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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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집에서 나와 노량진 고시텔에서 지내는 수아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동생 경아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 도착한 수아는 그 사이에 사망한 경아의 시신을 보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둘째 딸의 죽음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경찰은 수아에게 증거품인 동생의 핸드폰을 건네주며 지인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린 뒤에 다시 돌려달라고 말했다. 경아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는데 경찰이 개입된 것과 증거품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수아는 장례식장이 준비될 동안 고시텔로 돌아가 핸드폰을 백업해두었다.

그러고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데, 경아의 핸드폰 SNS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경아가 개명한 이름인 '임리아' 빈소 현황 스크린을 찍은 사진이 있었고, 경아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때부터 수아는 동생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에 관련된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22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이 죽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수아는 어떤 심경이었을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예쁘고 착한 경아는 늘 언니를 대단하게 여기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수아는 경아처럼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엄마와 아빠보다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던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다 자살인 줄 알았던 동생의 죽음이 살해당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 복수해야만 했다. 처음엔 경찰로 위장해 경아의 핸드폰을 건네준 '익명'을 의심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닌, 경아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구급차를 불러준 사람이고 수아만큼이나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수아는 익명과 서로 돕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수아가 시간이 날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의 매니저인 언니도 그녀를 도왔다.
이런 와중에 수아는 임용고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력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평소 루틴을 따르며 1차에 합격까지 했다. 익명이 말했던 것처럼 수아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경아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낼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일이 생각과는 다르게 잘 풀리게 됐다. 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경아는 예쁜 외모로 지역 내에서 유명했었는데, 수아는 경아가 SNS를 통해 '봉사녀'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졌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수아가 경아의 핸드폰을 다른 기종에 백업해서 가지고 다니다가 SNS의 좋아요를 눌렀고, 그로 인해 경아와 맞팔이 되어있는 래퍼 동생에게 다이렉트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실수로 누른 좋아요였지만, 그 덕분에 수아는 경아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평범한 고시생인 수아가 동생을 죽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과연 해칠 수 있을까, 처음엔 의문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수아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상과 생각들을 읽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익명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죽일 것 같았다. 그렇게 소설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고 가며 절정에 이르렀고, 불행 중 다행으로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섬뜩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문장을 읽고서 곧바로 든 생각은 세상에 완벽한 일이라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곰곰이 되새겨보고 소설의 첫 페이지를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하게 앞서나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한 기운이 남았다.

죽음을 가장한 복수가 평범하진 않지만 초반부터 목표로 했던 복수를 향한 평범한 여정을 담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복수로 인해 또 다른 복수를 부르게 된 소설, 그리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쌓인 인물을 만났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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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는 자살 같은 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경아의 죽음이 자살일 리 없었다. 그 사실을 경찰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정황상 자살로 보이더라도 경아는 자살 같은 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유족으로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고, 걔는 정말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 P15.16

공식적으로 경아의 죽음은 자살이었고, 실제로 경아가 했던 행동들을 복기해 보아도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아는 살해당한 것이었다. 자살했지만 살해당했다. - P192

