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 미술사 결정적 순간에서 창조의 비밀을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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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술의 형성: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전반기까지

 

15세기 피렌체에서 시작된 고전미술의 "Classics"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를 모델로 삼고 계승, 발전시킨 결과물을 일컫는다고 한다. 당연히 고대의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미술의 핵심 주제였다. 교회가 가장 큰 고객이었다고 하는데 그리스 신들의 그림만 그려댔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당혹스럽다.

 

 

"마사초"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림에는 원근법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마사초는 그림을 그리던 초창기에는 다른 화가들처럼 원근법 따위 없는 그림을 그렸으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만나게 된 이후 원근법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조각가 경력을 가진 건축가라니 예사롭지 않은 감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마사초는 서양미술 최초로 원근법을 제대로 구현한 작가였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 이어 원근법으로 이름을 알린 화가는 "파올로 우첼로"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초만큼의 천재성이 없어 원근법이 반영된 그림에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그림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통해 신체 비율의 어색함을 이제야 느끼게 됐다. 얼굴의 묘한 각도, 심하게 축 처진 좁은 어깨, 다소 길이가 안 맞고 굵기도 뭔가 이상한 양팔 등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니 인간의 신체를 제대로 그려낸 작품은 아니었다. 분위기만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그림이라 여태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신체의 어색함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자연히 따라온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천재성을 보인 그는 밀라노의 지배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총애를 받아 당시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던 교회의 눈을 피해 여러 구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 빈치보다 23살 어린 14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피렌체의 지배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주관으로 가문에서 벌어진 비밀 해부학 강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그것에 깊이 빠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예술가지만, 작품 스타일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다 빈치는 자신의 해부학 지식을 은은하게 드러냈고,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신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절제와 과시라는 상반된 스타일이기에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크 시대를 연 천재 화가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의 명암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이전의 그림들을 보다가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밝고 화려한 색채의 그림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던 어두운 부분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카라바조의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스타일과 거기서 파생된 테네브리즘(Tenebrism) 스타일의 그림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가장 열렬하게 받아들인 스페인에서는 "후세페 데 리베라"와 프랑스 바로크의 대표자 "조르주 드 라 투르"가 유명하고, 네덜란드에서 빛의 마술사라 불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남겼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빛과 어둠의 화가라는 별명을 지닌 "렘브란트 판 레인"을 통해 명암법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단다.

 

 

 

 

고전미술의 해체: 바로크 후반기에서 인상주의까지

 

 

1985년, 미술 전문가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었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을 빼앗기는 많은 지점이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가까이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림을 정교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 마르지 않아 그림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유화의 특성 때문에 마르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는 알라 프리마(Alla Prima)를 연마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통으로 그린 유화와 알라 프리마로 그린 유화의 두 개의 모습에서 확연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나 잘 그린 그림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조지 스텁스"의 개와는 달리 "마네"가 그린 개는 개털의 결이 느껴지는 생생함이 돋보였다.

 

 

