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서점 - 살인자를 기다리는 공간,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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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이자 고서적 수집가로 이름을 알린 유명우는 그날도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지만 그날이 특별했던 건 이제껏 준비해온 일을 드디어 시작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녹화를 무사히 끝낼 때쯤, 유명우는 오늘이 방송 출연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유를 묻는 사회자의 말에 유명우는 15년 전 세상을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하면서 고서적 서점을 열겠다고 말했다. 사냥꾼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5년 전,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다가 가족과 귀국한 유명우는 도착한 날 곧바로 부천에 가야 했다. 교수 임용을 도와준 총장의 고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딸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는데, 비행 때문에 지쳤는지 딸은 울음을 멈추질 않았고 아내 역시 딸의 편을 들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가족들이 몰라줘서 마음이 상한 유명우는 차 안에서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다 새로 생긴 터널로 접어들었을 때 사고가 난 듯, 도로를 막고 있는 차를 보게 됐다. 차에서 내려 보닛을 들여다보던 남자에게 다가간 유명우는 길을 막고 있다며 화를 내다가 문득 운전석 유리창에 피가 튄 것을 발견한다. 그때 남자가 칼을 들고 다가와 유명우를 협박했고, 급기야는 렌치로 유명우의 다리를 내리쳤다. 그러고선 몸싸움을 벌이다 남자는 아내와 딸이 타고 있는 유명우의 차를 끌고 달아나버렸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 일명 사냥꾼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유명우는 언젠가는 그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다. 15년 전 사건이 일어나던 날, 사냥꾼이 유명우와 같은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던 때, 유명우는 차 안에서 가방을 끄집어 내 사냥꾼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는데 가방 안에 중요한 게 들어있었는지 그는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그러고선 사냥꾼이 떠난 후, 유명우는 가방 안에 고서적이 들어있는 걸 발견하고 그때부터 목표를 세웠던 건지도 모른다.
유명우의 현재와 15년 전의 사건이 밝혀지기 전에 먼저 등장한 건 사냥꾼이 어떻게 사람을 납치하고 고통을 주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까지의 과정이었다. 사이코패스 그 자체라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이런 인간을 유명우가, 그것도 15년 전 사건으로 다리를 절단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초반 설명이 지나가고 유명우의 '기억 서점'이 개점을 해 예약제로 손님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냥꾼을 찾는 모습이 이어졌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도록 인터넷으로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 예약을 한다는 게 그나마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예약 손님 중 15년 전 사냥꾼과 나이대가 비슷하면서 고서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김성곤, 책에는 관심이 없는데 찾아와선 15년 전 사건으로 같이 책을 쓰자고 찾아온 유튜버 조세준, 유명우처럼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으며 사냥꾼과 걸음걸이가 흡사한 김새벽,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와 강압적, 폭력적으로 구는 오형식이 주요 인물로 추려졌다. 추리력이 꽝인 나는 이들 중 누가 사냥꾼일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명우는 뭔가 감이 왔는지 몸이 불편한 자신 대신 도와줄 사람을 선택했다. 바로 유튜버 조세준이었다. 함께 책을 쓰자며 찾아온 그를 잘 구슬리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지 유명우는 그에게 사냥꾼을 찾고 있다면서 의심되는 사람들의 뒤를 캐달라고 부탁했다. 조세준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조건도 있었다.

그렇게 유명우 대신 사냥꾼을 쫓게 된 조세준의 시점이 이어지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안겼다. 누가 사냥꾼일지 예상하는 재미가 있었고, 한편으로는 조세준이 위험에 처하게 되어 긴장감을 유발했다. 잘못하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를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유명우에게 그토록 궁금해하던 진실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사냥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그러고선 곧바로 사냥꾼을 위해 준비한 유명우의 선물을 펼쳐놓게 됐다. 후반으로 가면서 갑작스레 몰아친 진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유명우는 이미 짐작했던 것 같았다.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칭하며 약한 사냥감을 잔인하게 죽이던 그를 위한 최고의 복수였다. 범인을 잡아도 법은 피해자와 유족이 마음에 들만한 처벌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수를 준비하고 이뤄냈다는 게 통쾌했다. 그것도 아무런 흔적을 찾아낼 수 없을 완벽한 복수였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을 불러달라고 애원하던 사냥꾼의 모습이 정말 비루했다. 자신이 사냥꾼일 때는 되지도 않는 권위에 휩싸여 있더니, 입장이 바뀌어 사냥감이 되자 꼬리를 내린 꼴이 참 같잖았다. 그런 그에게 딱 어울리는 죽음이었기에 완벽한 복수였다.

