서의 외로운 삶, 고독한 삶, 모든 이가 피하기만 하는 삶에 거리낌 없이 다가와 준 여자에게 자기만족을 위한 족쇄를 채운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종내에는 그녀의 아픔을 외면했고, 자신의 삶을 한 번 버리고 거리로 나온 것처럼 여자 역시 버리고 외면할 수 있었다.

두 남녀의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듯한)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보다는 너무 본능적이고, 지독하고,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거리의 삶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불편했다. 결말까지 그렇게 되어 씁쓸한 뒷맛만이 남았다.


우리가 나누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버리고 다 버려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본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숨쉬는 동안에는 버릴 수 없는 동물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 본능과 욕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나.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닌가. - P166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나를 가장 많이 동정해온 건 바로 나인지도 모른다. 아니,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나 자신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진 건지도 모른다. 유령처럼 광장을 떠도는 저 사람들처럼 나는 스스로를 가여워하고 불쌍해하면서 망가지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는 건지도 모른다. - P176

누군가에게는 삶이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삶이 이토록 끔찍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정말 끔찍한 건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더 구차해지고 비참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고 중얼거린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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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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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및 간략한 내용

요리와 접대의 기술 내가 열한 살이었을 때 엄마는 동생을 임신 중이었고, 덕분에 나는 엄마에게 재주가 없는 아기 용품 뜨개질에 매달려야만 했다. 여동생이 무사히 태어난 뒤, 아기를 돌보는 몫은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엄마가 왜 이런 인생을 살게 됐는지, 자신의 아기를 왜 나에게 맡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
머리 없는 기수 나는 제일 좋아하는 날인 할로윈에 쓸 변장 도구를 직접 만들었다. 분명 책에서 배운 것인데 사람들은 무엇을 만든 건지 단번에 알아채지 못한다. 할로윈이 지나고 변장 도구들은 어딘가에 처박혔는데, 예민한 여동생은 불안해하며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나의 전 공작 부인 고등학교 시절, 나는 졸업 시험을 위해 꼭 깨우쳐야 하는 영문학을 남자친구 빌에게 가르쳐준다. 빌은 정확한 정답이 있는 수학 같은 과목은 잘했지만 문장에 담긴 의미를 파헤쳐야 하는 문학류를 어려워했다. "나의 전 공작 부인"을 공부하던 중 빌과 말다툼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곳 직장을 옮겨 어느 부부의 집을 빌려 살게 된 나는 지인들을 초대해 집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지인이 부탁한 오언이라는 남자가 찾아와 멍하니 앉아있다 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오언이 어릴 때의 경험을 말했던 날 이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모노폴리 넬은 결혼 생활이 진작에 파탄 났지만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는 티그와 함께 시골 농장을 빌려 함께 살게 된다. 티그의 아내 오나는 넬과 아는 사이였는데, 아마도 오나는 넬을 티그와 일부러 맺어준 것 같다.

도덕적 혼란 티그와 함께 농장에 살면서 가축을 치는 넬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 않았지만, 티그의 아이들은 그녀와는 달라서 동물들을 이름으로 불렀다. 넬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위치와 문제가 있는 가축들을 도살해 먹는 것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흰 말 넬의 동생 리지가 어느 날부턴가 정신분열증으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었다. 분명 약을 먹는데도 리지의 증세가 더 나빠지는 것만 같아서 넬은 의사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마침 넬은 그토록 원하던 임신을 하게 된다.
혼령들 티그의 전부인 오나는 넬과 티그가 새로 이사를 했다는 것에 대해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오나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인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넬은 뻔히 알고 있었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녀가 살 집을 구해 임대해 준다.

