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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평점 :
어느 마을에서 6살 여자아이 제니퍼 크리스털, 일명 제니가 사라졌다. 아이는 몇 집 건너 이웃에 있는 친구 토니네 집에 가기 위해 오전에 집을 나섰다. 엄마 로리는 제니가 잘 가고 있는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들어갔는데, 그 사이 제니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아이가 토니네 집에 가지도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엄마 로리와 아빠 제이크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마을 사람들 역시 아이를 찾기 위해 애를 썼고, 마을 곳곳에는 제니의 실종 전단이 붙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제니는 흔적조차, 시신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2년이 흐른 후, 마을에 낯선 한 소녀가 나타났다. 전봇대에 붙은 빛바랜 실종 전단을 본 소녀는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며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제니 크리스털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경찰서에 도착한 제니는 부모를 부르기에 앞서 신문을 하는 경찰에게 어렸을 때 가족과 있었던 일을 드문드문 이야기했다. 곧이어 로리와 제이크가 경찰서에 도착해 감격의 재회가 이루어졌고, 그들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낸다. 오로지 제니의 오빠 벤만이 18살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난 낯선 그녀를 의심할 뿐이었다.
6살 때 실종된 아이가 12년이 지나 집에 돌아오는 건 정말 희박한 확률일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그렇게 오래 남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아무리 떠올려봐도 6살 때, 혹은 그 나이쯤에 어디에서 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누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가족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거의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기억만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런 이유로 인해 처음부터 제니가(제니라 사칭하는 소녀가) 의심스러웠다. 제니의 실종 전단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되뇌는 모습에서 거의 확신하기까지 했다. 이 아이는 어떤 이유로 인해 제니와 가족의 추억을 알게 됐는데, 제니인 척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의심스러운 부분과는 별개로 부모와의 재회는 너무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실종된 딸이 나타났을 때 부모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조금 어색해지긴 했지만, 그건 1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때문일 것이라 여겨졌다. 반면에 벤은 제니를 의심스러워했다. 마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집에서 뭔가를 훔쳐 갈 것 같은 사람을 보는 듯했다. 가짜 제니 입장에서는 벤을 자극하지 않고 부모에게 더 가까워져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위해 부모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니는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그리고 밤에는 누군가가 방에 들어와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소설이 여기까지 오니 이 가족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가짜 제니는 안전을 위해 이 집을 선택했는데, 사실은 이 집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 인해 가짜 제니는 이 가족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설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을 때 이 가족의 비밀이 무엇일지 상상해 봤었다. 몇 가지 경우가 떠올랐는데, 소설 마지막에 밝혀진 비밀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아직 어렸던 진짜 제니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게 정말 사람이긴 한 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하는 말을 들으니 혀를 잘라도 모자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너무 쉬웠던 건 아닌가 아쉽기도 했다. 그런 인간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죽기 직전까지 고통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소설은 해피엔딩이지만 심적으로는 해피엔딩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겪은 고통 때문이었다. 창작된 소설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씁쓸하기만 했다.
나는 계속 부유했다.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걸어가는 듯이, 한편으로는 흘러가는 듯이 이 작은 동네를 꿈결처럼 맴돌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억날 듯 말 듯 했다. 예전과 똑같아 보이기도 확연히 달라 보이기도 했다. 꼭 나처럼. - P17
"우리가 삼촌이라 부를 때까지 브렌트 삼촌이 간지럼을 태웠다는 장난 있지? 내가 지어낸 얘기야.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도 네가 기억한다니 참 이상하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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