정명섭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 건데, 가독성이 훌륭했다. 자잘한 이야기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됐던 게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 이 리뷰는 펍스테이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15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면서 그는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준비한 미끼를 사냥꾼이 물기를 바랐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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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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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와 빌런이 너무나도 많은 시대.
애나 트로메들롭은 프리랜서 '헨치'로 일하고 있다. 헨치는 빌런에게 고용되어 각종 잡일을 하는 직업이었다. 현장에 나가 움직이는 운전기사와 같은 헨치도 있었지만, 애나는 후방에서 각종 문서 작업과 데이터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거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고용주가 빌런일 뿐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프리랜서 헨치로 일하던 애나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빌런과 장기 계약을 맺게 된다. 장기 계약으로 인해 재택근무에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현장에 나가게 되는데, 하필이면 빌런을 처리하기 위해 그곳으로 출동한 히어로 중의 히어로 '슈퍼콜라이더'를 맞닥뜨리게 된다. 슈퍼콜라이더는 빌런이 납치한 소년을 구해내려다가 힘을 쓰는 바람에 애나는 나가떨어지게 되고, 뼈가 산산조각 나서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는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애나는 해고되어 친구이자 같은 헨치인 준의 집에 머물면서 정의를 앞세운 히어로가 끼친 피해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를 블로그에 게시하고 이슈화되어 유명해지자, 전설이라 불리는 빌런 '레비아탄'을 위해 일하게 된다.



설정부터가 독특했던 소설이었다. 히어로와 빌런이 마치 직업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들 역시 그에 걸맞은 이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헨치라고 불리는 직업이었지만, 거의 비서나 잡일꾼, 운전기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헨치를 단순히 직업으로 여겨서 그런지 애나와 준 같은 헨치들은 빌런을 위해 일한다는 걸 개의치 않아 했다. 나쁜 짓은 빌런이 저지르고 자신은 비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아서 직접적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애나의 인생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고용주인 빌런이 납치한 시장 아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생방송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저 빌런의 곁에 서 있는 역할이었을 뿐이지만 빌런을 위해 일한다고 얼굴이 팔리는 상황인 건 분명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출동한 히어로 슈퍼콜라이더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다리뼈가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느라 해고까지 당하고 그로 인해 집세까지 못 내는 지경이 됐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애나는 당연히 슈퍼콜라이더를 증오하게 됐고, 회복을 하느라 준의 집 거실에만 있다 보니 그 피해를 수치화하는 데에 관심이 기울어 그녀의 주특기인 데이터화를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으니 여태껏 본 히어로 무비의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히어로가 빌런과 싸울 때 허허벌판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피해가 발생한다. 누군가가 다치고 죄 없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온전하던 건물이 순식간에 먼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피해는 대체 누가 보상해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마블 영화에서는 피해자에게 보상해 주기도 한다는 장면이 언뜻 지나갔던 기억이 나긴 하지만, 자잘한 피해는 아마 못 해주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을 발상을 전환시켜 전개되고 있었다.

히어로들에게 입은 피해를 수치화한 결과, 애나는 레비아탄에게 고용되는 영광을 누린다. 심지어 기지 내에 좋은 숙소까지 생겼다. 이후 그녀는 팀을 꾸려 히어로들을 골탕 먹이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헨치들은 평범한 사람이라 초능력이 있는 히어로들과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기 때문에 소소한 장난이나 짜증이 날 정도의 일을 벌였다. 그 정도라면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레비아탄은 빌런이라 골탕을 먹이는 것보다 진짜 나쁜 짓을 벌이길 원했기에 애나는 갈등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인간관계까지 변화되어 그녀는 의지할 데까지 없어져 심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빌런은 아니지만 빌런을 위해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줬다. 잃을 게 많은 히어로와는 다르게 빌런은 왜 외톨이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애나가 안타까웠지만, 다른 헨치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덜 외롭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이 후반을 향해가면서 슈퍼콜라이더와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히어로라고 해서 다 정의롭고 착하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위선적인 히어로의 가면을 벗겨내고 억압되어 있던 다른 히어로의 해방이 통쾌했다. 그리고 빌런 못지않은 애나의 활약 또한 놀랄만한 발전이었다. 한편으로는 애나가 점점 빌런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좀 애매해지기도 했다.
소설이 확실히 마무리되지 않고 끝난 느낌인데, 혹시 후속작을 염두에 둔 건지 궁금하다. 퀀텀 인탱글먼트도 그렇게 떠나버리고, 레비아탄이나 애나의 모습도 확실한 끝맺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소설로 읽는 코믹스라는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재미있는 설정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상상되어 영화로도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히어로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나 같은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2권 - P207