래브라도의 대실패 어머니는 뇌졸중을 앓았다가 거의 회복된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준다. 탐험가들에 대한 내용의 책이었다.
실험실의 소년들 아흔 살이 훌쩍 넘은 어머니를 찾아간 나는 오래전에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본다. 어머니가 젊었을 적 사진들, 할아버지의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찍었다고 짐작되는 실험실의 두 소년 사진도 본다.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고,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할 때도, 등장하지 않을 때도 있는 각기 다른 단편 소설은 넬이라는 한 여성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연작 소설이었다. 아마도 노년에 접어들었을 나이에 남편 티그와 아침을 맞이하는 첫 이야기에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어린 시절과 10대를 거치는 동안 여동생과 관련된 언급이 스쳐 지나가면서 동일 인물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넬이 살아가는 동안 겪은 여러 사건을 단편적으로 끊어서 보여주던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깨닫기엔 조금 어려웠다. 매 이야기의 시작은 그야말로 도입이라 때로 조금 관련 없는 사람이나 사건으로 시작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인물일까 싶어서 그 인물, 사건에 집중하며 읽었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에서는 관련이 없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엔 상관없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하더라도 여성의 이야기, 굳이 여성이 아니어도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인공이자 때로는 화자 역할을 하던 넬은 11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노산이었던 엄마 대신 집안일을 하고 아기 용품을 뜨개질 하던 어린 소녀는 분명 밖에 나가 친구들과 노는 게 훨씬 좋았을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 대신 일을 하기 위해 집에 묶여있어야만 했고, 여동생이 태어난 뒤에도 그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넬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였는데도 더 어린 동생을 돌보기 위해 부모 대신이 되어야 했다. 엄마도 그 상황을 바랐던 건 아니었겠지만 어른이 책임져야 했던 무게를 열한 살 넬이 때로 짊어져야 했다는 게 부당했다. 자신의 입장이 제일 중요했던 열한 살 넬이 엄마에게 대들고야 만 사건 이후 그녀의 삶은 조금 달라질 것 같았지만, 그녀 역시 엄마와 비슷하게 살게 되면서 현재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는 게 안타까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표제작인 <도덕적 혼란>이었다. 부부관계는 오래전에 파탄 났지만 법적으로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티그와 농장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주말에 그의 아이들과 보내는 삶은 타성에 젖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넬은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재에 대해 부끄럽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 동일시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키우던 가축에 대한 부분이었다. 갓 태어났을 때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 양을 죽지 않게 돌보며 정을 줬던 그 동물은 어느 정도 자랐을 땐 마치 강아지처럼 넬을 좋아하고 따랐다. 그런데 넬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도살할 수밖에 없었다. 넬은 태어났을 때부터 젖을 먹여 키운 동물을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슬퍼하며 정말 많이 울었는데, 얼마 후에 도축장에서 보내온 그 양을 요리해 먹으면서 슬프지만 맛이 있었다는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모순이라 느껴졌다.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도덕적인 면에서 넬의 현재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건 넬이 꿈꾸던 어른의 삶과는 달랐다는 점에서 인생은 어떤 힘으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건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예민했던 리지가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것이나 넬이 집을 구할 때 도움을 준 부동산 중개인 릴리, 어릴 때 겪은 사건 이후 현재에 이르게 된 오언까지 모두의 인생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흐르는 것이라 느껴졌다. 넬의 어머니마저도 말이다.
원하는 삶과는 다르게 흐르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모두 재미있게 읽은 편인데, 이 소설만큼은 재미있었다고 말하기엔 어렵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읽는 와중에도 그만 읽을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끝까지 읽게 됐지만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조금 의아하고, 단편 같은 연작 소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작가의 장편이 나에게 잘 맞는 듯하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무기력하고 부푼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그럼으로써 왜 미래를, 나의 미래를, 그늘지고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나는 어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자신도 뜻밖에 당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요리와 접대의 기술> - P37

할로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절이었다. 그날을 왜 그렇게 좋아했던가? 아마도 나 자신으로부터, 혹은 나 자신인 척하는 것으로부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인 척하는 것은 점점 더 편리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남들 앞에서 그러기가 점점 더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머리 없는 기수> - P52