이 일은 나를 고장 낼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고장 났으니까. 경아가 죽었을 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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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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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그래서 때로는 승자가 패자의 역사의 기록하기도 해서 패자가 이뤄낸 것들이 폄하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인물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패자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사회주의자라든지, 월북을 했다든지 등의 행적으로 인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인물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이름을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생소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소개된 이들은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이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바깥일이라 칭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시절에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고자, 혹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있었다.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인물은 3·1 운동에 투신했던 기생 정칠성,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숨기기에 급급했던 위안부에 대해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님이었다.
독립운동가 남자현은 영화 <암살>의 주인공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독립에 몰두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몇 번이고 손가락을 잘라내 혈서를 쓰는 것도 개의치 않아 할 정도로 독립을 위해서라면 제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정칠성은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일패 기생이었으나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이후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에 몰두했다. 시대를 앞선 행적이었으나 대중들은 그녀의 과거나 아름다운 외모만 들먹였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정칠성의 열정이 돋보였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님이 위안부 참상에 대해 최초로 증언을 하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당황했고, 덕분에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뒤이어 다른 할머님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30년이 넘도록 전쟁 당시의 위안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개탄스럽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12월이 되면 구입을 했었던 크리스마스 씰은 조선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을 기리기 위해 그녀를 아낀 스승 로제타 여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개화한 아버지 덕분에 김점동은 이화학당에 입학을 하게 됐고, 그곳에서 로제타 여사를 만나 그녀와 함께 뉴욕으로 갔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최연소 학생이자 최초의 한국인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을 결핵으로 떠나보내고, 조선으로 돌아온 후 그녀 역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로제타 여사도 그런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과 한국 영화의 개척자라 불리는 춘사 나운규, 쥘 베른의 SF를 최초로 번역한 신태악, 한국의 미켈란젤로라 불린 이쾌대 등 문화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였던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반짝 빛나던 순간이 지난 후 끝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로 알게 됐었던 박열, '한겨레'를 창간한 주역인 여성 언론인의 대모 조성숙,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등 여러 분야 인물들의 업적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편향된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기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친일파에 대해서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고난과 역경이 많았던 20세기를 살아가면서 세상에 맞선 자들의 이야기가 새로웠다. 몰랐던 인물들의 업적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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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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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치 스님의 코는 너무나 길어서 코끝이 턱에 닿을 정도였다. 너무나 큰 콤플렉스라 젠치 스님은 대화중에 코가 언급되기만 하면 두려워했다. 그러던 중 제자승이 코를 짧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워온다.
마죽 섭정을 섬기는 사무라이 아무개라고 하는 오위는 모든 이들에게서 무시를 당했다. 심지어 길에서 노는 아이들조차 오위를 무시했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토록 좋아하는 마죽을 원 없이 먹는 것이었다. 하급 가신의 아들 도시히토가 그 사실을 알고 마죽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며 그를 이끈다.
라쇼몬(羅生門)
교토에 일어난 온갖 재난으로 인해 쇠락을 맞게 된 바람에 하인으로 일하던 남자는 주인집에서 쫓겨나게 됐다. 오갈 데 없이 라쇼몬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하인은 한 노파가 누각에 쌓인 어느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는 걸 목격한다.

묘한 이야기
지에코의 남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지중해에 파견된 배의 승무 장교였다. 남편에게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가 오곤 했는데 갑자기 소식이 끊겨 지에코는 신경 쇠약이 심해졌다. 그러다 비 오던 날 친구 집에 놀러 가던 지에코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에게서 남편의 소식을 듣게 된다.
다네코의 우울
다네코는 남편 선배의 딸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를 받았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서 열리는 이 피로연에서 양식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다네코는 양식 먹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엄마
상하이의 일본식 여관에 머물고 있는 도시코와 남편은 얼마 전 방을 옮겼다. 이곳에 온 날 아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여관에서 묵고 있던 같은 이름의 도시코라는 여인 역시 아기와 함께 있었는데, 여종업원에게서 그 소식을 듣는다.

우울함에 시달리던 화가는 어느 날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래서 모델을 불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그녀를 목 졸라 죽인다.
흙 한 덩이
8년 동안 몸져누웠던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스미는 며느리 다미에게 새 남편을 찾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다미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며, 남자들이나 하는 고된 논밭일을 도맡아 했다. 다미가 바깥에서 일하는 동안 스미는 손자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다미는 고약해져 가는 바람에 스미만 괴로워진다.
지옥변
호리카와 대신은 화가 요시히데에게 '지옥변' 그림을 그려달라 청한다. 성격이 고약한 요시히데는 꼭 직접 본 것들만 그려야 했던 사람이라 제자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해댔었다. 지옥변 그림을 그려가던 그는 도무지 그려지질 않는 하나의 그림을 위해 호리카와에게 청을 하게 된다.

거미줄
극락의 연못 밑바닥은 지옥이었다. 부처님은 연못을 들여다보다가 간다타라는 사내를 목격한다. 그는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악한이라 지옥에 떨어진 것이었는데, 부처님은 그가 거미를 살려줬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그를 지옥에서 구해주기로 마음먹는다.
두자춘(杜子春)
두자춘은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재산을 탕진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노인이 그를 가엽게 여겨 황금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덕분에 두자춘은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살게 된다. 그러나 3년 만에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거리로 나앉은 그는 다시금 노인을 마주하게 되고, 그에게서 또 황금이 있는 곳에 대해 듣게 된다.
신들의 미소
선교사로 일본에 온 오르간티노 신부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리스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다 어떤 노인을 만나 일본에 대해 듣게 된다.

덤불 속
덤불 속에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와 마주친 승려, 그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도둑 다조마루, 남자의 아내와 죽은 이의 혼까지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갓파(河童)
어느 정신병원의 환제 제23호가 3년 전에 어떤 구멍을 통해 '갓파'의 나라에 들어가 살았던 이야기를 한다.



