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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맞지 않는 ㅣ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어느 지역에서 시작된 병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형성 변이 증후군이라는 그 병은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의 청년층에게 주로 발병하는데,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하는 증상을 보였다. 얼굴과 손가락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동물이나 곤충, 식물 등으로 변해버린 그들을 "변이자"라 불렀다. 혐오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외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외면하거나 내다 버리고, 심지어는 놀라 죽이기까지 했다.
정부는 변이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그들을 사회적으로 사망 처리했다. 가족들은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으며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50대 주부 미하루는 방에 틀어박힌 아들 유이치가 걱정이다. 스물두 살 된 유이치는 고등학교 때 적응을 하지 못해 중퇴를 한 이후 무언가를 딱히 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식사 시간엔 방에서 나와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남편 이사오는 아들이 제뜻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놓고 실망을 드러내며 핀잔을 주고 무시했다. 미하루는 그래도 제 아들이라며 걱정을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식사 시간이 되어 미하루는 유이치의 방문을 두드리며 나오라고 말을 했는데, 무언가 방문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방문을 연 미하루 앞에 유이치의 얼굴을 한 벌레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왠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에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충의 설정은 알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오마주한 소설이라고 한다.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시킨 설정이 독특해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벌레로 변해 눈앞에 나타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싶다. 다리가 네 개 이상 달리거나 아예 없는 벌레, 곤충류를 혐오하는 사람이라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혐오감과 거부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식의 얼굴을 하고 있고, 다리가 사람 손가락 모양이라고 하니 더욱 끔찍했다. 변해도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나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미하루는 엄마인지라 순간 혐오감이 들고 놀라긴 했어도 아들을 쉽사리 내다 버리지 못했다. 제 배가 아파서 낳은 유일한 자식이라 다른 종으로 바뀌었어도 차마 그러질 못했다. 반면에 아빠 이사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사망 신고를 했다. 그러고선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하루와는 다르게 이사오는 유이치가 변이자가 되기 전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병에 걸려 내다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여겼다. 이사오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긴 했다. 하필이면 내가 끔찍해하는 벌레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사오가 미하루에게 하는 말을 통해 여태껏 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무자비하게 보였다. 유이치가 벌레로 변하지 않았어도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인 듯 느껴졌다.
미하루와 이사오는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기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단은 얼마간 지켜보자는 미하루의 뜻을 따르게 된다.
말을 하지 못하고 감정 표현도 하지 못하는 벌레가 되어버린 유이치였지만, 사람일 때도 소극적인 아이였기에 그는 거실의 소파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거의 움직이질 않았다. 밥도 잎사귀 같은 것만 먹어서 미하루 입장에서는 손을 덜게 됐다.
하루 종일 벌레로 변한 유이치와 집에 있게 되자, 미하루는 인터넷을 통해 변이자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쓸데없는 것들을 보다가 변이자 가족 모임이라는 "물방울회"에 대해 알게 됐고, 사무실을 찾아가 가입을 한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가입을 하러 온 노노카와 가까워져 그녀의 집에서 차를 마시는 등 친분을 이어갔다. 노노카의 딸 사아야는 벌레형으로 변한 유이치와는 다르게 흰 털을 가진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게 좀 놀랍긴 했지만 그래도 귀엽게 볼 수 있었다. 미하루는 노노카의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유이치를 데리고 가 사아야와 어울리게 놔두곤 했다.
물방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과정을 통해 변이자가 다양한 외형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아야처럼 귀여운 동물도 있고, 식물이나 다른 형태로도 변했다. 다만 사람마다 왜 그렇게 다르게 변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일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이치가 변이자가 된 이후 미하루의 태도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는 걸 보여줬다. 유이치가 변이자가 되기 전에 자신이 어땠는지 자기 성찰을 하며 반성을 했고, 유이치의 입장에서 부모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친정어머니의 조언으로 부모 역시도 완벽하지 않은 그저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며 부모와 자식 관계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부모나 자식이나 상대에게 바라는 부분, 서운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제 뜻과는 다른 길을 가는 걸 보며 이사오처럼 나무라며 혼내기도 하고, 미하루처럼 달래며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식은 유이치처럼 침잠하거나 사아야가 그랬듯 대놓고 신경질을 내기도 할 것이다. 상대에게 바라는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되고, 그런 관계가 지속되면 완전히 틀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 관계를 지속시키며 틈을 더 벌어지게 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 서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에 대해서도 되새겨본다면 소설 속 미하루, 유이치 모자처럼 결국엔 발전된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시작은 다소 끔찍하고 혐오스러워서 자극적이라고 느꼈지만, 의미 있는 내용을 잘 풀어간 결말을 보였다. 결말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이사오 때문이었다. 어찌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자업자득인 결말에 미하루와 유이치의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병에 일단 걸리면 환자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죽음이다. 이 기이한 병이 만연한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이형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요컨대 수명을 다한 치사성 질환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중략) 필요한 절차를 마치면 이형으로 변이된 존재는 인권을 잃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된 자는 ‘변이자‘라 불리는데, 이후 인간으로서는 두 번 다시 대우받지 못했다. 의무나 권리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신 야생동물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다. - P18.19
"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건 찬스야, 여보. 이제 드디어 저 쓰레기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중략) 미하루는 그렇게 간단하게 딱 잘라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비록 겉모습은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되었을지라도, 아들은 아들이다.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가족이며, 키워온 자식이다. 그런데, 버린다니. 죽여버린다니. - P37.38
이 기묘한 병에 대해서,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반드시 변이된 본인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 더 나아가서는 가정 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발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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