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블러드
임태운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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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마치 좀비처럼 변하는 특수한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의 행성 "카난"으로 떠나기 위한 우주 이민 계획을 세웠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셸터가 세워졌고 좀비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방벽이 둘러 쳐졌다. 마침내 거대한 우주선이자 방주 "게르솜"이 만들어져 동식물 유전자 캡슐과 4만 4천 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카난으로 떠났다.
게르솜이 떠나고 40년 후,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남은 자재들을 끌어모아 두 번째 방주 "엘리에셀"을 만들어 우주로 향한다. 게르솜보다 훨씬 적은 2천여 명의 사람들과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백혈인간들이 엘리에셀에 탑승했다.

그렇게 카난으로 가는 엘리에셀은 우주 한복판에서 게르솜을 마주하게 된다. 엘리에셀의 AI 마리는 일항사 사만다와 몇몇 사람들을 냉동 수면에서 깨웠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게르솜을 탐사하기 위해 백혈인간 이도를 비롯해 카디야와 보테로를 깨웠다. 그렇게 게르솜에 탑승한 세 백혈인간은 마치 지구에서 봤었던 것처럼 피가 낭자한 우주선 내부를 보고 좀비 바이러스가 우주까지 번졌다는 걸 예감한다.



여러 영화나 책에서 사용된 좀비라는 소재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정신을 놓은 채 물어뜯어서 서로 감염시키는 독특한 존재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좀비 바이러스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오페라를 결합했다. 거기다 신체를 강화시킨 백혈인간까지 더해졌기에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조합이라 궁금해져서 읽기 시작했다.

지구를 떠난 두 번째 방주 엘리에셀이 첫 번째 방주 게르솜을 우주 한복판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소설이 시작됐다. 평범한 인간이라 지칭되는 순혈인간들은 마지막 인류였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탐사를 위해 백혈인간들을 냉동 수면에서 깨워 게르솜을 탐사하도록 지시했다.
백혈인간은 몸속에 주입한 나노봇 덕분에 초인에 가까운 생명력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늙지도 않고 상처가 나더라도 금세 아물었다. 다만 수명이 영원하지 않았으며 나노봇이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를 위험성이 있었다. 또한 순혈인간에게 그 어떤 상해도 입히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들에겐 제약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게르솜 탐사를 시작하면서 지구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웠던 좀비와 반갑지 않은 재회를 했고, 살아남은 게르솜의 선원들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점과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인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 안에서 파벌은 존재했고, 그로 인해 서로 대립해 싸우기까지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마냥 선하지만은 않다고 느껴졌다. 개개인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겐 더없이 너그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볼 장을 다 볼 정도로 끝까지 가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 상황 파악을 위해 나타난 백혈인간들은 개량된 인류이긴 했으나 어떤 면에서는 중재자처럼 보이게 했다. 백혈인간들은 나노봇이 언제 작동을 멈출지 모를 위험부담을 안고 있어서 단지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때로는 인간들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도 했다.

게르솜에서 일어난 처참한 상황을 중심으로 백혈인간의 리더 이도와 그를 따르는 카디야, 이도를 죽이려고 안달이었던 보테로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도의 과거는 비밀스러웠고, 카디야와 보테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도의 곁에 머물게 됐지만 비슷한 감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도는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도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점에서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마지막에는 그들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 같은 미래가 그려져서 그리 순탄한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결말이라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나이 든 부모와 어린 자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부모와 그보다 나이가 든 자식이라는 상대성 이론을 결합시켜 신선한 재미를 줬다.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읽는 동안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좀비와 우주를 섞고 개량된 백혈인간을 더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법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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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남은 기력을 다 짜내어 지구를 벗어나려 한 것은 역병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주 한복판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행성 하나의 질량만큼이나 거대한 허무감을 주었다. - P66.67

"인류는 카난에 갈 필요가 없다. 그곳에 도착했다 한들 지구에서의 끔찍한 일이 반복될 뿐이었겠지.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뤄지는 종의 번영을 포기하는 대신 한 세대에게 영생을 주는 데 성공한 거야." - P207

"당신은 게르솜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존재가 당신으로 하여금 지구에서의 삶을 버텨내게 했을 거예요."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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