영화 <라쇼몽>을 본 계기로 원작을 찾아 읽게 됐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책은 처음이었지만, 이름이 너무나 익숙한 이유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 덕분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묘한 느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집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로 만난 <덤불 속>과 <지옥변>이었다.
<덤불 속>을 영화화한 <라쇼몽>은 1950년에 제작되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영화로 인해 '라쇼몽 효과'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말하는 바가 달랐기에 어떤 진술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하기 나름이라는 걸 잘 표현해냈다. 1922년에 발표된 소설이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지옥변>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던 흐름이었으나 막상 그렇게 흘러가니 좀 당황스러웠다. 보고 겪은 것만 그릴 수 있다고 말하는 성격 이상한 환쟁이에게도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림을 의뢰한 대신 역시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간이었기에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깨우침을 위한 방법이 너무 과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꿈>은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엄마>의 마지막은 과연 저럴 수 있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거미줄>과 <두자춘>은 교훈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해설을 읽으니 동화라고 한다.
읽으며 특별히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건 <신들의 미소>였다. 한자, 종교, 문화 등의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본화를 너무 심하게 하고 있어서 별로였다. 조국에 대한 애정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 단편만큼은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편집이라 금세 읽을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야기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고 좋고 나쁨도 분명하긴 했지만, 무난하게 읽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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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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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구티에레스 경위는 포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매춘부를 구해주려다 도리어 당하고 만다. 포주의 차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을 몰래 넣어둔 뒤 그를 붙잡을 예정이었는데, 어린 매춘부가 갑자기 포주를 불쌍하게 여겨 그에게 계획을 불어버리는 바람에 존이 덤터기를 쓰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존은 부패 경찰이라는 오명과 함께 정직 상태가 됐고 월급도 끊겼다. 심지어 기사까지 화제가 되고 있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존에게 멘토르라는 이름의 남자가 찾아와 제안을 하나 한다. 어떤 여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해 차에 탈 수 있게만 한다면 그를 괴롭히는 지금의 요소들을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디 소속인지 이름이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존에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 안토니아 스콧의 집을 찾아간다.

안토니아는 이번에도 멘토르가 보낸 남자를 돌려보냈지만, 할머니와의 통화가 마음에 걸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붙잡았고, 결국 오늘 밤만이라는 조건으로 그를 따라간다.
존이 안토니아를 태우고 멘토르에게서 받은 주소로 차를 몰고 가자, 스페인의 최상류층만 거주할 수 있는 초호화 주택 단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중 멘토르가 기다리고 있던 저택에 들어간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죽어있는 소년을 보게 된다. 너무나 창백한 그 소년은 알고 보니 몸에서 피를 조금씩, 모두 다 빼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존과 안토니아는 경찰도 모르게 범인을 캐내기 위해 움직였다.



소년이 발견된 주택단지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입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러시아와 콜롬비아 부자가 그곳에 입주하는 게 거부됐을 만큼 소유주의 재정 상태와 청렴도를 보는 듯했고, 단지에는 CCTV와 상시 근무 중인 경비가 두 사람이나 있었다. 집 주인이 파티를 열고 싶을 땐 초대받은 사람과 차 번호 목록을 빠짐없이 경비실에 제출해야 했고, 차가 들어올 때 일일이 대조한다고 했다.
이런 곳에서 소년의 사체가 발견되었으니 믿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소년이 유럽 최대 은행 회장의 아들 알바로 트루에바라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스페인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이 떠들썩해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수사를 하는 경찰들은 어깨에 바윗돌을 얹은 것 마냥 부담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뉴스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멘토르가 말했다. 소년은 납치 후 살해된 게 아니라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고, 의사가 확인해 줄 거라면서 말이다. 존은 멘토르의 말에 의아해했지만, 안토니아는 익숙한 듯 보였다.
이렇게 소년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을 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의류 사업을 이어받을 예정으로 회사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카를라 오르티스가 사라진 것이었다.

