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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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맨스 소설 작가로 유명세를 떨친 프랜시스는 이제는 명성이 떨어지고 있다. 자신의 책을 받아주는 출판사도 없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고,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만나 사귄 남자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친구가 "평온의 집"이라는 건강휴양지를 추천해 줬다. 친구는 3년 전 그곳에 다녀온 경험을 말하며 몸과 마음, 심지어는 인생까지 달라졌다고 했다. 프랜시스는 의심했지만, 일단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평을 읽어본 뒤 한 자리 남았다는 평온의 집에 예약을 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지친 프랜시스는 그곳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도 힘이 들었고, 도로에서는 감정이 폭발해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거기다 평온의 집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마침 도착한 벤, 제시카 부부와 함께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온의 집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개개인의 몸 상태에 걸맞은 식단이 제공된다. 설탕과 커피, 알코올은 절대 금지다. 매일 주는 스무디는 남기지 말고 꼭 먹어야 하고 날마다 계획된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전자기기와 태블릿, 핸드폰 등은 절대 소지할 수 없어서 평온의 집에 입소하면 행복 안내자라 불리는 직원들에게 맡겨야 한다. 만약 술이나 커피, 설탕이 가득 든 간식, 전자기기를 가방에 숨겨왔다면 직원들이 챙겨온 짐을 확인해 그 물건을 가져가기도 한다.
그렇게 엄격한 규칙이 있는 곳에서 프랜시스를 포함한 아홉 명이 함께 모여 생활하게 된다.



일상생활에 찌들어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든다. 여행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여러 여행 방법 중 휴양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게 제일일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평온의 집은 건강휴양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차로 한참 들어가 옛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곳에는 정해진 날짜에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도 그리 많지 않아서 사람에 부대낄 일도 없었다. 거기다 식사도 매일 알아서 챙겨준다니 너무나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엄격한 규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일단 커피를 못 마신다는 것에서부터 절대 못 갈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하루에 적어도 2잔, 많을 때는 4~5잔까지도 마실 정도로 커피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설탕은 절대 금지이고, 술도 안 된다고 하니 휴양이 아니라 중독자 모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다이어트가 절실한 사람이라면 너무나 좋은 곳일 테지만 말이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같은 것도 안 된다는 건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을 듯했다. 그래도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같은 날짜에 아홉 명이 입소하게 된다. 여러 사람의 시점이 돌아가며 등장했는데 그중 비중이 가장 높았던 프랜시스가 먼저 나왔고, 복권에 당첨된 이후 삶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벤과 제시카 부부, 연인이 아기를 원하지만 본인은 원하지 않는 라스, 유명한 풋볼 선수였다가 은퇴 후 가족과 멀어져 버린 토니, 남편과 이혼 후에 네 딸을 키우고 있는 카멜, 그리고 3년 전에 아들 잭을 잃고 슬픔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나폴레옹과 헤더, 딸 조이였다. 그들은 현재의 삶에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고, 그 인생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평온의 집에 오게 됐다.
그리고 평온의 집을 운영하는 마샤와 행복 안내자 야오, 딜라일라의 시점도 등장했다. 마샤는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등장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기절해서 구급 대원들이 방문했었는데, 곧장 깨어났지만 이내 다시 기절했고 심장 박동이 멈춰 사망했었다. 하지만 마샤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고, 그 일을 경험한 이후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꿔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그 후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평온의 집을 꾸리게 됐다. 야오는 그때 출동했었던 수습 구급 대원이었고, 딜라일라는 마샤의 비서였다.