선 중심의 회화는 아이작 뉴턴을 통해 색채 중심의 회화로 변모한다. 그리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색채 연구가 미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정석적인 그림 스타일보다 작가의 시선을 중점으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다. 밝게 빛나는 듯한 "모네"의 그림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현대미술의 개화: 세잔에서 현대미술 전반까지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은 이제 그림은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옮기는 그림이 아닌 작가의 표현에 따라 그려지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은 사실적인 풍경을 그린 게 아니기 때문에 왠지 더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 1>은 화려한 금색 빛이 시선을 잡아끌며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표현주의 이후엔 추상주의가 이어졌다. 무얼 그린 건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변화하는 그림을 보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들이 있는 풍경>에서 책을 다른 각도로 봤을 때 깨닫게 된 그림 제목이나 "피에트 몬드리안"의 나무 그림이 추상화로 변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정교하게 표현된 조각이 예술적이라 인정받는 건 당연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마냥 그림만 봤을 때와 달리 시대의 흐름을 통해 그림에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어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보이지 않았던 미술의 이면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 되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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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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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오바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 와중에 종말에 대비한 몇 가족들은 150만 달러를 투자해 사들인 메인 주의 생존 콘도로 향한다. 지하로 뚫린 거대한 아파트처럼 생긴 성소는 각 층마다 2세대가 거주할 수 있고, 공기 필터나 와이파이, TV 등의 편리 시설을 비롯해 1년 동안 그 안에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음식과 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락실과 수영장, 체육관 등이 딸려있어 지루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생존 콘도를 설계한 그레그 풀러를 포함해 강압적인 아빠와 종교적 믿음이 강한 엄마, 쌍둥이 남매로 이루어진 거스리 가족, 엄마와 한국인 아빠, 게임을 좋아하는 재이 가족, 어린 딸에게 무심한 아빠 타이슨과 얼떨결에 이곳에 따라오게 된 보모 케이트,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매덕스 부부, 그리고 도착했을 때부터 아픈 엄마로 인해 감금된 단하우저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성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던 윌 부셰가 며칠 동안 그레그를 도와주러 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성소는 처음부터 잡음이 많았고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초면부터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성소의 설계자인 그레그 풀러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얼마 뒤에는 그곳에 갇히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지구 종말이 갑자기 찾아와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게 아닌 피하면 살 수 있을 정도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걸 알게 된다면 누구나 셀프 감금을 하게 될 것이다. 집안에 먹을 것 등을 쌓아두고 뉴스를 주시하면서 언제쯤 소강상태에 접어들지 기다리는 일 외엔 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핵폭탄이 터져도 안전한 성소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성소가 계획된 것과 다르다면,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들 중 살인자가 있다면, 더욱이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바깥에 나갈 수조차 없게 된다면 사람들은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소설은 정말 안전하다고 여겼던 성소에 다양한 가족들이 모여 얼마간 지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성소에도 온갖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었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고만 드는 사람, 모든 이들을 삐딱하게만 보는 사람과 의심만 하는 사람,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도 존재했지만 처음 느낀 사람들의 이미지는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레그 풀러 사망 이후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하나씩 죽은 채 발견되면서 모든 이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깥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원치 않게 감금되면서 성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극한의 상황에서만 드러나는 사람들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선하기보다는 악한 것 같다고 느껴진다. 생존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달려있어서 예민해질 수 있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자신에게 해를 끼친 누군가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는 있어도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 살아있어 봤자 음식, 물이나 축내지 뭐 하겠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논리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살인자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소름이 끼쳤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이 살인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건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걸 납득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성소 안이나 밖이나 끔찍한 건 마찬가지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라 읽는 동안 점점 숨이 막혀왔다. 입주 직후부터 인터넷이 안 되기 시작하고 나중엔 TV도 나오지 않고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되어 악취가 풍기면서 정말 답답해졌다.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에 살인자와 함께 있다는 것 또한 두려움을 줬다. 읽는 내내 온갖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소재와 내용이 흥미롭고 반전도 있어서 영화로 만들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거주자들 중 몇몇 사이에 근본적으로 이상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기분과 부합하는 말이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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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자락 도서관 팝콘북
펠리시티 해이스 매코이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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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남편 말콤이 직장 동료이자 가족의 친구였던 여자와 부부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을 본 한나는 그날로 런던 집을 나와 아일랜드의 고향 시골 마을 핀파란으로 돌아왔다. 10대였던 딸 재즈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시골로 온 걸 못마땅해 했지만, 차츰 적응을 해나갔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항공사에서 일하며 쉬는 날마다 집에 왔다.

딸이 떠나고 친정 엄마 메리와 남은 한나는 예전부터 엄마와 잘 맞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도무지 엄마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의 나이도 이제 50살이 넘었으니 고모할머니가 남겨준 다 쓰러져가는 집을 수리해 엄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

 

한나는 전남편 말콤에게 위자료를 하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집 수리 비용 마련을 위해 이제서야 말콤에게 그 얘기를 꺼내지만, 그는 돈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며 치사하게 군다. 어쩔 수 없이 신용협동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돈을 마련하고, 괴짜 같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건축업자 퓨리가 집 수리를 맡는다.

그런데 한나가 사서로 일하고 있는 도서관이 폐관될 예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바다가 가까운 절벽의 소박한 시골 마을은 건너 건너 다 아는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는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소문이 두려워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한나를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3번 도서관에서 일하는 코너는 한나가 조금 무뚝뚝해 보여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또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집 수리를 해주는 퓨리 역시 소문에 연연하지 않고 그녀를 대했고, 나중에 알게 된 브라이언도 그녀와 좋은 친구가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다져지며 혼자 살게 될 집을 수리하던 한나 앞에 해고라는 큰 문제가 나타난다. 옆 지역은 유명한 사람이 책에서 언급해 관광지로 거듭나 주 예산이 그곳 개발에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나의 관리하에 있던 도서는 새로 지을 복합 건물로 옮겨질 것이고 발전된 기술 덕에 더 이상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한나만의 문제가 아닌 그 마을 사람들 모두의 문제였다. 성인이 되어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날 수 있었지만, 고향에 남기로 하고 이곳을 일구기 위해 가게를 열거나 관광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던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일이 그리 잘 풀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서관의 한나와 코너, 그리고 아이디어를 제공한 수녀원의 미카엘 수녀님을 중심으로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이곳을 지켜내고 발전시킬 제안서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10대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도시로 나가버려 그곳엔 나이 많은 사람들만 남아 점점 쇠퇴한다. 어떤 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타지 않는 이상 잊혀질 곳이었고, 그곳에 할당될 예산 또한 없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되면 겨우 남아있던 젊은 사람들은 기회조차 없어 도시로 떠나기 마련이었다.