그들은 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넬이 말했다. 나는 뭐가 되어야 하는 거죠? <모노폴리>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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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1
배명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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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은 × 허수아비 두 달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 피디는 신입 카메라맨 최 군과 외근을 하러 나왔다. 멀리 지방까지 내려가야 하는 길에 하필이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고속도로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국도로 들어서게 됐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최 군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 사이로 튀어나온 무언가를 피하려다 뭐에 부딪혀 사고가 나고 만다. 밖을 둘러보러 차에서 나온 김 피디에게 하얀 원피스를 입은 웬 여자가 다가와 누굴 찾느냐고,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말에 얼마 전 산 위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른 아내 생각이 떠올랐다.
이산화 × 증명된 사실 물리학자인 이남민 박사가 유일하게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곳은 영혼과 사후세계를 연구하는 연구실이었다. 깊은 산길을 한참 들어간 곳에 위치한 연구실은 돈이 많은 기업,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남민은 그곳에서 유령의 존재를 물리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아닌, 이미 증명된 유령, 영혼의 에너지를 측정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된다.

왼손 × 이화령 늦은 밤, 무박 국토 종주를 나선 "나"는 쫓아오며 욕을 하는 무쏘 운전자에게서 이화령 터널에서 마주치면 죽여버린다는 협박을 듣는다. 무시해버리고 잠깐 멈춰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곤 어느 길로 갈까 고민하던 나는 기록을 세웠었던 이화령 터널로 향한다. 차도 다니지 않는 터널을 달리는 나를 뒤쫓아오는 자전거 라이더를 만나 본의 아니게 목숨을 건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유사본 × 위탁관리 프리랜서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현은 친구 중혁에게서 정맑음이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수현은 일에 대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공포, 호러, 슬래셔 무비에 대한 잡담을 하며 정맑음과 술을 마셨는데, 난생처음으로 필름이 끊겼다.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수현은 아침에 볼일을 본 후 변기 안에서 먹은 기억이 없는 어육 소시지 비닐을 발견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후 정맑음과 술을 마시기만 하면 어김없이 필름이 끊겼는데, 다음날 변기에서는 거즈 손수건, 리필용 투명 테이프 롤을 발견했고 나중엔 손톱깎이까지 나오고야 만다.

사마란 × 그네 아들 성욱과 친하게 지내던 민재가 놀이터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민재와 마지막으로 있었던 사람이 성욱이라서 아이는 경찰 조사를 받고 민재 부모에게 한 얘기를 몇 번이고 또 했지만, 민재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성욱이를 찾으며 민재의 마지막에 대해 물었다. 성욱 엄마는 가뜩이나 이 상황이 짜증이 나는데 성욱이마저 "민재는 추울까"라는 이상한 말을 수시로 물어대는 바람에 잔뜩 예민해졌다.
장은호 × 천장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먹는 것마저 아끼고 또 아끼지만 몇 년째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 좁은 원룸 월세에서 벗어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 같아 씁쓸한데, 이 와중에 주인아저씨가 리모델링을 할 거라는 운을 뗐다. 얼마 전 맹장 수술로 모아놓은 돈이 없는 상황이라 막막한 그는 친구에게 들었던 "월월세"가 떠오른다. 설마 나갈까 싶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하루 만에 계약자가 나타났다. 신혼부부라던 크고 마른 남자와 작은 여자가 월월세로 들어와 화장실에서 살게 된 이후 이상한 일들만 일어난다.