"나도 히어로들과 한패였을 때 영웅놀이를 했었지. 망토만 안 둘렀을 뿐이었어. 히어로들은 잔인하고, 부패하고, 이기적이야. 그저 숨기고 있을 뿐이지. 모두 정의로운 일을 하는 척을 하면서 말이야." 1권 - P301

"넌 슈퍼콜라이더랑 싸운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러니까 말이야, 진정한 슈퍼빌런인 거지!" 1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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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 룸에서의 마지막 밤 - 리버 피닉스, 그리고 그의 시대 할리우드
개빈 에드워즈 지음, 신윤진 옮김 / 호밀밭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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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피닉스는 1970년 히피 부모의 첫째로 태어나 짧은 스물세 해를 살다 갔다. 우수에 젖은 반항아 같은 분위기와 아름다운 외모, 길지 않은 필모그래피,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 그리고 이제는 연기력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그의 동생 호아킨 피닉스가 내가 알고 있는 리버 피닉스에 대한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세상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과 선하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리버 피닉스의 부모 존과 알린(훗날 '하트'로 개명) 보텀은 히피 무리들과 살아가다 신흥 종교 '칠드런 오브 갓'의 핵심 구성원이 되어 선교를 하기 위해 남쪽으로 파견되었다.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에서 살며 리버의 동생들이 태어났는데, 이전부터 어려웠던 가족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아이들을 굶길 수 없었던 보텀 부부는 간증을 도왔던 아이들에게 찬송가를 부르며 공연하는 구걸을 시켰다고 한다.
어린 시절 리버의 이 사실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보텀 부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무엇을 믿든지 상관없긴 하지만, 종교로 인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 크게 잘못된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굶주리게 만들면서까지 신앙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거기다 아이들에게 구걸까지 시켰으니 더더욱 부정적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자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부모였다는 점이 조금은 의외였다. 부모의 사랑 덕분인지 리버와 동생들은 노래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때부터 리버는 음악을 향한 열정을 품게 됐다. 리버 피닉스는 영화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 거리 공연으로 음악을 시작한 이후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고,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기타를 손에 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알레카스 애틱'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발한 음악 활동을 했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에서 몇 년 동안 생활한 이후 존이 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섯 가족과 뱃속의 아이까지 모두 배에 올라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그 여행에서 리버는 선원들이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를 못에 꽂는 걸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리버와 동생 레인, 호아킨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고 부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완전 비건이 된 것이었다.
지구 환경을 위해서는 채식을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배가 금방 꺼지는 타입이라 안타깝지만 고기를 끊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린 리버와 동생들이 단호하게 채식을 선택한 게 놀랍기만 하다. 어렸을 때는 동물 복지나 환경 같은 것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게 됐던 리버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 도착한 가족은 한동안 어려움이 이어졌지만, 리버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부터 생활이 조금씩 나아졌다. 처음엔 광고를 위주로 찍었으나 TV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망작으로 평가받는 데뷔작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스탠 바이 미>로 연기력을 알렸고, 이후 금세 성장해 아름다운 소년으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는 마약에 빠져들기 시작해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자신이 마약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기 원하지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숨겼고, 그런 와중에도 리버는 선한 성품을 잃지 않았다는 게 뭔가 아이러니했다.
그러다 동생 호아킨, 레인과 함께 바이퍼 룸에 방문했다가 누군가가 준 음료를 마시고 코카인 과잉반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틀 전인 10월 29일 오후부터 31일 새벽 사망 선고가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걸 읽으며 겨우 두 편의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었을 뿐인 리버 피닉스의 마지막이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다. 형제의 죽음을 지켜본 동생들, 가까웠던 사람들, 그리고 리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는 가족들까지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제 막 피어난 젊음이 제대로 만개하지 못하고 져버렸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했다.

리버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책은 80~90년대 할리우드의 이야기도 함께 곁들였다. 리버와 함께 일했던 배우들이나 감독, 스태프, 그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빈자리를 채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에단 호크는 어렸을 적 리버와 함께 <컴퓨터 우주 탐험>을 촬영하며 가까워졌었다. 리버가 마지막으로 들른 장소인 '바이퍼 룸'이라는 클럽은 조니 뎁의 소유였고, 리버에게 제안이 갔던 영화 <토탈 이클립스>와 <바스켓볼 다이어리>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했다.