모일 사람들이 다 모인 후에 마샤가 등장해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며칠 동안 침묵해야 된다고 알리며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처음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외에는 그리 힘든 일은 없었지만 상황이 점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사람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리 인상이 좋지 않았던 마샤는 결국 그런 인물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어찌나 고집이 세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는지, 내가 이런 경험을 하고 인생이 달라졌으니 당신들도 경험하고 달라져야 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맹신자가 따로 없었다. 마샤를 떠받들던 야오까지 못 당해낸 걸 보면 그녀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심지어 놀라운 것까지 먹인 마샤를 아홉 사람들이 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머릿수로는 우세했지만 그곳은 마샤의 관리하에 있는 장소라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입소할 때 핸드폰을 모조리 걷어갔으니 외부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이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이웃이나 친구, 가족들이 알아챌 것 같아 정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잠깐 등장한 캐릭터가 도움을 줄 단서였다.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홉 명의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미친 여자의 계획에 놀아났을 테니 말이다. 그 캐릭터 덕분에 아홉 명은 무사하게 됐고, 친분이 쌓여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그곳을 나와서도 인연을 이어갔다.
재미있는 점은 평온의 집에 다녀간 그들 아홉 명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지긴 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나 주변 사람, 그리고 인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그들의 달라진 삶을 보며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 좋게 바뀐 것은 그만큼 자극적이고, 다시는 없을 경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평생 그렇게 살 운명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들의 삶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는 건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죽었다 살아난 마샤는 10년 전에 삶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절대 바뀔 일이 없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여 너무 싫었다.

네 번째 읽는 리안 모리아티의 소설인데 두꺼운 분량에도 금세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니만큼 각각의 매력이 돋보였다.




"약속할게요. 앞으로 열흘 안에 당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을 겁니다." - P524

프랜시스는 문득 자신이 없어졌다. 열흘 동안 이곳에서 지낼 자신을 상상하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열흘이 아니라 십 년을 갇혀 지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변하게 될까? 날씬하고 가볍고 고통도 없는, 카페인 없이도 아침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P92

마샤는 이미 이 아홉 명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의 자의식과 자기혐오를, 명백한 거짓말을, 그녀 앞에서 무너질 때 자신들의 고통을 숨기려고 하는 방어적인 농담을 사랑했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 열흘 동안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가르치고 양육해야 하는, 그들이 될 수 있고 돼야 할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그녀의 것이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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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 - 대중문화 속 과학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3
박재용 지음 / 애플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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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제목만 보고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제목에 언급된 <엑스맨> 시리즈를 비롯하여 여러 영화들 속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고, 영화에 등장한 장면이나 상황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영화 설정상의 오류를 바로잡아주기도 했다.





 

가장 먼저 소개한 과학적 사실은 영화 <쥬라기 공원>이었다. <쥬라기 공원>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공룡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던 티라노사우루스는 사실 백악기 후기(6,700만 년 전~6,500만 년 전)에 살았다고 한다. 쥬라기(바른 표기: 쥐라기)는 1억 8천만 년 전에서 1억 3500만 년 전 시대라고 하니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큰 셈이다. 사실과는 다른 오류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그렇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백악기 공원보다는 쥬라기 공원이 입에 더 착 붙기도 하니 말이다.
이 책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은 공룡에게 깃털이 있었다는 것이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서 보온을 위해 깃털이 있었던 거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수컷 공작의 꼬리가 화려한 것처럼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 공룡들에게 깃털이 있었을 거라 추정하기도 한다.

영화 <엑스맨>에서는 여러 돌연변이 히어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돌연변이라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크건 작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성인의 세포는 약 30조 개 정도 되는데 그중 극히 일부는 매일 DNA가 파괴되거나 왜곡되는 돌연변이를 겪게 된다. 매일 먹는 음식물이나 태양의 감마선, 공기나 면역 반응 과정에서 나타나고, 돌연변이 세포는 주변의 면역세포에 의해 사라지고 대체된단다. 세포가 사라지지 않고 대체되지 않으면 암세포가 되거나 종양이 되기도 한다. 1조만 되어도 얼마나 많은 건지 가늠할 수 없는데 30조 개나 되는 세포가 있다고 하니 매일같이 분열하고 왜곡되는 게 이해가 됐다.

지구 종말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했다. 여러 원인으로 지구,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가상 시나리오가 있지만, 작가는 영화 <투모로우>의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단다. 외계인의 침공 같은 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지긴 한다.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확실히 밝혀진 게 아니라서 말이다.
멸종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며 환경 변화로 인해 지구에 사는 생물들이 거의 멸종했었던 다섯 번의 위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었다. 빙하기로 인한 오르도비스기 대멸종과 데본기 대멸종, 화산 분화로 인한 페름기 대멸종 등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페름기 대멸종에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규모라고 하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대멸종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 가서 빙하기나 화산 폭발, 지진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경각심이 생긴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세계적으로 기후 문제가 심각해서 더욱 그렇다.