지현상 × 완벽한 죽음을 팝니다 죽지 못해 살던 정태호는 누가 놔뒀는지도 모를 명함을 머리맡에서 발견하고 적혀있는 곳을 찾았다. 고급스럽게 잘 꾸며진 대기실 같은 곳에서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어 상담실로 들어간 그는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자를 마주한다. 남자는 정태호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거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해도연 ×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새벽 2시 40분만 되면 딸 수미가 깨어나 울었다. 아내는 일, 남편은 살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미를 재우는 것도 온전히 남편의 몫이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사고로 딸아이가 아빠를 싫어하는지 도통 잠을 자질 않는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부탁을 하기엔 돌아올 짜증이 벌써부터 겁이 나 차마 할 수 없다. 남편은 잠을 못 자 점점 예민해져서 곰인형에게 말을 걸거나 기이한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성용 × 고속버스 성식은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내연녀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갔던 날 바람을 맞은 것으로도 모자라 잠수 이별을 당했다. 짜증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봤는데 받지 않길래 메시지를 남기고 고속버스 막차에 올라탔다. 자리가 많은 버스인데 굳이 성식의 옆에 와서 앉은 남자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한마디 하려는 그에게 남자는 성식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킬러라는 사실을 말한다.
우명희 × 더 도어(The Door)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방문하는 거래처 중역 와타나베를 접대하던 "나"는 그의 별장에 가게 된다. 함께 술을 마시다 와타나베에게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물어보자, 그는 무명화가의 작품을 모으는 취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기괴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이어야 하고, 화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면서 와타나베는 서양화를 전공한 조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말에 조건을 붙여 그림을 그리게 한 이야기를 했다.




뇌리에 각인된 소설은 단연 <위탁관리>였다. 처음엔 공포 장르를 좋아하는 수현의 모습으로 시작되어 업무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소개받은 정맑음이라는 사람과의 술자리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이 처음엔 그리 특별하지 않았으나 정맑음과 만나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먹어선 안 될 것들, 먹은 기억이 없는 것들을 대장을 통해 배출했다. 손톱깎이가 나왔을 땐 정말 경악했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붉은 피가 가득한 변기와 화장실 바닥 등을 상상하며 읽으니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그 후에 결말은 오래전 영화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한 시리즈물을 떠올리게 했고,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영화도 떠올랐다. 이 소설을 장편으로 만들어 영화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와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완전히 다른 시작이었으나 결말이 주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네>에서 아들의 친구가 사라지고 아들은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불안하고 예민한 나날이 이어지다가 밝혀진 결말은 두 번의 충격을 줬다. 엄마와 아들이 각각 충격을 안겨줬는데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같은 경험으로 인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모자의 운명이 가련했다.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시작부터 오싹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깬 아기가 무표정하게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을 상상하니 왠지 모르게 공포스러웠다. 주부로 사는 남편이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내에게 타박만 당하고 아기마저 아빠를 하찮게 보는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지다가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지면서 스멀스멀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다 결말에 드러난 반전은 현실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놀라움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했다. 육아가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몰고 간 상황이 정말 딱했다. 짧은 단편 속에 결말에 대한 단서와 암시를 너무나 잘 쌓아놓아서 놀랐다. 이전에 그저 언급되길래 지나친 부분들이 결말에 딱 들어맞았다. 이 소설 역시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밤중에 자전거 추격전을 벌인 <이화령>과 누가 자신을 죽이라고 청부살인 의뢰를 했을지, 킬러가 누구를 죽였을지 알아맞혀야 했던 <고속버스>는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킬러지만 배경이 일상적이라 그런지 더욱 공포스러웠다.

공포 소설이라는 주제로 묶인 이 책은 다양한 장르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줬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오컬트는 물론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정신분열증 같은 소재, 살인, 청부살인, 심지어는 SF 공포까지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서 저녁, 밤까지 이어서 읽다 보니 무서워서 혼났다. 상상력이 형편없는 사람인데 꼭 공포물을 접할 때면 빈약한 상상력이 총동원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듯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고 마치 내가 그 상황 속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무서웠다. 자려고 누웠을 때까지도 공포감이 이어져 웃긴 무언가를 찾아봐야만 했다. 그만큼 몰입감이 좋았다.

