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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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와 빌런이 너무나도 많은 시대.
애나 트로메들롭은 프리랜서 '헨치'로 일하고 있다. 헨치는 빌런에게 고용되어 각종 잡일을 하는 직업이었다. 현장에 나가 움직이는 운전기사와 같은 헨치도 있었지만, 애나는 후방에서 각종 문서 작업과 데이터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 거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고용주가 빌런일 뿐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프리랜서 헨치로 일하던 애나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빌런과 장기 계약을 맺게 된다. 장기 계약으로 인해 재택근무에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현장에 나가게 되는데, 하필이면 빌런을 처리하기 위해 그곳으로 출동한 히어로 중의 히어로 '슈퍼콜라이더'를 맞닥뜨리게 된다. 슈퍼콜라이더는 빌런이 납치한 소년을 구해내려다가 힘을 쓰는 바람에 애나는 나가떨어지게 되고, 뼈가 산산조각 나서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는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애나는 해고되어 친구이자 같은 헨치인 준의 집에 머물면서 정의를 앞세운 히어로가 끼친 피해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를 블로그에 게시하고 이슈화되어 유명해지자, 전설이라 불리는 빌런 '레비아탄'을 위해 일하게 된다.



설정부터가 독특했던 소설이었다. 히어로와 빌런이 마치 직업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잡다한 일을 하는 사람들 역시 그에 걸맞은 이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헨치라고 불리는 직업이었지만, 거의 비서나 잡일꾼, 운전기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헨치를 단순히 직업으로 여겨서 그런지 애나와 준 같은 헨치들은 빌런을 위해 일한다는 걸 개의치 않아 했다. 나쁜 짓은 빌런이 저지르고 자신은 비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아서 직접적으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애나의 인생이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고용주인 빌런이 납치한 시장 아들의 몸값을 요구하는 생방송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저 빌런의 곁에 서 있는 역할이었을 뿐이지만 빌런을 위해 일한다고 얼굴이 팔리는 상황인 건 분명했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출동한 히어로 슈퍼콜라이더와 맞닥뜨리는 바람에 다리뼈가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하느라 해고까지 당하고 그로 인해 집세까지 못 내는 지경이 됐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애나는 당연히 슈퍼콜라이더를 증오하게 됐고, 회복을 하느라 준의 집 거실에만 있다 보니 그 피해를 수치화하는 데에 관심이 기울어 그녀의 주특기인 데이터화를 시작했다.
여기까지 읽으니 여태껏 본 히어로 무비의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히어로가 빌런과 싸울 때 허허벌판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피해가 발생한다. 누군가가 다치고 죄 없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온전하던 건물이 순식간에 먼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피해는 대체 누가 보상해 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마블 영화에서는 피해자에게 보상해 주기도 한다는 장면이 언뜻 지나갔던 기억이 나긴 하지만, 자잘한 피해는 아마 못 해주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을 발상을 전환시켜 전개되고 있었다.

히어로들에게 입은 피해를 수치화한 결과, 애나는 레비아탄에게 고용되는 영광을 누린다. 심지어 기지 내에 좋은 숙소까지 생겼다. 이후 그녀는 팀을 꾸려 히어로들을 골탕 먹이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헨치들은 평범한 사람이라 초능력이 있는 히어로들과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기 때문에 소소한 장난이나 짜증이 날 정도의 일을 벌였다. 그 정도라면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레비아탄은 빌런이라 골탕을 먹이는 것보다 진짜 나쁜 짓을 벌이길 원했기에 애나는 갈등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인간관계까지 변화되어 그녀는 의지할 데까지 없어져 심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빌런은 아니지만 빌런을 위해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줬다. 잃을 게 많은 히어로와는 다르게 빌런은 왜 외톨이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애나가 안타까웠지만, 다른 헨치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덜 외롭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이 후반을 향해가면서 슈퍼콜라이더와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히어로라고 해서 다 정의롭고 착하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위선적인 히어로의 가면을 벗겨내고 억압되어 있던 다른 히어로의 해방이 통쾌했다. 그리고 빌런 못지않은 애나의 활약 또한 놀랄만한 발전이었다. 한편으로는 애나가 점점 빌런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좀 애매해지기도 했다.
소설이 확실히 마무리되지 않고 끝난 느낌인데, 혹시 후속작을 염두에 둔 건지 궁금하다. 퀀텀 인탱글먼트도 그렇게 떠나버리고, 레비아탄이나 애나의 모습도 확실한 끝맺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소설로 읽는 코믹스라는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재미있는 설정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상상되어 영화로도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히어로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나 같은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2권 - P207

"나도 히어로들과 한패였을 때 영웅놀이를 했었지. 망토만 안 둘렀을 뿐이었어. 히어로들은 잔인하고, 부패하고, 이기적이야. 그저 숨기고 있을 뿐이지. 모두 정의로운 일을 하는 척을 하면서 말이야." 1권 - P301

"넌 슈퍼콜라이더랑 싸운 거야. 그러니까 너는, 그러니까 말이야, 진정한 슈퍼빌런인 거지!" 1권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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