이래서 시골엔 노인들만 남게 되고 기술 발전도 더뎌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도 받기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고향 마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관계에 관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을 피했던 한나와 그런 딸을 못마땅해 했던 한나의 엄마와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한나는 사람들과 사귀며 이전과는 다른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때로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한나와 코너를 비롯해 다른 등장인물의 시점이 불쑥 튀어나오고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진행되어 중반 이후 결합되기까지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괜찮았던 소설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뭉치니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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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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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직 사기꾼이었던 변호사 에디 플린에게 거대 법률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루디 카프가 다가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형사재판의 차석 변호인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루디가 1년째 맡은 일은 스타로 떠오른 배우 로버트 솔로몬, 일명 바비가 결혼한 지 갓 두 달이 된 배우 아내 아리엘라 블룸과 경호 책임자 칼 토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바비가 부부의 침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 화가 나서 그들을 죽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바비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결백을 말했지만 증거들은 모두 그를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었다. 사건을 거절하려고 했던 에디는 바비를 만난 이후 그가 정말 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변호하게 된다.

 

한편, 진짜 범인 조슈아 케인은 바비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신이 신분을 훔친 사람이 배심원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손을 쓴다.

 

 

 

 

 

 

사기꾼이라는 특이한 전직을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법정 스릴러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일단 밝혀놓고 시작했다. 케인은 형사 법원 앞에서 몇 주 동안 노숙자로 지내다가 배심원단 후보를 입수했고, 그중 한 사람을 골라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그와 똑같이 외모를 바꾸고 목소리나 말투 등을 익혀 그 사람 행세를 했다. 그는 남을 흉내 내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케인이 왜 배심원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왜 죽이고 다니는 건지는 후반으로 가면서 밝혀졌다.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는 바비의 사건에 에디가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내 크리스틴, 딸 에이미와 떨어져 사는 이유는 아마도 이전에 그가 맡은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이 위험해 처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에디가 가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등장할 때마다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여러 번 위험에 빠졌었기에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주인공들의 모습이었다.

"에디 플린 시리즈"의 세 번째 소설이지만, 국내에는 첫 출판된 작가의 작품이라 앞선 두 편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이전 시리즈에서 에디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이는 전직 FBI 요원이자 현직 사설 조사원으로 일하는 하퍼가 등장해 에디에게 큰 도움을 줬고, 루디 법률회사의 배심원 컨설턴트로 고용된 아널드 노보셀릭 역시 에디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바비를 위해 협력하게 된다.

 

처음엔 바비의 결백을 도무지 밝힐 수 없었지만 칼 토저의 입에서 나온, 나비 모양으로 접힌 1달러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쥐게 된다. 거기서부터 풀어가는 연쇄살인의 비밀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고 케인이 진짜 머리가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머리를 써서 빠져나가고 그의 일을 돕는 사람도 있어서 행운은 언제나 그의 편인 것 같았지만, 정의는 언제나 이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상황이 뒤집혀서 뒤통수를 적어도 세 번 이상 맞아서 계속 감탄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딱 어울리던 소설이었다.

 

케인은 몇 번이나 언급되던 유명한 소설에 등장한 설정이 살인의 이유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증오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었지만, 그게 살인을 정당화시켜주는 건 아니었고 그걸 본인이 판단할 권리도 없었다. 다른 스릴러 시리즈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한 자기 논리에 흠뻑 빠진 미친 사이코패스였다.

 

법정 장면에서는 검사 아트 프라이어와 에디가 주도권을 잡으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흥미로웠고, 후반으로 가면서는 윤곽이 드러난 진짜 범인을 밝혀내려고 하던 에디와 도망치기 위해 계획을 짜던 케인의 두뇌 싸움이 스릴 있었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준 소설이라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500페이지 가량 되는 소설인데 후다닥 읽어버렸을 만큼 재미있었다. 에디 플린 시리즈의 이전 책들도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뭔가를 두려워하며 자랐다. 귀신, 벽장 속 괴물, 침대 밑에 숨어 있는 악마. 부모들은 그건 단지 너의 상상이라고 말한다. 악마는 없단다. 괴물은 없단다.
하지만 있다.
(……중략)
여기에 즐거움을 위해 살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게임이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 P348.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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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투에고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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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어피치, 튜브에 이어 무지&콘의 에세이가 나왔다. 콘은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했는데 무지와 짝꿍인가 보다.

캐릭터 소개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건 무지가 단무지였다는 거다! 맙소사, 토끼옷 입은 단무지라니!!! 최근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다.

 

 

 

 

 

다 잘될 거라고 말하진 않을게

 

 

토요일이 두근두근한 이유는 로또 때문! 이번에도 안 될지라도 로또 추첨 번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꿈을 꿀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당첨되면 대박인 거고.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00분의 1이라는데, 책에는 반반이라고 쓰여 있다. 되거나 안 되거나. 정확한 말이다.