새벽에 보는 아기의 맑은 눈동자는 무섭다. 창밖의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와 아기 눈망울에서 반짝하고 깨질 때는 악마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잇몸밖에 없는 저 입속에 보이지 않는 송곳니가 잔뜩 줄지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작은 입술 사이로 이빨을 드러내며 넌 이제 잠들 수 없어, 라고 말하겠지. 해도연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 - P228

"아주 재미있게도, 당신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고속버스 안에 있습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달아날 수 없어요. 우습지 않나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엄청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엄성용 <고속버스> - P266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 남들이 믿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직접 겪은 일을 부정할 순 없지 않나?" 우명희 <더 도어>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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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톡 5 - 현대 이야기 세계사톡 5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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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확산(1880전후~1910전후)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부국강병을 위해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 두 나라의 뒤를 이어 독일, 미국, 일본 역시 자본주의 경제 발달에 힘입어 군사력이 열등한 나라를 지배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산업화가 이루어져 여러 나라의 경제가 개발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현상이었으나 부정적인 결과가 전 세계적인 고통을 안겼다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2부 첫 번째 세계대전(1910전후~1930전후)

제국주의의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총에 맞아 살해된 사건이 전쟁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르비아계 청년이 총을 쏴 발화를 시켰고, 독일이 거기에 기름을 들이붓는 바람에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각 나라의 정부마저 예상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참전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내내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독일과 멕시코 사이의 비밀 전보가 밝혀진 덕분에 연합국에 가담한다. 미국의 국력은 이때부터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독일의 과학자가 인공 비료를 생산해 많은 인류가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다는데, 그 과학자가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가스와 화약을 발명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과학자의 아내가 남편을 말리면서 자살까지 했다는데도 감행한 걸 보면 본인의 연구 결과물에 단단히 미쳤었나 보다.

이 시기에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집안에만 있던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발목까지 오던 치렁치렁한 치마를 활동하기 편하도록 자르거나 바지를 입는 등의 패션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중요한 건 여성의 참정권 요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영국의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필두로 한 "서프러제트"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했으나 여성 참정권에 우호적인 정당이 집권했음에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자 폭력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여자인데도 그들을 옹호하지 않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내용을 읽고 나니 영국이 양아치 같다고 새삼 느꼈다. 신사의 나라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그다지 신사답지 않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식민지였던 인도에 소금세를 부과했다는 부분에서 할 말을 잃었다. 역시 포장은 잘 하고 볼 일이다.



3부 두 번째 세계대전(1930전후~1945전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미국은 더욱더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에 전쟁 자금을 빌린 나라가 많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은 경제, 문화적인 발전을 이뤄 국민들의 삶 역시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1929년 10월 24일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와 미국은 다른 나라에 차관 상환을 독촉했다. 이 나라들 중에는 독일도 있었는데,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던 독일은 배 째라 심보로 나오고 거기에 경제 붕괴로 인해 반유대주의 감정이 물살을 타면서 두 번째 전쟁을 시작하고야 만다. 독일의 편에 선 이탈리아와 일본으로 인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고통을 받게 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일본을 뼛속 깊이 증오하게 될 역사를 맞닥뜨렸다.
연합군의 공세에 이탈리아가 제일 먼저 백기를 들었고 히틀러마저 자살을 했는데, 일본은 어쩌자고 마지막까지 버텼는지 의문이다. 버티지 않고 빨리 항복을 했더라면 핵을 맞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결과라 그다지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지만,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죽은 건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4부 3개의 세계(1945전후~1970전후)
5부 20세기의 결말(1970전후~2000전후)


전쟁이 끝난 뒤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시금 치러진 전쟁으로 인해 분단국가로 나뉘었고, 또 다른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2000년대 직전에는 지구 멸망이라는 코드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현대 세계사는 전쟁과 신경전으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미래에 쓰일 역사에 이런 비극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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