 

사이보그, 인공지능에 관한 주제 역시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설정인데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있단다. 그중 하나는 사람의 뇌만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마인드 업로딩"이다. 뇌는 약 1천억 개의 뇌신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은 신경들과 복잡하게 얽힌 구조이기 때문에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신체가 절단된 사람들에게 로봇팔을 이식해서 적응하게 하는 데에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할 수 있는 뇌를 그렇게 단순하게 컴퓨터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한 25세기쯤 되면 실현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인류가 그때까지 멸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재미있게 본 마블 시리즈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냉동 기술에 대해 말하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는 냉동됐던 캡틴 아메리카를 해동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사람을 냉동시키려면 일단 사망 선고가 내려져야 한단다. 그런 후에 호흡과 혈액 순환만 되게 만든 다음 피를 모조리 뽑고, 갈비뼈를 분리하고, 몸 안의 모든 체액을 빼낸 다음 특수 용액을 주입해야 한다. 이쯤 되니 냉동 "인간"이 아니라 신체를 냉동 보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놀랍게도 1972년부터 냉동인간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서 실행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알코어 재단에서는 뇌가 한 인간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여겨 뇌 보존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단다. 인간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도 다시 깨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솔직히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냥 죽는 게 마음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했었던 감정을 주제로 동물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주입된 명령 외에 스스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여기는 건 당연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다고 봤단다. 그러다 1970년 대에 고든 갤럽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의 실험을 통해 침팬지 같은 동물에게도 인격이 있다며 "비인간 인격체"라 부르게 됐다. 그리고 로봇, 안드로이드에 대해 인간의 입장에서 본 윤리적인 문제와 일상의 편리를 위해 지켜야 할 선에 대해 말하던 부분이 있었다.



영화와 과학을 주제로 이야기해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지식을 얻었고, 잘못 알고 있던 것도 바로잡아주는 책이라 교육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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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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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브룩스 신부는 최근 교구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다. 교인들의 시선과 언론을 신경 쓰는 주교는 잭을 서식스에 있는 채플 크로프트라는 작은 마을에 마침 공석이 생긴 임시 교구사제로 가는 게 어떠냐고 한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열다섯 살 된 딸 플로가 맞이할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잭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먼 길을 달려 플로와 함께 도착한 마을은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플로는 교회를 보자마자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었을 정도였고 사택의 상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회를 먼저 둘러보러 갔을 때 그들은 "버닝 걸스"라 불리는 섬뜩한 인형을 발견한다. 수백 년 전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 때 이 마을 주민이 화형을 당했고 그중 둘은 여자아이였는데, 그들을 기리기 위해 처형 추모일에 인형을 만들어 태우는 마을의 전통이라고 잭이 딸에게 알려주었다.

기이한 분위기와 버닝 걸스 인형으로 인해 마을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그들 앞에 피를 뒤집어쓴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잭과 플로는 깜짝 놀라지만 이내 아이의 아빠가 나타나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를 데려간다. 하지만 이후로도 잭과 플로는 마을에서 여러 사람을 마주하며 의문스럽고도 섬뜩한 일을 겪는다.