알게 모르게 마약을 남용하던 90년대가 아니었다면 리버 피닉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싶다. 가족과 히피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또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짧은 인생, 길지 않은 기록이지만,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인해 리버 피닉스는 불사조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살아있는 존재가 된 듯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박수 소리와 극한의 고통 사이에, 그 농장과 바이퍼 룸 사이에, 페퍼민트와 헤로인 사이에 하나의 삶이, 리버 피닉스의 23년 세월이 존재한다. - P10

by. 마샤 플림튼
"리버는 이미 순교자가 되어 있었어요. 추락한 천사, 구세주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니까요. 리버는 그냥 마음씨가 참 고운 소년, 어쩌다 보니 더럽게 재수 없게 죽었을 뿐 자신의 선한 의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몰랐던 평범한 소년이었을 뿐인데 말이에요. 난 리버의 죽음에서 위안을 얻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행태에, 리버를 아프게 만든 사람들한테, 리버한테 화를 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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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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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 역병과 기근이 일어나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자, 선대 왕 라이오스의 죽음에 대해 밝히려고 한다. 그리하면 도시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신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밝히려는 와중에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서 오이디푸스 자신이 라이오스의 살인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제 어미와 결혼한다는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에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이 거짓이라 치부하지만, 라이오스가 살해당할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하인에게서 진실을 듣게 된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오이디푸스는 제 눈을 멀게 만들고 떠난다.

안티고네 형제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두고 싸우다 두 사람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오이디푸스의 뒤를 이어 테바이를 다스리게 된 처남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사실이 못마땅했던 그들의 여동생 안티고네는 홀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준다. 이후 크레온은 화가 나서 안티고네를 산 채로 지하 동굴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린다.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이 아버지를 말리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결국 안티고네가 동굴에서 목을 맨 걸 발견한 하이몬은 자살을 하고, 아들의 죽음에 크레온의 아내 역시 목숨을 끊는다.

아이아스
아킬레우스가 죽으면서 남긴 무구들은 아이아스에게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뒷세우스에게 향하자 아이아스는 적의를 품고 가축들과 그를 지키는 사람들을 살육했다. 여신 아테네가 아이아스의 눈을 가려 착각을 하게 만든 탓이었다. 정신을 놓은 아이아스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의 동생 테우크로스가 형의 장례를 치르려고 하자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반대를 한다. 그러던 중 오뒷세우스가 나타나 그들을 설득해 장례를 치르게 한다.

트라키스 여인들
오랫동안 남편 헤라클레스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데이아네이라는 마침내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것도 왕을 쓰러뜨리고 그 딸을 포로로 잡아 새 신부로 데리고 온다는 소식이었다.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의 묘약을 묻힌 옷을 헤라클레스에게 보내지만, 그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휩싸인다. 아들 휠로스에게서 남편의 고통을 듣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아들에게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라 명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하지만 정작 <오이디푸스 왕>의 세세한 내용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기원전 5세기라는, 너무 까마득해서 감도 잡히지 않는 시대에 쓰인 희곡을 읽고 있으니 처음엔 어렵기만 했다. 한글인데 한글을 읽는 것 같지 않았던 기분은 <구운몽>을 읽었을 때의 기시감과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한 번 읽기 시작했으니 오기로라도 끝까지 읽었는데, 뒤로 가면서는 익숙해져서 마침내 내가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의 저주에 도달했다.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을 알고 있던 오이디푸스가 사실은 버려진 자식이고 부모는 양부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생부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이 싫고 혐오스러우면서 비참한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운명이라는 게 뭔지, 신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인지 분노도 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스스로 눈을 멀게 만들고서 다 버리고 떠난 것일 터였다.
한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일깨우기엔 너무 가혹하다 느껴졌다. 아무리 신탁이 내려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세상에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라던 오이디푸스의 대사가 참 와닿았다.