 

초반에 로또 얘기가 나오고 몇 페이지 뒤에는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그려져 있어서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운이 상승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만 고르는 건 어렵다는 내용에 왜 만화 고기가 그려져 있는지. 뭘 먹고 싶은지 하나만 고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말하려는 걸까.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뷔페에 가야 하는 나 같은 사람 많겠지?

음식에 관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하나만 고르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으니까. 마음이 여러 개인 만큼 여러 개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페인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뜻의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미래는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어찌할 줄 모르겠을 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이 순간이 그저 지나가길 기다린다.

케세라세라, 왠지 마법처럼 느껴지는 주문이다.

 

 

좋았던 감정을 담아두는 캔이라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별로일 때 행복했을 때의 기분을 꺼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좋았던 기분뿐만 아니라 두근거렸던 기억, 행복한 기억도 담아두면 정말 좋겠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아니면 무심코 넘겨버렸을 어떤 기회든.

타이밍을 알아볼 눈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단 한 번뿐일 타이밍을 알아본다면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

 

 

 

 

 

불안은 토끼옷에 달린 꼬리 같아

 

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기분이 좋거나 혹은 나쁠 때 만난 사람, 축 처져있는 나를 만난 사람 등 각자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어떻게 기억하든 그 모든 사람은 나고, 그런 모든 나를 기억하는 것도 바로 나다.

 

안 읽어봤지만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 다들 미움받을 용기를 내려고 할 때 그냥 미워하기보다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좋았다.

 

 

누군가에게서 고민을 듣게 되면 괜히 미안해진다는 말에 공감이 됐다. 해결 방법을 알려주고 싶지만 나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를 때 그냥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고민"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답을 찾는 게 아닌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나일 때 가장 편해

 

어릴 때 내가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던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 어릴 때만이 아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즐겁고 신나는 일은 내가 하고 어려운 일은 다른 내가 한다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니 손톱, 발톱 먹은 쥐에 대한 동화가 생각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진심이라고 하고선 진짜 마음은 꽁꽁 숨기고 있으니까. 웃음 뒤에 다른 마음, 친절함 뒤에 가식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진심을 말하는 세상이라면 정말 끔찍하다.

그걸 알고도 살아가는 것, 그래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뒷부분에 부끄러운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게 생각났다. 싫은 사람을 대할 때나 안 좋은 기분은 얼굴에 특히 잘 드러나서 무표정으로 일관하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다 알아챘지만.

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다.

 

 

모두에게 있을 기억 보관함에 대한 표현이 너무 딱 들어맞았다. 4단 서랍장처럼 비밀의 보안 정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어떤 사람에게 몇 번째 서랍까지 오픈할지 결정하는 것. 밝히기 어려워 꽁꽁 숨기려고 하는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나의 외로움까지 사랑할래

 

 

복잡한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단어는 정말 없는 것 같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기분 나쁜 상황은 하나의 감정일 때도 있지만 여러 감정이 섞어 복잡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마치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인 "웃프다"처럼.

다른 감정도 이런 합성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사람마다는 각자의 보폭이 있다.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만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동반자 혹은 친구, 가족 모두 각자의 걸음으로 자신이 목표한 곳을 향해 간다.

보폭이 달라도 서로의 속도를 이해해주고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옳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묵묵히 바라봐 주고 응원해주는 것 또한 큰 힘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별은 이별. 이 별에서 한때 알고 지내던 사람.

엄청 슬픈 말인데 이 와중에 한글의 위대함에 먼저 감탄했다.

 

사랑의 끝을 말하는 슬픈 감정보다는 한결같이 지속되는 감정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

 

 

 

 

 

혼자라서 좋고, 함께라서 더 좋은

 

 

그러고 보니 "웃음"과 "울음"이 받침 한 글자 차이인 줄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뿐인 차이인데 두 단어의 거리는 천지차이. 웃음과 울음의 각 감정은 그렇게 서로 닿을 수없이 멀기만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너무나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라 그럴 수 있지만, 당연한 건 당연한 거니까 그걸 지키지 않으면 왠지 싫은 사람 쪽으로 분류하게 된다.

특히 약속을 안 지키는 거, 정말이지 너무너무 싫다! 거짓말도, 험담도. 그냥 모두 다 공감이 되는 것들뿐이네.

 

서로 다른 점이나 싸울 때도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우리"라는 것이 상대와 나를 묶어준다.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 무지와 악어를 닮은 정체불명의 콘의 재미있는 에세이였다.

무지무지 행운이 넘치길, 무지무지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는 무지의 말이 무지무지 좋았다.(하지만 아직까지 충격인 단무지...)

 

언제나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위로가 되어주는 카카오프렌즈 에세이였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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