현재 지내던 곳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시골 마을에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한 잭의 모습으로 소설이 시작되었다. 루비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게 언뜻 언급되었고, 이후에는 잭과 플로가 채플 크로프트에 적응하며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흘렀는데, 소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루비에 관한 사연이 밝혀질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잭과 플로가 임시로 지내게 된 마을에 도착하면서 놀랐던 건 잭이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신부가 아닌 여자 신부,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종교와 거리가 멀어서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여자 목사가 있다는 건 들어봤어도 여자 신부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하필이면 이름도 잭이라서 당연히 남자일 줄 알았다. 외국 이름은 줄여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잭은 보통 남자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잭을 처음 맞이한 교회 관리인 에런의 반응이 이해가 됐고, 한편으로는 나의 편견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잭과 플로가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는데, 피를 뒤집어쓴 여자아이를 마주하면서 모녀가 이 마을에 적응하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30년 전 이 마을에 살던 메리와 조이라는 소녀가 갑자기 사라졌는데도 수사는 가출로 종결됐다. 메리 여왕이 박해를 하던 시절부터 마을에서 농장을 하며 오랫동안 살아온 하퍼 집안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부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잭은 전임 신부 플레처가 교회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바람에 공석이 생긴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플레처 신부의 죽음에는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채플 크로프트에서 맞이한 첫 번째 일요일에 잭은 신도석에서 어린아이가 타는 모습을 보고 연기 냄새를 맡았고, 플로는 무덤가에서 머리와 팔이 없는 여자아이가 불에 붙은 걸 목격하지만 두 사람 다 환영을 본 것이었다. 정말이지 굉장한 환영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잭에게는 오래전 살해당한 남편에 관한 사연과 가석방됐다는 살인범,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루비라는 아이의 사건이 있었기에 내내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잭은 죽은 남편에 관한 진실 외에 플로에게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비밀이 있다는 걸 예상하게 했다.
잭이 과거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 괴로워했다면, 플로는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문제가 됐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사귀게 된 루커스 리글리가 어떤 아이인지 아직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가까워졌고, 그를 통해 기괴한 분위기의 폐가를 알게 되어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하퍼 농장의 큰딸 로지와 사촌 톰이 그녀를 괴롭혔고 공기총을 쏘기도 하는 등 위협을 했다. 그러면서 플로는 교회와 사택 주변에서 여러 사고를 겪으며 다치기도 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의 잭, 3인칭 시점의 플로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남자의 시점을 오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잭의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가 출소한 살인범이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남자가 잭을 찾으려고 헤매며 여러 사람들, 심지어는 교회에서 신부까지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기에 잭의 신변이 걱정됐다. 죄의식이 전혀 없어 보이던 사람이라 안 그래도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만으로도 힘든 모녀를 궁지에 몰아넣을 것 같아 불안했다.
중반 이후로 그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지긴 했어도 그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지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이면이 드러나며 남자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잭에 대해 한 가지 가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결말에 그게 진짜였다는 게 밝혀졌다. 추리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 오랜만에 맞혀서 신이 났다.

후반으로 가면서 과거와 현재의 불안한 압박이 이어졌고, 멀리서는 의문의 존재인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두려움이 겹겹이 싸여 잭과 플로를 옥죄고 있었다. 여기에 마을 교회의 비밀스러운 납골당과 폐가의 우물에서 유골이 여러 구 발견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 정신없게 만들었다.
결국 초반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 관여가 되어있다는 걸 보여줬고 믿었는데 배신을 한 존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마을의 여러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고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보여줬다. 그들이 사악한 존재는 아니었어도 악한 행동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모든 결과를 타당하게 보이게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태생부터 악한 인간도 더러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 캐릭터도 있었다.

세 번째로 읽는 C. J. 튜더의 소설인데 갈수록 그녀의 소설이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보통은 화려하게 데뷔를 한 작가의 후속작은 실망스럽기 마련인데, 나는 반대로 데뷔작 <초크맨>보다 이후에 나온 소설을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소설은 스산한 분위기와 압박감으로 으스스 해져서 늦은 밤과 새벽에 읽다가 오싹해져서 선풍기를 끄기도 했다. 여름밤에 읽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 이 리뷰는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시골에는 어두운 과거를 지닌 마을이 많다. 역사 자체가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무자비한 인간들이 남긴 기록이다. 선이 항상 악을 이기는 건 아니다. 기도를 한다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우리 편에 악마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 P233

나는 사제답게 정직을 강조하지만 사실 위선자다. 정직은 과대평가된 덕목이다. 진실과 거짓의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반복하는 횟수뿐이다. - P148

"악마가 있다고 믿으세요, 신부님?"
나는 머뭇거린다. "악한 행동은 있다고 생각해요."
"사악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보세요?"
(……중략)
"인간은 누구나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말한다. "하지만 한쪽이 다른 쪽보다 월등한 경우가 더러 있죠." - P2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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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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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대한민국 청계천 공구 상가에 메일이 하나 날아온다. 미국에서 발신된 그 메일에는 M4A1 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면과 자금, 자원을 제공하겠다고 쓰여있었다. 게임 참여 즉시 케이맨 군도 은행 계좌가 개설되어 제작에 필요한 자금이 지급될 것이고, 총을 가장 먼저 제작해 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비트코인 1000개를 상금으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대신 게임을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청계천 공구 상가 내부에서는 총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의견이 나뉘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교회에 미쳐 미국으로 떠났다가 모텔에서 권총 자살을 한 기억이 있는 임다인은 총이라면 질색을 했지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강남 한복판에서 총이 발사되어 한 여자가 죽고, 한 남자는 발사된 총알을 뇌에 맞는 바람에 수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총은 제작자의 손안에서 폭발했다. 그 사건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 큰 충격을 안겼지만, 이후 총알이 발사되고 총이 폭발하는 사고가 여러 번 일어난다.



