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집에서 나와 노량진 고시텔에서 지내는 수아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동생 경아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 도착한 수아는 그 사이에 사망한 경아의 시신을 보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둘째 딸의 죽음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경찰은 수아에게 증거품인 동생의 핸드폰을 건네주며 지인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린 뒤에 다시 돌려달라고 말했다. 경아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는데 경찰이 개입된 것과 증거품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수아는 장례식장이 준비될 동안 고시텔로 돌아가 핸드폰을 백업해두었다.

그러고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데, 경아의 핸드폰 SNS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경아가 개명한 이름인 '임리아' 빈소 현황 스크린을 찍은 사진이 있었고, 경아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때부터 수아는 동생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에 관련된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22살밖에 되지 않은 동생이 죽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수아는 어떤 심경이었을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예쁘고 착한 경아는 늘 언니를 대단하게 여기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수아는 경아처럼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엄마와 아빠보다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던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다 자살인 줄 알았던 동생의 죽음이 살해당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 복수해야만 했다. 처음엔 경찰로 위장해 경아의 핸드폰을 건네준 '익명'을 의심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닌, 경아가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구급차를 불러준 사람이고 수아만큼이나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수아는 익명과 서로 돕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수아가 시간이 날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의 매니저인 언니도 그녀를 도왔다.
이런 와중에 수아는 임용고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력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평소 루틴을 따르며 1차에 합격까지 했다. 익명이 말했던 것처럼 수아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경아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낼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일이 생각과는 다르게 잘 풀리게 됐다. 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경아는 예쁜 외모로 지역 내에서 유명했었는데, 수아는 경아가 SNS를 통해 '봉사녀'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졌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수아가 경아의 핸드폰을 다른 기종에 백업해서 가지고 다니다가 SNS의 좋아요를 눌렀고, 그로 인해 경아와 맞팔이 되어있는 래퍼 동생에게 다이렉트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실수로 누른 좋아요였지만, 그 덕분에 수아는 경아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평범한 고시생인 수아가 동생을 죽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과연 해칠 수 있을까, 처음엔 의문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수아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상과 생각들을 읽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익명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죽일 것 같았다. 그렇게 소설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고 가며 절정에 이르렀고, 불행 중 다행으로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섬뜩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문장을 읽고서 곧바로 든 생각은 세상에 완벽한 일이라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곰곰이 되새겨보고 소설의 첫 페이지를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하게 앞서나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한 기운이 남았다.

죽음을 가장한 복수가 평범하진 않지만 초반부터 목표로 했던 복수를 향한 평범한 여정을 담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복수로 인해 또 다른 복수를 부르게 된 소설, 그리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쌓인 인물을 만났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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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는 자살 같은 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경아의 죽음이 자살일 리 없었다. 그 사실을 경찰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정황상 자살로 보이더라도 경아는 자살 같은 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유족으로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고, 걔는 정말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 P15.16

공식적으로 경아의 죽음은 자살이었고, 실제로 경아가 했던 행동들을 복기해 보아도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아는 살해당한 것이었다. 자살했지만 살해당했다. - P192

이 일은 나를 고장 낼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고장 났으니까. 경아가 죽었을 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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