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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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구티에레스 경위는 포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 매춘부를 구해주려다 도리어 당하고 만다. 포주의 차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을 몰래 넣어둔 뒤 그를 붙잡을 예정이었는데, 어린 매춘부가 갑자기 포주를 불쌍하게 여겨 그에게 계획을 불어버리는 바람에 존이 덤터기를 쓰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존은 부패 경찰이라는 오명과 함께 정직 상태가 됐고 월급도 끊겼다. 심지어 기사까지 화제가 되고 있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존에게 멘토르라는 이름의 남자가 찾아와 제안을 하나 한다. 어떤 여자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해 차에 탈 수 있게만 한다면 그를 괴롭히는 지금의 요소들을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디 소속인지 이름이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존에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 안토니아 스콧의 집을 찾아간다.

안토니아는 이번에도 멘토르가 보낸 남자를 돌려보냈지만, 할머니와의 통화가 마음에 걸려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붙잡았고, 결국 오늘 밤만이라는 조건으로 그를 따라간다.
존이 안토니아를 태우고 멘토르에게서 받은 주소로 차를 몰고 가자, 스페인의 최상류층만 거주할 수 있는 초호화 주택 단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중 멘토르가 기다리고 있던 저택에 들어간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죽어있는 소년을 보게 된다. 너무나 창백한 그 소년은 알고 보니 몸에서 피를 조금씩, 모두 다 빼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존과 안토니아는 경찰도 모르게 범인을 캐내기 위해 움직였다.



소년이 발견된 주택단지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입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러시아와 콜롬비아 부자가 그곳에 입주하는 게 거부됐을 만큼 소유주의 재정 상태와 청렴도를 보는 듯했고, 단지에는 CCTV와 상시 근무 중인 경비가 두 사람이나 있었다. 집 주인이 파티를 열고 싶을 땐 초대받은 사람과 차 번호 목록을 빠짐없이 경비실에 제출해야 했고, 차가 들어올 때 일일이 대조한다고 했다.
이런 곳에서 소년의 사체가 발견되었으니 믿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소년이 유럽 최대 은행 회장의 아들 알바로 트루에바라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스페인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이 떠들썩해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수사를 하는 경찰들은 어깨에 바윗돌을 얹은 것 마냥 부담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뉴스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멘토르가 말했다. 소년은 납치 후 살해된 게 아니라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고, 의사가 확인해 줄 거라면서 말이다. 존은 멘토르의 말에 의아해했지만, 안토니아는 익숙한 듯 보였다.
이렇게 소년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을 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의류 사업을 이어받을 예정으로 회사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카를라 오르티스가 사라진 것이었다.

부자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운, 유럽을 아우르는 재벌의 자식들이 연이어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언론에는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채, 존과 안토니아가 USE(납치 및 갈취 전담부)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협업 내지는 눈밖에 날 조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안토니아의 능력 덕분이었다. 안토니아는 한 번 본 것, 읽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능력 덕분에 유럽 각국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던 '붉은 여왕' 프로젝트에 참여를 해 선발되었다. 멘토르는 그녀를 훈련시키며 능력을 최대로 키우기 위해 애를 썼다. 약물을 복용시키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로 인해 안토니아는 때로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복잡하게 뒤엉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곤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비밀리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매번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3년 전, 집에 찾아온 누군가에 의해 남편 마르코스가 총에 맞아 식물인간이 되면서 안토니아는 망가져버렸고, 아들 호르헤를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절박한 존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고, 백만장자의 자식들이 납치된 사건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건 '에세키엘'이라 불리는 범인이 납치한 이들의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설은 존과 안토니아의 시점을 주로 보여주다가 때로는 에세키엘의 시선도 보여줬는데, 그는 보편적인 납치범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종교적 신념이 가득한 그가 대체 무슨 연유로 백만장자들의 자식을 납치하고도 돈이 아닌 다른 걸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납치범의 전화를 받은 부모들 역시 뭘 요구했는지 말하기를 꺼려 했기에 마지막까지 그 비밀을 궁금해했다.
또한 소설은 사망한 소년에 뒤이어 납치된 카를라의 시점도 주기적으로 보여주며 그녀가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신적, 신체적 한계를 딛고 과연 탈출할 수 있을지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사를 하는 안토니아와 존이 이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듯 그들의 앞을 번번이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겼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안토니아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사건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일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거대한 몸집에 섬세한 게이인 경찰 존과 작고 편집증적이지만 머리가 빌어먹게 똑똑한 안토니아의 협업이 처음엔 삐거덕거리고, 감정적으로도 잘 맞지 않는 듯 느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상대의 내면과 과거, 진심 등을 알게 되면서 환상의 파트너가 되었다. 두 사람이 수사를 하는 과정이 여태껏 소설에서 봤었던 경찰들과 조금은 달라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서로의 유대가 쌓여가는 과정 역시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이 파트너로 활약한 이 소설은 총 3부작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기대감을 갖게 만들며 끝이 났기에 다음 시리즈도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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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는 에세키엘이 말했던 내용을 모두 말하지 않았어요. 왜 아버지가 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숨길까요?" - P262

"그는 불가능한 요구를 한 후에, 저에게 5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덧붙이기를, 자녀는 부모의 죄를 담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끊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이 내릴 수 없는 결정들이 있어요. 누구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선택들." - P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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