소설은 총기 사고 청정 국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됐다. 소설 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번역기를 돌린 메일이 등장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게 했다. 제작 비용과 도면, 심지어는 성공할 경우 비트코인을 준다니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수두룩했다. 공업사 사장이 과거에 철근을 발사하는 사제 총을 제작하고 감방 신세를 졌다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를 않았다. 오로지 임다인만 절대 만들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이후 강남 한복판에서 1차로 총에 맞은 주부 윤정아, 윤정아에 이어 총에 맞아 뇌 수술을 받은 오수안, 정아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 이정 등이 등장했고, 총기 사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집단 "반드시"의 멤버 임다인을 비롯해 사회부 기자 박창식, 국정원 직원 고민지, 사회복지사 양은아 등이 등장했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는 소설이라 캐릭터의 개성이 빛났다. 기계공학부인데 총은 절대 안 만드는 임다인, 사회부 기자이면서 투잡으로 도둑질을 하려는 박창식, 국정원 데스크 직원 고민지, 사회복지사 겸 해커인 양은아 등의 모순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총알 파편이 뇌에 박힌 오수안이었다. 수술 끝에 깨어나긴 했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의사는 생명이나 신체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거라며 총알을 그냥 뒀다고 했는데, 오수안은 수술을 받은 뒤에 미각을 잃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오리지널 오레오 과자의 단맛이 그에게 어떠한 형태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수안은 그때부터 오레오를 부숴서 먹고 끓여서 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마약을 하는 것처럼 오레오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과자를 어떻게 먹든 본인 마음이긴 하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마침 오수안을 담당한 복지사인 양은아가 컴퓨터를 해킹해서 그 광경을 모두 보는 바람에 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 총알을 맞고 즉사한 주부 윤정아의 남편이 페이퍼컴퍼니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마침 청계천에 메일이 날아든 이후에 돈이 활발하게 들어왔다가 나간 정황이 있었다. 그로 인해 윤정아는 걱정이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했고, 사고나 죽음에 관한 편집증이 생겼는데 하필이면 총을 맞아 죽은 것이었다. 그러고선 윤정아는 유령이 되어 오수안 앞에 나타나기까지 한다. 거기다 총의 영혼(?) 같은 것도 등장해 갈수록 놀라움을 안겼다.


총 하나로 시작된 소설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긴 하지만,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중반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다 윤정아가 총의 영혼을 만나 오수안과 함께 자신의 집에 찾아갔고, "반드시"의 멤버들도 그 집에 모이게 되면서 소설의 주제를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에게는 과거나 현재의 상처, 혹은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다. 오수안은 아기 때 방송 출연을 하며 김 반장이라 불리던 스태프에게 허리를 꼬집혔던 기억이 총을 맞고 난 이후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임다인은 아버지와 관련한 과거로 인해 총을 만드는 걸 질색했다. 윤정아의 아들 아주는 과거 입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고 입맛까지 잃었다.
재미있게도 총의 영혼 역시 자신이 총이라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총이 사용됨으로써 아무리 긍정적인 결과를 낸다고 해도 그건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거나 혹은 겁을 주는 무기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총 자체가 부정이고 폭력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기에 총의 영혼은 그 영향력을 슬퍼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켜서라도 세상의 폭력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두서없이 진행되는 것 같고 B급 감성도 느껴지는데 마지막엔 주제가 와닿는 소설이었다. 짧고 굵게 특이했던 소설이라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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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이 실제로 정산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체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말로 그 돈을 뿌린다고? 설마. 상금은 허울뿐이고,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괴짜들의 게임이었다. 정말로 비트코인을 받는다면 그건 덤이었다. 사람의 인생을 한 번에 바꿔놓을 만큼의 거대한 덤. - P55