부자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운, 유럽을 아우르는 재벌의 자식들이 연이어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언론에는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채, 존과 안토니아가 USE(납치 및 갈취 전담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협업 내지는 눈밖에 날 조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안토니아의 능력 덕분이었다. 안토니아는 한 번 본 것, 읽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능력 덕분에 유럽 각국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붉은 여왕' 프로젝트에 참여를 해 선발되었다. 멘토르는 그녀를 훈련시키며 능력을 최대로 키우기 위해 애를 썼다. 약물을 복용시키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로 인해 안토니아는 때로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복잡하게 뒤엉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곤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비밀리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매번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3년 전, 집에 찾아온 누군가에 의해 남편 마르코스가 총에 맞아 식물인간이 되면서 안토니아는 망가져버렸고, 아들 호르헤를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절박한 존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고, 백만장자의 자식들이 납치된 사건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건 '에세키엘'이라 불리는 범인이 납치한 이들의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설은 존과 안토니아의 시점을 주로 보여주다가 때로는 에세키엘의 시선도 보여줬는데, 그는 보편적인 납치범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종교적 신념이 가득한 그가 대체 무슨 연유로 백만장자들의 자식을 납치하고도 돈이 아닌 다른 걸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납치범의 전화를 받은 부모들 역시 뭘 요구했는지 말하기를 꺼려 했기에 마지막까지 그 비밀을 궁금해했다.
또한 소설은 사망한 소년에 뒤이어 납치된 카를라의 시점도 주기적으로 보여주며 그녀가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신적, 신체적 한계를 딛고 과연 탈출할 수 있을지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사를 하는 안토니아와 존이 이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듯 그들의 앞을 번번이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겼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안토니아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사건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일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거대한 몸집에 섬세한 게이인 경찰 존과 작고 편집증적이지만 머리가 빌어먹게 똑똑한 안토니아의 협업이 처음엔 삐거덕거리고, 감정적으로도 잘 맞지 않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상대의 내면과 과거, 진심 등을 알게 되면서 환상의 파트너가 되었다. 두 사람이 수사를 하는 과정이 여태껏 소설에서 봤었던 경찰들과 조금은 달라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서로의 유대가 쌓여가는 과정 역시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이 파트너로 활약한 이 소설은 총 3부작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며 끝이 났기에 다음 시리즈도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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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는 에세키엘이 말했던 내용을 모두 말하지 않았어요. 왜 아버지가 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숨길까요?" - P262

"그는 불가능한 요구를 한 후에, 저에게 5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덧붙이기를, 자녀는 부모의 죄를 담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끊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이 내릴 수 없는 결정들이 있어요. 누구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선택들." - P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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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입니다만, 그림도 좋아합니다 - 영화가 불러낸 뜻밖의 명화 이야기
김현정 지음 / 라의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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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와중에 틈틈이 비소설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갈 때마다 비소설 분야 신착 코너를 둘러보곤 하는데, 최근에 갔다가 이 책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무래도 영화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다 보니 자연스레 눈이 갈 수밖에 없었고, 근래에 미술 관련 책을 종종 읽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다. 좋아하는 분야인 영화와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미술의 결합이라니 이거다 싶었다.

다행히 책에 소개된 영화 들 중 내가 본 작품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봤던 영화들을 떠올리며 의미를 되새겨봤고, 함께 소개된 미술 작품을 감상했다.



홍콩 반환 역사를 배경으로 10년에 걸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영화 <첨밀밀>을 앤디 워홀과 함께 소개한 게 첫 이야기였다. 팝 아트로 널리 이름을 알린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본 적은 있으나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가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미국의 대형 마트에서 본 상품들 덕분에 그의 예술 세계가 펼쳐졌다고 소개했다. '캠벨 수프 캔'은 여기저기서 종종 봤었으나 왜 이게 그렇게 유명한 건가 생각만 했을 뿐 이유를 찾아본 적이 없었다. 책에 간략하게 소개된 앤디 워홀의 가정사로 인해 그의 예술 세계가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 <첨밀밀>의 이요와 여소군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꾸려내 영화가 새롭게 느껴졌다.

초등학생 양양이 카메라 너머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던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함께 소개했다. 카메라 너머의 시선과 그림으로 바라본 타인들의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눈길>을 故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그림에 담긴 할머님의 심경이 전달되어 괴롭게 느껴졌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직까지 일본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개탄스럽다.
영화 <아무르>를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과 함께 보여줬는데, 여태껏 뭉크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절규'뿐이라 소개한 그림을 보며 조금 놀라웠다.
영화와 그림에 대해 말하는 책에서 빠질 수 없던 작품은 <러빙 빈센트>였다. 고흐의 화풍으로 그린 유화를 영상화한 멋진 영화였는데, 고흐가 그린 종교화 중 하나라는 '나자로의 부활'을 함께 보여줬다. 여태껏 고흐의 작품은 밤과 거리 풍경, 가깝게 지낸 사람들 그리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그림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 덕분에 고흐가 몇 안 되지만 종교화도 그렸었다는 걸 알게 됐다. 책으로 접한 종교화들과는 달리 고흐의 화풍으로 그린 작품이라 왠지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를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함께 보여준 게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드라큘라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림이 뭔가 조화로웠다.



본 영화도 있지만 못 본 영화도 많다. 책을 읽고 함께 소개된 미술 작품을 보며 나중에 꼭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영화가 몇 작품 생겼다. 영화를 본 후에 미술 작품을 다시 보면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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