<안티고네>는 2년 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서 그리스 신화를 찾아 읽은 후 알게 됐다. 해당 영화 속 인물들을 모두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차용했는데, 난민 문제로 엮었다는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설정 자체가 거부감이 일어서 좋게 보진 못했다.
그렇게 한 번 접했던 내용을 자세하게 읽게 됐다. 순수하게 오빠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안티고네와 폴뤼네이케스의 행실로 인해 장례를 금지한 크레온의 대립이 주된 내용이었다. 안티고네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오빠를 묻은 것이었지만, 크레온의 입장에서는 안티고네가 범법자를 옹호한 것이었다. 심지어 법을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그런 이유로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처벌을 내리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방법이었다. 아들 하이몬까지 와서 말렸지만, 크레온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야기가 비극으로 향하기 위해서 크레온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은 것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아들까지 와서 부탁을 하는데 외면한 그가 똥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 거라 느껴졌다. 크레온을 보면 인과응보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이아스>와 <트라키스 여인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역시나 비극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수적으로 포함된다는 걸 느꼈다. <아이아스>에서는 여신 아테네로 인해 비극이 일어났고, <트라키스 여인들>에서는 좋은 의도로 알고 한 일이 알고 보니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게 그랬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런 장치는 신탁이었을 테고, <안티고네>에서는 크레온의 고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치들은 적절히 활용되어 비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읽기가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하면 나름 재미있는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고전 중의 고전인 이런 책들을 종종 읽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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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이제 나는 신에게 버림받고, 경건치 못한 자식으로, 불운한 나를 낳아 준 바로 그분들과 함께 자식을 낳은 자로다. 불행보다 더한 어떤 불행이 있다면, 그것을 오이디푸스가 만났도다. <오이디푸스 왕> - P106

안티고네 나는 오빠의 시신을 묻겠어.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 누이로서 그의 곁에 누울 거야, 오빠의 곁에, 경건한 일을 하고도 범죄자가 된 채. <안티고네> - P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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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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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서 6살 여자아이 제니퍼 크리스털, 일명 제니가 사라졌다. 아이는 몇 집 건너 이웃에 있는 친구 토니네 집에 가기 위해 오전에 집을 나섰다. 엄마 로리는 제니가 잘 가고 있는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들어갔는데, 그 사이 제니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아이가 토니네 집에 가지도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엄마 로리와 아빠 제이크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들 역시 아이를 찾기 위해 애를 썼고, 마을 곳곳에는 제니의 실종 전단이 붙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제니는 흔적조차, 시신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2년이 흐른 후, 마을에 낯선 한 소녀가 나타났다. 전봇대에 붙은 빛바랜 실종 전단을 본 소녀는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며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제니 크리스털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경찰서에 도착한 제니는 부모를 부르기에 앞서 신문을 하는 경찰에게 어렸을 때 가족과 있었던 일을 드문드문 이야기했다. 곧이어 로리와 제이크가 경찰서에 도착해 감격의 재회가 이루어졌고, 그들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낸다. 오로지 제니의 오빠 벤만이 18살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낯선 그녀를 의심할 뿐이었다.



6살 때 실종된 아이가 12년이 지나 집에 돌아오는 건 정말 희박한 확률일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그렇게 오래 남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아무리 떠올려봐도 6살 때, 혹은 그 나이쯤에 어디에서 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누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가족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거의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기억만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런 이유로 인해 처음부터 제니가(제니라 사칭하는 소녀가) 의심스러웠다. 제니의 실종 전단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되뇌는 모습에서 거의 확신하기까지 했다. 이 아이는 어떤 이유로 인해 제니와 가족의 추억을 알게 됐는데, 제니인 척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의심스러운 부분과는 별개로 부모와의 재회는 너무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실종된 딸이 나타났을 때 부모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조금 어색해지긴 했지만, 그건 1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때문일 것이라 여겨졌다. 반면에 벤은 제니를 의심스러워했다. 마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집에서 뭔가를 훔쳐 갈 것 같은 사람을 보는 듯했다. 가짜 제니 입장에서는 벤을 자극하지 않고 부모에게 더 가까워져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위해 부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니는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그리고 밤에는 누군가가 방에 들어와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소설이 여기까지 오니 이 가족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가짜 제니는 안전을 위해 이 집을 선택했는데, 사실은 이 집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 인해 가짜 제니는 이 가족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설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을 때 이 가족의 비밀이 무엇일지 상상해 봤었다. 몇 가지 경우가 떠올랐는데, 소설 마지막에 밝혀진 비밀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아직 어렸던 진짜 제니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게 정말 사람이긴 한 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하는 말을 들으니 혀를 잘라도 모자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너무 쉬웠던 건 아닌가 아쉽기도 했다. 그런 인간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죽기 직전까지 고통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소설은 해피엔딩이지만 심적으로는 해피엔딩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겪은 고통 때문이었다. 창작된 소설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씁쓸하기만 했다.

나는 계속 부유했다.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걸어가는 듯이, 한편으로는 흘러가는 듯이 이 작은 동네를 꿈결처럼 맴돌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억날 듯 말 듯 했다. 예전과 똑같아 보이기도 확연히 달라 보이기도 했다. 꼭 나처럼. - P17

"우리가 삼촌이라 부를 때까지 브렌트 삼촌이 간지럼을 태웠다는 장난 있지? 내가 지어낸 얘기야.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도 네가 기억한다니 참 이상하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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