총 같은 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총알 한 발이 죽이는 건 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의 가정, 하나의 사회, 결국에는 사회 전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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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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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마치 좀비처럼 변하는 특수한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의 행성 "카난"으로 떠나기 위한 우주 이민 계획을 세웠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셸터가 세워졌고 좀비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방벽이 둘러 쳐졌다. 마침내 거대한 우주선이자 방주 "게르솜"이 만들어져 동식물 유전자 캡슐과 4만 4천 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카난으로 떠났다.
게르솜이 떠나고 40년 후,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남은 자재들을 끌어모아 두 번째 방주 "엘리에셀"을 만들어 우주로 향한다. 게르솜보다 훨씬 적은 2천여 명의 사람들과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백혈인간들이 엘리에셀에 탑승했다.

그렇게 카난으로 가는 엘리에셀은 우주 한복판에서 게르솜을 마주하게 된다. 엘리에셀의 AI 마리는 일항사 사만다와 몇몇 사람들을 냉동 수면에서 깨웠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게르솜을 탐사하기 위해 백혈인간 이도를 비롯해 카디야와 보테로를 깨웠다. 그렇게 게르솜에 탑승한 세 백혈인간은 마치 지구에서 봤었던 것처럼 피가 낭자한 우주선 내부를 보고 좀비 바이러스가 우주까지 번졌다는 걸 예감한다.



여러 영화나 책에서 사용된 좀비라는 소재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은 채 물어뜯어서 서로 감염시키는 독특한 존재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오페라를 결합했다. 거기다 신체를 강화시킨 백혈인간까지 더해졌기에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조합이라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했다.

지구를 떠난 두 번째 방주 엘리에셀이 첫 번째 방주 게르솜을 우주 한복판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소설이 시작됐다. 평범한 인간이라 지칭되는 순혈인간들은 마지막 인류였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탐사를 위해 백혈인간들을 냉동 수면에서 깨워 게르솜을 탐사하도록 지시했다.
백혈인간은 몸속에 주입한 나노봇 덕분에 초인에 가까운 생명력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늙지도 않고 상처가 나더라도 금세 아물었다. 다만 수명이 영원하지 않았으며 나노봇이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를 위험성이 있었다. 또한 순혈인간에게 그 어떤 상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에겐 제약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게르솜 탐사를 시작하면서 지구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웠던 좀비와 반갑지 않은 재회를 했고, 살아남은 게르솜의 선원들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점과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인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 안에서 파벌은 존재했고, 그로 인해 서로 대립해 싸우기까지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마냥 선하지만은 않다고 느껴졌다. 개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겐 더없이 너그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볼 장을 다 볼 정도로 끝까지 가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 상황 파악을 위해 나타난 백혈인간들은 개량된 인류이긴 했으나 어떤 면에서는 중재자처럼 보이게 했다. 백혈인간들은 나노봇이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를 위험부담을 안고 있어서 단지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때로는 인간들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도 했다.

게르솜에서 일어난 처참한 상황을 중심으로 백혈인간의 리더 이도와 그를 따르는 카디야, 이도를 죽이려고 안달이었던 보테로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도의 과거는 비밀스러웠고, 카디야와 보테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도의 곁에 머물게 됐지만 비슷한 감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도는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도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점에서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마지막에는 그들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 같은 미래가 그려져서 그리 순탄한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결말이라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나이 든 부모와 어린 자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부모와 그보다 나이가 든 자식이라는 상대성 이론을 결합시켜 신선한 재미를 줬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읽는 동안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좀비와 우주를 섞고 개량된 백혈인간을 더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법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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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은 기력을 다 짜내어 지구를 벗어나려 한 것은 역병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주 한복판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행성 하나의 질량만큼이나 거대한 허무감을 주었다. - P66.67

"인류는 카난에 갈 필요가 없다. 그곳에 도착했다 한들 지구에서의 끔찍한 일이 반복될 뿐이었겠지.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뤄지는 종의 번영을 포기하는 대신 한 세대에게 영생을 주는 데 성공한 거야." - P207

"당신은 게르솜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존재가 당신으로 하여금 지구에서의 삶을 버텨내게 했을 거예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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